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하며 읽고 있다. 역사 기행문인데, 격동의 20세기 유럽 역사를 실제 장소를 방문하며 돌아본다. 일기, 신문 기사, 인터뷰 등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를 살펴보며, 그 당시 사람들--'민초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느끼며 살았는지를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저널리스트이며 역사가인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다. 20세기 초의 최고 격변인 1차 세계대전 부분을 읽고 있는데, 당시 참호를 넘어 적의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병사의 심리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100년은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연의 시간으로 볼 때는 그야말로 찰나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의 희로애락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사고 체계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다시는 대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지난 백 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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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10-2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만으로 정말 기대되는 책입니다.
추천에 항상 믿고 읽으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blueyonder 2020-10-25 12:15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관심 가지고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랍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라는 글이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다. 어제 자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건 6·25전쟁 때문'이라는 글이 올라왔다[1].


https://news.joins.com/article/23817079?cloc=joongang-mhome-group56


여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은 한동안 득보다 실이 컸다. 우방인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조직과 나토군 사령부 설립이 순조로웠다. 새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한 것은 전략상 착오였다. 미·소 냉전 시절 미국은 적이 적을수록 유리했다. 북의 남침과 거의 동시에 대만해협을 봉쇄하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38선을 넘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것이 현명했다. 압록강까지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참전을 쉽게 결정할 이유가 없었다. 


"압록강까지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참전을 쉽게 결정할 이유가 없었다."라는 문장은 완벽한 오류이다. 국군이 압록강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온 이후였다. 국군이 압록강에 도달한 것은 1950년 10월 26일이다. 마오쩌둥은 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직후인 10월 2일 이미 참전을 결정했으며, 10월 16일부터 중공군 선발대가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이런 식의 주장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의 다른 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미국의 실책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명백한 사실마저 왜곡한다면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소위 중앙 일간지에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글을 그대로 싣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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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읽어보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건 6·25전쟁 때문이었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3차 세계대전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다음 한 문단 뿐이다.


정전 후 서구에 떠돈 일화가 있었다. “트루먼의 측근이 신기 내린 집시 무당을 찾아갔다. 이 여인은 1952년에 소련과 전쟁이 벌어진다고 예언했다. 한국 덕에 미·소 전쟁이 무산됐다.” 무당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6·25전쟁 때문이었다.


무당의 예언이 틀린 것이 주장의 근거가 되는가? "무당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6·25전쟁 때문이었다."라는 주장의 근거는 글의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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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0-07-0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먼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외교 정책 전반을 자신이 직접 챙겼던 그의 특성으로 인해 트루먼에게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되지 않았던 점은 확실히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루즈벨트의 부인이 앞으로 트루먼이 걱정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죠. 그리고 한국전쟁의 조속한 미군의 참전은 트루먼의 강력한 의지였고 공산주의자들의 도발을 용인하기에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서유럽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에 에치슨 라인과는 상관없이 즉각 결단을 내린것이죠. 블루님의 의견과 동의하는 부분은 사실 요즘은 공개된 외교문서가 많아서 조금만 찾아보면 중공군 개입과 관련된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이 책 저자가 그 부분은 소홀히 한 모양이네요. 하여튼 쓰신 글 잘 봤습니다 ^^

blueyonder 2020-07-05 18:19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주신 의견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War in European History (Paperback)
Howard, Michael / Oxford Univ Pr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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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 전쟁 양상의 변화를 통해 살펴보는 유럽 역사이다. 유럽 역사를 잘 모르는 나도 나름 재미 있게 읽었다. 얇은 책 안에 핵심이 잘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초판은 냉전이 한참일 1976년에 발행되었는데, 2009년 재발행되며 에필로그에 '테러와의 전쟁' 내용까지 추가되었다. 


유럽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여러 말을 쓰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이들이 전쟁에 능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중앙집권적이고 비교적 나라 사이에 경계가 명확했던 동아시아의 상황과는 대비가 되는 듯 싶다[1]. 근세 들어오며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된 것에 지리적인 요인이 크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나름 이해가 된다. 


결국 유럽에서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핵무장과 함께 끝이 났는데, 핵보유 국가간의 전쟁은 너무 위험하므로 쉽사리 분쟁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측면이 핵무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대신 전쟁은 약소국을 전장 삼아 일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역사도 연결이 된다.


동아시아의 역사도 이런 식으로 정리해서 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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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이 유럽의 중세와 진정 비슷했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의 호전성을 유럽과의 유사성을 통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To suggest, as have some historians, that the frenetic and militaristic nationalism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was caused by a reactionary ruling class successfully indoctrinating the masses in order to wean their support away from revolution and attract them to the established order is crudely mechanistic. It was in fact the most reactionary elements in the ruling class which mistrusted nationalism the most. The ideas of Hegel and Mazzini had a value and an appeal of their own, and democracy and nationalism fed one another. The greater the sense of participation in the affairs of the State, the more was the State seen as the embodiment of these unique and higher value system which called it into being, and the greater became the commitment to protect and serve it. Moreover, the Nation appeared as a focus of popular loyalty at a time when the power of organized religion was ebbing. It provided purpose, colour, excitement, and dignity to peoples who had outgrown the age of miracles and had not yet entered that of pop stars. But the Nation could only measure its worth and power against other Nations. However peaceful its purposes and lofty its ideals it became increasingly difficult to avoid the conclusion—and a growing number of thinkers at the turn of the century were making no attempt to avoid it—that its highest destiny was War. (p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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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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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외친다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균형감, 전략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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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우리 시간으로 2월 10일)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경합을 벌였던,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국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2월 19일 우리나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현대 과학이 만든 잔혹한 살상무기들이 투입되어 전쟁의 면모를 바꾼 격변이었다. 탱크가 이 때 처음으로 전선에 투입됐고, 비행기도 제한적이지만 그 쓰임새를 증명했다. 그 외, 잠수함, 독가스, 기관총, 새로운 전함, 대규모 포격 등등 전쟁은 새로운 무기와 전술의 시험장이었다. 치명적 무기 때문인지 전선은 곧 정체되어 쌍방 모두 깊은 참호를 파고 대치했으며, 이러한 비인간적 참호전은 1차 세계대전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인류에게 남아 있다. 4년 3개월 2주간의 전쟁을 통해 쌍방 합쳐 약 천만 명의 군인이 죽고 2천만 명의 군인이 다쳤다. <1917>은 독일군이 전선을 단축하기 위해 행했던 퇴각(알베리흐 작전Operation Alberich)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함정에 빠질 공격을 취소하라는 명령을 1,600명으로 이루어진 대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영국군 병사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인데, 실제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다. 1,600명 정도의 손실에 고급 지휘관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당시 전쟁이 비인간적이었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국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이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사투하는 모습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건 좀 기술적인 얘기인데, 당시 총공격은 반드시 대규모 포격 뒤에 이루어졌으므로, 만약 포격이 없다면 당연히 부대는 공격 취소를 의심했을 것이라서 굳이 이렇게 힘들게 공격 취소를 알리러 갈 필요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알린 책 한 권을 다음에 리스트한다. 19살의 나이로 자원하여 참전했던 독일의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의 회고록이다. 





























원저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20년 출간됐는데, 위의 제일 왼쪽 영문판은 Basil Creighton의 1929년 번역본으로서 2019년 출간됐다. 그 오른쪽 두 권은 Michael Hofmann의 번역본으로 2004년, 2016년 출간됐다. Michael Hofmann의 번역이 더 생동감 있는 번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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