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간 - 러시아 혁명 120일 결단의 순간들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류한수 옮김 / 교양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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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석연휴에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도 먹고,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도 보고, 그리고 주어진 논문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 추석연휴를 남들보다 더 잉여적으로 보낸 나에게 이번에 서평을 적은 책 마지막에서 무척 놀랄만한 사진 1장이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홍범도 장군의 사진이 보였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하면 김좌진 장군과 더불어 대한민국 항일운동에서 큰 활약을 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전쟁사를 만든 투사다. 독립군 투사 대부분이 민족종교인 대종교 일원 중에 하나이었으나, 그는 전형적인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내가 읽고 있던 <혁명의 시간>이란 책에 나올 줄 몰랐다.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 즉 번역자인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가 개인적으로 적을 글에서 나온 사진이다. 홍범도 장군은 1919년 삼일운동을 확인하고 만주와 러시아 이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36~1938년 스탈린의 모스크바재판 기간 중에 강제로 카자흐스탄에 강제 이주되었다. 까레이스키, 러시아어로 조선인을 의미하는 바로 그 슬픔을 간직한 명칭이 생기고 말았다. 오늘 낮에 카자흐스탄 한국인들의 후예가 나온 것을 보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내지 또는 조선말기 잔혹한 가렴주구를 피하여 먼 이국땅으로 밟은 해외동포들, 그들은 까레이스키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독특한 문화를 유지했다.

 

이미 한국어를 잊어도 벌써 잊을 해외교포 후손들, 그런 후손들을 보면서 <혁명의 시간>에서 나타난 홍범도 장군은 모습을 참으로 기이했다. 그는 러시아혁명사에서 혁명운동에 참여했고, 그를 위시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볼셰비키혁명에 가담했거나 또는 그 혁명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조차 놀라웠다. 홍범도 장군은 볼셰비키당원으로 분명 1920년 “극동의 볼셰비키 정치 지도위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홍범도 장군의 사진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홍범도 장군은 소비에트연방 최초의 총수이며, 볼셰비키혁명을 지휘한 레닌에게 권총을 직접 받았다는 점이고, 그 권총은 평생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예전에 러시아혁명에 대한 공부로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도중 코민테른이란 제3 인터내셔널 모임에서 조선인이 참여한 것을 보았고, 일제에 의해 지배받던 제3국인 조선의 독립을 위해 레닌이 원조하기로 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모양새로 홍범도 장군이 1920년 잊을 수 없는 국군 전쟁사 청산리 전투에서 이미 볼셰비키로서 활동했다는 점은 참으로 기이하고 씁쓸한 일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좌우이데올로기 문제점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 모순은 사회구조적으로 큰 문제를 보여주었다. 어느 유명한 대학교의 명예교수는 당시 중산층은 대부분 친일파라는 말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당시 중산층의 기준은 어느 정도로 재산을 가졌고, 사회적 지위는 무엇이고 자신은 그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천재적인 독문학자인 전혜린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가 대표적인 악독한 친일파란 사실에서 고통스러워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 젊은 시절 양심에 대한 가책을 느낀 모양이다. 양심의 가책마저 보이지 않고, 지나간 오점에 대한 반성하여 새로운 길을 찾기보단, 그것을 두고 하나의 터부적인 속성을 넘어 이제는 보편타당한 논리로 이끌어내는 현실을 보면 과연 역사란 왜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분명 러시아혁명사에서 1905년 피의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1917년 2월과 10월은 잊을 수 없는 세계사이다. 서양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분명 근대이전 사회에서는 프랑스대혁명이고, 근대사회부터는 러시아혁명일 것이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읽지 않고서는 오늘날 존재하는 나 자신만 아니라 우리 모두, 더 나아가 세계라는 큰 영역조차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프랑스혁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프랑스혁명에 대한 개념과 원인 그리고 그것을 발동하게 된 사상조차 이해할 수 없다. 지식의 맹신은 오히려 독이라는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 장 자크 루소가 거론했지만, 그런다고 지식의 맹신조차 없이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론의 허영심만큼 더 위험한 것을 없으리라.

 

<혁명의 시간>을 읽으면서 볼셰비키의 모든 것이 옳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문화적 현상은 무엇에 의해 이루어져 지는가? 그것은 경제적인 조건이란 물질적인 조건만 아니라 환경적인 조건까지 덧붙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다시피 처음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의 힘은 아주 미약했다. 단순히 1917년 2월에 발발한 혁명은 차르체제를 무너뜨리게 한 일이었으나 그 원동력은 볼셰비키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코르닐로프 장군과 정치적인 라이벌로 되어야 했던 케렌스키도 처음에 정치범으로 고발당한 혁명가를 위해 변호해주던 법조인이었다. 2월 혁명 후 그는 법무장관에 임명되다가 7월 사태를 맞이하면서 총리로 된다. 그러면서 한쪽에는 볼셰비키, 그리고 한쪽으로 코르닐로프와 같은 능력도 없는 전쟁지휘관에 위기를 맞이한다. 국내에 어떤 경제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토대로 정치학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는데, 그 글에 케렌스키 정부를 전복하던 볼셰비키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근거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비난 같은 글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코르닐로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무능하고 거만한 멍청한 장군이 케렌스키와 임시정부를 타도하여 군사정권을 내세우려 했던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드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구성해야 하며, 되지도 않은 어설픈 지식을 인용하여 일방적이고 편견만 사로잡힌 글을 작성한다면 그것만큼 자신이 지식인이란 이름을 내걸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런 내용을 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혁명의 시간>을 읽기 전에 류한수 교수가 번역한 <러시아혁명, 1917에서 네프까지>를 읽어보면 안다.

 

외국의 역사학자들이 사료를 토대로 전문가의 판단으로 작성한 글과 철학적 깊이도 없이 어설프게 진영논리를 대놓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따라서 <혁명의 시간>을 읽어보는 것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큰 화제인 러시아혁명이 어떻게 일어나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잘 봐야 한다는 점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을 읽다보면 사회적인 현상을 두고 그 원인과 배경을 알았고 하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소도 확인해야 한다. 러시아혁명에서 단순히 볼셰비키혁명을 두고 군사쿠데타라고 하는 자도 있지만, 솔직한 말로 군사쿠데타로 되려면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집단이 있어야 한다.

 

볼셰비키는 물론 그들에게 군사력이 있었지만, 적어도 장교와 같은 지휘관보단 아래에서 지휘 받는 병사들, 농민들, 노동자들 같은 일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지지 세력은 강력한 국가기구가 아니라 강력하지 못하나 그 무엇보다 더 강하고 위대한 민중이 있었다는 점이다. 볼셰비키혁명이 된 것은 단순한 군사쿠데타로 본다면 페트로그라드 같이 거대한 도시는 물론이고, 그 도시를 이어주는 많은 교통과 정보를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에게 지지하는 무리가 생겼는가?

 

이 책의 저자인 알렉산더 라비노비치는 처음부터 볼셰비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자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난 저자는 본래 자신의 아버지가 러시아 물리학자이었으나, 볼셰비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그는 볼셰비키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증오를 품었지만, 러시아혁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기존 러시아혁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식했다. 러시아혁명을 연구하면 자꾸 프랑스혁명사에 대해 연계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당통이 외국군대가 프랑스를 침입한 것에 대해 연설한 것이 인상적이다.

 

당통은 “우리는 대담하고 대담해야 하며, 더 대담해야 합니다.”라는 강력한 언변술로 프랑스 의용병들이 자국을 보호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혁명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던 인터내셔널가만 부른 것이 아니라 현재 프랑스의 국가이기도 하면서도 1792년 프랑스대혁명 기간 중에 만들어진 라 마르세예즈를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에 불렀다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루이 보나파르트의 관료정치, 1871년 파리 꼬뮌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러시아혁명에서 볼셰비키만을 볼 것이 아니라 계속 혁명사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볼셰비키가 대중을 사로잡은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대중을 잘 지휘한 것보단 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케렌스키 정부의 무능함과 2월 혁명 이후 인민을 위해야 하나 인민을 위하기보단 그저 1차 세계대전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 전에는 러시아제국의 국민인 병사와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는 혁명 이후에는 봉건군주의 신민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주권자로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개념은 본래 국가가 존재하던 곳에 살았던 사람보다는 새롭게 탄생한 국가 내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케렌스키 정권 실수는 2월 혁명이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과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에서 시작된 것을 망각한 점이다. 그가 내각의 총리로 부임하면서 전쟁에서 빠져나와 휴전을 하고 병사들을 어서 빨리 집으로 보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점과 전장이나 혹은 러시아 내의 장군들은 전쟁의 종료보단 전장으로 더 나아가 승리하기를 원했다. 전장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은 병사들의 운명이다. 고위 장교들은 후방에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앉아 포도주나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냐고 계속 부하를 닦달하고, 도망치는 탈영병에 대해 무자비하게 총살을 집행했을 것이다.

 

물론 탈영병에 대한 처우는 그러하나, 처음부터 전쟁에서 가지는 의의조차 파악하지 않고, 단지 부하로 하여금 목숨을 버리게 하여 거기서 얻는 영광의 훈장만 바란 지휘관들에게 볼셰비키혁명의 씨앗은 이미 볼셰비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힘을 부여한 것이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연방은 어느 순간 독재와 공포정치의 대표적인 공간이 되었고, 하다못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인 <1984>가 탄생한 것도 그렇고, <1984>와 더불어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비판적 3대 소설인 <수용소군도>, <한낮의 어둠>이 괜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악덕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유언으로 남긴 <동물농장>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에서 오직 악덕만 본받아 끔찍한 사건을 탄생하게 되었다. 이 서평 본문 위에 홍범도 장군 역시 볼셰비키에서 활동한 인물이고, 레닌에게 권총을 받을 정도면 그가 레닌에게 얼마나 많은 신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탈린에 의한 대이주 그리고 대숙청이란 사건은 역사의 비극으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찾아내지 못한 유물처럼 되어버렸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시작하여 어째서 그렇게 길을 꼬였는지 우리는 항상 다시 생각해야 한다.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자인 만큼 그는 지금도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자 중에 하나로 인정받는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억압하는 사슬로부터(사슬의 이름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부터 나온다.) 모두 자유롭게 되고자 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으킨 볼셰비키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오히려 어긋난 길로 가버렸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주의자인 레닌의 거대한 도전이 문제보단 그 사회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치제도나 혹은 사상을 들고 와도 그 사회 구성원 자체가 그것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말이다. 겉만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존재해도 그 시스템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자각하지 못하면 결국 관료주의 폐단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도화선이 되게 해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은 프랑스 사람들이 과연 몇 %인지 혹은 러시아혁명에서 볼셰비키를 제외한 수많은 군중들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은 사람이 과연 %인지 생각해보면 다소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헌법을 찾아보고 읽은 자 역시 과연 몇 %나 되는 것인가? 역사의 가르침을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료로서 판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역사의 위조는 결국 그 사회의 인간의 정체성마저 기만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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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9-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아직도 만애비 님이 준 정의론을 아직도 읽지 않고 있네요. 이거 빨리 읽어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군요....

만화애니비평 2014-09-10 21:41   좋아요 0 | URL
아직 저도 쥐를 읽지 않았습니다~! ㅎㅎㅎㅎ
도서관에서 꼭 빌려볼 도서를 보고 난 뒤에 바로 보려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9-11 00:08   좋아요 0 | URL
아니, 그재미있는 쥐를 아직 안 읽으셨다니 실망이지만, 셈셈이니 대만족이네요.. ㅎㅎㅎㅎ

만화애니비평 2014-09-11 08:35   좋아요 0 | URL
어느 인물이 생각나서..ㅋㅋㅋ

어제 집 근처 대학교에서 산책 및 운동하러 가는데

거기 학교입구부터 학교정문까지 그분이 그려져 있더군요.

국부와 레닌의 서적
 
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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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미(Nemi)라는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있는 숲 속은 지금도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아주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칼을 든 남자가 커다란 나무 앞에서 아주 위협적인 행동을 주변의 적을 막고 있었다. 바로 그 나무는 황금가지가 달린 참나무고, 황금가지는 겨우살이라는 식물로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종이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바로 유럽과 인도, 조선과 일본, 심지어 러시아와 태평양 군도에 자리 잡힌 식민지에 있는 신화와 문화들을 수집하여 인류의 역사를 다시 말하고 있다.

 

본래 인류학이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오래 전의 문화 내지 혹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원시부족이나 원주민들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류학은 인류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최근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인류학을 연구하게 되면 원시부족에 대한 연구부터 과거에 살았던 인류에 대해 상세한 연구를 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현대문명이란 과학기술에 의해 미개한 사회로부터 멀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우리는 도시화된 지구에서 거대한 주거시설과 산업시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나, 그렇게 된 시기도 얼마 되지도 않으며, 설사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우리 인류가 현재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지성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인 영역에서 책으로 통해 얻어지는 지식은 또 다른 경험이며,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지식이란 자신이 살아온 시간적 축척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극히 단순하고 편협한 경험주의적인 요소는 인간 스스로를 착각과 편견에 빠지게 하는 마법약과 같다. 문제는 그 약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하여 스스로 복용하고, 이제 그 마법약은 독약이 되어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눈을 가리게 하는 마약이 되기도 한다.

 

지식으로 통해 얻어지는 책의 가치에서 바로 우리가 알 수 없던 것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인류의 삶을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읽는 것은 단순히 고대사회부터 시작하여 근대까지 있었던 원시부족과 미개 및 야만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설사 고대사회에 살았던 야만족이 존재하여 100년 전 인류가 그 야만족에 대해서도 분명 야만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100년 전이란 인간들과 현재 우리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인류는 현재 야만적이지 않은가? 아니면 우리는 언제나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모든 일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으로서 풀어내는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치명적인 실수다. 인류의 잔혹하고 비윤리적인 범죄는 바로 그런 점을 망각하면서부터 시작이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영혼아래 숨겨진 원시적인 요소를 더듬어 찾음으로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황금가지>에 나오는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본다면 참으로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또한 어이 없는 이야기가 터질 것이다.

 

저자인 제임스 프레이저 역시 그런 점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 안 될 것이다. 그도 역시 많은 제보자와 기록을 찾으면 원시문화와 혹은 전통문화에 새겨진 과거의 미신을 찾아내어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보니 <황금가지>에는 우리의 조상인 조선이란 국가를 나타내었다. 현재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나, 산모가 태아를 놓게 되면 3·7일이라 하여 즉 21일 동안 집 앞에 고추를 묶은 금줄을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21일 동안 산모와 태아를 외부와 격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역사 혹은 그 역사의 왜곡된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 시조라고 불리는 단군왕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아버지인 환웅천자는 배달국의 임금이기도 하나, 인간이 된 곰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한다. 곰이었던 웅녀가 인간이 되기 위해 3·7일간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난 후에 인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신앙은 하늘을 조상으로 여기는 무속신앙으로서 샤머니즘, 그리고 곰을 숭배한 토테미즘이란 점에서 한국인의 역사는 곧 한국인의 신화와 더불어 존재한 것이다. 생각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4400년 전에 있었던 신화로서 제시된 역사적인 기록에서 웅녀가 인간이 되기 위한 날과 현재까지 민간신앙으로 전해오는 금줄의 관계에서 신화는 계속 그 민족의 역사와 삶에서 남은 것이다.

 

또한 신화적 특성, 또는 신이 되는 존재, 또는 토템의 대상인 동물과 식물, 하다못해 일상생활의 패턴조차 계속 이어져 온다. 우리는 왜 미신을 두고 유치하다고 여기면서 계속 이끌리는가? 그것은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이성과 지성에 의존하기보단 그 너머의 감각과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통적인 요소가 <황금가지> 내에서 자주 등장한다. 제일 놀란 부분은 일본 훗카이도에 거주하였던 아이누족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누족은 본래 몽골계통 부족으로, 처음 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된 동기는 일본 애니메이션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 의해서다.

 

<원령공주>에서 하나의 모티브로 설정된 것이 남자주인공으로서 그는 아이누족의 젊은 청년이면, 그가 입은 의상은 우리 한국이 조선이란 국가로 있을 때의 일본인들이 입은 의상과 전혀 다른 점이었다. 작품 내에서 조총이 나온 점을 두고 본다면 17세기 정도로 보이며, 아이누족의 청년은 당시 도쿠가와 막부시절의 의상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현재 일본 기모노는 당시 막부로부터 이어져 온 의상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활을 사용했으며, 부족은 아주 공평한 계급체계에 늙은 부족장이 부족을 이끌어가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 아이누족이 사실 곰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곰은 신적인 대상이나 그들에게 곰은 아주 맛있고, 유용한 동물로서 죽임을 당하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곰이란 존재를 토템적인 요소를 부여한 점에서 그들의 원류가 몽골족이란 점에서 토템적인 원형이 단군신화의 요소로 본다면 상당히 흥미 가는 부분이었다. 당시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실제 곰이 아니라 곰을 토템으로 삼는 종족이고, 범은 곧 호랑이를 토템으로 삼는 부족이다. 문제는 곰과 호랑이는 다 무섭고 사나우며 사냥에 아주 능한 맹수다.

 

그들을 토템으로 설정한 것은 그들의 강함을 그대로 부족에게 이양하여 사냥을 잘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주술을 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방법은 곰과 호랑이와 같은 맹수 어느 하나를 두고 자신과 같은 존재라 여기며, 그 맹수와 자신은 영혼을 나눈 사이로 볼 것인지, 아니라면 맹수를 잡아 그 맹수를 잡아먹음으로서 자신에게 맹수의 용맹성이 들어온 것처럼 여기는 것인지 또는 맹수 그 자체를 신처럼 받들어 인간 희생양을 보내어 인신공양을 하는 것인가에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만약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한다면 1번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대안일 것이다. 인신공양이란 점은 누군가를 계속 희생해야 하며, 언젠가는 분명 한계점이 올 것이다. 한국의 설화 중에서 <심청전>을 보면, 심청은 인당수에 빠져 용왕에게 보내진 것으로서 인신공양을 합리화한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문화적 형태를 설화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어린 소녀를 희생한 점에서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를 확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용왕이야기처럼 바다마을이 있는 지역에서는 매년 일정기간이 되면 용왕제를 벌인다. 마을 어부들과 주민들이 모여 서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노래와 춤을 추는 행사는 만선의 기원을 바라는 주술적 행사다.

 

우리가 유치하고 미개한 행동이나, 아직까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분명 존재하고 있는 행사이고, 앞으로도 열릴 행사다. 해양환경으로 판단할 경우 바다의 수온과 COD, pH, 각종 중금속을 통한 화학적 요건, 조석과 조위 같은 물리적 요건, 플랑크톤에 의해 적조발생 등과 같은 생물학적 요건들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분명 생선은 계절적으로 영향을 받아 어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만선을 기원하면 풍어를 바라며 용왕제를 열고, 무당을 부르고 춤판을 연다. 미신으로 가득하나 현재 굿을 할 수 있는 일부 무속인들은 무형문화제로 남고, 또한 그런 굿판이나 각종 전통행사 역시 무형문화제로 등록되기 시작한다.

 

정말 미개한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에서 자리 잡은 신화와 민담,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들의 드러나지 않은 언어로서 드러나는 점이다. <황금가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령 위에서 아이누족은 곰을 잡는 것에서 토템이 되는 동물을 다른 민족과 부족들이 잡는다는 점이다. 단지 조금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유물론적인 요소를 상당히 배제한 느낌이 강하다. 문화인류학에서 <문화유물론>의 저자이기도 한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적인 관점에서는 그 문화적 행사나 각종 의례가 단순히 미개부족의 믿음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환경과 경제적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구조주의 창시자이면서도 인류학의 거두인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책을 보면 원시부족이 우리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괴상한 행동이 그들 나름대로의 과학적인 행위이며, 그 무의미하게 보이는 행동 그 자체가 언어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황금가지>의 주요 대상이 되는 부족들은 농경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고, 그 농경문화에서 계절적인 변화가 결국 신이란 존재를 관념 속으로 만든다든 점이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봄-여름-가을-겨울의 흐름에서 봄은 모든 생명을 열게 하고, 여름은 그 생명이 가장 성장하며, 가을은 생명을 수확하며, 겨울은 생명이 모두 잠을 자게 된다.

 

그 계절적 변화가 바로 자연의 이치를 하나의 신으로서 만드는 것이다. 계절의 신을 어느 관념적 존재에게 부여하고, 그가 바로 인간과 같은 이름과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신은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인간의 여자에서 태어난 반신으로서 그는 사지가 모두 분해된 채로 죽지만, 다시 태어난다.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부활에서 죽음은 겨울은 가리키고, 탄생은 봄을 가리킨다. 결국 죽음이 있어야 생명이란 이름의 봄이 오는 것이다. 신의 죽음과 부활 혹은 탄생에서 판단해보면 분명 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에게 보인다고 믿으며, 그 믿음은 바로 꿈과 몽상 또는 간질에서 나오는 환상이다.

 

꿈은 인간이 수면 중에 꾸는 생리적 현상이다. 그러나 고대 사회의 사람에게 꿈은 예지며 하나의 계시다. 꿈이 곧 인간의 무의식적인 요소로 통해 인간에게 보여주는 현상이듯이 그들은 그런 무의식에 존재하는 인간, 많은 인간들이 공유하는 그 무의식으로 신을 만든 것이다. 신화란 그 사회집단 인간들이 가진 집단적인 무의식 내지 공통성이란 말처럼 오히려 그 신화적인 이야기가 하나의 과학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자신들만의 과학성에서 미개함을 넘어 폭력적인 야만이 존재했다. 신은 절대 죽지 않아야 하므로 그 신을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동물일 수도 있고, 인간일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들이 여기는 신의 존재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 동물과 식물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이 공작해 놓은 도구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큼 가장 신에 부합한 존재는 없으며, 오히려 인간이기에 다른 인간들에게 신의 계시 내지 집행 그리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설사 동물을 신으로 모시거나 희생양으로 올려도 결국 그 결과적 판단은 인간이 한다. <황금가지>에선 바로 네미숲속의 사제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각종 인간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가장 잔인하고도 야만적인 죽음은 후반에 나오는 북유럽 쪽의 사형이었다.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과 전쟁에 사로잡은 포로를 식물줄기로 만든 거대한 동물인형에 넣어 거기에 각종 가축과 동물을 같이 들어가게 한 후 불로 태우는 것이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상황에서 죽음으로부터 절규하는 동물들과 사람들은 서로 비명을 지르고, 동물들은 다른 동물과 사람들을 할퀴며 뒤엉키며 죽어간다. 이 잔혹한 행위에 두고 <황금가지>에서는 그들의 주술적 행위로 보겠지만, 문화유물론적인 요소로 본다면 식량을 포로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깝거나(부족하거나) 또는 그런 식으로 사형을 처하게 하여 상대부족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줄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이다. 만약 그 불길에 타버린 불쌍한 영혼의 육체를 식사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약 식사용으로 한다면 2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식물식량의 절약과 단백질의 보충, 물론 이런 식의 논리는 너무 잔혹하거나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즈텍 문명의 심장 가르기는 분명한 처사를 보여준다. 인류학 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시대나 그 지역의 기온과 습도, 강우량과 식생조건이다. 게다가 지형과 지질적 요소는 인간에게 적합한 생활이 될 수 있는지 또는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는 가정에서 기르는 가축 그리고 들판이나 숲에 있는 야생동물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남미의 국가는 대부분 높은 지대이며, 사나운 맹수는 잘 없었으며, 주로 토끼나 쥐 같은 작은 동물이 많았다. 그리고 옥수수 재배에서 옥수수신에 대한 경배는 식물이 아니라 인간을 희생한다는 점도 이상하다.

 

옥수수의 신은 식물의 신이지 동물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로를 죽이거나 혹은 희생양을 지정된 슬픈 인간이든지 그의 죽음으로 옥수수의 신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차라리 옥수수를 위해서라면 들판의 옥수수가 물의 흐름이 잘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수로정비나 밭에 거름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다고 죽은 인간의 시체를 잘게 부수어 토질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인간의 심장을 꺼내어 신상에 바치고, 목을 베어 그 인간의 고기를 모두 나누어 먹는다. 1년 중에 자연사하는 인간보다 제의로 통해 죽는 인간의 수가 많다는 점은 결국 제의는 경제적, 환경적 조건이 따르는 점이다.

 

많은 인구를 가진 왕국에서 옥수수와 같은 탄수화물 섭취는 단백질의 보충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살인은 어떻게든 합법적으로 이성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신이란 이름은 어떠한가? 모든 죽음은 합법적이지 않으나 유독 영화나 소설에서는 이런 죽음을 정당화 시키는 방법이 있다. “신과 정의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희생은 그 어떤 부조리에서도 정당하다. 신이 곧 정의이기에 정의라는 이름 역시 그런 폭력적인 희생을 무마시킨다. 아니 그 죽음을 당하야 하는 희생양조차도 오랫동안 준비된 존재이기에 자신들의 희생은 아주 기쁘고 위대하며 좋은 것으로 인지되도록 교육시킨다.

 

<황금가지>에서는 바로 저 죽음을 두고 영원한 생명, 풍요로운 삶의 혜택을 위해 의식을 치룬 것으로 보나, 그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은 자세히 연구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각 문화와 국가, 그리고 민족과 원시사회의 신화를 연구하고 떨어진 국가라도 그 연접한 곳에 있는 지역이라면 뭔가 유사함 요소를 발견한다. 이름은 다르나 신의 역할과 신이 처해진 운명, 그리고 그 신을 받드는 인간의 생활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그 미개하거나 또는 야만스러운 행동은 단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교나 가톨릭과 같은 큰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점이다.

 

이해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한국은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이며 대승불교국가로서 그 문화적 유산을 이어져 온다. 본래 인도에서 불교는 소승불교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역사와 고려시대처럼 국가통치이념으로서 불교를 영입한다. 그러면서 점차 민간에 퍼지면서 불교가 한국의 대표종교로 부상하나, 그 속에 분명히 민속 문화와 무속신앙이 잠자고 있다. 불교에서 백중에 방생하는 행사는 분명 오리지널인 인도종교에 없는 점이고, 죽은 자에 대한 49제나 100일제 역시 없다. 오히려 그런 요소는 무속신앙에서 전해져 온 것을 불교에서 흡수한 것이다.

 

가톨릭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가령 추수를 하는데, 마지막 추수를 하는 사람을 두고 곡식어머니로 치부하여 놀림거리나 각종 행사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는 없다. 이런 행위는 가톨릭문화가 자리 잡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심지어 교회 앞 광장에서 그런 행사를 계속 한다. <황금가지>에서 초기 가톨릭은 기존의 민속 종교와 경쟁해야겠지만, 그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문화적 제의가 다르게 된 것이다. 글을 적는 지금이 2014년 8월 17일로서 한국에 가톨릭의 최고 수장이신 교황님이 방문했다.

 

한국에 와서 한국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123인에 대해 시복식을 내리는 가운데, 본래 윤지충이란 사람은 1791년 진산에서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 어머니의 신주를 불태워 역적이 되어 참수당한 사람이다. 본래 가톨릭에서 마테오리치가 중국에 오면서 중국에 신앙을 퍼뜨리기 위해 god이란 신을 동양권의 천주로 대체하여 문화적 차이를 줄이려 했다. 하지만 당시 신해박해가 있던 시기에 교황청에서는 그런 동양의 문화를 일체 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것에 대한 사건이 성호학파 선비의 죽음이다. 지금이야 다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유럽에서는 신에게 두 무릎을 꿇어도 군주에게 한 쪽만 꿇는다.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관념, 그리고 그 시대적 조건이 비극적인 역사가 탄생하는 점이다. 물론 당시 윤지충의 죽음은 천주교의 신앙심도 있었지만, 그가 정조 시대에 노론과 대립하던 남인 세력이었고, 그의 조상은 남인의 영수이며, 거두였다. 그의 죽음에는 신앙심이란 계기가 있지만, 당시 정치적(경제적) 이익에 따라 처형된 역사적 사건이다. 정조 이야기가 나와 그러나 <황금가지>에선 정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몸에 종기가 생겨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종기가 결국 치료되지 않아 죽고 만다. 임금의 몸은 일반 인간의 몸이 아니고, 신성하기에 함부로 만질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이전의 다른 조선임금들도 종기가 날 경우 의원을 불렀고, 침술로 통해 종기를 치료했을 것이나, 정조는 그렇게 하지 않은 점에서 의아한 점은 많다. <황금가지>의 한계점은 단지 신성한 것과 그 신성함에 대한 인간들의 이야기만 초점을 맞추었지, 그것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판단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책이 계속 유효한 이유는 4가지 편에서 숲의 왕, 신의 살해, 속죄양, 황금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속죄양이 아직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제의라는 것은 누군가를 희생하여 그 희생에 따라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성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데도 계속 억지로 약자를 희생시키는 그 야만은 아직도 사회 저편의 문젯거리로 등장한다.

 

주술에서도 주술은 분명 이로운 것도 있으나 남을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미디어가 각종 TV 및 인터넷, 신문잡지 등으로 퍼진 공간에서는 사실 있지도 않은 거짓은 사실로 만들거나 사실조차 은폐하거나 왜곡한다. 주술은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여기므로, 언론과 주술이 무엇이 다른가? 주술로서 희생양을 만들고, 그 희생양이 조직과 사회의 불온요소 만들어 광적으로 변하는 인간들을 보면 <황금가지>는 21세기에 도저히 유효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단지 아쉬운 것은 네미(Nemi)의 숲속에 있는 왕 대신 우리는 죄도 없거나 무관한 사람이 희생된다. 물론 <황금가지>에서 인신공양 되던 인간을 보면 죄 없는 인간이 많다는 점이었다.

 

죽음과 부활에서, 희생양이 죽으면 그에 해당되는 신은 계속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영원히 젊음을 누려 그 사회집단의 인간들에게 계속 혜택을 준다고 한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로서 사람들을 기록하여 죽지 않게 한다. 물론 육체적 존재는 죽어도 그의 잔상이 남는 이미지는 계속 남아 그의 육체적인 죽음에서 사회적인 삶으로 부활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자나 혹은 큰 역할을 기여한 자들도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부활한다. 안 그러면 우리는 죽은 자의 이름에 사로잡혀 갈등하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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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남청수.김성희.최남도 옮김 / 이후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잡게 된 동기는 <스펙타클의 사회>를 저술한 기 드보르를 검색하면서이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감독이며, 사상가며, 선동가이다. 그는 최후의 아방가르드운동의 마지막 주자였다. 그가 속한 KOBRA는 1970년대에 해체되면서 이 세계에서는 아방가르드 운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입방정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으며, 스펙타클이란 용어는 심심하면 광고나 미디어 내의 쇼 프로그램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에서도 튀어 나온다. 생각하자면 정확한 의미나 용어를 모른 채 마구 이 단어들이 남발되고 있다.

 

드보르가 추구하던 상황주의자처럼 살아가지 않지만, 그가 제시한 상황주의적인 판단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조차도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고리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이다. spetacle이란 용어는 이미지가 매개가 된 사회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이 세상(그러니깐 하다못해 본인의 집에 나와 길가의 도로를 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은 그야말로 스펙타클이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 지역은 도시라는 거대한 문명과 산업이 밀집된 공간이다.

 

이제는 점차 바뀌어 도시는 산업화에서 탈산업화로 이양되고, 대신 금융과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다. 그리고 산업화가 밀려난 비도시인 농촌지역이 서서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다. 산업활동과 더불어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신과 자연을 파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점을 염두 하면 앤디 메리필드의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는 도시와 인간, 그리고 그 곳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마르크스 내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야기로 통해 어떻게 우리가 도시를 생각해야하는지 알려준다.

 

먼저 이 책은 단순히 맑스주의 즉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다루기보단 마르크스주의로서 도시라는 공간에 살던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과 삶, 그리고 거기서 얻어낸 도시라는 기능과 현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정체된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 인간과 도시를 비교하면, 도시는 정형적인 건축물과 시설물이 존재하는 곳이나, 그 도시 안에는 인간이란 유동적인 존재가 있다. 따라서 도시는 고정적인 존재고 인간은 유동적인 존재다. 하지만 고정적 존재는 유동적 존재를 담아두는 매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유동성을 고정성으로 바꾸어 버리고, 인간은 건축물이란 고정성이 존재하나 건축물의 양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시켰다.

 

즉 고정성과 유동성이 서로 변화를 주는 변증법적인 요소에서 도시란 것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그들의 삶과 흔적을 찾는 저자와 다시 저자의 서적을 읽고, 그 서적을 보고 생각하는 나로 통하여 고정성과 유동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는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했다. 인간의 유동적인 흐름은 고정적인 지리와 자연에 영향을 주며, 그 영향을 받은 지리와 자연은 도시적 기능을 갖추면서, 인간 자체를 도시 안에 가두어 버린다. 내가 살던 곳은 섬과 육지로 교량으로 연결된 곳에서 육지와 많이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도로가 확장되면서 차량의 이동이 증가되고, 뒤쪽의 산을 밀게 되면서 아파트단지가 형성되며, 집 근처에 큰 가게가 생기면서 생활환경의 질이 하락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문화적 구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 사회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을 보므로,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 대한 변화는 결국 도시와 인간에 대한 관계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해 내 자신이 느꼈다면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와 만나다> 역시 그런 변화를 당시 사람들을 지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만일 어떤 도시나 다른 국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3가지의 장소로 가보라고 했다. 장소 1개소는 기억나지 않으나, 1개소는 도서관이고, 다른 1개소는 시장(market)이란 곳이다.

 

흔히 시장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며,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시장의 공간성으로 통해 그 사회의 커뮤니티와 사람들의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이란 것은 누가 일부러 만들어준 곳보다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집합장소다. 그렇기에 시장이란 곳을 알아가는 것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며, 삶의 질까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강력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예전에 읽어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이라는 도서였다. 호크 하이머와 아도르노, 하버트 마르쿠제 등 다양한 학자들이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인문학자로서 어떤 삶과 어떤 학문을 했는지 알려주는 가이드역할을 맡은 도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고대 카빌라의 신비와 마르크스주의를 합친 발터 벤야민을 보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미 <문예이론>과 <모스크바 일기>로서 접한 인물이었다. 그가 본 도시의 환경은 매우 특이하다고 할까? 특히 국내 미학자인 진중권 교수가 제일 먼저 미학으로서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벤야민이다. 기존에 예술적 대상이 사물 즉 조각상이나 그림이었다면, 영상복제가 일어난 시대부터는 영화로 바뀐 점과 그것이 아우라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점이다.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 복제품들이 오히려 원래보다 더 원래 같은 느낌을 주는 simulace의 도래에 벤야민의 사상은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이던 라시스란 여성을 만나면서, 그녀에게 빠진 후에 그녀가 살던 모스크바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벤야민은 자신이 러시아에서 가면서부터 오기까지 일기를 적었으며, 그 중에 대부분이 라시스라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관찰과 감정이었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의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도시의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거기에는 러시아 전통인형과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벤야민은 그런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 취했으며, 어린이와 같은 감수성으로 러시아 전통인형과 장난감을 사서 가지고 가는 내용을 보았다. 물론 배고픔과 추위는 언제나 러시아 사람들에게 큰 걱정이었으나, 적어도 시장에는 인간의 생동감이 살아있는 것이다.

 

벤야민이 이런 관찰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에서 다시 돋보이는데, 내가 이때까지 접하지 못한 개념 이른바 파사주라는 것이 튀어나온다. 프랑스 파리의 19세기와 20세기에 존재하던 건축물 양식으로 거대한 유리천장을 거리를 둘러싸며, 그 거리 안에는 술집, 옷집, 아틀리에와 같은 상점이 입주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상업적인 흐름을 따라 가게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창녀와 포주, 그리고 불량배들이 함께 숨을 쉬던 곳이었다. 모든 인간들이 다양한 얼굴로서 돌아다니며, 파사주라는 공간은 마치 거대한 구경거리를 주는 재미난 공간이었다. 보들레르의 산보자라는 댄디처럼 산보자들은 거대한 구경거리를 지닌 이 파리의 파사주를 돌아다니면 인생의 낙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일단 파사주 안의 가게들은 상점과 더불어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원래 전통적인 수공업자 내지 또는 상점을 운영하는 가게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안에 잠을 잘 수 있는 생활공간이 있었다. 즉 경제활동과 가정활동이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이었고, 생활공간이 있으면, 당연히 그 생활 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상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거리는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거리를 중앙으로 두고 양 옆으로 때로는 골목으로 이어진 상가들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마주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보들레르의 산책이 이어지는 길가에서 자리 잡은 상가들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내지 혹은 18~19세기의 유럽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해 변혁되고 있었다. 토지가 대부분 몰수당한 농민, 대규모공장에 의해 몰락한 수공업자와 영세자본가, 그리고 도시에 사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의 자녀 등이 끊임없이 도시에 몰려들고 그 주변을 배회했다. 그래서 초반의 도시는 냄새로 가득하고 쓰레기가 즐비하며, 많은 사람들이 타락해갔다. 18세기 낭만주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가 그토록 동경하던 파리에 갔을 때 그에겐 열광과 희망의 이름 대신 실망과 회의감이었다.

 

인간의 생활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다. 루소가 지적하다시피 사유에 대한 지나친 차이는 인간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에 억압을 준다고 했다. 물론 서적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이나,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의 발견자, 루소>처럼 루소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만약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읽는 순간, 머리에서 번개가 내려꽂히는 기분을 것이다. 두 책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유사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루소가 보던 파리라는 도시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영국에서 보던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는 독일 출신이나 그의 정치적 운동 때문에 프랑스와 벨기에로부터 추방되어 최후의 망명지인 영국 런던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는 런던에 있는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면서 <자본>을 집필하였으며, 도시라는 공간에서 노동자의 모습을 보았다. 도시라는 곳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권력자들의 왕궁이 있는 곳이라면 자본주의 이후로는 빈민과 창녀의 소굴이었고, 착취의 악마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 매력은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문화적 인프라가 있었다는 점과 인간들의 밀집소란 점에서 새로운 모험이 있기도 한 곳이었다. 마르크스 친구인 엥겔스는 멘체스터의 밤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역동성을 보았다.

 

도시는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병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생기도 있었다. 아무렇게 만들어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생기면서 사람들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국에서 소문난 맛 집과 유명한 가게는 대로변에 있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골목 사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했다. 그런 가게들이 대규모로 신축하여 큰 거리로 나오게 되면 그때의 그 맛이 사라지는 마술과 같은 일들이 생긴다. 인간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은 단순히 음식재료와 조리방법으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골목들이 이어진 시장에서 인간의 다양한 문화가 생기고, 서민들의 이야기가 꽃 피운다.

 

그런 공간을 없애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공간을 없애는 것과 같다. 가령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는 전형적인 관료주의로서 프랑스를 통치한 독재자로서 그의 세력 중에 오스망 백작은 파리의 거리를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는데, 먼저 기존의 파리상가들을 철거하고 거기에 거대한 도로와 그 도로 주변에 거대한 건물, 공공시설, 상징물 등을 집어넣는다. 파리의 거리가 파리시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 상징적인 도시정비는 거리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변방으로 내몰게 되었고, 일을 하는 가게와 거주하는 가정을 분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현대에서도 가정이 상가와 같이 겸용하는 가구도 있지만,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실태다. 그런 이유는 대규모 자본유입으로 통한 공업화와 관계가 있다.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서 많은 집들이 필요했다. 그들을 가두는 것으로 통해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것은 어느 순간 노동자를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그 노동자로 통해 이윤을 내려고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감옥이 필요했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처럼 감옥은 학교, 공장, 직장 등만이 아니라 주거시설도 역시 감옥이 되어야 했다.

 

대규모 단지 아파트를 가보면 인간이 사는 공간과 형식이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같은 평수와 같은 방 구조, 같은 경치까지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집은 마치 죄수번호가 새겨진 감옥처럼 규격화되어 버렸다.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단지는 이웃이 옆에 있어도 이웃보다는 남으로 대해야 했다. 파사주처럼 거리의 건너편에 있는 가게사람을 볼 수 있는 낭만적 요소도 제거되었으며, 아파트 안을 보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 대한 침해였다. 이런 감옥과 같은 아파트계획은 노동자를 수용하기 좋은 공간이었고, 그들은 단순히 노동시간만 노동하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 외에도 노동하게 되었다.

 

드보르가 제시한 스펙타클처럼 TV나 미디어는 곧 대중문화로서 노동자들의 생활에 침투하고, 그들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만 생각하게 유도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던 시장과 달리 아파트문화는 그렇게 획일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아파트단지 생활을 위해 대규모 마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시장은 대규모마트로 인해 점차 소멸되어가고, 대자본가들은 아파트단지로서 자신들의 노동자를 가두고, TV로서 사유의 전환을 막으며, 대규모점포로서 또 다시 이윤을 얻는다. TV라는 것은 상품이 이미지라는 것으로 통해 전달되므로 TV시청은 휴식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 부류가 도시중심에서 살다가 도시 외부로 추방되면서 부동산 경기는 치열하게 뛰어오르며, 부동산 투기로 한 몫을 노리는 부류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부동산이 참 걱정인 이유는 보통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전세 내지 구매하면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일단 자신이 구매한 집의 평균 수명이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30년을 살고 난 후에 집을 이동할 때 재건축계획에서 그 재건축되는 집과 자신의 집의 가격 차이를 보면 절대 100% 이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도 주택을 소유하고 것은 70%가 되지 못한다. 최근에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여전히 재건축현장은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은 늘어가는 반면 그 집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가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이른바 부동산에서 내 집은 비싸게 팔고, 남 집은 싸게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심리가 계속 자극하면서 부동산에 동반되는 화폐유통은 엄청난 것이다. 이미 한 사람이 10년 동안 벌어도 집 구매가 어려운 현실에서 도시의 착취는 바로 주택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대규모산업단지 있는 곳에 노동자를 오게 해놓고, 집을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 그 지역은 반드시 큰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지역의 산업단지가 사라져도 문제가 된다. 실직자의 대량생산은 그 지역의 상권을 모두 절멸시키는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것은 결국 유기적인 존재이나, 그 도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적 기능에서 도시계획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 그래서일까? 최근 환경경제학자의 강의를 듣는 도중 도시의 생태적 기능을 부여하고, 도시의 공간이 자연적인 요소를 되돌려 인간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도시계획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대단지 주택이나 자연적인 조경을 나두고, 건축배치는 직사각형으로 나열하여 도로로 중간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앙지역은 대규모 공원과 문화시설을 설치하고, 그 중심으로 원형으로 건축물을 배치하여 그 안에는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공원과 문화공간을 향유하고, 부모들은 공동그룹을 구성하여 서로 음식을 구매하거나, 아파트단지를 운영하거나, 아이들의 학습과 놀이 프로그램을 개선하기도 한다. 기존의 도시에서 아파트라는 곳은 감옥과 같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도시적 기능을 다른 식으로 보완하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이란 기능은 자신들의 주거지역만이 아니라 그 주거지역이 형성된 지역까지 확대되어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공간이 형성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런 일들이 국내에서 당장 실천되지 않지만, 그런 기능이 어느 정도 중요성을 보는 것 같다. 도시의 지역주민이 만든 커뮤니티는 그 지역사회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특히 범죄나 사고로부터 예방해 줄 수 있으며, 생활환경의 개선대상은 소외된 이웃까지 혜택을 볼 수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싼 도시에 인간의 마음 역시 삭막하게 변해간다. 인간의 비인간화, 그것을 눈치조차 챌 수 없게 하는 미디어, 드보르가 주장한 스펙타클처럼 도시의 잉여적 존재조차도 도시에서 당위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도시가 팽창하고 확장되며 건설되기 바란다. 이 책에서 (분명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서적이지만)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나온 문구를 인용한다.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점심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맞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중에 잿더미 위에서 그 점심을 먹는다.”, 망각의 동물인지 아니면 현실을 볼 수 없는지 또는 보려고 하지를 않은 것인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가족주의라는 현실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그 가족주의가 자신의 아이의 목을 옭아매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자본력을 가진 자들은 바로 그 가족주의야 말로 완벽한 사업의 밑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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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이 제국 일본 - 세계를 제패한 일본‘귀요미’미학의 이데올로기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장영권 옮김 / 펜타그램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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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를 알려고 한다면 단순히 대중문화나 또는 유명명소를 보기보단 차라리 하위문화로 보는 것이 좋다. 인간의 근본이 나오고 사소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하위문화로서 상위문화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새로운 바람에서 그 결정적인 계기가 나오는 것 은 대중문화에서 나올 수 없다. 이미 고정된 클리셰와 매너리즘에 의한 방법은 새로운 것을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유지되기만 한다. 그런 점에서 고급문화 내지 저급문화 또는 하위문화에 들어있는 다양성은 새로운 히트의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대중문화를 넘어 거기에 숨어있는 문화적 의미를 알려면 결국 하위문화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하위문화로 간다고 하여 하위문화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기존문화와 전통문화 그리고 외래문화까지 결합된 하나의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와이이 제국 일본>을 읽는 것은 단순히 일본 내의 하위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일까? 전혀 아니다. 그것은 하위문화로 통해 보는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성과 그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성향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전형적인 성향을 밝힘으로서 현대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 뒤에 나와 있는 경희대학교 영미문화 전공교수로 계시는 이택광 교수의 소개추천이 인상적이다. “‘가외이이’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가와이이’ 현상이 일본을 대표하는 상품미학으로서, 그리고 글로벌화한 세상에서 강력한 신화로서 군립하게 된 사정과 그것이 지닌 이면을 역사적, 정치적, 성적 맥락에서 천착한 이 책은 한국의 대중문화 연구자에게 뛰어난 전범이 되리라 확신한다. 물론 일본 하위문화에 열광하는 수많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서이면서도 내용에 저도 모르게 빨려들게 하는 지은이의 필력 또한 매력적이다.”

 

책을 읽는 순간 모에라든지 가와이이라든지 그런 말이 여기저기 튀어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미소녀 캐릭터에 대한 모에는 결국 가와이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든다. 미소녀에 빠지게 되면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인 요모타 이누히코는 인문학자로 일본의 전통문학과 근대문학, 일본의 태평양전쟁 이후의 이야기까지 풀어 넣는다. 그것이 당연하다. 인간의 문화라는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느 기회로 통해 계속 변화해 가기 때문이다.

 

가와이이라는 것은 과연 어느 것인가? 일본에서 가와이이라는 단어가 귀엽다는 것도 되나 일본어를 전문적으로 구사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와이이의 발언을 잘 못 들으면 귀여운 것이 아니라 불쌍한 것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최근 2014년 일본애니메이션 중에서 <우리 모두 카와이장>이란 작품이 있는데, 가와이라는 것이 귀여운 것인지 아니면 불쌍한 것인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카와는 강을 의미하는 하(河)로 나온다.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귀여워 보인다. 그것이 가와이이의 시작인 것처럼 보였다.

 

가령 우리는 너무 완벽한 사람에 대해 심적으로 부담스럽고 친해지기가 어렵다. 너무 깔끔한 결벽증이 다소 강한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뭔가 인간으로서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소의 약점이 필요한 것이다. 약점이 많은 인간이기에 그 공간을 틈새로 같이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사람이 때로는 안타까워 보이고 거기에 대해 뭔가 잘 해주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가와이이의 시작이고, 모에요소의 하나이다. 너무 완벽하면 다가서는 것도 부담스럽고, 옆에서 지켜주고 싶은 것도 없어진다.

 

가와이이에서 왜 미소녀 캐릭터가 좋은 것일까? 그들은 어딘가 약해보이고 부족해보이며, 너무 강한 여자라도 어느 부분에서 매우 약하면 그게 하나의 모에요소로 될 수 있다. 모에요소는 애니메이션, 만화, 라이트노벨, 게임 등과 같이 현실적에서 존재하지 않은 존재에 대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이 그 캐릭터에게 마음을 품는 것이다. simulacre 즉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것처럼 모에 대상은 현실에는 없는 존재나 마치 현실에 있는 존재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형성한다.

 

미소녀 캐릭터에 보이는 가와이이는 결국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그 부족함이 일본의 미학과 무슨 관계인가? 미학에서 일본은 유미주의적인 것도 있으나 빈틈의 미학이 있다. 즉 가득 차는 것보다 다소의 빈 공간을 만들어 여유라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국화와 칼을 지나 소우주적인 공간을 추구함에서 화(和)라는 사상을 위해 여유적 공간을 만드는 것은 미백의 미학이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일본 다실에 작은 다다미방에서 있는 것은 작은 꽃병 하나에 다구와 몇 권의 책이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작은 방에 창문을 열면, 햇살이 따듯하게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불며 새소리가 지저기는 아름다운 화음에 곧 방을 채우게 된다. 아무 것이 없기에 채울 수 있는 미학, 가와이이 미학은 부족한 대상에 대하여 채워주고 싶은 마음, 즉 그것이 하나의 상품전략이라 볼 수 있다. 일본 소녀들에 대해 이런 말이 기억난다. 일본에서 여고생은 최고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여고생들의 문화에서 가와이이적인 요소로서 그들은 자신을 꾸민다. 귀여우면서도 뭔가 마음에 이끌릴 수 있도록 말이다.

 

모든 여고생들은 아니겠지만 여고생들이 자주 구매하는 인기잡지의 콘텐츠를 보면 여고생이 원하는 것과 혹은 하나의 스펙타클로서 그들을 상품적 전략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서적들이 계속 발매되는 점에서 일본의 가와이이 문화는 나이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초반 소녀들은 최대한 귀엽게, 20대는 자기중심의 사랑인 나르시시즘 자세, 50대는 여유라는 것으로 통한 포용력에서 각자의 나이에 맞는 가와이이를 실천한다. 가와이이 문화는 나의 주도적인 개성보다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쉬운 도서가 아닌 점을 밝혀두는 이유는 중간마다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의 이론이 등장하는 점이다. 가령 이 책을 본다면 가와이이 현상에서 보이는 일본 여성들에 대한 점은 자크 라캉이 말하는 “우리가 사물이 아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욕망은 정지하지 않고 움직인다. 욕망은 끊임없이 부인될 수 있지만 지속되는 것이다.”, “욕망은 몸이 아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한에서 인간적이다. 다시 말해 주체가 '욕망되기를' 원한다면, 아니, 그의 인간적 가치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욕망은 가치를 위한 욕망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진정 '인정(recognition)'을 욕망하는 것이다.”

 

가와이이 문화에서 현존하는 여성들에게 욕망의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함을 보여주기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여성들에 대해 환상적인 요소를 극대화로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상상적 존재로서 현실을 대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부족함에 대한 동정심 내지 혹은 거리감이다. 이 책에서 일본 근대문학가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인용하는 게 인상적이다.

 

방과 후에 ‘나’는 친구인 긴코와 함께 미장원에 몰래 간다. 그런데 새로 한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아무래도 귀엽지(가와이이)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친구 긴코가 들떠서 “이대로 맞선에라도 나가볼까나”라는 식으로 말을 하기에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귀여운(가와이이) 사람”이라는 느낌을 품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녁노을이 진 하늘을 물끄러니 바라보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기분이 고양되어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라고 읊조린다. 집에 돌아와 보니 키우는 개 자피가 우물가에 떨어진 보리수 열매를 먹고 있기에 “갑자기 깨물어 주고 싶어질 정도로 자피가 사랑스러워(가와이이)”진다. 이번 장의 서두에서 인용한 대목은, 그 뒤 자기 방에 돌아간 ‘나’가 거울 보고 말하는 감상이다. 그 뒤에는 ‘나’는 부엌에서 쌀 일며 “어머니가 애처롭고(가와이이) 안타까워서 소중하게 대해 드려야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한다” 그녀가 밤에 이불 속에 들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드는 대목에서 이 단편은 끝난다. <여학생>은 짤막한 단편이지만 “가와이이”와 관련된 다양한 용례가 등장한다.

 

결국 가와이이란 단지 귀여운 것일까? 보기 좋은 것이 아닌 그로테스크적인 요소에서도 가와키모로서 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가령 한스 밸머의 작품에서 무참히 부서진 인형들을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가와이이란 미의 미학과 더불어 추의 미학이 동시에 숨어 있다. 왜 이런 것일까? 일본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 강한 만큼 개인에 대한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집단적인 생활에서는 매우 예의바르고 튀지 않은 행동을 하려 한다. 그런 집단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벽은 하나의 욕망적인 대체물로서 가와이이라는 문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즉 가질 수 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대체물로서 가와이이라는 단어적 현상이 생기고, 거기에 맞게 문화를 조성해 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격식에서 일본에선 같은 동급생이라도 여자에겐 성씨 뒤에 상(氏)을 붙이고 남자 뒤에는 군(君)이란 단어를 붙인다.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 성으로 부르지 아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친분이 생기면 이른 뒤에 Chang이란 단어를 붙이지만 어른의 세계에서는 정말 위험한 일이다.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열어줄 수 없는 사회적 문화인 점에서 가와이이 현상은 자신만 열어주고 싶거나 또는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자리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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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문제적 인간 10
로버트 서비스 지음, 양현수 옮김 / 교양인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은 러시아혁명에서 나는 2월 혁명보단 10월 혁명에 더 신경을 쓰는데, 그런다고 하여 볼셰비키혁명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관점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말하고 싶은 것은 볼셰비키혁명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긍정적인 가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읽어본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를 읽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가 저술한 책들이 코뮤니스트 즉 공산주의자들을 다루면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적어도 관료주의 타도와 독재정치를 타도를 외치다가 순간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혁명이란 것이 무조건적으로 평화로서 된다는 식이 그의 머리에 꽂혀 있는 것인가? 너무 기만한 자세로만 나오는지 한 번 다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트로츠키의 해온 볼셰비키혁명 이후부터 러시아내전, 정치국 다툼들에 대해 모두 옳다거나 합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과 조건, 그가 추구하는 설정에서 정작 그가 제대로 짚은 것은 트로츠키란 인물이 연설이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두뇌와 문장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기 고집과 착각이 심하며, 인간관계가 너무 업무적이란 사실이다. 트로츠키는 첫 번째 아내를 자신이 러시아 인민주의자(Narodniki)이던 시절 만나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그런데 혁명 활동으로 인해 아내와 함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고, 자신은 혁명을 위해 떠나면서 아내와 헤어진 것을 두고 사적인 영역으로 지나치게 끌여 당겼다.

 

분명 트로츠키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랑 친분을 유지하지 않은 점은 분명하고, 특히 당파적으로 스탈린과 대결할 때 다른 반 스탈린 분파와 협공을 하지 않은 것 역시 트로츠키의 오류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가 개인적인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두고 서로 비교하여 다른 것이 러시아혁명을 두고 보면 확인이 가능한 사실이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의해 계속 은폐, 날조, 왜곡되어 트로츠키의 이름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금기로서 작용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서비스의 책에서 바로 트로츠키와 스탈린 서로 추구하는 성향과 방법은 달라도 같은 공포정치가로 봤다는 점이다.

 

바로 이 부분이 Non-Sense로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에 트로츠키의 유언장이 문제였다. 로버트 서비스의 책이 균형 잡히지 않은 것은 처음과 끝을 보여준 게 아니라 처음에서 중간으로 끊었기 때문이다. 그의 졸렬한 필력에 웃음이 나왔다.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에서 그 자체가 트로츠키의 이야기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트로츠키가 100% 옳은 것이 아니란 점에서 적어도 100% 아닌 그 나머지 %를 생각해야 했다. 단지 가치관에 따라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있으나, 유언장을 보면 <트로츠키>란 책이 전혀 공정성이 없는 사족으로 얼룩진 책이란 점은 내 생각에서 버릴 수가 없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유언장을 이렇게 작성했다.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 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거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마르크스주의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나탈랴)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ㅂ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1940년 2월 27일 멕시칸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로버트 서비스는 위에서 트로츠키 2번째 아내 나탸샤(나탈랴)의 모습을 관찰하던 부분은 아예 텍스트 위로 표현하지 않았다. 페이지는 부록과 색인을 포함하면 1,000페이지 가까운 책이다. 그 두꺼운 책속에서 유언이 차지하는 부분은 한 페이지에 반 페이지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는 이미 공정성이란 정확성은 잃은 책이다. 처음부터 나는 아이작 도이처의 책을 봤으나, 그것보다 오히려 영국 에식스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스티브 스미스의 <러시아혁명-1917년에서 네프까지>가 객관적으로 저술했다.

 

당시의 사료와 사진들을 인용했으며, 사견을 넣는 것은 마지막 맺음말 부분에 강조했다. 로버트 서비스는 중간 본문마다 사견을 넣었고, 정확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이래저래 섞어 넣었다. 트로츠키의 책 중에서 <배반당한 혁명>, <레닌 이후 제3인터내셔널>을 읽은 후에 로버트 서비스의 책을 읽어 보면 뭔가 일치하지 않은 점을 분명 인지한다. 로버트 서비스는 트로츠키에 대하여 그는 똑똑하나 한 마디로 외곬적인 혼자 잘난 사람 바보라는 점이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은 분명하고 하다못해 러시아내전에 보여준 잔인한 대응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극단성에서 어느 진영이나 마찬가지고, 그 외적인 부분으로 같이 역사적 흐름으로 살펴보는 게 아니라 스탈린과 동급대우라는 자체가 엉망인 점이다.

 

그의 저서에도 보듯이 분명 소비에트 연방의 가장 문제점은 관료주의와 폭력적인 공포정치도 있지만, 그 원동력이 스탈린이 고의로 흐름을 만든 쇼비니즘적인 요소다. 러시아민족이 소비에트연방을 지배한다는 논리가 바로 일국사회주의로 이어진 동기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는 관료주의로서 권력을 잡고, 그 권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개인적 이기심과 개인적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은 분명히 다르고, 그 방법의 동원과 수단 역시 다른 점이다. 독일나치와 소비에트 러시아이 비밀조약에서 트로츠키의 예상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가 멕시코에 가서 다른 여자와 바람난 것은 문제나 그것을 고질하게 잡고, 그 외의 업적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로버트 서비스 자체가 쇼비니스트에 가까웠다. 지금 세계에 코민테른은 해체하고, 이제는 제4 인터내셔널이 아주 희미하게 존재하는데, 제4 인터내셔널은 트로츠키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특이하게도 미국에서 활동적인 요소가 돋보인 점이다.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이며, 트로츠키의 서적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자가 맥스 이스트먼이란 미국인이다. 로버트 서비스의 서적에서 맥스 이스트먼을 비롯한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고 표현하고, 맥스 이스트먼을 아주 훌륭한 인물이라 평했다. 분명 뛰어난 인물이고 훌륭한 업적을 한 것은 사실이나, 미국인에 대한 앵글로 잭슨적인 요소는 조금 짜증이 났다.

 

빅토르 세르주나 앙드레 지드와 같은 역사학자에 대한 업적에서 제대로 다루주긴 보다 그의 사생활적인 요소에 강하게 집착한 것이다.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와 비교하여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쇼비니스트적인 요소가 잘 보인 이유는 바로 미국인들에 대한 그의 옹호성이다. 물론 민족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못했지만, 트로츠키가 가장 배제할 것이 민족적으로 뭉쳐 그 민족이 권력을 장악하여 다른 민족을 시기, 질투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 사실이다. 자신이 유대인이란 점을 이용하여 어떤 이익을 챙기지 않으려 한 점과 유대인이든 아니든 그가 해온 업적과 능력으로 소비에트 내의 정치활동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점이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어리석다는 말을 피할 수 없다. 단지 어리석지 않은 인간은 이 세상이 없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로버트 서비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학을 전공하여 옥스퍼드 대학교 역사학 교수도 했지만, 그는 미국의 후버연구소의 일원이었다. 후버대통령을 기념하여 만든 연구기관이니 그의 입장이 책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쓴다는 것은 그의 자유이나 적어도 조금은 다시 생각해야 했다. 결론은 트로츠키는 고집만 세어 러시아혁명을 성공해도 결국 스탈린과 같이 소비에트연방은 공포정치로 가득한 독재국가 된다는 식으로 이어졌다.

 

스티브 스미스 교수가 지적한 정통주의적인 관점이 로버트 서비스의 관점이었다. 만약 트로츠키의 마지막 유언에서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악과 억압, 폭력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로버트 서비스는 어떻게 받아 들이야 하는가? 평화라는 것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된 적은 결단코 없다. 러시아혁명을 두고 사람들이 오류를 저지르는 요소는 러시아혁명은 단지 러시아혁명이 아니라 1789년 프랑스대혁명부터 1871년 파리 꼬뮌까지 다양하게 봐야한다는 점이다. 그 중간에 1830년과 1848년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의 1799년 쿠데타와 1851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까지 말이다.

 

기본적으로 러시아혁명이 볼셰비키에 의해서만 아니라 계몽주의자도 다수 있었다.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가 볼셰비키혁명에서 인터내셔널가(歌)와 더불어 같이 불러진 사실이고, 볼셰비키혁명에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의 단어만 나온 게 아니라 프랑스대혁명 당시 활동했던 당통과 같은 혁명가들의 말도 나온 점이다. 러시아혁명과 프랑스혁명이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면 결코 러시아혁명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토크빌의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을 읽는다면 러시아혁명이 된 원인에서 공통성을 찾는 것이다.

 

전쟁에 의한 경제침체, 식량부족, 지나친 남성의 징집에 농촌과 도시 노동력 부족, 가족들의 분노 등등을 말이다. 그래도 적어도 프랑스혁명과 달리 러시아혁명은 세계열강들의 1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사건인 만큼 그 원인과 문제점, 과정을 살펴본다면 과연 로버트 서비스의 관점을 가지게 한 요소가 옳은가? 아무튼 예전에 읽은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을 다시 떠오른 점에서 나름 재미는 있었다. 그렇다면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는 결코 좋은 책이 아니다. 트로츠키의 공적인 영역과 실적인 영역을 잘 구분하지 못한 점이 있었지만, 세계정치변화에서 움직인 트로츠키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 세계정세에 대한 비판성은 없었다.

 

트로츠키의 적은 트로츠키란 말은 맞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고, 자신의 적은 곧 자신이다. 타인을 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이기심과 고집적인 부분에 의해서다. 그것은 어느 인간이라도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알고 있어도 고쳐지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습관이다. 관성적으로 인간은 반복하고, 그것이 어느 순간에 합의점에 도달하나 그 과정이란 정말 어렵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 서비스의 책이 엉망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트로츠키를 관찰하던 로버트 서비스 자신에 대한 관찰이다. 그는 자기 자신도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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