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으로 지주들은 지가증권을 받았지만, 전쟁 때문에 마치 요즘의‘카드 꺾기’ 처럼 지가증권도‘꺾기’ 로 팔아야 했다. 액면가가 있는 지가증권은 인플레이션으로 그 가치가 점점 떨어졌다. 땅을 정부에 판 대가로 받은 지가증권은 다시 생산 산업 부문에 투자 됐어야 했다. 이를 통해서 국내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목숨을 유지하기도 힘든 피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액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지가증권을 바꿨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지가증권의 가치가 반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다시‘꺾기’ 를 통해 액면가 이하의 가격으로 지가증권을 넘기게 되니, 이를 통한 산업자본화는 현실화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gUEjvYvbM1GMy4Jg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은 제3세계 정책에서 민주주의와 반공 사이에서 고민하였다. 민주주의는 미국식 자유주의의 상징이었고, 반공은 냉전 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이었다. 문제는 제3세계의 경우 반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견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개발독재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는 1960년대에 가서 해결된다. 즉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독재 체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 등장하면서, 반공 독재정권에 대해 미국이 지지를 보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때로 미국식 민주주의적 가치 앞에서 반공 독재정권과 대립하였다.

대한정책에 -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x15emTJmRvetNcEF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중국을 중요한 동맹으로 간주하고 일본에게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을 무장해제하고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민주화를 진행시키는 것이 일본에 대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당시 일본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군사력과 선진산업을 보유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Rpb4UrLJ6Hg2RPGd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스벨트 대통령이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제안한 신탁통치는 미국, 소련, 중국 3개국에 의한 것으로 20세기 초 미국이 필리핀에서 했던 형태의 신탁통치를 의미했다.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필리핀은 자치 준비기간으로 50년이 필요했지만 한국은 ‘불과’ 20년에서 30년이면 되리라고 말했다. 스탈린은 루스벨트의 제안에 대해 신탁통치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했다. -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D9i7mTUiBxQAKvJy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료5 재한국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국무장관에게(1945. 9. 15)

남한은 점화되기만 하면 즉각 폭발할 화약통이라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정세 중 유일하게 고무적인 요소는 연로하고 교육받은 한국인들 가운데 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이 서울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일제에 협력하였지만, 그러한 오명은 결국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 <한국전쟁>, 박태균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yTP6V1x8W19S16r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