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역에서 했던 <커피사회> 전시를 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다녀왔다.

 

 

 

들어서면 커다란 케이크 조형물이 먼저 보인다.  ‘커피, 케이크, 트리’라는 박길종 작가의 작품이다. 5단 케이크 곳곳에 낡은 전화, 보온병, 맥심 커피 프리마, 찻잔, 주전자 등이 놓여 있다

 

이렇듯 커피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딸이 좋아한 건 시소와 탁구대였다.

 

탁구대에 언제 서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 치는 시간보다 열심히 공 줍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때 전시장을 안내하던 분이 다가오시더니 원래 탁구선수 생활을 잠시 하셨다며 잡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탁구대 바닥이 실은 향초라는 것도 알려주셨다. 

 

커피를 마신다, 는 건 실은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뜻이라고 하시며 시소나 탁구대를 두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여기는 양림동 양림살롱 근대 의상을 체험할 수 있게 꾸민 공간이지만 소심한 우리들은 굳이 입어보지는 않았다. 미스터션샤인 고애신이나 쿠도 히나가 입었을 풍의 옷들인데 많지는 않다.

 

 

 

입장권 대신 받은 컵을 내려두면 핸드드립 커피를 주신다. 광주 지역의 유명 카페들이 참여해 시간당 한정으로 커피를 내려주신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도 결론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가 나오게 설계된 작품.

정말 마음에 든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마땅치 않는다 해도

다 내 탓은 아니라는 거.

 

그냥 애초에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것.

 

 

 

전시 끝부분에 이상, 박태원 등 문인들이 애정한 제비다방, 멕시코다방, 낙랑팔러 등이 소개된다.

192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다방은 커피 마시는 공간이자 문화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아지트였다.  제비다방을 이상이 운영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상과 박태원 등이 속했던 모더니즘 단체 구인회 동인들이 모이던 낙랑팔러는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나름 전공자인데 이름이 왜 이리 낯설까? 내 탓이 아니라 재미없게 수업하신 분들 탓. ㅋ

 

 

 

이제 천변풍경보다 봉준호 감독 외할아버지로 유명하신 박태원 ㅎ 그리고 또 여러 문인들의 글 좀 읽어보려는데 역시 초등과 다니기 어렵다. 평일에 혼자 다시 와서 찬찬히 읽어보아야겠다.

 

 

 

같은 층에서 안녕, 민주주의라는 사진전도 하고 있었다.

 

딸은 앉아서 쉬게 두고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도 있고 낯선 사진도 있었다.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 생각나는 여러 자료들

 

 

 

 광장으로 나오니 세월호 5주기 분향소가 있었다.

 

당시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을 아이들이 이렇게 분향소를 마련하고 떠들고 어딘가로 달려가며 분주히 사람들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니 또 다시 슬퍼졌다. 집에 리본이 있지만 다시 받아서 딸 핸드폰 가방에 달아주었다.  

 

 

알라딘에서 딸이 책보는 동안 <오정희의 기담>을 읽었다.

이렇듯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지 않는 구슬픈 옛이야기들도 있다.

 

*

 

반나절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다녀서 잡다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도 평온하기만 한 4월 어느 토요일이었네.

 

산책하고 커피 마시고 딸과 탁구도 쳤던 어제를 기념하기 위한 간만의 사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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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에서 인기를 끌다 초록색 고운 표지로 나온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최근에 내가 아끼는 책이다. 이슬아 님을 찾아보았듯이 김예지 님도 인스타에서 찾아보았다. 기사에 실린 어머님과 작가님이 환하게 웃는 사진과 친구들과 함께한 사진들 모두 곱고 유쾌했다. 역시 딱 책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지내고 있는듯해 흐뭇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형태가 분명한 일(육아, 가사, 청소, 여러 기술직, 농업, 어업 등)을 하는 사람들이 지식노동자보다 임금이 낮은 것을 당연시한다. 어떤 정치인도 미화원이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며 백만원 정도 버는 거 아니였냐며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예술 전공 출신의 20대 여성이 청소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편견)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장면에서 울컥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처럼 흘긋 보거나 외면하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하면서도 그림을 보는 순간은 답답하기만 했다. 

 

*

 

현재 청소일로 돈을 벌고 일러스트로 자아실현 하는 작가님도 단단해 보이지만 어머님이 참 대단해 보였다. 자녀가 미래를 모색하는 데 실질적 조언을 해주고 독려하고 기다려주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도 꿈(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직업(정교사)이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로 자기 연민에 젖기도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내가 원하던 직업에서는 멀어졌지만 미약하게나마 아직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지속하고 있고 적지만 보수도 있다.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게 하는 그 보수를 주는 이 노동(수업)에 충실하는 것만이 답이겠지.

 

그리고 시선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그냥 견디자. 그런 무의미한 시선에 상처받지 말고, 그냥 주어진 하루의 비질을 잘 마치면 되는거지.  

 

(지금은 이렇게 무심히 말하지만 시선이 꽂힐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타격을 받는다. 기간제 수업을 했던 중학교에 축제가 있을 때 담당 동아리 학생이 축제 부스를 지키지 않고 일찍 가려고 한 적이 있다. 같은 부서 친구가 넌 왜 일찍 가냐고 하자, 학생이 내 쪽을 돌아보고 난 기간제거덩 하고 돌아섰다. 얼굴만 벌게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아이를 그냥 보냈던 게 더 창피하다. 지금이라면 아이고 요, 녀석아, 기간제면 그 기간이라도 다 채우고 가야지, 했을 텐데)

 

*

작가님이 몇 컷으로 그린 그림 안에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여러 에피소드가 녹아 있어 그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비탄의 문>을 주말에 걸쳐서 다 읽었다. 큰아이가 B형독감에 걸렸고 나도 한달간 고생한 기침이 낫지 않고 작은아이마저 감기였지만 그 덕분에 집에만 있어 다 읽게 되었다. 읽기 전에 평이 너무 극과 극이었는데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도 판타지를 원하는 독자에게도 완벽한 만족을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미미 여사님이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갈 해법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라는 데 의의를 두려 한다.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가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말은 그런 거야.

어떤 형태로 꺼내 놓든 절대로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어.

반드시 자신도 영향을 받지.

닉네임을 몇 개씩 번갈아 쓰며 아무리 교묘하게 정체를 감춰도.

글을 쓴 사람은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167쪽

 

 

말의 '업', 말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인데 막판에 문제 해결 부분, 즉 악의 심판을 '판타지'로 처리해 추진력을 잃었다.

 

하지만 요즘의 지저분한 사건사고에 대비해 생각해보면 어쩌면 판타지에 나오듯이 초월적 힘에 기댄 강력한 응징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권력형 성범죄, 친족 성폭력, 학교 폭력, 갑질, 사기, 뇌물 수수 등 하도 많아 뉴스를 자세히 보기 두렵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아이들과 꾸준히 보고 있다. 50대 중년 아저씨들이 역사물에 열광하는 게 어릴 때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걸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정치판이고 역사이다. 임금의 총애를 받다가 한순간에 몰락해 삼대가 멸하고 부관참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초야에 묻혀 살다가 말년에 자리를 맡기도 하고 소년등과 했다가 엄청 몰락하기도 한다.

 

끝은 한결같이 항년 00으로 마무리.

 

그러니 그저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이르는 듯하다. 

 

 

 

 

 

 

 

 

 

 

 

 

 

 

 

 

 

 

 

 

 

<나의 사랑, 매기>도 다 읽었다. 이런 류의 사랑? 관계? (불륜)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러내놓고 마음껏 아껴줄 수 없는 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집착이 드러나 있다.

 

(조강지처 모드에 빙의해) 그렇게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라고 하지만 인간이나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면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아주 사소하게는 입에만 좋고 장기에 나쁜 소소한 군것질을 달고 살기도 한다. 그게 바로 한심하고 가여운 인간들의 행태다.

 

 

*

마스다 미리 작품 읽기는 전에 졸업했다고 생각했지만, <영원한 외출>은 마음에 든다. 엄마 아빠에 대한 전작 에세이도 잘 읽어서 이 책을 아껴 읽고 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찍은 폐 CT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날이다. 잔기침이 한 달 내내 그치지 않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도 권해서 종합병원에서 폐 엑스레이를 찍게 되었다. 그러다  CT까지 찍게 되었는데 결과 기다리는 게 뭐라고 은근히 긴장된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조영제 주사를 맞고 나서 대기실에서 멍하니 화면을 보는데 상조회사 광고가 엄청 나오자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메멘토 모리라면서.

 

싸이월드 감성으로 가끔 적어두기만 하고 실감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였을 뿐 병원 나와서는 벚꽃이 만발해 아무 생각없이 차 마시고 돌아다니고 했다.

 

오늘도 그냥 그렇게 양림동에서 한나절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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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잔기침과 침사레로 소소하게 골골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을 주말에 걸쳐 다 읽어 뿌듯하다.

 

작가님이 작가님 글보다 얼빠에요, 라는 말이 듣기 좋았다고 해서 굳이 인스타랑 유튜브를 찾아보았는데 뭔가 전에 본 현경 교수님과 얼굴이나 몸의 윤곽이 비슷한 느낌이다. 중심이 꽉 들어찬 사람들의 자태 혹은 한국 태생이 아닌 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들 같은 얼굴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매스컴이나 인습적으로 예쁘고 청초하다고 회자되는 그런 얼굴이 아닌 자신의 삶을 옹골지게 잘 꾸려온 그런 사람들이 가진 당당함이 얼굴에 잘 드러난다.

 

유튜브 클립으로 책읽아웃에서 오은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의외이기는 했다. 아직은 강연보다 지인들과 가지는 편한 자리에 익숙해서인지 어미가 -고요로 마무리되는 고요 요정님. 그마저도 신선했다.

 

슬아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은 항상 찡하고 가슴 한켠을 시리게 만든다. 난 어디를 가든 엄마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고 엄마랑 인간 대 인간으로 우정을 나누지도 못했다. 우리 엄마도 복희 씨만큼이나 신산하고 아픈 삶을 살았는데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한 듯하다.

 

슬아 님이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수필이라지만 진짜 현슬이가 아닌 가공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나 역시 미약하게나마 끄적거린 서재글을 보니 그렇다. 사실 요즘 엄청 마음이 힘든데 여유 있는 척하고 쓴 글이 많다.

 

어찌 되었든 한 독자의 이야기처럼 이슬아 수필집의 매력은 나도 한번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읽고 나서 아, 난 도저히 이렇게 쓸 수는 없어, 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작품도 소중하지만 나도 한번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은 정말 사랑스럽다. 작가에게는 매일매일 소모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실험은 정말 귀하다.

 

 

 

 

 

 

 

 

 

 

 

 

 

 

 

 

 

 

 

아이들이 캡틴 마블을 보고 싶다고 해서 영화관에 들여보내고 <나의 사랑, 매기>를 읽기 시작했다. 뭔가 지지부진한 연애담이라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읽다 말다 하고 있다. 사랑에서의 약자는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 쪽이라는 건 자명한 진리이다. 어떻게 파국을 맞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고 나서 우리나라에 법의학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꺼번에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학계의 명맥이 끊긴다는 말이 우스개이자 진담일 정도로 그 수가 적다니. 

 

뭔가 범죄수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법의학자는 엄청 멋지게 나오지만, 매 순간 낯선 죽음과 맞닿뜨리는 일은 엄청 고될 듯하다.

 

누구나 공평하게 일생에 한번 죽음을 맞지만 끝이 두려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심도 있게는 아니지만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나온다. <서가명강>이라고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기획 중의 하나인데 너무나 축약되어 법의학을 간략히 소개하고 짧은 에피소드들이 나열된 정도라서 금방 읽었다.

 

 

아이들과 나의 자서전 쓰기 같은 것을 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순 살 정도에서 자신의 삶을 마치는 것으로 쓴다.

 

백세시대라고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스무 살조차 엄청난 것일 터.

 

*

 

올해는 서재글이라도 자주 써보고 싶었는데

이야기하고 싶은 건 가슴 속 가득인데

이제 슬아님 나이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자꾸 주저하게 된다.

 

가족과 나의 일 그리고 내 일상에서 좋았던 것들이나

내가 소모되는 일, 분노하는 일 따위는

나에게만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자기 검열이 강하게 작동하는 중년이라서 그런가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아니고 누가 보기에도 어떤 분야에 도전하기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그렇게 조용히 일상을 꾸려갈 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 가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 속에 작게 숲 속의 집을 짓고 고요를 간직해야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일상을 버틸 수 있으니.

 

 

분주한 수요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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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학생의 마음으로 살아서 그런지 3월이 분주하고 설렜는데

이번 3월은 분주하기는 한데 별로 설레지는 않았다.

 

오랜 인후염으로 잔기침을 계속해서 갈비뼈가 부러졌나 싶을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다. 자다가도 침 사레가 들릴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검색하니 잦은 침 사레가 노화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는 글이 있어 서글펐다. 그래도 누군가는 한창 부러워할 나이이니 징징대지 말자.

 

게다가 믿었던 동네 엄마에게 자잘하게 실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사실 그 여파가 크다. 그냥 아이를 매개로 만난 사이는 딱 그 정도인 듯하다. 믿었던 단골가게가 결국은 얄팍한 거래처에 불과했다 그 정도.

 

 

(거창하게 썼지만 별거 아닌.

아니다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 엄마는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과자를 잔뜩 떠안겼다. 전부터 소소하게 그런 일이 있어 실수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건 내 책임도 큰데 그간은 받아서 버리다가 어제는 문자로 내가 원하지 않는 건 안 주면 좋겠다고 정중히 써서 보냈다. 역시 답 문자조차 없다. ) 

 

그나마 아이들이 새로운 반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서 다행이다. 최고 학년이 된 아들은 첫날 뭐했냐고 하니 뭐했겠어, 신학기에 늘 하는 거 하지, 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딸아이는 선생님이 이마트에 자주 오신다고 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기대를 드러낸다.

 

 

*

 

<우주호텔>은 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다. 우주와 관련된 어떤 내용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폐지 줍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아들에게 감상을 물으니 내가 기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한심한 반응이라 여기 적기도 망설여진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나만 알고 묻어야겠다. 초등 고학년이 되더니 드립만 늘어서 사람이랑 대화하는 건지 유튜브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어려서 유명 전집 한 질 안 들이고 한 권 한 권 고르고 골라서 책을 읽혔는데 허망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는 스무 살조차도 머나먼 미래이다 보니 폐지 줍는 할머니의 절절한 외로움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도 자주 뵙지 못해 살갑게 구는 편이 아니라서 책 속에 등장하는 메이처럼 종이할머니에게 다가서기 힘들다.

 

폐지만 줍고 다녀 종이할머니라는 별칭이 붙은 할머니 있다. 채소가게에서 나온 폐지 상자를 두고 얼굴에 혹이 난 할머니와 몸싸움도 하는 그런 그악스런 할머니이다. 늘 그렇고 그런 날을 지내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이사온 메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네 집에서 폐지 더미를 건네주고 그중에서 메이가 그린 우주 그림을 보고 할머니는 어릴 적 꿈을 떠올린다. 달을 품고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메이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본다. 메이를 통해 포도송이 모양 성에 앉아 있는 아이와 초록외계인 뽀뽀나도 만난다.  메이를 만나고 이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찾은 할머니는 길을 가다 예전에 자신과 다툰 혹이 있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외계인'이라는 놀림을 받고 있는 걸 본다. 이후 종이할머니와 혹이 난 할머니는 폐지도 함께 줍고 차도 마시는 사이가 된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연결되어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건조하게 줄거리만 나열했지만, 그림과 글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이었다. 표지나 마지막 장에 작게 불을 밝힌 여러 집들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가 지내는 이 작은 보금자리 하나하나가 우주호텔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우주 호텔에서 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서로 도와야만 하는 소중한 이웃들이다.

 

여기까지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감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가서 수업을 해본 결과 요즘말로 폭망이었다. 일단 이 정도 텍스트도 길다고 여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가난하고 늙는 게 두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 호텔이니 지금 자도 되냐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 단원은 지난 교과서에서 전체적 감상보다는 비유적 표현을 배우기 위한 텍스트로 쓰였고 개정 과정에서는 요약을 위한 단원에 나오는듯하다. 문학작품이 이렇게 교과서에 실리면 무엇을 배우기 위한 한 수단이 되고 자연스러운 감상에 이르지 못하는듯하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다행히 온작품 읽기를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많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긴 호흡의 작품을 무리없이 읽어낼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듯하다.

 

이번은 실패했지만 몇 년 뒤 다시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골든아워>는 어쩌다보니 1권이 계속 예약이어서 2권부터 보았다.

전부터 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외상외과' 일이 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분초를 다투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추락의 위험이 높은 헬기에 오르고 불편하고 낡은 비행복을 입어야 하고 때로는 행정적 문제에 부딪히고 여론이나 주변의 냉소에도 초월해야 한다. 

 

책을 읽기 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헬리콥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 지역도 공군부대나 대형병원 응급실 주변 단지의 집값이 물론 다른 데보다 낮은 수준이다.

 

일반인이 소음에 대해 민감한 것은 그렇다 쳐도 왜 굳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원인을 직접 연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 일본 등에서 천이삼백 명 수준으로 외상 환자들을 이송해도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00명 정도인데도 늘 민원에 시달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건 국토가 좁고 병원이 민간 아파트 단지들과 너무 밀집되어 있는 문제가 커서 그런듯하다.

 

말미에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도 세세하게 읽어보았다. 이력 몇 줄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가 그려진다.

 

<식물 저승사자>는 어느 독립서점 인스타에서 보자마자 진짜 어머, 나를 위해 나온 책이야, 하고 외치게 만들었다.

 

키우기 쉽다고 주는 어떤 식물이든 우리 집에선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단명해왔다. 산세베리아, 카랑코에, 스투키 등등

 

난 내가 반려식물을 세세히 돌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내 손으로 사서 들인 적이 없다. 대개 선물을 받았는데 받고 어쩌다보니 식물 학대였나, 서서히 말라갔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화분 정리해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1층에 살기는 하는데 빛이 잘 드는 편이 아닌 위치이고, 물을 너무 자주 주고 해서 식물들을 많이 저세상으로 보냈다.

 

가끔 봄이 오면 프리지아나 다발로 사서 두고 볼 뿐 

현재 집에 있는 건 역시 애들이 받아온 행운목 두어 개가 전부이다.

 

이제 책을 정독하고 근처 화훼시장에 가서 다육이부터 시작해볼 생각이다.

실내 그늘지고 서늘한 책장 군데군데서도 잘 자랄 만한 애들을 골라와야지.

 

책에서 보면 집 안에서 집 안으로의 아주 작은 이동이라 해도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잎을 다 떨구고도 또 정성을 다해 살피면 새 잎이 돋는 게 신기했다.

 

 

*

 

지난 주에는 변화된 환경에 나도 상처받은 식물같이 온 잎을 떨구고 기침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여러 힐링 에세이를 읽었는데

정작 힘이 된 건 꾸준히 들고 있던 앞의 세 권이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상황에 빠져 우울에 허우적거릴 때

무조건 쏟아내는 긍정, 자존감, 미니멀은 별 의미가 없는듯하다.

 

 

 

   

 

 

 

 

 

 

 

 

 

 

 

 

세트 드디어 구매완료

이번 유리컵 굿즈가 맘에 든다.

찍어둔 사진이 어딘가 있는데 ^^: 

 

딸도 두고 보니 좋다고 한다.

 

 

*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그렇게

있자.

 

꼭 다시

새 잎이 돋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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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이나 삼일절이면 그래도 아이들이랑 지역 기념관, 유적지라도 가곤 했는데 미세먼지와 인후염으로 꼼짝도 못했다. 대신 아이들이랑 <말모이>를 다시 보고 광화문에서 열린 기념식을 보았다.

 

'오등은 자에 아-'로 시작하는 선언서를 외우고 주석을 달아가며 배우던 세대라 그런지 요즘 말로 번역해서 한 문장 한 문장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읽어가는 것을 들으니 뭉클했다.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삼일 만세운동길에서 보내서 그런지 새록새록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았다고 말해주었다. 이어서 유관순 열사가 나온 학교를 엄마도 다녔다고 하니 놀란다.(예전에 시험 봐서 들어가던 시절도 아니고 90년대에 운좋게 배정받아 다니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데이트 코스로 낭만이 있는 정동길이었지만, 내가 다니던 시기에는 전경차가 즐비했고 밥 먹던 전경들이 여학생들을 슬금슬금 훔쳐보기도 했다. 그래도 고풍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고요한 교정에 들어서면 다른 세상 같았다.

 

이 시기에 외고가 설립되어서 외고와 여고는 같은 교정을 쓰게 되어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가끔은 노천에서 작은 말다툼도 있었다. 한 아이가 씩씩대며 '외년(적개심의 강도로는 거의 왜년)'들이 불어로 욕하면 모를 줄 알고,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선생님들 중 가끔 어떤 분들은 시험 봐서 들어온 그애들이랑 너희랑 같니, 하기도 했고 당시에 유능한? 분들이 외고로 많이 전출되어 아이들이 박탈감을 느끼던 시기라 그랬을듯하다. 옆 동에 위치했고 가까웠지만, 어찌되었든 별개의 학교였을 뿐. 

 

졸업하고 가끔 외고 출신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고 교복 엄청 이상했다고. ㅋ 그건 어느 정도 인정. 칙칙한 수박색이고 점퍼스커트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덩치 큰 친구들은 가끔 임신부로 오해받아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기도 했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흔적을 이야기하려다 엉뚱한 추억은 방울방울. 

 

매주 예배 보러 가는 강당 전면에 열사의 사진이 있고, 무엇보다 좋은 곳은 유관순 우물터였다. 그늘진 그곳에서 책도 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했었다. 어느 5월 개교기념일에는 열사와 함께 학교를 다니신 남동순 할머님도 뵌 적이 있다.  재학생이나 졸업생 모두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햇불예배도 생각이 난다. 놀랍게도 봉사로 덕수궁을 청소한 적도 있다. 이른 아침에 낙엽 타는 냄새를 맡으며 고궁 마당을 싸리빗자루로 쓸어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기념식에서 이화합창단과 아이들을 보고 오랜만에 추억에 젖었는데 아름답지만은 않은 기억도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교'인가보다.

어디 가서도 이렇게 가끔은 이야기하게 된다.      

 

*

다시 책으로 돌아와 요즘 역사동화들은 참 다양하고 심도 있게 잘 나오는듯하다.

 

 

 

 

 

 

 

 

 

 

 

 

 

 

 

 

 

 

어제 드디어 <그런 책은 없는데요....>보았는데, 이런 서점 진상들은 귀엽다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독립서점에서는 서로 사진 찍기 바쁜데 독자와 주인이 다정하게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풍경이 부럽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우연히 발견했고 다 보지는 못했다.

 

이 책을 보니 오래 전에 페이스북에서 본 쓰레기집?만 청소하시는 분이 생각났다. 방송에 나올 법한 쓰레기로 가득한 집을 집주인과 함께 치우는 게 더 보람 있다고 하셨다. 일반적인 정리가 필요한 그런 집이 아니라 오래 방치되었던 집을 집주인과 이야기하며 함께 치우는 게 인상적이었다. 블로그도 하셔서 자주 봤는데 키티 매니아이기도 하셨고 글도 조곤조곤 정답게 쓰셨다. 눈여겨 보다 언젠가 페이스북 계정 없애면서 주소를 잃어버렸다.

 

인스타스타 인절미, 딸이 좋아해 책으로 함께 보았다. 강아지를 귀여워하지만 잘 만지지도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는 게 좋은 모녀이다. 둘 다 개한테 쫓긴 기억이 있어서. ㅜ.ㅠ

아주 작은 아기 강아지 정도만 살짝 가까이에서 본다.

 

랜선 이모들이 사료길만 걷자며 열심히 사서 봐주고 있어서 순위권.

좋은 환경에서 잘 크고 있는 절미 보기 좋다.

 

 

 

 

 

 

 

 

 

 

 

 

 

 

 

 

 

 

이제 조금 있으면 미사에 가야 한다.

 

'부조리한 평화' 속에서 안식을 얻는다,고 어느 날의 일기에 적은 적이 있다. 어설프게 여성신학, 해방신학 등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나 많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고 제목에 이끌려 잠시 보았다.

 

천주교 신자이면 낙태에 절대 반대해서는 안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다.

 

 

*

 

그래도 드디어 개학.

 

이번주엔 개학 기념으로

양림동 카페라도 꼭 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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