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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곳은 이곳이다

― 전남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전남 순천시 향교길 39

 061.751.1237.

 https://www.instagram.com/walking_with_book/



  〈골목책방 서성이다〉를 두걸음째 찾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이곳은 이곳입니다.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다른 곳을 이어서’ 하는 곳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곳에서 이 나름대로 새롭게 길을 가려는 곳’이라고 여겨야지 싶어요.


  그렇지만 두걸음째로 딛는 마을책집에서 문득문득 ‘예전에 이곳에서 책집을 하던 분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문득문득 드는 이런 생각을 내려놓고서 책을 보기로 합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오늘책’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담기로 합니다.


  저는 어느 책집에 가든 ‘내가 읽을 책’을 살펴서 고릅니다. 제가 고르는 책이 어린이책이든 그림책이든 ‘아이한테만 읽히려고 고르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에 앞서 제가 먼저 찬찬히 읽을 책이고, 저부터 가만히 누리고 나서야 아이한테 건넬 수 있는 어린이책이요 그림책입니다.


  《지렁이가 세균 아저씨를 꿀꺽 삼키면》(에릭 바튀/박나리 옮김, 책속물고기, 2016)을 고릅니다. 에릭 바튀 님이 빚은 다른 그림책을 즐겁게 읽은 터라, 이런 그림책이 있었구나 하고 반기면서 고릅니다. 다만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자면 덧말을 요모조모 붙여서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세균’이란 ‘나쁜 것’이 아니거든요. 또 ‘좋고 나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몸하고 마음을 가꾸는 길에서 ‘무엇’을 살펴서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지을 만한가를 같이 이야기해야겠다고 여깁니다.


  《타인을 안다는 착각》(요로 다케시·나코시 야스후미/지비원 옮김, 휴, 2018)을 집어듭니다. 책이름이 줄거리를 모조리 밝힙니다. 참말로 우리는 ‘내가 너를 안다는 엉뚱한 생각’이 되곤 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까요? 네가 나를 어떻게 아는가요?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서로 모르니 쳐다봅니다. 서로 모르니 말을 섞습니다. 서로 모르니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서로 모르니 만납니다. 서로 모르니 함께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꾸립니다.


  자, 생각해 봐요. 우리가 서로 안다면 구태여 말을 할 까닭이 없어요. 서로 아는데 뭐 하러 책을 쓰고 엮어서 읽을까요? 서로 안다면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아도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서 흐르는가를 참말로 잘 알 테니,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딴짓을 할 까닭도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모르는 줄 알면서 살아야지 싶어요. 저는 이 마을책집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마을책집으로 찾아가서 한나절을 누리면서 아직 제가 모르는 책을 살펴서 아직 모르는 길을 헤아립니다. 저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라,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바깥마실도 하고 집안일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기보다, 어버이로서 모르는 것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다스릴 적에 사랑이 되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까만 아이》(세바스티엥 조아니에·다니엘라 티에니/김주열 옮김, 산하, 2014)를 고릅니다. 이 책은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이내 다 읽습니다. 겉보기로는 까만 아이인데, 속으로 보면 어떤 빛일까요? 겉보기로 하얀 아이라면, 파란 아이나 푸른 아이라면, 이 아이들은 속눈으로 어떤 빛을 느낄 만할까요?


  책손한테 책집은 낯선 곳입니다. 책집지기로서 책손도 낯선 사람입니다. 책손은 어떤 책을 오늘 만날는지 까맣게 모르는 채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지기는 어떤 책손이 어떤 책을 만나려고 이곳까지 그렇게 품하고 돈하고 하루를 들여서 찾아오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알지 못하는 책손하고 이어진 끈을 알아보고 싶어서 책집 한켠을 쓸고닦으면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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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거쳐도 (2019.6.7.)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032.766.9523



  저한테 책집은 책만 있는 집이 아닙니다. 책이 있어 포근한 집이요, 책이랑 같이 있으면서 마음을 넉넉히 추스르는 집입니다. 그런데 여태 어느 책집에 살짝 들렀다 하더라도 빈손으로 나간 일이 없습니다. 아주 짧게 1분만 들렀다 가더라도 한두 자락은 손에 쥐고서야 돌아섭니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될 수 있으나, 책집에 깃들면 저를 반가이 바라보는 뭇책 눈길을 느껴요.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살필 수는 없어, 뭇책한테 ‘너희를 모두 쓰다듬으면서 읽고 가지는 못한단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렴’ 하고 속삭여요. 이러면서도 두 자락쯤은 손에 쥐려 합니다.


  그림책 《Arthus's perfect christmas》(Marc Brown, little brown, 2000)를 집어듭니다. 곁님이 아이들하고 한동안 같이 보던 만화영화를 담아내었어요. ‘아서’ 그림책이 있는 줄 알았되, 따로 장만하자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뜻밖에 코앞에서 보았어요. 딱 1∼2분, 또는 3∼4분쯤 머물 수 있던 헌책집 〈아벨서점〉에서 이 그림책을 만나니 시골집 곁님하고 아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서 그림책 옆에 《Clifford's good deed》(Norman Bridwell, scholastic, 1975)가 꽂혔어요. 노만 브리드웰 님 ‘크고 빨간 개’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클리포드 이야기가 흐르는 얇고 가볍지만 속은 알차고 두툼한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보이면 언제나 기쁘게 집어들어요.


  예전에는 클리포드 그림책을 보기 매우 어려웠는데, 나날이 ‘영어 그림책’을 읽히는 분이 늘고, 또 영어 그림책 가운데 ‘아직 한국에는 안 알려지거나 덜 알려졌어도 세계 명작’으로 꼽히는 그림책을 읽히며 영어를 가르치는 분이 늘기에, 요새는 헌책집에서 클리포드 그림책을 드문드문 만납니다.


  책집하고 더없이 먼 두멧시골에서 살다 보니 인천까지 마실을 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한 걸음을 하기도 빠듯하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지나고 이튿날에는 배다리 책방골목에 사진을 걸고, 이튿날 아침에 책집 아주머니한테 잘 계시라고 말씀을 여쭈고 돌아갈 테니, 짧은 틈이라도 이곳에서 몇 가지 책을 더 볼 수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영어 그림책 두 자락으로 마음이 부풉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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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나들이] 이름이던 게시판하고

[책방마실] 이름이던 게시판을

하나로 묶으려 하다가

그만 [헌책방 나들이] 게시판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딱 하나를 잘못 누르면서

그동안 [헌책방 나들이]에 올린

아마 271꼭지에 이르는

헌책방 이야기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일부러 지우지는 않았습니다.

단추를 잘못 눌러서

사라졌습니다.


글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어도

그 글에 깃든 마음이나

이 나라 여러 책집이 걸어온 자취와

이 마음하고 자취를 그리는 숨결은

고스란히 흐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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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6-0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째 이런일이...알라딘에 말하면 아마 다시 백업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을에서 책집 한 곳이란 (2019.6.7.)

― 인천 배다리 〈모갈1호〉

 인천 동구 금곡로 3

https://www.instagram.com/mogul1ho



  저는 책집이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합니다. 책집을 모르는 채 책집마실을, 때로는 책숲마실을 다녔습니다. 첫 책집마실, 또는 책숲마실은 1992년 8월 28일입니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었는가를 잊지 않아요. 저는 그날 새롭게 태어났거든요. 아니 그해 8월 27일까지는 몸은 살았되 마음은 죽으면서 지내다가, 이날부터 마음이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친 뒤인데, 왜 살아가는지, 왜 입시지옥에서 뒹굴어야 하는지, 왜 학교라는 곳은 학생은 죽도록 두들겨패거나 갖은 막말을 퍼붓는지, 왜 이 끔찍한 군사독재는 끝날 낌새가 안 보이는지, 왜 바른 목소리가 흐르는 신문은 찾아볼 수 없는지, 왜 인천에는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한 곳도 없는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들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배울 수 있는지, 고등학교만 마쳐도 이 나라에서 착하면서 참답게 먹고사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떠한 수수께끼나 실마리도 찾을 수 없던 하루였어요. 이러다가 책집이란 곳에 눈을 뜬 날부터 마음이 확 깨었어요.


  그래, 길이 없으면 스스로 내면 되는구나 하고요. 길이 없으니 몇 해가 걸리든 스스로 걸어가면 되는구나 하고요. 길이 없기에 나부터 길을 내자고, 길이 없으니 그만 투정을 부리고 길을 짓자고, 길이 없다면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하자고 다짐했어요.


  1992년부터 2019년까지 몇 해란 나날일까요. 저는 이동안 어떤 책을 마주하면서 얼마나 숱한 책집에서 얼마나 놀라운 책을 만났을까요. 제가 사들여서 저희 책숲에 건사한 책은, 또 주머니가 가난하다는 핑계로 차마 사들이지 못해 책집에 서서 읽은 책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때,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다섯 학기를 다니는 동안, 또 신문을 돌리며 먹고살던 스물 몇 달 동안, 책집마실을 하며 책 하나를 장만한다면, 책집에서는 적어도 열이나 스물에 이르는 책을 서서 재빨리 읽어냈습니다. 다음에 찾아오면 사라지고 없겠구나 싶은 아름다운 책을 살 돈이 없으니 머리에 담자고, 돈이 없으면 머리를 쓰고 생각을 넓히자는 마음으로 무시무시하게 책을 읽어댔습니다.


  헌책집이란 곳은 겉은 좀 허름하되 알맹이는 똑같이 새로운 이야기를 베풀면서 마음을 달래 주었어요. 모든 헌책이 저한테 속삭였지요. “얘야, 길을 찾지 못해 길을 스스로 내겠다는 가녀린 아이야. 너는 우리한테 꼭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지. 이 한 가지란, 우리를 겉모습이라는 눈이 아닌 속내라 마음으로 보는 숨결이란다.” 허름한 책은 언제나 속삭였습니다. 책도 사람도 삶도 겉모습으로 판가름할 까닭이 없다고, 나무도 풀벌레도 새도 속내로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도 살림도 슬기도 언제나 마음으로 읽는 숨결로 깨닫거나 받아들일 뿐이라고.


  인천 배다리에 1969년부터 있던 〈대창서림〉을 물려받아 새롭게 가꾸는 〈모갈1호〉가 있습니다. 1층에는 책집이요 2층에는 이야기꽃을 피우는 단출한 쉼터입니다. 2층에 올라서면 맞은쪽에서 지나가는 전철이 내는 소리를 마치 노래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기둥이 든든하게 받치는 2층에 서면 뼈대가 나무이면서 든든한 결을 두 발바닥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별 옆에 별》(시나 윌킨슨/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을 만납니다. 헌책 곁에 있는 새책을 반가이 집습니다. 안목 출판사 사진책이 얌전히 바라봅니다. 안목 출판사 사진책은 거의 다 갖춘 터라 살살 쓰다듬어 줍니다.


  《바람이 자는 시간에는》(시산 동인 4집, 인천일보사 출판국, 1995)이라는 동아리 시집을 집어듭니다. 인천일보사에서 이런 시집을 펴내 주었네요. 대단하군요. 이때만 해도 인천일보사는 이렇게 상냥한 손길을 인천사람한테 내밀었네요.


  《불이 있는 몇개의 풍경》(양애경, 청하, 1988)을 들어서 읽는데, 1980년대 시는 이렇게 풋풋한 척하면서 한자를 자랑하는 시였네 하고 새삼스럽습니다. 요즈음 시는 영어를 자랑하면서 새로운 척하는 시라고 느낍니다.


  《공친 날》(김기홍, 실천문학사, 1987)이 매우 깨끗합니다. 저한테도 이 시집이 있고, 얼추 스무 해쯤 앞서 읽었는데, 새삼스럽기도 하고, 깨끗한 시집으로 책숲에 두고 싶어서 살짝 장만하자고 생각합니다. 스무 해쯤 앞서는 서울사람으로 살던 무렵이었고, 오늘은 전라사람으로 삽니다. 전라남도란 터에서 살다 보니 시쓴이가 읊는 승주군이나 주암댐이나 여러 전라도 마을이름이 살갗으로 쏙쏙 들어옵니다.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율리우스 푸치크/김태경 옮김, 이론과실천, 1986)도 예전에 읽었을 텐데 줄거리가 하나도 안 떠오릅니다. 다시 사서 읽으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밤이 되어도 별을 볼 수 없는 인천 한켠에서 길손집을 찾아 쉬면서 읽는데, 글쓴이가 독일 게슈타포한테 처음 붙잡히며 죽도록 두들겨맞고 짓밟히다가 까무라친 이야기를 매우 무덤덤하다 싶도록 풀어냈습니다. 아, 죽음을 앞두고 죽음에서 홀가분한 채 쓰는 글이 이렇게 무덤덤할 뿐 아니라 곧구나 싶군요.


  이 책은 2003년에 《교수대로부터의 비망록》으로, 2012년에 《교수대의 비망록》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답니다. 2012년에 다시 태어난 책은 고맙게도 판이 안 끊어졌습니다. 새옷을 입혀서 보살피는 출판사가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제는 간수들도 267 감방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 나온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 사이엔가 문 밖에서 조용히 하라고 시끄럽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267 감방은 노래한다. 나는 평생 노래해 왔다.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마지막에 이르러 노래를 중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  (38∼39쪽)


  〈모갈1호〉 책시렁에서 《pocket progressive 韓日·日韓辭典》(小學館, 2004)을 보고는 한참 읽었습니다. 일본은 주머니 사전도 이렇게 알차며 산뜻하게 엮는구나 싶어 놀랍니다. 이쯤 되어야 사전이란 이름을 쓸 만하네 싶습니다. 무늬가 껍데기로는 사전이 아니지요. 알맹이가 제대로 들어차야 사전이지요.


  저는 책집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채 책집을 다녔습니다. 가만 보면, 책집뿐 아니라 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책을 읽었습니다. “책집은 뭡니까?”라든지 “책은 뭔가요?”라든지 “마을에서 책집 한 곳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기에 빙그레 웃습니다. “몰라서 책집을 다녀요.”라든지 “알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라든지 “어떤 사랑이 흐르는가를 같이 숨쉬고 싶어서 마을이란 터에 조그맣게 뿌리를 내리려는 책집에 마음이 끌리나 봐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제 대꾸가 심심하다고 여기는 빛을 느끼면 한두 마디쯤 덧붙입니다. “저는 여태 책을 손에 쥐고 읽을 적마다 사랑을 느꼈습니다. 지은이 사랑, 엮은이 사랑, 펴낸이 사랑, 이 책을 사고팔거나 다룬 일꾼 사랑, 이 책을 사고팔도록 짐차에 실어 나른 사람들 사랑, 이렇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베푼 사랑,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이 들려주는 사랑,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이 깃든 지구라는 별이 노래하는 사랑, 그래요, 저는 책에서 사랑을 느끼고, 이런 책을 건사한 책집에 다닐 적마다 책집마실이라기보다 사랑마실을 배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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