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에 대해 생각한다. 근래 이희재 번역가의 <번역전쟁>에서 1차대전은 영국이, 2차대전은 미국이 ‘금벌의 이익을 위해’ 일으켰다는 얘기를 읽은 바 있다. 최근 ‘정준희의 해시티비’에서 미국의 우리나라 국가안보실 도청과 관련한 내용을 들었다(‘도쿄의 주인, 서울의 하인, 워싱턴의 연인’). 결국 미국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앉아서 돈 벌기)을 위해 자국, 타국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도청 및 정보수집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보통 생각하는 그 미국이 아니고 러시아, 중국이 보통 생각하는 그 나라들이 아닌 것 같다는, 예전에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과장이 있을지라도 이러한 시각에 대해 자꾸 읽고 살펴보게 될 듯싶다[1]. 


요즘 2차세계대전 당시의 공중폭격에 대한 책(Richard Overy의 <The Bombing War>)을 읽고 있는데,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라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략폭격’을 실행할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수행했음을 알게 된다. ‘총력전(total war)’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적국의 전의를 꺾고 산업기반과 정부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민간인을 학살했던 것이다. 히틀러조차도 우려를 표했던 일을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군 지도자 포함)들은 거리낌 없이 지시했다. 사망자에 대한 통계는 굉장히 편차가 심한데, 대략 유럽에서 60만 명, 일본에서 90만 명 정도로 일단 정리해 두자. 


영국과 미국은 전략폭격이 결국 독일과 일본이 먼저 벌인 공중폭격(게르니카, 바르샤바, 로테르담, 충칭 등)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추축국의 폭격은 사실상 전술폭격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Overy는 내린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2차대전 발발 전부터 전략폭격의 개념을 가다듬어 실행할 생각을 했다.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북한에 쏟아부었으며 대략 3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이 인원 모두가 민간인은 아닌 듯 보인다)[2]. 이 자료를 보면 미군은 총 635,000톤의 폭탄을 북한에 투하했는데, 이 숫자는 미군이 2차대전 전 기간 동안 유럽전선에 투하한 160만 톤, 태평양전선에 투하한 50만 톤(이중 일본 16만 톤)과 대비된다.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는 것이 맞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신 내 어머니는, 북한에 쌀을 좀 주면 어떠냐, 달래서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폭격도 직접 겪으셨고 집안 어른이 폭격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보셨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자들만이 전쟁을 불사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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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하준 교수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른 맥락으로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 한국 혼자 열녀문 세우는 중"

[2] https://en.wikipedia.org/wiki/Bombing_of_North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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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모험 - 원문을 죽여야 원문이 사는 역설의 번역론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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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희재의 번역론, 번역에 대한 조언,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 등을 모았다. 다른 언어를 앎으로써 우리말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생각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전문 번역가가 있어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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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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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거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시의 모호함이 대개 나의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해설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을 듯싶은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읽으면서 다시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이 종종 가까이 하고 많이 접해야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바로 그런 이로서 그의 안내 역할이 나쁘지 않았다. 모든 시가 다 와 닿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에 들었던 시인들 시의 다른 면모와 해석, 그리고 평소에 듣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를 이렇게나마 읽게 되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책 속 시 몇 편을 다음에 적어 놓는다.



장례식 블루스


W. H. 오든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기름진 뼈다귀를 물려 개가 못 짖게 하라,

피아노들을 침묵하게 하고 천을 두른 북을 쳐

관이 들어오게 하라, 조문객들을 들여보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휘갈기게 하라,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喪章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126~127 페이지)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70~17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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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4-0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blueyonder 님께 감사!
W. H. Auden 의 Funeral Blues 를 제 발해석이 아니라
Professionally 번역한 시로 읽으니 새롭네요.
윤동주 시인의 시 몇 개는 아직도 외우고 있을 정도고
시집도 가지고 있답니다.

blueyonder 2023-04-03 15:22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시와 문학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From Eternity to Here: The Quest for the Ultimate Theory of Time (Paperback)
Sean Carroll / Plume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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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주제는 엔트로피이다.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으므로, 우주의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며 시간의 흐름을 낳는다. 이에 따라 우주 초기(빅뱅)의 엔트로피는 아주 작아야만 한다. 이를 과거 가설(Past Hypothesis)이라고 한다. 여기서 저자의 의문이 생긴다. 왜 우주 초기의 엔트로피는 그렇게 작은가?


엔트로피와 시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논의 후에,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모델은 이렇다. 커다란 우주(엄마 우주?)에는 양자요동으로 인해 분기되어 급팽창해가는 아기 우주(baby universe)들이 있으며 우리 우주도 이런 아기 우주의 하나이다. 아기 우주는 급팽창이 진행되며 결국 엄마 우주로부터의 연결이 끊어진다. 엄마 우주에서 초기의 아기 우주가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오는데, 호킹 복사에 의해 아주 빨리 사라지는 미시 블랙홀과 같을 것이다(358 페이지).


이것이 저자가 표준 물리학(열역학,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을 전체 우주에 적용하여 얻은 결론이다. 물론 저자는 아기 우주를 포함한 다중우주가 여러 가능한 모델(예측prediction)의 하나일 뿐이라고 언급한다. 빅뱅 이전에도 우주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리 스몰린의 우주론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저자는 우주의 상태 공간과 물리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스몰린은 이를 버려야 할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우주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스몰린이 생각하는 미래는 그렇지 않고 열려 있다.


시간에 대한 물리학의 표준적 관점을 말할 때 많이 언급되는 책이며, 이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사실 이 책에서 내게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타임머신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6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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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윙스 2
얀 지음, 로맹 위고 그림, 박홍진 옮김 / 길찾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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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P(Women Airforce Service Pilots) 멤버인 안젤라 맥클라우드의 2차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의 모험담이다. 버바 전선에 대한 얘기인 1편 <엔젤 윙스>에 이은 2편인데, 1편을 읽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줄거리 중 하나인 언니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한 얘기와 맞물려 진행된다. 


2차 대전 당시의 항공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내 별점은 4.5개이다. 항공기와 당시 상황에 대한 디테일이 놀랍다. 작가는 프랑스의 로맹 위고(Romain Hugault)인데, 모든 것을 손으로 그리는 모양이다[*]. 비행기의 디테일이 혹시 어디서 그래픽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다. 


등장 인물들 중 하나인 폴 티비츠는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의 조종사였는데, 여기서 묘사되듯 정말 여자 문제가 있었는지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나오지는 않는다. 일단 그냥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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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https://hubertybreyne.com/en/expositions/presentation/528/angel-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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