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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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157쪽

 

부모님이 살아 계시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항상 내처질 때 고아라고 느낀다.

 

혈연지연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일정 부분 고아가 아닐까?

 

아니다. 이것조차 사치스러운 소리다. 정말로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실로 눈물겨웠다. 같이 울어줄 이가 없는 아이들. 그래서 더 마음 아팠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1쪽

 

가열차게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자고 세상밖으로 나선다.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아 보금자리를 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 걸 모두 평범한 삶이라 하지만 모두에게 허용된 삶은 아니다. 아등바등하는 동안 그늘은 깊어만 간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에서 '밝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밝아야 할 시절인데 마냥 그럴 수만 없는 청춘이 많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사실 국민 대다수가 밝을 수 없는 '불친절한 노동'에 장시간 시달렸다. 작가의 아버지도  고물상, 메리야쓰 공장 노동자, 구청기능직 공무원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왔다. 오죽하면 아들에게 대학가지 말라고 했을까. 대학 가서 졸업하고 취직해서 아이 낳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 불행의 끈을 자르라고, 출가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단다.

 

막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는 자식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라 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렇게 살아왔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번은 미아리 극장에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최무룡 씨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어. 너 최무룡씨 알지? 몰라? 그 때 극장들은 로비에 벤처스ventures류의 경음악을 크게 틀어놓았거든. 아, 신나지. 그리고 대형 거울도 있었어. 그 때 어디 가정집에서 거울을 들이고 살았나? 극장이나 가야 거울이 있지. 극장 로비에 앉아 거울을 보는데 구석에 어떤 거지가 앉아 있더라고. 거지도 영화를 보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그게 내 모습이었어. 그 때가 양복점 일하기 전에 창동으로 고물 주우러 다닐 때니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울먹이시다 끝내 오열. 겨우 그치고) 그 영화 줄거리가 꼭 내 이야기 같았어. 주인공이 고아인데 나랑 처지가 비슷하더라고. 영화 끝나고도 집에 갈 때까지 울었어. 당시 홀아비로 살던 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푸른 하늘 은하수>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 할아버지는 먼저 그 영화를 봤나봐, 그러더니 나더러 더 울라고......(다시 오열)" 164쪽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고 아들은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고아가 되면 <푸른 하늘 은하수>도 구해봐야지. 그때는 내가 아버지처럼 엉엉 울게. 그래. 끊어요. 그말 울고, 아버지" 

 

라고 한다. 아버지의 말은 절절한 한편의 시 같다. 시인과 아버지는 실로 대한민국에서 드문 부자관계 아닌가. 맘껏 울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이라니.

 

시인은 아버지 뻘인 문인들과도 친분이 있는 편이라 자주 술자리에 동석한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18쪽 (중략)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9쪽

 

 

70-80대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면 일상적인 한 마디 대화가 그대로 유언이 되어버린다.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 '목마르다'였나. 그것도 남에게 전해들었다. 시아버님이 내게 남기신 유언은 정말로 유언다웠다.

 

"너는 말이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해"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젊다고 해도, 친구라 해도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 마지막으로 서로 주고받은 말이 유언이 된 경우도 많다. 한 친구는 내게 "아이 다 키우면 그래도 그때는 볼 수 있겠지'라고 했다. 아이가 아직 다 크지 않아서 10년이 지나도록 못 보고 있다. 한때는 애인보다 소중했던 친구였는데. 가끔 그애 남편 블로그를 들여다보다 그마저도 열없어 관두었다. 잘 지내고 있으면 된 거지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 들지 않는다.

 

*

시인은 서울 태생인데 이게 참 시인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저 군대에 갔을 때 '서울 깍쟁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정도이다. 나도 유년을 서울 언저리에 보냈고 별 의미는 없다. 그냥 여의도에서 자전거 타고 중고등 시기에 시험이 끝나면 명동에 가고 그 정도이지 수도 서울에 살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인 것을 맘껏 누린 것도 아니었다.

 

작가, 시인이라면 순천, 보성, 통영, 남해, 강릉 출생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과도 비슷하다. 시인은 서울 태생의 한계를 지우려 남도로 봄마중도 가고 여러 곳을 여행다녔다. 나도 5년 전 광주에 온 이후로 남도의 여러 곳을 기회가 날 때마다 다녀보았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 두시간만 가면 경치 좋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남도다.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69쪽 

 

봄이 오려고 하면 정말 해남에 가게 된다. 아이들은 두꺼운 겉옷을 입고 나섰다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 달음박질치며 옷을 벗는다.

 

올해 초에 통영 거제에도 가보았다. 알쓸신잡으로 더 유명해지기 전에도 통영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비린 걸 즐기지 않는 나도 한그릇 잘 비웠고 어쩐지 어른이 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려면(아니 한곳에 붙박혀 생활하기만 해도) 당연히 돈이 필요할 것이다. 전업 시인은 그래서 힘들고 시인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문인들이 창작을 통해 벌어들이는 평균 연봉은 214만원이라 한다. 월급이 아닌 연봉이 214만원.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63쪽

 

밥벌이와 꿈이 일치하지 않는 신산한 삶을 오래 살아와 그런지 시인은 빨리 늙어버렸고 이런 선배 문인의 이야기에 위안받나보다. 

 

시인의 시는 사실 오래 전에 유명한 드라마에서 제목만 보았고 산문도 처음이다. 그런데 어느 장이 시이고 어디가 산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고 자꾸 돌아가서 다시 읽고 싶은 장이 생긴다. 경험의 장이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 변두리에서 유년을 난 사람들의 정서라고나 할까.

 

시인이 남도로 여행다니며 쓴 시와 글이 따스해서 좋다. 산문집도 잘 되고(이미 잘 되셨지만) 앞으로 시집들도 잘 읽혀서 오래오래 쓰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중략)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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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아지는 정리정돈법 - 아이를 변화시키는 1% 습관 혁명
오오노리 마미 지음, 윤지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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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갈 무렵 집안 상태는 혼돈 그 자체.

치워라, 정리 좀 해라, 외쳐도 여기저기 책, 놀잇감, 학용품, 레고 등이 널려 있다.

 

이 책은 아이 있는 집이면 으레 마주치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적절하게 제시한다. 아이들을 위한 미니멀리즘은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4인 가정이라고 하면 하루에 각자 물건을 하나씩만 들고 와도 4☓365=1460, 1년에 천오백 개 남짓한 물건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가져오지 않기.

 

그러나 아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관심사도 다양하다. 자연히 갖고 싶은 물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물건이 쌓이면 무조건 엄마 판단으로 버리기보다 '생각 중인 상자'라는 데에 판단을 유보해둔다. 시간이 지나 다시 열어봐도 보관하고 싶은 건 보물상자로 이동하고 아닌 것은 버린다. 버리기 쉬운 물건으로는 작아진 옷, 고장난 장난감, 철지난 프린트물, 상자 등이다. 이게 참 이상보다 쉽지 않은 게 레고상자 같은 것도 아이 입장에서는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되어서 쌓여만 간다. 그런데 이건 어느 정도는 시간이 해결하는듯하다.  

 

아이에게 정리하라고 할 때 막연하게 이야기하기 보다 사용하는 물건, 사용하지 않는 물건으로 나누게 하고 서랍 전체를 꺼내 이 기준에 따라 버리고 수납하게 한다.

 

아이들 짐의 주범은 책과 옷.

 

책과 옷도 1년 이상 읽지 않거나 입지 않는 건 과감히 정리하고 수납할 때 80프로 정도 채워서 꺼내기 쉽고 정리하게 쉽게 한다. 아이 옷이 150사이즈 기점되는 때로 옷 정리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공감한다. 이제 성인 사이즈에 가깝게 되어 장농도 다 새로 사야 한다.

 

아이들이 정리를 못한다고 하지만 엄마들이 '추억 스토커'가 되어 버리지 못하는 게 가득이다. 나도 '최초'에 의미를 두고 배냇저고리며 처음 신은 신발을 아이가 11살인 지금도 가지고 있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그것에 매달리다보면 가족들이 현재를 누릴 공간이 부족해진다.

 

아이들 작품 전시 요령도 볼 만하다. 엄마 눈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판단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남기고 싶어하는 작품에 더 가치를 두라는 말이 의미 있다. 새 작품을 집안 한 공간에 일정 기간 전시하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오면 정리한다. 사진을 찍어두고 버리는 게 나은데 애들이 초등인 요즘은 그냥 버리게 된다. 곧 더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 그리고 만들고 그리는 순간 행복하면 된 거니까.

 

식탁을 항상 깨끗하게 비워두라는 조언이 유용하다. 다소 엉성하게 정리된 집이라도 아이들 책상이나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정돈되어 보인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보는 곳에서 공부하는 편이 성적이 잘 오른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이들은 부모가 곁에 있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미지의 일에 도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부는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방문을 닫아두고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열린 공간인 식탁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퍼센트를 배출한 유대인을 ‘지혜로운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교육전문가들은 유대인들이 다방면에 걸쳐 높은 성취를 이룬 비결로 ‘하브루타(havruta)’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교육방식을 꼽습니다. 히브리어로 친구 또는 짝을 의미하는 하브루타는 나이·계급·성별에 관계없이 서로 짝을 이루어 토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유대인들은 식탁을 하브루타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평소 가족과 식사하며 활발히 토론하고, 그들의 안식일인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몇 시간씩 토론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가 식탁에서 공부하면 모르는 게 있을 때 질문하고, 부모가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_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식탁에서 숙제한다!’(92쪽)

 

 

공부방에 아이들 책상 두 개가 나란히 있지만 꼭 아이들이 식탁에서 숙제하게 된다.

밑줄은 아주 이상적인 얘기고 꾸물거리지 못하게 하고 빨리 해결하고 재워야 해서 그렇다. 흰 식탁에 연필 자국이 남아 매직스펀지로 주기적으로 지워줘야 하니 그게 좀 문제다. 그리고 가끔은 밥먹는 데 지우개, 연필이 굴러다닌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다이소 같은 데서 손잡이 달린 수납상자를 사서(아니, 만들어도 된다) '공부 박스'라 이름 짓고 학용품을 아이공부방에서 거실 등으로 자유롭게 옮겨주라고 한다.

 

 

 

 

다이소몰, 시스맥스 마이큐브 68005

정리정돈은 뇌의 전두엽이 관장하는 고도의 인지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전두엽이 아직 덜 발달해 정리 정돈이 익숙하지 않다. 전두엽은 두세 살 무렵부터 발달해 스물 다섯 살까지 성숙하는 것이라고 하니 느긋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너무 뭐라고 다그치지 말고 함께 정돈하자는 것이다. (헉, 대학 때까지 이 지경을 봐야 하다니)

 

전두엽은 사고력, 기억력, 창의력, 문제해결력 등 논리적인 판단을 관장하고 전두엽이 잘 발달해 있을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아이의 전두엽 발달을 위해서라도 분류하고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정리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같은 정리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에 의한 것이어야 할듯하다.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혼돈한 가운데 자료를 찾아내 과업을 얼마든지 훌륭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빡빡한 일정보다 '오아시스 시간'이라고 해서 맘대로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시간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맘에 들었다.

소설가 이기호님 아들이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고 했던가. 아니다 같이 정리해도 반나절을 못 넘긴다. -_-

 

열한 살 초4병 아들은 자기는 아예 '버릇이 없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4학년 정도 되면 반애들이 다 그렇게 된다나.

 

다행히 아홉 살 딸이 같이 열심히 치워준다. 엄마, 이거 버리는 거지 만날 물어봐주고 물건 찾는 것도 도와준다. 스티커나 자잘한 것들을 버리는 데 힘들어하지만 나는 전에 더했으니 이 정도는 양호하다.

 

아이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주는 방법

-아이와 매일 웃는 얼굴로 스킨십 할 것

-"너는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한단다"라고 자주 말해줄 것

-하루에 한번은 아이와 밥을 먹을 것. 식사가 힘들다면 간식을 먹어도 좋다. (중략)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일까요?

정답은 "다 괜찮을 거야"입니다. 198-199쪽

 

정리, 정돈도 좋지만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다 괜찮다, 지켜봐주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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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임수진 지음 / 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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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운드포크페스티벌에서 계피를 처음 보았다. 첫인상은 어딘가 원불교 전도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음향을 체크하고 공들여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반했다. 간만에 여자에게 반하는구나. 대체할 수 없는 음색이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목소리대로, 말하는 음성은 음성대로 다 좋았다. 낭독회에도 어울릴 목소리.

 

인터뷰와 강연 등을 찾아보고 음악도 듣다가 아무 기대 없이 어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실망할 각오를 하고. 그런데 정말 최근 읽은 에세이 중에서 제일 교훈적이다. 나도 계피같이 어느 정도 교훈마니아라 만화나 웹툰을 보면서도 억지로 교훈을 찾곤 하는데 ㅋ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라고나 할까. 의연하고 다감하다. 심심하지만, 지루하지는 않게 잘 살아가는 듯하다. 유년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학교에서 한마디도 안했던'고독하고 조숙한 아홉 살' 꼬마는 유년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린 시절을 낙원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박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막막함을 느꼈다. 인생이 모래바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 물기 하나 없는 거대한 모래 산을 마주하는 기분. p.89

 

나의 유년과 맞닿아 있다.

 

전학간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아 외국에서 온 아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전학간 학교의 담임 선생님 이름은 정말로 홍길동.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노란 은행나무잎이 떨어져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시간은 정말 가지 않았다. 엄마가 일하러 가시면 동생이랑 베지밀 공병에 베지밀과 똑같은 색이 되도록 물감을 섞어서 골목길에 병을 내어두고 누가 가져가나 바라보곤 했다.

 

개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게 정이 많게 태어났을까? 허구한 날 가슴 아프게 p.68

 

어릴 때 계피는 개를 길렀지만 잘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고양이, 물고기 등을 사정이 생기면 공들여 기른다. 작정하고 기른 게 아니라 우연한 기회가 생기면 성심을 다해 돌본다. 이런 점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동물병원에 알아보고 온갖 수고는 하지만 내가 얘들을 사랑한다고 막 내세우지는 않는다. 난 어릴 때 병아리나 새를 키워본 적이 있지만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로 길러본 적이 없다. 어릴 때 개와 얽힌 기억이 있어 무서워하는 편이다. 정이 많은 짐승들이 다가와도 한발짝 물러나는 편이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개나 고양이의 주인에 대한 정은 무척 깊다고 한다. 얘기를 다 들어보면 정말 뭉클하다.

 

전반부에 유년, 자신의 엄마, 아빠 이야기가 살짝 나오고 후반부에 남편, 시어머니 이야기가 있다. 뮤지션 부부라서 언제나 감각 있고 뭔가 이효리 부부 같지 않을까 같았는데 현실적이라 좋았다.

 

시어머니가 때가 낀 락앤락통이나 원치 않는 먹거리를 부쳐와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

 

"우리 엄마가 예전에는 그릇을 이렇게 쓰지 않았거든요...."

나는 그가 하지 않은 말까지 이해했다. 얼른 받아서 말했다, 그럼요, 우리 엄마도 그러는 걸 뭐, 나이가 드니까 잘 안 보이잖아, 힘도 들고, 똑같은 살림을 하루 세 번 삼십 년 해봐요. 어디 그릇 틈새까지 박박 닦고 싶겠어, 나라도 싫겠다.

나는 아픈 사람이 시장에 가서 버섯을 사고, 식초를 넣어 절이려다가 식초가 없어서 냉장고에 있던 레몬즙을 뿌리는 광경을 상상한다. pp.200-201

 

물론 부부 사이라 가끔은 묵은 감정의 감자 뭉치 같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남편의 쓸쓸한 유년기라든가 아픈 시어머님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사후에 남편이 불렀던 붉은 노을의 의미 이런 부분은 작가의 성정을 짐작케 한다. 상대를 한없이 가여워하고 묵묵히 곁을 내어준다. 별 특징없는 사건이나 평범한 인물도 작가의 시선을 거쳐 일본영화의 한 장면같이 살아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이게 아줌마성에서 제일 슬픈 건데.”

“뭔데?”

“남편한테선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게 되어버린다는 거야. 미혼인 경우에는 그래도 희망이란 게 있는데 남편이 있다면 진짜 디 엔드잖아. 다른 남자를 찾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좀 큰, 차원이 다른 액션이란 말이지.”

“아.....”

“그런 거.”

“......결혼한 상태에서만 오는 외로움이 있긴 한 거 같다. ”

 

“그런데 나쁘지 않아. 포기를 하게 되니까. 나쁘게 말하면 포기고 좋게 말하면 인정인데, 결혼 안 하면 영원히 희망을 가지거든. 안 당해봐서. 내 마지막 사람도 내 것이 아니라는 배신감, 함 당해봐야 알지. 그니까 희망이 있는 상태에서는 백 퍼센트는 없다는 걸 절대 인정 안 하려 하거든. ㅈ도 백퍼센트가 어딨냐. 세상에.”

“으하하하하하.”

“이게 ㅈ나 인생의 레슨이거든. 백 퍼센트는 백 퍼 없거든. 백 퍼센트를 요구받는 사람은 또 얼마나 갑갑하겠느냐고, 지는 한다고 하는데. 점점 ‘행복해지려면 이대로를 고마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를, 이 지하철 ‘사랑의 편지’ 같은 데 나올 것 같은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

pp.233-235

 

 

 

'아줌마성'에 대해 심히 공감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더 이상 진정으로 설레지 않고 생기를 잃어가는 상태가 아줌마성의 본질이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나 잡지 '좋은 생각'을 보고 진정으로 감동할 때 난 이제 정말 아줌마가 되었다고 느낀다.

 

아들이 엄마 개미 허리 같아.

아이구, 고맙네 아들.

개미는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져 있지, 우하하.

하고 도망갈 때 난 다 아는 농담이지만(마음의 소리에서 봤다, 요 녀석아) 엄청 분한 척하면서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진정한 엄마가 된 기분. 막 의기양양하구나. ㅋ

 

 

의지 없는 인생의 아름다움.

어영부영 가는 인생의 사랑스러움.

의지로는 사랑할 수 없지. 의지로는 사랑을 지속할 수도 없다.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다.

p. 179

 

 

어영부영... 흐지부지...

이런 거 정말 싫었는데 요즘의 생활이 딱 그렇다.

뭔가 막 주장하고 나면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30대에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어떤 사상이라든가 주장보다는 그 속의 사람이나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러니 점점 더 할말이 없어졌다. 애들에게도 얘야, 넌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게 점점 적어진다.

 

나는 오히려 무언가에 대해 강한 의견을 토로하고 나면 좀 염려가 된다.

다른 이가 그러는 걸 봐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그 의견이 살다보면 변할 수도 있을 텐데.

살다보면 정도가 아니고,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있을 경우 당장 내일이라도 변할 수 있는데.

무엇을 파고 파고 들어가면 입장이 바뀌는 일은 정말 흔하지 않던가.

입장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이해해버리는 마음이 나지 않던가. 슬쩍 풀어져버리지 않던가.

p.177

 

다 그럴 수도 있지, 를 달고 산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정말 사람 수만큼의 주장이 있고 같은 편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해도 완전히 같은 생각은 아니라는 거다.

 

다른 사람 충고 듣지 마. 다 자기 맥락에서의 자기 말이야. 충고 안 들어서 망할 거면 망해버려.

네 방식대로 망해버려. 망해서 빨리 알아차리게.다 늦어서 망하면 어떻게 다시 돌아오려고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말고 확, 알겠지 확, 피어버리자. p.250

 

속시원하다. 충고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입장을 확인받고 싶은 것일 뿐이다. 빨리 시도하고 망하든 흥하든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게 좋다. 그리고 지나치게 걱정 말고.

 

 

*

 

에세이에서는 '놈팡이' 같은 일상을 주로 썼지만 실은 바지런하게 일하고 살림하는 듯하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답게 의지나 생각이 아닌 자동적으로 몸에 밴 부지런함이 있겠지.

 

나보다 계피님은 무려 몇 살이나 어리지만 대학 때 속깊은 후배를 보고 많이 배웠듯이 삶에 대한 태도를 한 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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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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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우리 겨우 ‘고경단녀’에 ‘동남아’일세.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동창이 하는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고경단녀? 동남아?

‘고학력 경력단절여성’,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란다. ‘맘충’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동남아’라 자조하다니! 외국인 노동자 비하의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는 그 단어 정말 싫고 낯설었다. 그런데 딱히 뭐라고 동창에게 훈계하기도 그렇고 해서 애들이 말을 안 듣네, 집안일이 해도 안 해도 그 타령이네, 언제 보자는 둥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다 아이를 핑계로 통화를 마쳤다.

 

그래, 집안일 힘들지, 보람 없지, 노동은 신성하다는데 가사노동은 예외지.

집안일이 힘들고 보람 없는 이유는 대체 뭘까?

 

첫째, 자기 집안일하는 것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사도우미는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받지만 전업주부는 그렇지 않다. 주부는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무보수 감정노동 종사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볼 수 없어 힘들다.

 

 

결국 부부 중 한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p.143

 

 

둘째, 가사 노동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아 실현할 수 있는 부문도 아니다.

 

살림은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허드렛일로 치부되고 자아 실현과는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다. 살림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회 일과 비교해볼 때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며 살림, 육아는 개별적 성취의 분야가 아니다. 물론 요리, 청소, 정돈, 교육 분야의 파워블로거들이 있으나 처음엔 자기 집안일을 하다가 별도로 요리책 출간이나 서비스를 통해 부를 창출한 것이지 자기 집안일만 하는 것으로 사회적 인정이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 남녀를 불문하고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높은 편이 아니다. 전업주부의 경우 남편의 사회 경제적 위치를 따라갈 뿐 주부로 사회적 성취나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유독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 149

 

 

셋째,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일을 계획하여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 또한 일을 함께 할 동료가 없이 고립되어 있다. 물론 같이 사는 가족이 조력자가 되어야 하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다.

 

가사노동은 미취학 아이들 육아, 청소, 요리, 집안 수리 혹은 집안에 따라서는 노부모 간병, 취학아동 교육, 관공서, 은행일 등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잡다하다. 개별적으로 남에게 맡기려면 모두 비용이 드는 것이나 내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일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직장은 출퇴근과 주야간 교대가 명확하지만 가사나 육아는 그렇지 않다. 분절된 시간을 적절히 써가며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일 동동거려도 집안 꼴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회사원 A씨에게 2시간이나 혹은 30분씩 분야가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던져준다면 그가 일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미취학 아동엄마는 아이 컨디션에 따라 시간을 쪼개가며 써야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얼 하고 계획은 있지만 막상 변수가 너무 많고 조력자가 없다.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거나 하는 가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이 많으니 힘들 것 없다고 하고 한때 ‘영유애엄브(아이는 영어유치원 엄마는 브런치)’라는 괴상한 신조어가 유행하던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건 계급의 문제이지 전체 여성이 처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대개 저소득 가정의 주부는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동안만 가능한 계약직인 경우도 있고 취업준비나 건강 문제 등으로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종일이냐 오전이냐에 따라 다르고 아이가 한 달 내내 기계적으로 어린이집에 출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가정이 선택한 문제에 대해 남들이 뭐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 보육의 질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저 어린이집 보내놓고 엄마는 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 가사노동은 육체적, 감정노동이 상당하다. 전형적 그림자 노동이다.

 

4-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미취학 어린애들 들어올려 씻기고 먹이고 그 와중에 집안 청소와 요리를 병행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이 모든 집안일은 위치를 잃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만들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단순 노동과정이다. 창조적인 결과물이 있는 것은 요리나 재봉 정도일 뿐.

 

집안 일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엔트로피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 상태, 화초 관리상태, 비품 구비 수준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거의 쉼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특히 집안에 혈기 왕성한 미취학 어린이가 있을 땐 엔트로피는 빛의 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어찌나 어질러대는지...), 게다가 그게 여자 아이라면 대외적인 품위까지 챙겨야 하기에(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 고려해야 할 이슈는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결론은.... 집안 꼴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거 거의 불가능(물론 예외 인정, 몇몇은 알고 있음), 둘이 매달려도 버겁다는 거(남자가 도와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 직접 하든지, 돈 마이 벌어 사람을 고용하든지),www.fb.com/botzzim,

 

미취학, 취학 아동을 돌보는 것, 훈육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고 아이가 장시간 우는 소리도 참아내야 한다.

공교육, 사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걸 엄마들이 하는 경우도 많다.(엄마표) 훈육의 경우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고도의 감정 노동이다. 발달단계에 이르지 않아 설득이 불가능한 미취학 아동의 육아는 고도의 정신적 스트레스, 죄책감, 수치심 등을 안긴다. 특히 육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에서 맘충이라 불리는 스트레스도 크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중략)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다섯째, 가정 내의 자원과 공간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생활비 중 주부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주부인 경우 자신만을 위한 비용이나 공간이 충분치 않다. 개인 용돈이나 자신만의 방이 있는 주부는 상위 몇 프로일 것이다.

커피숍이나 찜질방에 나와 있는 주부들 중 매일 그렇게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회사원이라 해도 월급루팡이라 불리는 회사에서 틈틈이 노는 족속이 있듯이 인스타 유명엄마들도 그런 부류일 뿐이다. 대개 아주 잠시 짬을 내어 쉬고 있는 분들인데 회사원들이 보기에 낮시간대에 나와 있어 편하게 보일 뿐. 김구라가 찜질방에 있는 엄마들 부럽다고 하자 양희은 씨가 저 엄마들 밤새 애들 보초 서고 병간호하다 이제 나온 거야.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것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받는다.

p.188

 

 

 

여섯째, 현대사회에서는 살림과 양육에 대한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중상층 이상의 전업주부가 수행하는 살림과 육아가 표준이 되어 많은 여성들을 괴롭게 한다. 전업 주부라고 하면 진짜 ‘업(카르마)’을 진 듯하다. 집안은 미니멀리즘에 맞게 잘 정돈되고 인테리어는 북유럽풍에 맞게 모던해야 한다. 아이는 건강식으로 잘 키워야 하고 여러 엄마표 놀이와 교육으로 감성 있게 커야 하며 인지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미모관리도 되어서 아름답고 감각 있는 엄마여야 한다.

중상층 전업주부의 이런 고민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생계형 맞벌이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맞벌이나 파트타임을 한다고 해도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맞벌이는 원해도 맞살림이나 맞밥은 싫은 분들이 많다. 또한 경력단절 여성의 급여는 터무니없이 낮고 노동요건은 열악하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팍팍해 전업주부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특히 아이들이 중고등 가는 시기에, 즉 40-50대 여성 취업률이 다시 높아진다. 높은 학원비, 치솟는 물가, 노후 대비 등으로 고소득층을 제외하고는 팔자 편한? 전업주부로 있을 시기도 사실 몇 년에 불과하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p.144

 

 

참으로 의미 있는 조사결과이다.

심지어 남성 주부로 있을지라도 취업한 여성보다 가사를 더 많이 하지는 않는다니.

 

이 소설의 마지막은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로 끝을 맺는다.

가사로 인해 회사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 노동력을 선호하는 것이다.

 

픽션이 아닌 논픽션 같은 결말이다. 20대 여성 취업률은 그 나이대 남성보다 높다가 출산과 육아하는 시기에 떨어져서 다시 40-50대 중장년층로 가면 높아진다.

 

왜 남자들은 팔자 좋은? 중상층 가상의 전업주부를 설정해두고 전체 여성들을 비난할까.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현실 세계의 어린 여자아이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40-50대 이모님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

가깝게는 매일 장을 보고 밥을 차리고 청소하는 엄마나 부인, 누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남초 카페나 게시판에서는 개별 케이스를 들어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 요새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드세고 자기 주장만 강하다고 연일 성토한다. 이 소설을 읽은 남자들은 불편해하고 '맘충'이라는 단어도 민폐 끼치는 무개념 진상 엄마들이 있어 나온 것이라며 단순히 커피마신다고 저렇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을 키워본 엄마들은 가끔은 적대적 시선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특히 아빠를 동반하지 않은 외출에서.  

 

이제 출산과 육아는 보편이 아닌 선택적 현상이 되었다. 비혼 1인가구는 급증하고 자발적, 비자발적 딩크부부가 많아졌다. 따라서 출산과 육아라는 개인의 선택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이런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른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지녔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아이를 같이 키워도 서로 경험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그 감정의 결을 이해할 수 없다.

 

개별적 체험은 정말 그 체험의 당사자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어 절망한다.

 

한편 이해할 수 없어 조소한다.

이 소설 평점에 유난히 별 하나가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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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7-08-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궁금했는데 아주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뚜유 2017-08-15 08:48   좋아요 1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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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서울 가느라 혼자 기차를 타는 일이 잦은데 옆자리 할아버지가 앉으실 때부터 약간 자리 침범해 앉으시고 해서 잘 앉아 달라 부탁드렸다. 그런데도 자꾸 들썩거리다 엉덩이 닿으려 해서 각자 칸에 잘 앉아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랬더니 내가 언제 닿기라도 했냐 이상한 여자다 소리소리 지르고.


창피해서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시라 하고 벨도 진동을 못하셔서 자꾸 울리는 것 같길래 바꾸어드렸다. 어르신, 부탁드린 거니 흥분하지 마세요, 하며. 흠. 나도 이젠 차분해져서 다행이야. 진짜 성적인 느낌보다는 불편해서였는데 A로 말해도 B로 듣게 되는 상황이니. 다음에는 애초에 승무원에게 조용히 말해서 자리를 바꾸어가야겠다.

참으로 난감하고 화나는 상황이지만 이 산문집을 읽고 있어서 진정할 수 있었다.

 

1부 이 몸으로 말하자면

 

이 부위를 개발하여 면적을 넓힌 사람에게는 '어깨 깡패'라는 별칭을 부여하며, 다른 폭력은 쓰지도 않은 채 이 부위만으로 사람을 겁주는 부류의 사람들을 '어깨'라고 부른다.

신체의 중요한 부위이지만,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례로 사람들이 '머리 어깨 무릎 발'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머리와 무릎과 발은 정확하게 지칭하는 반면 어깨는 대충 훑고 지나가는 일이 잦다. p.73

 

소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겨울잠을 자야 할 처지였다. 왼쪽 어깨는 화강암처럼 굳어 있어서 곧바로 잘라 내 비석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p. 82

 

어깨 깡패, 쩍벌남 님이 나이 들면 저렇게 된다. 그 난리를 겪고도 내가 미소 지으며 책을 보니 아까 어깨 할아버님은 책 제목이 알고 싶어 들썩들썩. 이런 식으로 몸에 대한 아재 개그, 아재 감성이 계속 이어진다.

 

종아리

무릎과 발목 사이의 다리 뒤쪽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포유류인 인간의 몸에 유일하게 알이 꽉 차는 부위이기도 하다....종아리 뒤쪽의 살이 볼록한 부분을 장딴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좋은 단지'라는 뜻으로 조상들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무처럼 생긴 우리의 다리를 단지에 담긴 무에 비유함으로써, 무처럼 생긴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p.75

 

턱 돌아가는 수가 있다는 것은 '너의 아랫니를 모두 뽑히게 만들어서 너의 턱을 유아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p.77

 

처음에 작가님이 수영을 배우러 가서 벗은 몸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든데 벗은 몸을 움직이기까지 해야했다, 에서 뿜기 시작해서 자주 들썩거렸다.

 

간단한 문제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팔을 흔들면 오른손이 왼손을 믿게 되고 물에 뜰 수 있게 된다......수영이 잘 늘지 않을 때마다 저 말을 생각했다. 오른손이 왼손을 믿도록,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그 말을 생각하면 몸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p. 22-23 

 

나도 요즘 자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생활이 뻣뻣해진듯하다. 유연성을 잃고 매사 너무 심각해졌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로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뻣뻣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쩌면 부드러운 존재로 태어나 점차 딱딱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p. 84-85

 

원래 이 부분은 삽화가 멋지다. 몸에 대한 설명에도 삽화가 곁들여 있는데 웹툰 작가하셔도 좋을 만큼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다.

 

2부 발뒤꿈치를 아름다운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

 

최근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 영화를 통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에 대한 강박이 복종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제시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발에 집착하는 남성들은 여성에게 굴복당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채찍을 들고 굽 놓은 부츠를 신고 발가벗은 남자 위에 군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남자들은 흥분한다. p.98  

 

작가님은 소심하게 하이힐에 찔리면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신다고 ㅋㅋ 남자의 팔 페티시를 유발하는 데 발냄새가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외에도 발 페티시가 있는 남자들은 구두 디자인과 여성의 성적 경험을 동일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파인 구두를 통해 보이는 발가락 골이 여성의 가슴골을 닮았다니 참 그쪽으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구나, 남자들은. 물론 일부겠지만.

그야말로 '알쓸신잡'이지만 소개된 영화나 책을 한번쯤은 보고 싶어졌다.

 

3부 아름답고 슬프고 경쾌하게 비틀거린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를 보고 하루에 그 날의 1초씩 찍어 1년치 영상을 만들어본다는 시도가 훌륭했다. 물론 하루의 1초를 선정하기도 쉽지 않고 매일 찍기도 힘들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우리를 좀더 능동적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하늘 높이 던진 야구공 같은 존재들이다. 끝도 없이 높이, 아주 높이 하늘로 올라가다 어느 순간 정점에서 잠시 머물곤 곧장 아래로 추락한다. 영화 속 어머니 역할의 퍼트리샤 아퀘트는 아들을 대학으로 떠나보내며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소리지르며 운다. 추락을 앞둔 야구공의 고백이다.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누구나 뭔가 더 있을 줄 아니까 사는 거지. p.167

 

이 책에 많은 영화가 소개되지만 이 구절 때문에라도 <보이 후드>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을, 인생을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4부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4부에서 문신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장교는 죄인의 등에 죄목을 12시간 동안 바늘로 찔러가며 새긴다. 판결 내용을 알 수 없지 않냐고 하니 알려줘봐야 소용이 없고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다고! 영화 <와일드>에서도 남녀가 이혼 기념으로 문신을 새긴다. 철없는 시절에 '아모르 파티'를 새기고 싶었던 적이 잠시 있었는데  요새 노래 아모르 파티가 유행하는 걸 보고 하지 않기를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이효리 영향으로 처자들이 문신을 아무래도 손목이나 발목에 새기는 경우가 많은데 가늘고 예쁘게 새기면 여리여리해 보여서가 아닐까?  

아니면 가장 연약해 보이는 데이니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걸까?

 

손목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붙잡는 이유는 인체에서 가장 연약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손목을 붙잡는 것은 '내가 당신을 구하겠다'는 상징적인 메시지이기도 한데, 정작 남자들은 여자의 손목을 붙잡은 후에는 '맨스플레인'에 주력한다는 통계가 있다. 자살할 때에도 이 부위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손목이 신체 중에서 흉터를 감추기 가장 힘든 부위이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감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p.271

 

물론 이치에는 닿지 않는 설명이지만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듯하다. 1부-4부 내내 이렇게  간간이 인체 사전이 등장하는데 '아재 감성'이지만 나도 옛날 사람이라 재미 있게 보았다.

 

<바디무빙> 역시 김중혁 작가님은 역시 산문이지, 라고 할 만큼 잡다하고 유익했다. 어떤 순간에 어느 페이지를 펴든 잠시 웃을 수 있다. 자려고 누웠다가 뜬금없이 <내숭고환 자위행위> 이 노래를 유튜브에 검색하기도 하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의 발목에 걸린 발찌를 보거나 할 때 발 페티쉬에 대한 주장이 생각나 웃기도 한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

 

어깨에 힘빼고 가볍게 살 것이다.

나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대해, 접촉에 대해 좀더 관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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