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말이 평화 - 청소년 우리말 특강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6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철수와영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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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 2021

쉽게 말하며 어깨동무하는 오늘



《쉬운 말이 평화》

 숲노래 밑틀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1.4.23.



  종이로 엮는 낱말책(사전)을 쓰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요새는 손전화로 슥 훑어볼 뿐이니 우리말꽃(국어사전)을 구태여 쓸 일이 없지 않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말이든 바깥말이든 슥 훑어서는 속뜻이나 속멋이나 속살림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낱말 하나를 차분히 혀에 얹은 다음에 마음에 씨앗처럼 묻어야 비로소 말뜻이며 말결이나 말씨를 시나브로 알아차리기 마련입니다.


  엊그제 이웃님한테 ‘호미’란 이름을 붙인 노래꽃(동시)을 써서 건네었습니다. 이웃님은 굳이 왜 ‘호미’라는 노래꽃을 건네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호미라는 연장으로 밭을 일구어요. 호미질은 삽질처럼 흙을 잔뜩 파거나 퍼내지 못하지만, 콕콕 쪼는 조그마한 호미질은 어느새 밭을 알뜰히 일구는 손길이 돼요. 삽을 써서는 밭을 못 일구거든요. 한꺼번에 잔뜩 팔 수 있다고 해서 밭을 이루지 못하고, 늘 알맞춤하게 차근차근 가만히 땅을 쪼는 호미질이 흙을 가꾸고 돌보는 길이 된답니다. 이러한 뜻에서 이웃님이 앞으로 꾀하는 모든 일을 호미질처럼 부드럽고 상냥하면서 찬찬한 몸짓으로 즐거이 이루시기를 바라는 뜻이에요.” 하고 얘기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숲노래 밑틀·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21)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이 책은 2008∼2020년 사이에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어린이·푸름이·어른·어버이하고 주고받은 우리말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미었습니다. 자주 물어본 대목을 간추리고, 새롭게 물어보는 대목을 갈무리했습니다.


  온나라 뭇이웃님은 ‘우리말’이라고 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여기시던데, ‘꼭 지켜야 할 우리말’이기보다는 ‘우리 생각을 즐겁게 펴고 기쁘게 나누는 징검돌로 삼는 우리말’이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우리말’로 받들기보다는 ‘저마다 수수하게 짓고 나누는 살림살이야말로 아름답고 훌륭하기 마련이요, 수수한 살림살이를 수수하게 말 한 마디로 담아내기에 우리는 아름답고 훌륭히 이야기꽃을 편다’고도 보태었어요.


  머리(지식·이론·전문가)로 외우는 말이 아닌, 틀(표준말·띄어쓰기·맞춤법)에 너무 매이지 않는 말로, 마음·삶·사랑·기쁨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나누는 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라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눈빛으로 말을 하면 참으로 좋아요.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릴 줄 안다면 구태여 어렵게 말하지 않아요. 어린이 삶자리를 살필 줄 안다면 부러 어렵게 꾸며서 말하지 않아요. 어린이하고 동무하거나 어깨동무하려는 눈빛을 잃는 나머지 어렵게 말해요. 어린이하고 한마음이 되려는 숨결하고 등지기에, 그만 어른 사이에서도 서로 금을 긋거나 울타리를 쌓는 말씨가 되고 말아요.


  온누리에 따사로이 흐르는 마음이 말 한 마디에 깃들기를 바라면서 《쉬운 말이 평화》를 써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평화요, 어렵게 말하면 전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로 동무하려는 마음이라면 쉽게 평화로이 말할 텐데, 서로 동무할 마음이 없다면 어려울 뿐 아니라 싸움투성이로 말하는 셈입니다.


  이웃님한테 ‘호미’란 이름으로 노래꽃을 써서 건네며 ‘호미’란 낱말하고 ‘홈’이란 낱말이 밑뿌리가 같은 줄 깨달았습니다. ‘홈’을 판다고 하지요. ‘호미’로 팝니다. ‘호’를 넣는 ‘혹’이나 ‘홀·홑·혼자’로 밑뿌리가 같아요. 쉽고 수수하게 쓰는 말씨를 혀에 얹기에 생각을 새롭게 열고, 생각을 새롭게 열기에 마음을 환하게 틔우고, 마음을 환하게 틔우기에, 온누리를 즐겁고 넉넉하게 가꾸는 손길로 하루를 짓는 살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조그맣구나 싶은 낱말 하나가 어깨동무(평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된달까요.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지 말자고 하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슬기롭고 아름다이 가꾸면서 즐거이 나눌 낱말을 새로 짓자고 하면 좋겠습니다. 얄궂은 말씨를 손질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이보다는 사랑스레 말하고 어깨동무하는 말결이 되도록 스스로 빛내면 좋겠습니다.


  같이 손을 잡아요. 어린이부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씨로 이야기해요. 어린이 눈높이로 말하려고 하면 어느새 꺼풀이나 허울을 벗어던지기 마련이에요. 아이 눈망울을 가만히 보면서 티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어른으로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어 온통 짙푸른 숲으로 이끄는 아름드리나무 같은 말일 때에 별님처럼 초롱초롱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쉬운 말이 평화”라고 한다면 “어려운 말이 전쟁”이란 소리가 됩니다. 쉬운 말로 어깨동무를 한다면, 어려운 말로 금긋기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쉬운 말이기에 서로 동무나 이웃이 된다면, 어려운 말이기에 위아래를 가르는 굴레인 계급이나 권력이 불거지곤 합니다. (7쪽)


쉬운 이야기는 쉬우니까 쉽게 풀어서 쓰고, 어려운 이야기는 어려우니까 더욱 쉽게 풀어내어 쓴다면, 대학교뿐 아니라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문학이나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까요? 다시 말해서, 쉬운 이야기도 어렵게 덮어씌우고, 어려운 이야기는 어려우니까 그냥 어려운 채 내버려두는 흐름이 오늘날이라면, 오늘날 우리 삶터가 어떤 모습인가를 고스란히 읽어내면 됩니다. (17∼18쪽)


‘쉬운 말’이란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서로 즐겁게 생각을 나누도록 돕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한테 아직 덜 익숙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생각을 더 넓고 깊게 나누는 길에 징검돌로 삼을 수 있는 낱말이 쉬운 말이에요. (28쪽)


올바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로 ‘정확한 의사표현·의사소통’을 해도 나쁘지 않아요. 다만 우리 삶이, 우리 만남이, 우리 하루가, 우리 어울림이, 우리 오늘이, 빈틈없이 짜맞춘 틀에만 머문다면 어떤 빛이 될까요? (82쪽)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113∼114쪽)


우리가 재미나게 신바람을 내면서 쓸 우리말을 알맞게 가다듬거나 갈고닦거나 세우지 못한 ‘어른’이야말로 우리말을 무너뜨리거나 흔들거나 허문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141쪽)


‘사투리를 쓴다’고 할 적에는 입으로 말하는 결을 그대로 살려서 글로 담는다는 뜻으로 여기면 됩니다. 사투리는 틀에 매이지 않는 말이요, 남 눈치를 안 보는 말입니다. 사투리는 스스로 지은 말이며, 저마다 다른 고장이나 마을에서 저마다 다른 살림하고 삶에 맞추어 스스로 길어 올린 말입니다. (164쪽)


더 헤아리면 ‘생활공간·주거공간’ 같은 일본 한자말은 ‘살림터’로 담아낼 만해요. 살림터라는 낱말로 일본 한자말을 손질한다기보다, 살림터라는 낱말로 우리가 지내는 자리를 넉넉히 나타낼 만하다는 이야기입니다. (202쪽)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슬기롭게 가다듬은 말에는 사랑을 짓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씨가 있습니다.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갈고닦은 말을 마음이라는 자리에 생각이라는 씨앗으로 즐겁게 심으면, 이 ‘말씨’는 우리가 꿈꾼 길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씨는 어느새 평등과 평화와 민주로 이어가고, 마침내 서로 참답고 아름다이 사랑하는 즐거운 숲길이랑 만나는구나 싶어요. (24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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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마실
최종규 지음, 사름벼리 그림, 숲노래 기획 / 스토리닷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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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

숲에서 숲으로 가는 길, 책숲마실



《책숲마실》

 숲노래 밑틀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20.9.16.



  《책숲마실》(숲노래 밑틀, 최종규 글·사진,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20)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이 책을 한 줄로 갈무리한다면 “숲에서 숲으로 가는 길, 책숲마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짓는 보금자리는 전라남도 고흥에 있습니다. 고흥에는 마을책집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순천인데, 고흥서 순천에 있는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가자면 읍내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야 하며, 읍내로 오가는 틈이라든지, 순천에서 내려 찾아가는 길을 헤아리면 ‘여덟 시간쯤 들여야 책마실’을 할 만합니다.


  가장 가까운 순천책집조차 하루 여덟 시간을 들이고 찻삯으로 25000원을 쓰는데요, 시골집에 앉아 셈틀을 켜고 누리책집에 또각또각 책을 시키면 품도 안 들고 길삯을 고스란히 책값으로 쓸 만합니다. 서울책집이나 부산책집을 다녀오려면 찻삯에 잠삯(숙박비)으로 20만 원쯤 들여야 합니다. 이때에도 매한가지예요. 그냥 시골집에 머물며 누리책집을 쓰면 책을 더 많이 사서 읽을 만합니다.


  그러나 굳이 먼길을 다녀옵니다. 아이들하고 짓는 보금자리인 숲집에서 이웃마을 샘터인 책숲으로 찾아갑니다. 저희 보금자리는 풀꽃나무로 이루는 숲이라면, 큰고장에 있는 책집은 ‘숲에서 자란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에 사람이 사랑으로 살림을 지으면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얹은 빛살’이 책밭으로 깃든 숲이라고 느껴요.


  맨발로 풀밭을 걷고, 맨손으로 나무를 쓰다듬습니다. 두 발로 골목을 걸어 책집으로 가고, 두 손으로 종이책을 쥐어 가만히 넘깁니다. 풀숲·꽃숲·나무숲을 누리는 하루를 사람숲·살림숲·생각숲이 흐르는 책집마실로 바꿉니다. 마을책집은 책을 더 많이 갖추기보다는 더 사랑스레 갖추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싶어요. 책을 더 많이 사서 읽기보다는, 한결 즐겁게 마주하면서 한껏 신나게 노래하듯 읽고 싶어요.


  마을에 있으니 마을책집입니다. 숲에서 자란 나무에 이야기를 얹은 책을 다루는 곳으로 찾아가니 책숲마실입니다. 수수하게 보자면 책집지기요, 마음으로 읽자면 책숲지기인 이웃입니다. 저부터 ‘숲말’을 ‘숲글’로 옮기는 ‘숲책’을 쓰려 합니다. 마을에 살포시 깃든 책집을 가꾸는 이웃님은 서울이나 시골이란 틀을 넘어서 누구하고나 상냥하고 어질게 마음꽃을 피우려는 손길일 테니 ‘책숲손님’을 맞이할 테고, 마을 어린이가 ‘책숲아이’로 자라도록 길동무를 하겠지요.


  곰곰이 보면, 책손은 품·길삯·하루를 들여서 책집에 갑니다. 책집지기는 품·가겟삯·삶을 들여서 책집을 가꿉니다. 우리는 서로 온사랑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책’을 사이에 놓고서 ‘숲’에서 일렁이는 바람을 느낍니다.


  모든 책은 숲입니다. 모든 책은 사랑입니다. 모든 책은 삶이요 살림이며 새로운 눈길입니다. 모든 책은 즐거운 노래요 기쁜 이웃이며 참한 동무입니다. 그리고 모든 책집도 숲이요 사랑이며 삶이자 살림이 너울거리는 노래가 감도는 별빛 한 줄기예요.


  옷집도 있어야겠으나 옷집만 있는 거리는 스산합니다. 밥집도 있어야겠지만 밥집만 있는 거리는 서늘합니다. 찻집도 있어야 할 텐데 찻집만 있는 골목은 썰렁합니다. 사람이 사람이라면, 아이에서 푸른날을 거쳐 철이 드는 어른으로 어깨동무할 사람이라면, 먹고 마시고 노는 너머에 마음밭에 씨앗 한 톨을 싱그러이 심는 숨결일 적에 초롱초롱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밭이 있습니다. 콩 석 톨을 심어서, 사람이랑 새랑 벌레가 나누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뒤꼍이 있습니다. 나무 석 그루를 심어서, 사람이랑 벌나비랑 새가 누리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마당이 있습니다. 너랑 나랑 우리가 모여서 책수다를 펴고 글잔치를 여는 놀이터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모든 책은 숲에서 왔기에, 이 숲을 담은 책을 어디에서나 즐겁게 읽으며 아름답게 피어나기에, 우리 스스로 활짝 웃고 노래하는 살림을 지으면서 너나없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나아가기를 꿈꾸이에, ‘책 + 숲 + 마실’이란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8쪽)


책을 만나는 일이란, 책에 깃든 사람들 숨결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손으로 이 숨결을 만나고, 두 눈으로 이 숨결을 읽고, 두 다리로 이 숨결하고 이어집니다. 책을 읽는 일이란, 책을 짓고 엮은 사람들 손길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책집에 들러 책을 장만할 적에는 책을 내놓고 다루는 사람들 사랑을 나누고요. (27쪽)


책을 읽는 마음이란 살아가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사람 누구나, 스스로 일구는 삶결대로 책을 마주합니다. 책을 고르는 사람 누구나, 스스로 누리는 삶에 따라 책을 받아들입니다. 이 책을 사서 읽든 저 책을 빌려서 읽든, 마음에서 우러나기에 책을 손에 쥡니다. 이 책에서 이 대목을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이든 저 책에서 저 대목에 밑줄 그으며 받아들이든, 살며 겪은 앎에 맞추어 받아들여요. (36쪽)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손으로 읽지 싶어요. 손으로 만지는 책이고, 손으로 넘기는 책입니다. 손으로 첫 쪽을 펼치고, 손으로 마지막 쪽을 덮습니다. 손으로 책시렁에 놓습니다. 손으로 책꽂이에서 뽑습니다. 손으로 종이를 쓰다듬습니다. 손으로 종이를 쥐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64쪽)


작은 책집을 돕는 길은 대단한 정책이나 돈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정책하고 적은 돈이면 작은 책집을 얼마든지 도와요. 아니, 마을사람으로서 사뿐히 책집에 마실하면 돼요. (139쪽)


사전을 쓰는 사람은 참말 한 해 내내 하루조차 안 쉽니다. 아니, 한 해 내내 노래하면서 일합니다. 노래하지 않는다면 쉴틈없는 나날을 못 견디겠지요.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 곁에서 춤을 춘답니다. 왜냐하면, 풀꽃나무도 한 해 내내 딱히 쉬는 일 없이 즐거이 가지를 뻗고 잎을 내며 한들거려요. 말을 다루는 길이라면 나무처럼 해바라기에 바람바라기에 비바라기로 고이 살아가면 된다고 여겨요. 말을 글로 옮겨서 이룬 책을 다루는 책집이라면 한 해 내내 신바람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나긋나긋 노래하듯이 하루를 열 만하겠지요. (155쪽)


책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 감도는 빛살을 느끼면서, 이 종이꾸러미가 태어난 숨결을 짚을 줄 안다면, 책읽기를 넘어 사회읽기·역사읽기·문화읽기를 슬기로이 하는 눈썰미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207쪽)


대학입시란 틀에서는 문학을 문학으로 못 읽습니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다른 시험이란 틀에서도 역사나 문화나 철학은 설 자리가 없어요. (230쪽)


헌책집은, 같은 책 하나가 돌고 돌면서 여러 사람 손길을 두고두고 타는 자리입니다. 어느 갈래를 깊이 파거나 널리 짚으면서 새롭게 배우고픈 이들이 찾아드는 책쉼터이자 책숲이라 할 헌책집이에요. (247쪽)


종이에 얹는 책이기 앞서 마음에 담는 책을 만나는 곳이지 싶습니다. 종이가 되어 준 숲을 먼저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우리 모두 언제나 푸른 숨결인 줄 느끼자고 속삭이는 자리이지 싶어요. (278쪽)


우리가 찾아가는 마을책집이란 나무 곁에 있는 쉼터이지 싶어요. 이 책집으로 찾아오면서 숲을 느끼고, 이 숲을 느끼는 마음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가꾸는 즐거운 눈망울로 자라나지요. 그냥 모여서 이루는 마을이 아닌, 숲바람을 마시고 함께 노래하는 발걸음으로 보금자리가 하나둘 피어나서 태어나는 마을이라면 기쁘겠어요. 저 하늘에 별이 빛나고, 이 땅에 마을책집이 빛납니다. (307쪽)


책에는 길이 없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어 얻은 이야기로 힘을 얻습니다. 책에 길이 있기에 책을 읽으며 길을 찾지 않아요. 책을 읽어 얻은 이야기로 힘을 얻기에, 이 힘을 씩씩하게 다스리면서 스스로 새길을 닦습니다. (31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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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 모든 이야기는 수수께끼
최종규 지음, 사름벼리 그림, 숲노래 기획 / 스토리닷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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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아플수록 하늘 보며 수수께끼 놀이

― 사전지음이가 여민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동시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20.3.10.



  동시책이자, 수수께끼책이자, 우리말 이야기책이자, 사전이자, 시골이며 서울에서도 언제나 숲을 노래하기를 바라는 숲책이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마음을 읽으며 삶을 되새기기를 꿈꾸는 마음책인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스토리닷, 2020)를 여미었습니다. 혼자서 여미지 않았습니다. 앞장서서 글을 쓴 사람은 ‘최종규’란 이름이지만, 곁님 ‘라온눈’하고 열세 살 어린이 ‘사름벼리’하고 열 살 어린이 ‘산들보라’가 함께 이야기를 펴면서 가다듬었고, 사름벼리 어린이가 그림을 맡았습니다. 네 사람은 전남 고흥이란 시골자락에서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란 서재도서관을 꾸립니다. 그래서 ‘숲노래’ 기획이란 이름이 붙어요.


  그런데 네 사람 힘으로만 여밀 수 없는 책이자 사전이자 동시꾸러미입니다. 왜냐하면 네 사람은 마음으로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 풀벌레랑 바람이랑 해랑 구름이랑 냇물이랑 숲이랑 바다랑 돌이랑 모래랑 세간이랑 붓이랑 종이랑 …… 우리를 둘러싼 숱한 숨결하고 말을 섞었기에, 이 모든 둘레 숨결도 이 책을 같이 여미었다고 여겨야 옳아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 말썽울 풀려면 먼저 ‘뉘우칠’ 노릇이다

→ 이를 풀자면 ‘돌아보기’부터 할 일이다


  수수께끼를 열여섯 줄 동시로 여미자는, 더구나 한자말이나 영어가 한 톨조차 깃들지 않도록 가다듬는 옹근 우리말 이야기로 엮자는, 이러면서 수수께끼 이야기가 저절로 ‘낱말풀이’가 될 뿐 아니라, 열여섯 줄 동시가 고스란히 ‘보기글’이 되도록 하는 사전이 되게끔 하자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품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알쏭달쏭한 ‘인문지식인 말버릇’을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 싶어요.


  이를테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같은 글월은 겉보기로는 한글이되, 속은 하나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그저 토씨일 뿐이지요. 적잖은 먹물글님은 1980년대 첫무렵까지만 해도 “問題를 解決하기 爲해서는 ‘反省’이 出發이다”처럼 글을 썼어요. 일제강점기나 개화기라 할 1900년대 첫무렵부터 1980년대 첫무렵까지, 여든 해를 웃도는 나날을 시커먼 먹물로 글을 썼다가, 겉보기로는 한글로 쓰는 오늘날인데, 도무지 달라질 낌새가 안 보여서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알쏭달쏭한 일본 말씨나 번역 말씨를 ‘어린이 말씨’나 ‘시골 할매 말씨’로 추스르려고 하면서 동시로 이야기하자는 생각이 피어났습니다.



수수께끼 004


우리 몸에서 아픈 데를 쳐

세게 들이치기도 하고

부드러이 적시기도 하고

확 퍼붓기도 하지


멧골에서 고이 잠들었다가

해님 보고 퐁퐁 깨어나고

숲을 한껏 돌아보는데

여러 마을도 두루 거치지


바다가 될 수 있어

아지랑이나 이슬이 되고

구름이나 안개가 되는데

우리 눈에도 있어


모두 다르지만 모두 나야

모두 나를 마시지만

마음에 품은 씨앗에 따라서

다들 다른 네가 되더라




  예부터 어른·어버이는 아이한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내었지요. 왜 수수께끼를 냈느냐 하면, 아이는 아직 모르는 말이 많아요. 돌이 왜 ‘돌’인지, 돌이란 어떤 숨결인지를 잘 모르니, 마음으로 하나씩 헤아리고 짚으면서 스스로 알아내도록 수수께끼를 냅니다.


  낫이 왜 ‘낫’이고, 키는 왜 ‘키’이며, 절구는 왜 ‘절구’인지, 또 노래는 왜 ‘노래’이고, 마당은 왜 ‘마당’인지를 아이가 스스로 알아차리라고, 어느새 깨달을 줄 알면 아이가 철이 들어 어른이 된다고 넌지시 가르치는 길에 수수께끼를 썼어요.



수수께끼 055


바람을 마시며 가볍고

해를 먹으며 튼튼하고

물을 머금으며 부드럽고

빛을 맞이하며 아름답지


겉과 속을 잇는 길

안과 밖을 맺는 터

넓게 퍼져 춤추고

곱게 엮어 노래해


서로 맞닿으며 따뜻하네

한쪽이라도 다치면 힘들어

같이 뒹굴면서 빙그르르

구석구석 아끼면서 기운나지


쓰다듬으니 좋아

주물주물 풀면서

토닥토닥 반가워

넋이 입은 빛살옷



  수수께끼는 놀이로 아이한테 건네는 말이면서, 고스란히 말놀이입니다. 또 ‘말 가르침’이자 ‘말 배움’이에요. 이러면서 저절로 글꽃(문학)이 됩니다. 일본에는 하이쿠라고 하는 짧은 글자락이 있는데, 한국에는 ‘수수께끼’가 한 줄짜리 노래(시) 구실을 했어요. “길고 긴데 기면서 땅밑에 있으면?”처럼 한 줄짜리 수수께끼요 문학입니다.


  곰곰이 보면 수수께끼 놀이란, 수수께끼 동시를 우리가 함께 쓰면서 아이하고 나누는 말살림이란, 생각짓기(철학)라고 할 만합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 나가는 말짓기 놀이입니다. 말을 어렵게 짓지 않았다는, 말을 늘 사랑으로 즐겁게 지었다는, 말 한 마디에 생각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씨앗을 담았다는, 여러 이야기를 수수께끼로 엮어서 들려줍니다.








수수께끼 141


멀리서만 찾더라

늘 여기에 있는데

딴곳에서만 보더라

바로 이곳에 사는데


상냥하게 웃어 주겠니

그만 미워하겠니

따스하게 안아 주겠니

이제 싫은 티 그치겠니


아직 모르나 보던데 바람이야

여태 잊었나 보던데 눈물이야

군더더기 안 붙여도 돼

껍데기 안 씌워도 돼


있는 그대로 사랑이야

고이 바라보아 주렴

사는 그대로 기쁨이야

새로 걷는 꿈을 지으렴



  아버지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보금자리를 찾아 숲이 그윽한 작은 시골자락 집을 마련합니다. 두 아이는 하루를 스스로 지으면서 마음껏 뛰놀고 꿈꾸면서 풀꽃나무하고 동무가 되며,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자랍니다. 곁에서 바람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구름은 폭신한 잠자리가 되며, 골짝물은 시원한 숨결로 온몸을 적십니다.


  이름을 알고 싶은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묻습니다. 이름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이름에 깃든 뜻을 알고 싶어 “그건 뭐야?” 하고 “이건 뭐야?” 하며 끝없이 묻고 거듭 묻고 새로 묻고 또 묻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수수께끼를 내기로 합니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열여섯고개로 간추린 수수께끼입니다.


  열여섯고개를 넉고개로 가르고, 넉고개는 봄여름가을겨울로 꾸며서, 겉보기로는 넉 줄을 넉 자락 이은 “열여섯 줄 동시”가 됩니다. 겉은 동시이면서 속으로는 수수께끼요 이야기밭입니다. 이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 동시’는 어린이한테 ‘이야기가 늘 새롭게 흐르는 상냥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씨앗을 생각으로 심는 말’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말배움길입니다.


  가장 수수하고 흔한 말로 수수께끼를 짓습니다. 때로는 아이한테 아직 낯설 테지만, 앞으로 마주할 여러 살림살이나 숲이나 숨결하고 얽힌 낱말을 슬그머니 섞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시나브로 알아차릴 만한 ‘살림을 그리는 오래되면서 새로운 말’을 곁들이는 셈입니다.


  그나저나 앞자락에서 세 가지 수수께끼 동시를 옮겼는데, 풀어내셨을까요? 세 가지 수수께끼 풀이를 뒷자락에 옮기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맺겠습니다.





수수께끼 004 → 비(빗물)

: 비는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면서 새로운 기운을 퍼뜨려요. 풀 꽃 나무는 비를 먹으면서 무럭무럭 커요. 어디에든 고르게 뿌립니다. 지저분한 것을 말끔히 씻으니, 비가 지나간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지요. 먼 옛날부터 어린이는 비오는 날을 새삼스레 반기며 놀았고, 어른은 고마운 비님이라며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바라는 몸짓)을 드리곤 했어요.


수수께끼 055 → 살갗(살)

: 우리 ‘살갗’뿐 아니라 짐승도 살갗은 어느 곳이든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마치 끝없는 들판 같습니다. 살갗으로 해·바람·비를 누리면 튼튼해요. 까무잡잡한 살빛은 기름진 흙빛처럼 싱그럽게 살아숨쉬지요. 이 살갗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사랑이란 기운이 퍼집니다. 모든 숨결이 입는 옷이요, 풀이랑 나무도 반짝반짝 입어요.


수수께끼 141 → 나

: 우리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자꾸 바깥에서 찾으려 하고, 거울로 들여다보려 하곤 해요. 그렇지만 ‘나’는 늘 여기에 있답니다. 남하고 견주며 고운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 고우니, 바로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나’예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20년까지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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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 사름벼리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에 부치는 말


이제 며칠 뒤이면 동시집이 나오고

책집에도 들어갈 테지요.

책이 나오면 새롭게 알림글을 쓰기로 하고

보도자료로 이런 글을 삼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
















+ + 


아버지랑 딸이랑 함께 빚은 마음노래


아버지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보금자리를 찾아 숲이 그윽한 작은 시골자락 집을 마련합니다. 두 아이는 하루를 스스로 지으면서 마음껏 뛰놀고 꿈꾸면서 풀꽃나무하고 동무가 되며,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자랍니다. 곁에서 바람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구름은 폭신한 잠자리가 되며, 골짝물은 시원한 숨결로 온몸을 적십니다.


이름을 알고 싶은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묻습니다. 이름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이름에 깃든 뜻을 알고 싶어 “그건 뭐야?” 하고 “이건 뭐야?” 하며 끝없이 묻고 거듭 묻고 새로 묻고 또 묻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수수께끼를 내기로 합니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열여섯고개로 간추린 수수께끼입니다.


열여섯고개를 넉고개로 가르고, 넉고개는 봄여름가을겨울로 꾸며서, 겉보기로는 넉 줄을 넉 자락 이은 “열여섯 줄 동시”가 됩니다. 그러나 겉보기로만 동시일 뿐, 속으로는 수수께끼요 이야기밭입니다. 이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 동시’에는 어떠한 번역 말씨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끼워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 아이는 ‘이야기가 늘 새롭게 흐르는 상냥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씨앗을 생각으로 심는 말’을 들으면서 배우고 싶어하거든요.


가장 수수하고 흔한 말로 수수께끼를 짓습니다. 때로는 아이한테 아직 낯설 테지만, 앞으로 마주할 여러 살림살이나 숲이나 숨결하고 얽힌 낱말을 슬그머니 섞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시나브로 알아차릴 만한 ‘살림을 그리는 오래되면서 새로운 말’을 곁들이는 셈입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쓰기로는 아버지 한 사람입니다만, 언제나 아이들이 궁금해 했기 때문에 ‘우리말로 수수께끼를 짓는 동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살살 다독이고 달래며 다스리는 사람, 곁님이 있으니 이러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가 태어납니다.


여기에 열세 살 어린이가 그림을 맞추어서 그립니다. 스스로 궁금해서 아버지한테 물어본 낱말 하나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풀며 마음으로 떠올린 온갖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그림으로 옮기지요. 때로는 물감을 풀어서 물감그림으로, 때로는 연필을 쥐어 연필그림으로 빚습니다.


열세 살 어린이가 물감으로 빚는 그림에는 물빛으로 마음을 적시는 사랑어린 숨결이 흐릅니다. 열세 살 어린이가 연필로 짓는 무지개에는 ‘그저 까만 빛깔’일 뿐이 아닌 ‘무지개가 되는 까만 고요’가 함께 흐릅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다른 이름으로 나타내자면 ‘마음노래’입니다.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숲에서 길어올려 시골마을을 적시고 골짜기를 누비다가 차츰 커다란 고을이며 고장으로 뻗다가 서울에도 닿을, 숲이랑 시골이랑 서울을 나란히 이어서 어깨동무를 하고픈 ‘마음노래’입니다.


맑은 눈빛으로 나눌 이야기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노래입니다. 밝은 손짓으로 함께할 이야기밭이 되기를 꿈꾸는 마음노래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서울 한복판에도 나비가 찾아가서 팔랑팔랑 눈부신 춤사위를 베풀어요. 오늘 이곳에서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서 신나게 부르면, 모든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멍울도 생채기도 짜증도 부아도 골질도 닦달도 살그마니 녹여서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요. 예부터 “어머니 손이 약손”이라고 한 뜻은, 가장 아름다운 약이란 언제나 포근하게 바라보면서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랑이라는 수수께끼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바로 우리가, 어른도 어린이도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부를 노래란 마음노래이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가 된다면 찬찬히 기운을 내면서 활짝 웃음지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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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5
최종규 지음, 호연 그림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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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지은책

-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에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최종규 글

 호연 그림

 철수와영희

 2011.10.9.



두 아이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저는 이 푸름말, 삶말, 사랑말을 보듬는 매무새를 이 책에 하나둘 담으려 합니다.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오셔요. 너무 벅차다면 한참 쉬어도 되고, 다른 데를 들렀다가 다시 찾아와도 돼요. (8쪽)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으레 ‘마음이 바로 말’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갑니다. 마음은 입을 거쳐 말로 드러나고, 얼굴을 거쳐 눈짓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은 손을 거쳐 살림으로 드러나고, 발을 거쳐 나들이로 드러납니다.


  마음을 감출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어 거짓을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아닌 척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면서 거짓을 말하거나 아닌 척하는 말을 한다면, 스스로 힘들고 듣는 쪽도 고단하겠지 싶어요.


  마음을 담아내는 말인 터라 스스럼없이 엮어서 들려줄 노릇이고, 스스럼없이 들으면서 받아들이고, 삭이고 달래어, 다시 새로운 말씨로 주고받을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 (19쪽)


말이란 말재주가 아니라,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곱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글이란 글솜씨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는 어제오늘을 예쁘게 나누는 이야기예요. 입으로 읊어 말이고, 손으로 적어 글입니다. 말을 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합니다. (27쪽)



  2011년 한글날에 맞추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라는 푸른책을 선보였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인천을 떠나면서 글머리를 잡았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마지막 삶을 아로새긴 충주 무너미마을에 머물는지, 우리 책숲이며 살림집을 건사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던 춘천으로 갈는지, 아니면 아직 디딘 적이 없으나 앞으로 아이들이 숲을 온마음으로 품을 만한 두멧자락으로 갈는지, 이렇게 헤매던 때에 첫머리를 여미었어요.


  큰아이를 2008년에 낳았으니 아직 큰아이는 아버지가 여민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이때에 생각했지요. 어버이로서 이제껏 얼마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살아왔는지 모르되, 잘잘못을 어버이 스스로 털거나 씻으면서, 오늘부터 하나씩 처음부터 새로지을 삶길을 말 한 마디에 얹는 이야기를 짓자고요.


  새롭게 쓰는 책 첫 줄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을 담는 씨앗인 말을 다루는 책에 ‘동무를 아끼는 눈물’이라는 숨결을 담고 싶었어요. 두 줄째를 쓰면서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징검돌인 말을 짚는 책에 ‘이웃을 사랑하는 웃음’이라는 빛을 싣고 싶었어요.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 쥐어짜서 글을 써서는, 내가 읽어 보아도 따분하며 싱거운 글만 쏟아지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꾸밈없이 한 줄 두 줄 적바림하노라면, 내가 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거나 뚝뚝 눈물을 흘려요. (48쪽)



  언제나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요, 좋은 말이 없고 나쁜 말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나타내는 말일 뿐입니다. 거칠다 싶은 말, 이른바 막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마구잡이로 날뛰는 아픈 마음’이 묻어납니다. 곱구나 싶은 말, 이른바 사랑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릴 줄 알면서 어엿하고 참한 마음’이 감돕니다.


  이래저래 보면 ‘얄궂은 한자말’이라든지 ‘엉성한 일본 말씨’라든지 ‘어설픈 영어나 번역 말씨’를 되도록 가다듬을 노릇이라는 이야기를 펴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해야 바른 말씨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을 저 말로 고치자는 뜻이 아니지요. 어느 말씨를 스스로 골라서 쓰든, 그 말씨에 우리 마음을 사랑이라는 숨결을 담으려고 해보자는 뜻입니다.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착하게 말을 합니다. 참답게 생각하며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참다이 글을 써요. 곱게 생각하며 고이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고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79쪽)


‘한문이라는 글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하도록 가로막혔던’ 여느 사람들이 펼친 문학은 책으로 적바림되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즐기는 노래 또한 책에 적바림되지 않았어요. (126쪽)



  이제는 나라에서도 비닐자루는 쓰지 말자고 하지요. 이제는 웬만한 찻집에서는 유리나 질그릇 잔에 담아 주려고 하지요. 이제는 플라스틱 그릇을 안 쓰는 사람이 부쩍 늘지요. 그런데 있지요,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처음 내놓은 2011년뿐 아니라 큰아이를 낳은 2008년에, 또 제가 한창 이오덕 어른 글·책을 갈무리하던 2004년, 이에 앞서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어린이 사전을 엮던 2002년, 이러한 때에 숲살림을 말하거나 숲살림을 고스란히 살아가자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혀를 차는 분이 참 많았어요. 뭘 그리 번거롭게 구느냐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 다 쓰는데 너희는 왜 일부러 힘들게 사느냐고도 해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기저귀를 손수 빨아서 대주었습니다. 빨래틀조차 안 쓰고 이불을 빨았어요. 아니, 빨래틀을 집에 안 놓았지요. 유리병을 챙겨서 들고 다니고, 천바구니를 여럿 챙겨서 담았으며, 커다란 등짐에 이 살림 저 살림 빼곡하게 짊어지며 다녔습니다. 아이들 천기저귀하고 옷가지하고 포대기에다가 물병에다가 이모저모 건사하노라면 80리터 등짐으로 모자라 으레 다른 등짐을 한둘 더 들고서 움직입니다. 아이를 안고서 살짝 저잣마실을 하는 길도 마치 ‘한 달쯤 여행하는 사람’ 같은 차림이 됩니다.



‘우아(優雅)하다’가 우리말인 줄 잘못 알던 적이 있습니다. ‘우아미 가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아’란 ‘아름다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이요, ‘미’란 ‘아름다울 美’라는 한자입니다. ‘우아미’란 ‘아름답디아름다움’이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은 겹말이에요. (145쪽)


흔히들, ‘立場’이라는 한자말만 일본 한자말로 여기며,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入場’이라는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에요. 우리말은 ‘들어옴’입니다. (150쪽)



  2008년에 태어난 큰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읽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쓴 책을 2011년에 내놓았으니, 2021년쯤이면 드디어 큰아이가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을 철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읽혀도 좋으나 먼 앞날을 그리면서 미리 마련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말이란 씨앗이니까요. 과일나무가 되는 씨앗을 보면 참으로 작거든요. 작디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떡잎을 내놓고 줄기를 올리며 어느덧 가지로 뻗고 새잎에 꽃망울을 맺기까지 적어도 열 해는 더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자리에서 살아가며 아이들한테 살림꽃이라는 말꽃을 물려주려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사람은 적어도 열 해를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살아야 할 노릇이란 뜻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지 않아요. 열 해라는 나날을 아이가 자라는 결을 지켜보면서 어버이도 나란히 자랄 노릇입니다.


  그냥그냥 읽고 지나간다면, 제가 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이든 이오덕 어른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이든 ‘교양 인문책’으로 삼아서 ‘독후감 한 자락 쓰고 끝’이 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글을 짚는 이러한 책은 ‘한두 벌 읽고 느낌글을 써서 끝날 수 없’어요.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내처 읽을 책이 아니거든요.


  마음을 드러내는 씨앗이 될, 마음에 새롭게 심을 씨앗으로 삼을, 이러한 말글을 짚는 책은 한꺼번에 길게 읽을 수 없어요. 하루에 몇 쪽씩, 또는 하루에 한 쪽씩 읽으면서 되새겨야 비로소 마음으로 새롭게 스밉니다. 그러니까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는 ‘어른이나 푸름이 누구라도 열 해라는 나날을 두고서 조금씩 삭혀서 하나씩 맞아들이고, 스스로 더욱 키우기를 바라는 뜻’을 얹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말은 꽃이 되기도 하지만 화살이 되기도 합니다 …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말 한마디로 동무를 죽입니다.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아끼면서, 말 한마디로 서로를 깎아내립니다. 생각하면서 쓸 말입니다. 사랑하면서 나눌 말이에요. (192쪽)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가 쓰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웃한테 쓰는 마음이 제 입을 거쳐서 말로 태어납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나누는 생각이 제 손을 거쳐서 글로 자라납니다.


  훌륭한 이웃님이라면 어느 책이든 한두 벌 읽고는 그 책에 흐르는 모든 알맹이를 하루아침에 짠 하고 펼쳐 보이겠지요.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이 한자말을 저 쉽거나 부드러운 말로 고치는 일보다는, 다섯 살 어린이 눈높이에서 사랑스레 생각을 슬기로이 밝히는 낱말은 무엇일까 하고 살피면서 말씨를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어른 인문책 말씨’ 같은 한자말이나 영어를 외우기보다는, 우리가 외우지 않아도 살림새하고 숲터에서 태어난 수수한 말씨에서 한결 너르면서 깊은 생각을 길어올리면 좋겠어요.


  생각해 봐요. ‘바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하늘’은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짓다’나 ‘그리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우리는 텃말(토박이말·순우리말)만 가려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피는 말을 헤아려서 쓸 노릇입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를 아무렇게나 쓰기에 잘못이 아니에요. 거의 모든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로는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슬기롭게 지펴서 사랑으로 풀어낼 빛이 될 씨앗이라는 말하고는 동떨어지기 쉬울 뿐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영어 배워 돈 벌기’에 빠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널리 쓰던 공무원이 공직을 주름잡았고, 새로 권력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은 미국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일본말 쓰기’에서 ‘영어 쓰기’로 낼름 갈아탔어요. 이러는 동안 일본 말투 “무슨무슨 下에”를 “무슨무슨 아래”로 어설피 적비람했습니다. “서로의 동의 하에”나 “일본의 지배 아래서”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는 모두 똑같이 일본 말투예요 … “서로 이야기해서 헤어지기로 했다”라든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로 다듬습니다. (220쪽)



  말이란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한국말은 한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일본말은 일본이라는 삶자리에서 태어나요. 모든 나라는 날씨이며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땅이며 하늘이며 다 다릅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다 다른 말을 써요.


  날씨도 땅도 철도 살림도 같다면 아마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말을 쓰겠지요. 자, 보세요. 오늘날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구나 고흥이나 양양이나 춘천이나 진주나 보성이나 과천이나 의왕이나 수원이나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자동차를 타며,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가게에서,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누리지 않나요? 이러면서 똑같은 신문에 방송에 인터넷을 들여다보지 않나요?


  이러한 오늘날에는 사투리가 없어요. 고장말이 없고, 마을말이나 집말이 없습니다. 어디에 가나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에 얽매인 따분하고 딱딱하며 메마른 ‘국립국어원 서울 표준말’만 도사립니다.


  우리는 고작 쉰 해 앞서까지만 해도 고장뿐 아니라 고을에서도 말씨가 갈렸고, 마을에서까지 말씨가 다 갈렸어요. 왜냐하면 고개 하나만 넘어도 날씨가 다르고, 물맛이 다르고, 나무나 풀이 다르고, 깃드는 새나 짐승이 다르거든요. 우리가 쓰는 말은 바로 ‘삶터에 따라 다르게 태어나서 자라는 마음결’이니, 다 다른 마을에서는 다 다른 마을말(사투리)이었다면, 이제 다 똑같은 도시 얼거리가 되면서 ‘다 똑같은 서울 표준말’로 바뀌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렸니 맞느니 하는 데에서 옥신각신하고 맙니다.



한자문화권이란 없습니다. 한글문화권 또한 없습니다. 영어문화권도 없습니다. 한자란, 글입니다. 한글이란, 글입니다. 글이 문화가 되거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글이란, 문화나 삶을 담는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240쪽)


외국말은 외국말을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살피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살림말입니다. 삶말인 우리말입니다. 살림말이요 삶말인 우리말은, 언제나 이곳에서 내 이웃하고 동무하고 살붙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말입니다. (245쪽)



  말을 바르게 쓰는 길이란 마음을 바르게 쓰는 길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바로쓰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바르게 가누면서, 마음을 사랑으로 일으켜 봐요. 생각을 기쁘게 추스르면서, 생각이 노래가 되어 흐르도록 살림을 지어 봐요.


  왜 쪽빛 바다라는 말을 썼을까 하고 생각해 봐요. 왜 앉은뱅이꽃이란 말을 썼나 하고 헤아려 봐요. 왜 꿈을 그린다 하고 말하나 하고 돌아봐요. 왜 사람·사랑·숲·슬기·새롭다 같은 낱말이 ㅅ으로 여는가 하고 곱씹어 봐요.


  우리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 만해요. 우리는 우리 두 손으로 하루를 가꿀 만해요. 우리가 쓰는 더없이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 한 마디가 바로 우리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을 싱그러이 북돋우는 바탕이 되어요.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가슴에 고이 품도록 징검다리가 되고 싶기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2011년에 선보였고, 어느덧 열 해가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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