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원숭이 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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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라임시리즈 네 번째로 보는 작품이다. ‘코핀 댄서’의 극찬에 자극을 받아 읽기 시작한 시리즈지만 이전 작품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진다. 아마 중국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들에겐 잘 표현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입장에선 과장되게 보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번엔 중국인의 불법 이민선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올 것을 알고 FBI와 INS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악당 고스트는 밀입국선을 폭파하고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쫓아가 살해하려고 한다. 밀입국자들은 오랜 도피생활에서 깨달은 몇 가지 지식 등으로 재수 좋게 탈출에 성공하여 뉴욕으로 들어가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고스트와 라임팀의 대결이 시작한다.


이 책도 이전의 시리즈 별 차이 없이 속도감을 불러오면서 쉽게 몰입하게 한다. 가끔 미국인의 시선에서 본 중국의 모습이나 신비화된 이론들이 고개를 가로젓게 하지만 재미있고 즐겁다. 그의 특기인 반전을 기대하면서 범인의 모습과 그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을 찾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 반전이 약간 힘이 없다. 빨리 들어난 고스트의 비밀도 그렇지만 그 과정과 뒤에 펼쳐지는 숨겨진 이야기가 전작보다 평범하다. 미국인들의 시선에선 대단히 충격적일지 모르지만 이때까지 중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만행과 학살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작은 부분이다.


악당이 보여주는 능력이 약간은 떨어지고 중국경찰 리의 능력이 많이 부각되면서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디버 스타일에 젖어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리즈를 읽다보면 느끼는 나쁜 점 중의 하나이지만 매력이기도 한 부분이다.


돌 원숭이는 손오공을 말하는 듯하다. 산에 깔린 돌 원숭이이자 원숭이들의 왕인 손오공 외에 누가 있겠는가? 중국에서 손오공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사건의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는 문화 대혁명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느낀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이 황당한 시기를 알고 있지만 소설 속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내가 모르는 부분도 아직 많은 듯하다. 그리고 작가가 너무 중국 위주의 시선으로 글을 적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반감이 생긴다. 소수민족에 대한 부분이나 한족에 대한 부분에선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편집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다. 비교적 성의껏 편집을 하는 출판사로 알고 있는데 내가 가진 책에 중국 지명에 대해 한자 표기가 있고 없고 한다. 그리고 주석에 너무 정성이 없다. 차라리 없다면 모를까 단편적인 설명은 없느니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괜히 시간이 남아 이리저리 원문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두다보니 트집을 잡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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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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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렉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 중 한 명이다. 영화로 나온 두 편에서 그가 보여준 섬뜩한 느낌과 무시무시한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두 편 모두 원작 소설에서 이미 존재감을 드러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영화다.


이번에 작가는 무시무시하면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살인자 렉터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보낸 어린 시절과 어떻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니발 렉터로 진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겪은 어린 시절의 불운과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사건이 어린 그의 세계를 어떻게 산산조각 내었는지 보여주며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말한다.


사실 한니발 렉터에 대한 기억이 지금은 많이 약해졌다. ‘양들의 침묵’이나 ‘한니발’에서 나온 그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지금은 세부적인 사실들을 많이 잊고 있다. 특히 ‘한니발’의 경우는 영화만 보았지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몇 가지 강한 이미지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불행과 레이디 무라사키를 만나 성장하는 시점과 마지막 그의 냉혹하면서도 잔인한 복수로 말이다. 어린 시절 소위 말하는 영재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여동생을 사랑하면서 자라지만 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마지막 희망이자 사랑하는 여동생을 악당들에게 먹히는 순간 이전의 그는 사라지고 만다.


삼촌에 의해 고아원에서 벗어나고 레이디 무라사키를 만나 성장하는 부분은 그의 숨겨진 마성(魔性)이 조금씩 각성하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봉인하고 현재 즐거운 생활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잊고 싶은 기억에 의한 것이다. 최초의 살인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이제 조금씩 감성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숨 가쁘게 정신없이 그에 동조하면서 동시에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끼면서 전범이자 한니발을 괴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된 악당들과의 대결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냉정하면서 잔혹한 행동은 몇 번의 행운도 있지만 그의 침착하고 무감각한 듯한 감정의 도움이 더욱 크다. 이 복수극에 동의를 하면서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악당들 전력 때문일 것이다.


멋지고 매력적인 일본 여성 레이디 무라사키가 한니발에게 안정과 평온함을 전해주는 여성이지만 또한 그녀가 우리가 아는 한니발로 진화하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다. 최초의 살인이나 마지막 대결에서 그가 보여준 감정들의 파편은 상당한 차이가 있고 비로소 괴물로 변화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러운 점 중 하나는 전후 전범이나 비시정권의 부역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철저한 처단과 집요한 추적에 있다. 현대사에서 그와 같은 행위가 주는 의미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이런 행위는 미군정의 편의 등에 의해 가로 막혔고 친일파 등이 재집권하면서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는 모순을 야기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역사 바로 세우기나 친일파 등과의 대결은 언제나 잊혀져 가고만 있다.


소설 외에 아쉬운 점은 번역 및 주석과 요즘 많이 보이는 페이지 늘이기 때문이다. 마사무네 도노처럼 번역을 생략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과 주석으로 도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빠져 있는 것이다. 페이지 당 20줄로 간격을 넓히고 책을 괜히 두껍게 하는 것은 가격 상승 목적 외에 생각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와중에 느낀 약간의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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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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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라는 제목을 처음 보면서 이보다 먼저 출간된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를 생각했다 (이것은 영화로 먼저 보았고 책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읽을 예정이다). 2006년 일본 전국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으로 꼽았다는 사실과 다른 작가 이름을 보게 되면서 다른 책이라는 것과 영화나 드라마로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에서 기대한 것 중 하나인 웃음은 거의 못 느꼈다. 슬픔을 느낀 부분도 마지막 엄니의 죽음이 다가오는 시점부터이다. 광고에 나오는 전차나 버스 안에서 읽다가 곤란한 상태에 이른다는 말에 약간 기장하고 있었다. 책의 전체적인 부분이 아닌 끝 부분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자신과 어머니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시기도 한 시점이나 한 시기가 아닌 본인의 탄생부터 엄니의 죽음까지 상당히 긴 시간을 대상으로 한다.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지만 자서전 같은 소설이라고 할까? 그 만큼 작가의 생애를 모두 담고 있다. 그래서 자세한 이야기나 심리묘사가 정밀하거나 세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그렇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어린 동구의 몇 년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한 소년의 성장과 아픔과 슬픔을 시대의 모습과 함께 잘 그려낸 것을 떠올렸다. 여기서는 시대나 자신의 성장보다 어머니의 죽음을 부각하기 위한 긴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일생에서 엄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주변 인물들과 어머니의 관계마저도 엄니의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이르러서야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여기부터는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엄니의 죽음 이전까지는 사실 한국소설에서 많이 읽었던 부분과 겹치기도 한다.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책 읽기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기도 하였다.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요 근래 읽은 일본 소설과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약간 읽기가 즐거운 것만은 아닌 성장기 부분과 빈곤한 20대를 보낸 후 맞이하는 엄니와의 동거와 죽음은 사실 이 소설의 백미이자 눈물샘을 자극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오면 책의 재미와 현실이 동시에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엄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님을 알지만 많은 슬픔과 울분을 자아낸다. 하지만 엄니의 말들이 그를 지탱하고 나아가게 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역시 분명히 다르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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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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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분량이 많지 않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가끔 본다. 몇 편은 즐겁게 읽었고 몇 편은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최소한 나에게는 처음부터 취향을 많이 타는 작가였다.


이번 소설은 약간 진부한 전개가 이어진다. 평범한 외모에 소심하고 친구는 없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블랑슈와 매력과 자신감으로 주변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크리스타 두 소녀가 등장한다. 블랑슈가 크리스타를 통해 피해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전개와 과정이 너무 진부하다. 다행히 많은 분량의 소설이 아니라서 읽을 수 있었지 많은 분량이었다면 짜증이 많이 났을 것이다.


크리스타가 자신이 가진 매력으로 블랑슈의 가족에 스며들어 신뢰를 얻고, 반면에 블랑슈가 그녀와 비교되면서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써 받아야하는 애정과 신뢰감이 무너지는 중반까지의 전개는 블랑슈가 크리스타의 진실된 본 모습을 찾아서 까발리는 장면으로 발전할 것을 미리 알게 한다.

뭐 이런 방식의 전개를 이미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 보아서인지 더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 두 소녀의 심리나 행동을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사람의 본성과 사회라는 집단을 연결하였다면 좋았겠지만 표피적인 피해자의 시선만을 그려내면서 가해자가 지닌 심리상태와 그런 식으로 사건을 끌고 가게 만든 외모에 대한 부분은 너무 간략하게 그려내고 있다.


얼마 전 노틀담의 꼽추를 새롭게 그려낸 소설 ‘공격’을 읽었을 때보다 더 못한 느낌이다. 거기에서 보여준 심리와 행동이 이 소설에선 많이 실종되었다. 사람의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외모 지상주의 비판하지만 외모를 쫓는 사람들을 그려내었다면 이번엔 단순히 아름다운 적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껴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비록 진실을 숨기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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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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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쌍의 커플, 즉 네 사람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단순한 구성이다. 모두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니 네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없는 듯하다.


봄으로 시작하여 겨울로 끝나는 진행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순서도 모두 똑같이 흘러간다. 왜 이런 구성을 취한 것일까? 덕분에 편하게 읽게 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편안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그들의 비밀은 예상외의 것이다. 이전에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서 이런 비약적인 모습을 보았기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지만 삶 속에 담긴 우리들의 비밀이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서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을 속이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비밀을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하여 문제 삼기보다 삶 속에 일어나는 일상처럼 처리한다.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처럼 느끼게 한다.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의 불륜과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불륜과 동성애적 성향의 충동.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의 그들에게 숨겨진 것은 하나하나가 그들의 삶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숨겨진 비밀이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 때문에 번민하고 괴로워하며 힘겹게 견디어낸다.


숨겨진 것을 밝혀내어 갈등과 번민의 구조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고 시간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을 보면서 작가의 대단함을 느낀다. 대부분의 소설이 이런 사건을 확대하여 고민하거나 심화시키는데 이곳에서는 살아가는 동안의 한 에피소드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을 우리의 삶에서 생각한다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의 한 순간을 극단적으로 부각하기보다 흘러가는 속에 단편처럼 꾸며 우리들의 삶에 더욱 다가가게 한다.


문득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그들의 고민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자신만의 것으로 남겨진 듯하다. 다른 이와 공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냥 묻어두거나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것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원제목인 ひなた가 양지나 풍족한 환경이라는데 왜 캐러멜 팝콘으로 번역하였을까? 캐러멜 팝콘이라는 제목이 더 이쁜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억지스러운 점도 있어 보인다. 캐러멜의 달콤하고 쩍쩍 달라붙는 느낌과 팝콘의 짭짤한 느낌이 이 소설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일상적이고 외양적으로 드러난 양지에서 살아가지만 그림자가 있는 삶을 담고 있는 그들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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