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에 앞서 영어 제목인 <TOXIC>의 뜻을 찾아봤다. TOXIC에는 ‘유독한, 치명적인 그리고 중독(성)의’란 뜻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독소>의 작가 윌리엄 레이몽(William Reymond)이 정한 이 제목만큼 이 책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주변에서 아주 간단한 관찰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어느 뚱뚱한 여성이 힘겹게 걷는 것을 보고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왜 저 여인은 저렇게 뚱뚱한 걸까?

표지에서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선언했듯이, <독소>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예전에 인류에 빈곤과 가난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먹고 살아남는 생존이 절대선이었지만, 이제 그런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현대에 이르러서는(물론 여전히 그런 기아 상태에 허덕이는 이들도 많다) 운동부족과 과다영양섭취로 대변되는 비만이 바로 공공의 적 1호가 되어 버렸다. 예의 빅 투(big two) 이론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비만사태를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게으르고 식탐하는 이들이 비만과 과체중의 위협에 시달린다는 논리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걸까? 바로 이 시점에서 윌리엄 레이몽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2001년 미국을 뒤흔들었던 9·11테러 당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면서 약 3,000명의 인명들이 살상되었을 때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연간 40만 명이 되는 이들이 비만과 과체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수치이다. 테러사건에는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하고 호들갑을 떨어 대면서 그 위협을 알리기 위해 그 난리법석을 떠는데, 왜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엄청난 의료비용과 고통 끝에 죽어가는 명백한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걸까?

<독소>의 저자 윌리엄 레이몽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뚱보들에 대해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소비자들의 건강을 볼모로 더 많은 탄산음료와 프렌치프라이들을 팔아먹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어대는 음식량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칼로리 양을 훨씬 넘어섰고, 이런 추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 초일류기업들은 단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와 먹보이론에서 한 단계 더 나간 신경마케팅의 영역까지 침투를 해서 자신들의 이윤의 극대화에 매진하고 있다. 산학이 연계된 이러한 움직임에 우리 소비자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고, 특히나 가치판단의 기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탄산음료와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에 무의식중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다.

수년간 당뇨병과 비만을 연구해온 하버드대학 출신의 조지 브레이 박사는 미국에 광풍처럼 번지고 있는 비만유행병에 대해 기존의 열량 과다섭취와 운동부족이라는 빅 투 이론에 더해, 바이러스-약품 그리고 독소를 꼽고 있다(144p). 그리고 브레이 박사는 바이러스와 약품을 제외하고 비만의 주범으로 “독소”를 지목하고, 작가는 우리가 매일 매일 먹어대고 있는 독소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에 착수한다.

윌리엄 레이몽은 비만 사태의 첫 번째 주범으로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탄산음료를 지목한다. 이미 70년대 초반 미국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켰던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농무부 장관으로 얼 버츠를 임명하면서, 이번에는 미국인들의 식탁을 붕괴시키는 치적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뉴딜정책 이래 이루어져 오던 미국의 자영농 시스템 대신, 구 소련에 곡물판매로 비롯된 농산물 가격파동을 계기로 몇몇 대기업들이 거의 농산물 생산을 독점하다시피 하게 될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탄산음료 제조에 쓰이던 사탕수수 대신에, 최신 화학기술을 이용해서 훨씬 달면서도 30%나 비용이 저렴하게 공급을 초과하고 남은 대량의 옥수수에서 추출해낸 액상과당(HFCS:High-fructose corn syrup)이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량소비 되기에 이른다.

미국의 거대 음료회사들은 이렇게 확보된 저렴한 탄산음료들을 기존의 시장에서 소화시켜낼 수가 없게 되자, 빅사이즈 전략과 동시에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마케팅전략으로 자신들의 영원한 고객들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 이제 탄산음료에 이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값싼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제공하는 미국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업식 축산업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이미 공업화된 미국의 축산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돼서, 각종 호르몬과 항생제로 범벅이 된 소, 돼지 그리고 닭들을 도살해서 싼값의 육류들을 대량생산해낸다. 게다가 그렇게 엄청난 양의 가축들이 만들어내는 축산폐수와 배설물이 만들어 내는 악취 등 환경오염문제는 경악할 수준이다. 그렇다고 채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에틸렌가스, 염소수, 인공착색제 심지어는 방사선까지 쬔 야채들이 우리네 식탁에 버젓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농약잔류물질의 폐해 역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비만사태의 상당 부분의 책임이 소비자들의 건강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만을 생각하는 거대기업들의 잘못된 윤리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윌리엄 레이몽은 고발하고 있다. 또한 비만을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유의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조차 거대기업들의 로비에 휘말려서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고 있으며, 오로지 비만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해괴한 논리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에 대한 작가는 결연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예로 보여 주면서, 액상과당(HFCS)과 햄버거 패티로 대표되는 유해식품들 대신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제품들을 이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정치적 행위라는 발언을 통해 독자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나부터 그 좋아하는 웰치(Welch)를 끊고, 참살이의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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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형통 - 중국 현대 소설선
톄닝.모옌 외 지음, 박재우 외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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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토요일 ‘중국 현대 소설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사형통>이 택배기사님의 손에 들려 집을 찾아왔다. 사실 542페이지나 되는 책의 분량이 조금은 많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상 책을 집고 읽기에 돌입하는 순간, 그런 생각은 어디론가 훌쩍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한자제목으로는 길상여의(吉祥如意:좋은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졌다. 보면서 참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여의라는 제목보다는 어감도 좋고,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제목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지난해 한중작가 교류전을 통해 기획된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어, 이번 2008 서울국제도서전람회에 즈음해서 출간하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소설들의 작가들은 모두 중국의 유명 문학상들을 수상한 소위 검증된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톄닝이나 모옌 같이 여러 작품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앞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루쉰 선생 후, 공산화된 사회주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문혁이라 지칭)의 암흑기 이래 덩샤오핑이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로 1970년대 말 개방노선으로 중국이 본격적인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을 걷기 시작한 후의 시대상들의 문학적 성과들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고, 본 서 <만사형통>은 그런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고 충족시켜 주었다.

국가사회주의 관료제도 하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빈부 그리고 도농의 격차 그리고 한족(漢族)과는 상이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신장(티베트) 혹은 서북변경의 소수민족들의 삶의 다양성, 시골 농촌지역에서의 벌어지고 있는 교육의 소외문제, 그리고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아가는 현격한 개발과 성장으로 인한 세대 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인들의 너무나도 다채로운 삶의 일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 <만사형통>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13개의 중단편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들을 골라 보자면 다음과 같다. 류싱룽의 <봉황 거문고>, 샤텐민의 <한 쌍의 큰 양>, 둥리보의 <미샹>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실린 판샤오칭의 <가계부>. 다음에서 짧게나마 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봉황 거문고>에서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위 교육공무원인 삼촌 완과장의 배경으로 어느 벽촌의 소학교에서 임시교원으로 출발하는 장잉차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가 부임한 지에링소학교에는 달랑 세 명의 임시교원으로 이들은 모두 정식교원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류싱룽은 자식들의 교육보다는 자신들의 먹고 살이에 바쁜 지역주민들의 삶 가운데 내던져진 주인공의 눈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공평한 교육의 기회와 무상교육의 허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 준다. 현실세계에서의 비리를 참다못한 장잉차이는 상급기관에 투서를 하기에 이르고, 지에링소학교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면서 동료들에게 배척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노력으로 인해 그의 동료들과 마침내 화합을 이루게 되고, 일종의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이루게 된다. 철저하게 소외된 벽지의 소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과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전개를 통해 현대 중국의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한 쌍의 큰 양>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성의 류 부전원이라는 고위관리와 자매결연을 맺게 된 윈난성 오지에 사는 더산(德山) 노인이 그의 호의로 미국산 메리노종 양 두 마리를 얻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류 부전원은 더산 노인이 그 두 마리의 양을 발판으로 해서 자립경제의 모범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지만, 더산 노인의 가정에서는 도저히 그 양을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결핵을 앓고 있는 딸의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소설에서 존과 존스로 나오는 메리노 양들이 어떻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에서 현실성이 결여된 행정정책을 남발하는 뿌리 깊은 사회주의 관료체제에 대한 냉소가 절절이 묻어나고 있다. 결국 인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파탄낼 수 있는 여실히 보여주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현재 서부대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전체 천연자원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서부의 모처를 배경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의 이름인 <미샹>이 전개된다. 물의 지천으로 널린 남부 출신으로 서부개발에 동원한 여인 미샹이 장산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국 비극적 사랑 끝에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혼전관계로 가지게 된 아이마저 잃게 되며, 마을의 남자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 부분은 일전의 영화 <도그빌>에서 주인공 니콜 키드만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도그빌>에서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지만 소설 <미샹>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런 관계 속으로 뛰어 든다. 사회주의 하에서의 성풍속에 대한 억압과 숱한 민초들의 해방자로 미샹은 환영을 받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들의 반동과 거친 폭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만다.

도농간의 이질적인 괴리와 결합의 희망을 보여준 작품인 <가계부>의 구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단지 가계부의 금전의 출납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쯔칭(自淸)의 잃어버린 가계부에 대한 집착으로 시작된 소설은, 그 가계부의 향방을 찾아 멀리 간쑤 성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연하게 도시로부터 기부 받은 책을(예의 가계부) 기증 받게 된 왕차이네 식구들은 ‘솔루션 세럼’이라는 단어로 인해 도시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되고, 바로 그 가계부의 주인인 쯔칭네 집 근처에 거주하게 된다. 기본적인 가계부에 대한 통념을 혁파하고 다른 개념을 도입한 부분도 기발했지만, 다분한 개연성의 개입이 조금은 눈에 거슬렸지만 그 가계부로 인해 왕차이네 집안이 도시로 이주를 하게 되고, 그 원인을 제공했던 쯔칭과 만나는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맨 끝의 왕차이가 자신의 아들 왕샤오차이에게 던지는 말은 어쩌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이들에게 대한 경고가 아닌가 싶었다.

지난 2천년 이상 우리와 고락을 같이 해온 이웃 중국과 그간 이념과 체제의 차이로 해서 중국 문화에 대해 너무나 경원해 왔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중국 영화들이 세계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도 많이 소개가 됐었지만,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것 같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맞이해서, 새롭고 다양한 중국문학과의 만남을 원한다면 <만사형통>이 제격일 것이다.

* 내가 찾은 오탈자

① 108페이지 : 도망가면도 → 도망가면서

② 424페이지 : 먹으로 → 먹으러

③ 작품해설 540페이지 : 사예디 → 샤예디

                 541페이지 : 마제롱 → 마제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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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평전
클로드 B. 르방송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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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조국 티베트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세계의 지붕, 신들의 도시 라싸, 공산화된 중국의 침략,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풍장(風葬)으로 대표되는 장례의식 그리고 포탈라 궁[布達拉宮] 정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의 나와 티베트와의 조우는 지난 5월 초 들렀던 인사동에서 중국의 자유 티베트 억압에 대한 항의와 티베트 사람들의 민속 음악 연주였다. 그리고 금번에 출간된 <달라이 라마 평전>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전면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저자인 클로드 르방송(Claude B. Levenson) 여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바지런하게 인터넷 서핑을 했다. 프랑스 작가인 탓에 심지어(?) 영어로 된 정보조차 많이 찾을 수가 없었지만, 영어번역기의 도움으로 간략한 정보를 취득하게 되었다. 1938년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언어학, 철학과 종교학을 공부하는 그녀는 졸업 후 번역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네팔, 캄보디아, 인도, 미얀마,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을 여행했다. 그리고 1984년 처음으로 티베트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제 티베트 전문가가 된 르방송 여사의 티베트에 관한 많은 저술들이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심지어는 대만에서 중국어로까지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 3부 11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서두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티베트의 교정(敎政)의 유일한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유래와 그 현신(現身)의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산악인이자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로 분했던 브래드 핏이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환생한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사실의 이미지화가 얼마나 깊은 각인을 남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르방송 여사는 평전의 서두에서 1대 달라이 라마인 게둔 투파의 첸레지[Chenrezi,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시작되어 현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Tenzin Gyatso)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1939년 4세에 공식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현신으로 인정받은 다음 해인 1940년 즉위식을 가진 달라이 라마는 1950년 10월부터 점증되던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정치적 알력으로 인해 결국 1959년 티베트인들의 봉기 중에 인도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부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르방송 여사가 서구인이라, 아무래도 서구인의 시각으로 동양을 본다는 게 조금은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전혀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동양인들보다도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 그리고 불교철학에 대해 상당한 경지의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사실을 기술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질문에 달라이 라마의 대답들로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저술기법은 정말 대단했다. 매우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는 읽으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티베트의 자연과 설역에 사는 이들에 대한 서정적인 묘사와 더불어 여성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필치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하지만 역시 많은 서구인들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오리엔탈리즘과 그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에의 동경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르방송 여사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달라이 라마 평전>을 통해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 번째로, 우리네 인간사의 무한한 잠재력에 기반을 둔 깨달음과 그리고 실천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나 다 알 수가 있지만, 동시에 또 누구나 다 알 수 없는 진리. 그 진리에 다다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의 수양이 필요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역설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무한자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이다. 우주의 본질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선 개인의 내적 성장이 꼭 필요하다. 물질세계인 색계에서 마음의 정수를 갈고 닦아 빛과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행복의 단계, 다시 말해서 진실한 깨달음을 통해 해탈[니르바나]에 도달하기 위해 오염된 마음의 얼룩들을 지우고 완전무결한 성품의 성취에 관한 대답은 개인적으로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책은 다시 색계(현실세계)로 귀환하기에 이른다. 달라이 라마의 사랑하는 조국 티베트가 중국에게 병합된 지 어언 반세기가 흐른 이 시점에서 홀로 인도의 변경 다르살람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얼마 전 있었던 티베트 소요사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티베트 민중봉기 기념일에 즈음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지만, 불필요한 폭력과 인명사상을 극도로 염려한 달라이 라마는 다시 한 번 망명한 이래 자신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비폭력 대화를 통한 방법으로 중국당국과 소통에 나섰다.

어쩌면 마지막 달라이 라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세인들의 깊은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안위보다는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티베트인들과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 이 평전을 통해, 영겁의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달라이 라마와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 아쉬웠던 점 하나. 티베트의 여러 지명들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지도 한 장을 첨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야 그렇다 치더라도, 달라이 라마의 고향인 암도 그리고 성지로 추앙받는 코코노르 호수 그리고 현재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 소재지인 인도의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 그리고 인도의 불교성지 부다가야 등의 지도를 첨부해 주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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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쥬엠 야규인법첩 7
야마다 후타로 글, 마사키 세가와 그림 / BB코믹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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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바질리스크:코우가인법첩>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가를 무너뜨리고 난 후의 자신의 에도 바쿠후의 후계자 선정을 위해 츠바가쿠레와 코우가의 닌자들의 사투를 그렸던 야마다 후타로는 이번에도 에도 바쿠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와이쥬엠 야규인법첩 시리즈를 내놓았다.

시대적 배경은 전작에 비해 후대로 1642년 토요토미가를 완전히 무찌른 후 27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 아이즈번 휘하로 반란을 일으킨 호리 일족을 이끌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비구니 사찰에 들어가 은거하고 있던 여자 가족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는 아이즈번 아키나리 휘하의 소위 일컬어지는 아이즈 칠본창. 모두들 절륜의 무공을 지닌 자들로, 23명의 호리 일족의 여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기 시작하지만 도쿠가와의 여식 센히메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7명이 여인들. 당시 척안의 검사로 일명 검호로도 유명한 야규 쥬베에의 도움으로 복수에 나서게 된다.

야규 쥬베에는 자신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아이즈 칠본창들을 상대할 수 있지만, 호리 여인들이 직접 복수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에 이른다. 6권에까지 야규 쥬베에와 7명의 호리 여인들은 협력해서 다이도지 텟사이(사슬낫의 달인), 히라가 마고베에(장창), 구소쿠 죠노신(세마리의 개를 다룸) 그리고 천하장사인 와시노소 렌스케까지 모두 4명의 아이즈 칠본창들을 처리하고 나머지 세 명의 무사들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계속되는 수하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키나리는 나머지 아이즈 무사들을 데리고 자신의 영지인 아이즈로 향한다. 아이즈 칠본창의 진짜 두목인 도하쿠와 대면하게 된 야규들은 다쿠앙 화상의 도움으로 아이즈에 침투하는데 성공하는데...

각각 10명씩의 닌자들이 무용을 겨뤘던 전작 <바질리스크>에 비해 속도감이 떨어지는 연출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디테일한 내용들을 무리 없이 그려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무라이 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 주제인 복수라는 테마에, 그 복수의 집행자들이 일단의 여자들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무라이 극과는 색다른 차이점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살면서 무술이라고 전혀 익혀 보지 못한 그들을 위해, 야규 쥬베에라는 당대의 검호를 등장시켜 그들을 지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극화의 축이 야규 쥬베에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전작은 주인공들이 모두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으로 다뤄졌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와이쥬엠>에서는 결말이 어떻게 날지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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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I
아트 슈피겔만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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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진 십년 전 쯤 우연한 기회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1권을 사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집을 아무리 찾아도 두번째 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새로 2권을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1권은 지질도 예전거라 좋지 않고 그랬었는데 이번에 새로 발간된 책인지 두번째 권은 지질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훨씬 좋았다.

1권에서 유대계 미국인 슈피겔만 가족의 어두운 과거들을 우리는 보게 된다. 슈피겔만의 어머니 안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천우신조로 살아 남았지만, 살아 남은 자의 삶의 무게를 이지기 못하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아티의 아버지 역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아들과 여러 면에서 지속적인 충돌로 인해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다.

나치에 의해서 죽음에 이르는 인종차별을 받았던 아티의 아버지 블라덱은 미국에서 흑인들에 대해 심각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아티는 슈피겔만 가족사의 어두운 과거에 날카로운 펜으로 묘사를 하기 시작한다.

1권에서는 폴란드에서 평범한 가정의 청년으로 성장한 블라덱이 아티의 어머니 안나 질버베르크가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지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유대인인 아티의 가정은 파멸을 맞게 된다. 나치의 해결책을 피해 살던 아티 가족은 결국 수용소로 끌려 들어 가게 되고, 다시 아우슈비츠로 이동하게 되면서 끝을 맺는다.

2권에서는 블라덱이 어떤 식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살아 남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치열한 투쟁과 그리고 평생 씻지 못할 경험을 가진 부모와 그 밑에서 평범한 중산층 자녀로 자란 아티 슈피겔만의 고뇌와 갈등을 작가는 쥐와 고양이, 돼지 혹은 고래 등의 희화화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나치와 유대인의 관계에서 표현된 고양이와 쥐의 관계는, 아버지 블라덱과 그의 그늘에서 평생 자라온 아티와의 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들먹이지 않아도, 생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가에 대해서는 익히 상상이 갔다.

전쟁이 끝난지 어언 60년이 지났건만서도,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나 책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 슈피겔만의 <쥐>는 만화를 그 통로로 잡은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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