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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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한창 팝송을 즐겨 듣던 시절, 난 왠지 같은 영국 출신의 비틀즈보다 롤링 스톤즈가 더 좋았다. 그 시절에 대개 롤링 스톤즈보다는 비틀즈를 좋아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틀즈를 듣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비틀즈도 물론 좋아했었다. AFKN을 통해서 그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솔로 시절에 내놓은 <Instant Karma> 비디오를 수도 없이 봤었다. 오늘 쓸 서평의 주인공이 바로 그 존 레논이다.

존 레논은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의 세계적인 팝스타 존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모델로,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와 결혼을 해서 1975년에 자신의 생일인 10월 9일에 두 번째 아들 션 레논을 낳았다. 대중들의 눈을 피해 은둔의 시간을 가졌던 바로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잃어버린 4년간이 바로 이 소설이 배경이 된다.

스타 존은 일본인 아내인 게이코와 아들인 주니어와 더불어, 일본에서 유명한 휴양지인 가루이자와에 있는 처가의 별장에서 여름을 나기로 한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인들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오봉절 무렵이다. 그런데 존은 갑자기 찾아온 변비로 고생을 하게 된다. 이런 육체적 고통에 덧붙여져서, 밤마다 악몽을 시달리게 된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어 버린 자신이 예전에 괴롭히거나 몹쓸 짓을 했던 이들과의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그를 괴롭힌다. 정신적인 문제에 앞서, 결국 그는 병원을 찾아 자신의 문제(변비)를 해결하려고 한다.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에는 묘하게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여 있다. 소설 중에서도 주인공도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판타지인지 몰라서 헤매지만 그건 읽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생아로 태어난 존 레논의 어머니와의 그 애증의 관계, 자신들을 세계적인 밴드로 끌어 올리는데 혼신을 힘을 다했지만 언제나 멤버들로부터 조롱을 당했던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관계,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인기가 있다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던 에피소드들에 대한 회상 부분은 소설의 리얼리티 부분을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판타지 부분들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선, 팝스타 존이 일본에서 체류하는 동안 몹쓸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발상 자체가 독자들의 관심을 휘어잡는다. 게다가 일본 고유의 명절인 오봉절 즈음을 사건 발생의 중심에 둔 것도 모두 작가가 치밀하게 고안해낸 장치들의 다름이 아니다. 존의 40년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정신적 트라우마들의 재구성을 통해, 천재적인 팝스타 존이 아니라 인간 존의 내면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창작에 의한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책의 표지에 나와 있고, 자신이 만든 노래 제목이기도 한 “Working Class Hero"는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자신의 자화상이다. 어린 아들과 외국인 아내와 더불어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 셋 모두는 세상과의 차단을 상징이라도 하듯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심지어 주니어까지! 노동계급의 영웅은 그렇게 피안(彼岸)도 아닌 그렇다고 차안(此岸)도 아닌 그 어중간한 임계점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우리의 곁을 떠난 ‘노동계급의 영웅’에 대한 어느 일본 작가의 유머 넘치는 사모곡(思慕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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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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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도대체 <골든 슬럼버>가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그건 바로 비틀즈가 1969년에 내놓은 공식 11번째 앨범인 “애비 로드‘에 실린 메들리 곡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황금빛 졸음“ 정도? 이미 멤버 간의 불화로 거의 밴드활동의 끝에 서 있던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기존에 만들어진 곡들을 메들리로 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골든 슬럼버>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 이사코 코타로의 최신 장편소설이다. 스토리라인은 매우 간단하다. 민선에 의해 총리로 선출된(작가 말대로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설정이다) 도호쿠(東北) 센다이 출신의 가네다 총리가 금의환향해서 센다이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불의의 무선조정 모형 헬리콥터의 폭탄공격을 받고 폭사하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센다이 시내에는 얼마 전부터 연달아 발생한 연쇄살인 범죄를 막기 위해 ‘시큐티리 포드’라는 최첨단 보안설비를 갖추고 있었고(물론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는), 이 설비와 경찰들의 기민한 대응으로 총리 살해범이 아오야기 마사하루라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만 이틀간의 숨 막히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센다이 중앙공원에 나타났다가, 하수관을 통해 사라지고 얼마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매듭이 지어진다. 그리고 에필로그 식으로 20년 후에 예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작가는 다시 20년 전 사건 당시로 독자들을 데려 간다. 읽으면서 이런 구성이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그 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책의 말미에서 밝혔다시피, 이 이 소설의 모티브는 바로 1963년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저격당한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이다. 그리고 소설 중의 아오야기 역할은 바로 케네디를 저격한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건 발생 이틀 후인 잭 루비에게 총을 맞아 죽은 리 하비 오즈월드의 그것에 다름이 아니다. 오즈월드가 죽기 전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아오야기 역시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안간힘을 쓴다.

4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핸드폰과 위성추격시스템 등의 최첨단 기술은 우리 개개인의 사생활이 예의 정보기술과 보이지 않는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골든 슬럼버>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이 총리암살사건이라는 기본 축을 이루는 기본 줄거리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주 중인 아오야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의 플래시백들을 이용해서 소설 진행에 있어서 긴장감과 다양한 소재들을 그야말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투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추리소설류에 빠질 수 없는 다분히 개연성 넘치는 소재들의 투입도 그렇게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가 있게 구조적 장치들을 곳곳에 포진시켜 두었다. 예를 들면, 아오야기와 그의 옛 애인 히구치 하루코가 서로 기억하고 있던 배터리가 나가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고물 자동차와 도도로키 폭죽공장에서의 알바경험 그리고 아이돌 가수를 우연하게 구출한 사건 등은 후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일본 전통의 가게무샤(그림자무사)식의 아오야기의 대역(body double)이 사건 당일 센다이 시내에 등장을 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장면은 보들리야르가 일찍이 그의 저서 <시뮬라시옹>에서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진짜가 된다’고 말한 것과 어쩌면 이렇게 맞아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매스컴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이미지들은 사실의 진위까지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전반적으로 구성이나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말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총리암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준비했고, 무고한 아오야기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렇게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 말이다. 하긴 40년 전의 케네디도 누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족으로 <골든 슬럼버>의 표지에는 하얀 스크래치가 난 채, 왼쪽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주인공 아오야기의 얼굴이 실려 있다. 졸지에 총리 살해범으로 몰려 숨 돌릴 새 없이 쫓기면서, ‘습관과 신뢰’이외에는 하늘 아래 아무 것도 의지 할 것 없던 천둥벌거숭이와도 같았던 그의 내면세계가 엿보이는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오래 간만에 캣 앤 마우스(cat and mouse) 스타일의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을 만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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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
신이현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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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 파리를 누비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면서,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작가 신이현 씨가 글 쓰는 작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진’도 작가가 직접 찍었다니! 책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사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런데 신이현 작가는 책에서 그 사진들이 없으면 안 될 것만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사진들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리를 상징하는 명소들이 아닌 정말 못해도 파리에서 수년은 산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장소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작가는 파리가 관광객들만을 위한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유럽 대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파리지만, 프랑스 근대사를 통해 연을 맺게 된 전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과 중국인들과 모로코 인들이 기존의 프랑스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오색찬란한 스펙트럼이야말로 오늘날 파리의 바탕이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작가의 시선은 우리네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혹은 베르사유가 아닌 진짜 파리지앵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들을 찾아 나선다. 벨빌과 메닐몽탕의 허물어져 가는 벽에 그림을 그려대는 무명의 작가 네모의 그림이나, 어느 이름 모를 수녀원에서 만든 무화과 잼을 찾아 나선다던가, 거리에서 파는 싼 가격으로 허기를 때울 수 있는 파니니와 유대인 샌드위치 파엘라를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는지 넌지시 알려 준다. 예전에 도살된 소나 돼지고기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이던 곳이 현재 무명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이 되고, 한 때 흥청거리던 유곽지역인 캥쾅푸와 거리가 보보스족들의 거주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파리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도시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각양각색의 삶의 군상들이 매일의 삶을 영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오게 되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피할 수 없는 명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되면, 반대급부로 무게중심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자고로 파리의 건축에 큰 획은 그은 오스만과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이들은 참으로 고심했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도 보여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고심의 과정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파리의 뒷골목 풍광인 것이다.

작가는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옛것에 대한 찬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옛 것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선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주제다. 게다가 디테일한 묘사의 경우에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필치로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작가가 인도하는 파리의 뒷골목들을 누비는 듯한 상상력의 세계로 흡입시킨다.

한 달짜리 유레일패스를 끊고, 쉴 새 없이 파리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여행객들이 아닌 마치 그 유구한 세월을 두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센 강의 강물처럼 작가는 우리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한 파리의 자그마한 뒷골목들과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잔잔하게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에펠탑 없는 파리>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두 번이나 파리를 찾았는데도 내가 파리에 가서 구한 게 무엇인가하고 묻게 되었다. 이 책 <에펠탑 없는 파리>는 나의 세 번째 파리행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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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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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에서 13년째 칩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 작가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의 삶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 <초의> 그리고 <추사>에 이어 올해 역사소설 <다산>을 발표하면서 대망의 4부작에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정조 임금을 다룬 역사드라마 <이산>이 인기리에 방영이 되면서 조선 후기 위대한 계몽군주였던 정조에 대한 조명이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정조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로 빠뜨릴 수 없는 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다.

그는 정조의 아버지였던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던 해인 1762년에 지방관을 역임한 정재원의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지필을 가까이하고, 학문에 능했던 정약용은 조선시대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절대군주인 정조와 긴밀한 연을 맺기에 이른다. 당시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야기했던 노론에 대항하여,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젊은 남인 출신의 유능한 선비군을 양성하려던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 중국을 통해 밀려들어오는 서양문물 특히 서양 가톨릭을 지칭하는 천주학의 대유행에 맞서, 종래 조선왕조의 국시로 받들어져 오던 주자의 성리학을 지키기 위해 수구 노론파 관리들과 지식인들은 개혁적 성향의 남인들과 첨예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천주학을 신봉하는 남인계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맹자>, <대학> 그리고 <중용>에 나오는 천명(天命)의 개념을 천주학의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혁파하고 사민평등이라는 당시 기존체제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념들이 대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정약용 형제들도 예외는 아닐 수가 없어서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를 통해 천주학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래의 그들의 비극이 잉태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소설 <다산>은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먼저 경남 장기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의 긴 그리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르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끝내 살아 고향땅 두물머리 소내 땅을 밟은 정약용. 부인과의 60번째 결혼기념일날,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신산한 삶을 플래시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어가며,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간 뒤에도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아 정약용은 관계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지는 법. 대쪽 같은 성품으로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상소를 마다하지 않는 정약용의 올곧은 성품 때문에 그만큼 많은 정적들을 만들게 된다. 다산과 평생의 악연을 만들게 되는 서용보가 대표적인 예이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노론계열 관리들의 모함과 질시로 중앙정계에서 물러나 충청도 홍주의 금정으로, 그리고 황해도 곡산 등의 좌천성 외지근무를 하게도 된다. 하지만 이런 기간에도 언제나 백성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유가사상에 입각해서, 백성들을 위한 공평무사한 정치의 도를 베풀고,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신을 극진히 아끼는 정조 임금의 배려로 다시 중앙정계에 복귀하게 된 정약용. 하지만 재위기간 24년을 동안 많은 개혁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하던 정조 임금은 악성 종기로 끝내 죽게 되고, 그 때부터 정약용을 든든하게 지켜 주던 바람막이가 걷히면서 고통스러운 삶이 시작된다.

정조 사후,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게 되면서 그동안 정조 치세 하에 숨을 죽이며 때만을 기다려 온 노론의 영수인 심환지·서용보 등은 정순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시에 천주학을 믿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정조 대에 총애를 받던 신하들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가환, 정약용 형제를 비롯해서 이승훈 등 그야말로 일거에 자신들의 정적인 남인들에게 치명타를 가한 노론은 남인의 상징적인 인물인 정약용을 죽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모색한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해서, 다산에 대해 기나긴 유배생활로 대변되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정도 밖에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소설 <다산>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을 다시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한승원 작가는 치밀한 고증과 방대한 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들에 기반을 해서, 공식 역사기록에는 빠져 있을 다산의 개인적인 고뇌와 울분과 같은 부분들을 무리 없이 깔끔하게 재창조해내고 있다.

중앙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정약용이 정조의 죽음으로 단박에 몰락하고,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천주학을 신봉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억울한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고 사경에 이르러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의 깨달음과 배움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선비로서의 처절한 사명감의 인식은 그의 삶의 존재이유였다. 당당한 사대부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다산의 사랑과 천착은 고향에서 천릿길 떨어진 강진 땅에서 기나긴 유배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1권 서두에서 다산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와 <천주실의>의 저자인 마테오 리치와 상상 가운데 만나게 되고, 그들이 제공하는 약을 서로 섞어 마시게 된다. 이것은 마치 영화 <메이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주는 빨간약과 파란 약을 고르게 되는 니오의 선택과도 같다. 이것은 천하 만물의 운용의 진리는 온전히 성리학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던 조선시대에,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에 대한 대답을 천주학에서 찾았던 다산의 갈등과 고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울러 다산이 살아가는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던 주류 노론과의 긴장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시 소설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작가는 “연두색 머리처네”라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미스터리한 이 여인의 존재는 다산에게는 구원자로써, 또는 자신을 죽음의 파멸로도 이끌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함으로 소설의 역사적 기반을 허물지 않고 자연스러운 퇴장을 유도한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등장한 초의선사 역시, 유가는 물론이고 도가와 불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에 통달한 다산과의 이어지는 선문답을 통해 다산이 가진 학문의 깊이를 은근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

하루가 다르게 더워져 가는 이 여름, 말년에 이른 노대가의 역작 <다산>을 통해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이들도 품으려고 했고, 우리네 민초들의 삶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역경 가운데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다산의 그 넉넉한 품에 안겨 보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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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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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히데유키가 쓴 <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로 시작된 그와의 만남은 <극락 타이 생활기>에 이어 결국 그의 11년간의 와세다초 자취집 노노무라 생활을 그린 <와세다 1.5평 청춘기>까지 읽게 하고야 말았다. 전 세계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일들만 하러 다닌 다카노 히데유키. 콩고에 가서 정체불명의 괴수 무벰베를 만나겠다고 하고, 아마존 오지를 탐험하러 다니고 또 미얀마에 잠입해서 양귀비 밭에서 일하면서 아편을 만들다가 막판엔 아편중독까지 경험하게 된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의 배경이 될 수 있었던 노노무라 생활기가 이 책에 구구절절하게 실려 있다.

굳이 직업을 밝히자면 오지 탐험 전문작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이미 와세다 대학 탐험부 소속 4학년으로 이미 많은 경험을 하고서, 별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노노무라에 뛰어 든다. 달랑 다다미 세장의 90-180(cm) 남짓 되는 곳에서 그가 향후 11년간을 생활하게 될지 그 누가 알았던가. 그렇다고 샤워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래층에 사는 수전노 마쓰무라는 계속해서 구린 반찬으로 자취생들에게 테러를 감행하고,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모르는 겐조 씨 등 어디서 그렇게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만을 모았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탐험부 후배 이시카와와는 환각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마귀광대버섯을 찾으러 가질 않나, 역시 친구인 기타와 샤미센을 연주하며 점을 쳐서 돈을 벌겠다는 허황된 구상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그리고 생각을 한다고 해도 실천에 옮길 수 없는 그런 일들만을 작가는 벌여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1.5평에서 2평으로 옮겨가면서, 그가 말하는 막막증은 그 증세를 더해가기만 한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선배,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사회에 나가 적응해 가는 동안 작가는 내내 그렇게 엄한 탐험과 모험에만 시간과 온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 그전에 서른 살에 잔치는 끝났다라고 선언했던 대로, 작가 역시 서른 살을 넘기면서 그동안의 자신에 삶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의 좌충우돌식 삶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을 부러워하지만 작가의 고백대로, 어쩌면 두려움반 동경반의 마음을 가지고 꾸역꾸역 삶의 행진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잔치가 끝난 마당엔 작가의 진한 회한만이 쓸쓸하게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결국 그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작가의 그 후의 삶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노노무라에서의 11년간의 삶은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마치 이 책이 다른 책들과 함께 다카노의 삶이란 하나의 커다란 퍼즐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아 그 책에서 말한게 바로 이 부분이었구나! 그러니 어찌 연달아 출간될 그의 다른 책들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서>가 번역 중이라고 하는데 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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