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소년 5
임진주 지음, 임애주 원작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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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소년 5권>을 읽을 무렵에 우연히 소개받은 만화연구도서를 보고 있었다. 남서울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권경민 교수가 저술한 <만화학 개론>라는 것으로 만화에 대한 전반적인 학문적 정의와 이론, 그리고 만화장르와 기법연구와 더불어 비평적인 연구론적인 안내도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만화를 대하는 것에 의견을 듣는다면 대부분 ‘만화를 본다.’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만화를 읽다.’ 라는 방법도 있다. 이른바 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와 더불어 만화 보기와 만화 읽기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문학도서처럼 하나의 텍스트로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화의 서사적인 요소가 곧 텍스트라는 글자를 이미지로 바꾸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위대한 독일 문학가 괴테의 경우 그의 소설을 읽는 순간, 사람들은 괴테의 글에서 보이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괴테의 소설을 어느 화가 내지 만화가가 그림과 말풍선으로 진행한다고 보자, 그렇다면 그것은 괴테의 작품이 아닌가? 물론 이런 방식은 국내에서 이미 소개된 바가 있었고, 각종 만화연구도서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소년5>과 더불어 <만화학개론>이란 서적으로 통해 만화리뷰 내지 만화비평을 적는 입장에서는 조금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길이란 점이다.

 

왜냐하면 <만화학개론>에서 읽어본 내용을 그대로 <금지소년>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흔히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심지어 영화를 포함하여 리뷰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부분 수용자의 입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취향과 취미가 어느 순간 새로운 호기심과 도전의식,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조금 더 심도 있게 자신의 취미를 관철하는 것이다. 문제는 수용자들이 대부분 만화학이나 디자인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만화를 제작하는 방법이나 기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화도 영화나 소설과 같은 서사구조를 지니기에 서사적인 요소까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만화에 대한 연구적인 접근방법보다 오히려 국내는 문화콘텐츠에 전반에 대한 접근방법이 개선되지 않은 점이 더 문제일 것이다. 만약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만화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담론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금지소년>을 보면서 이때까지 캐릭터에 대한 기호적인 요소를 고려했으나 색감에 대한 고찰요소는 강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캐릭터 색채에 반영된 기호적인 요소도 캐릭터 설정에 매우 중요한 점이다. <금지소년 5권>을 보면 포푸리 소녀와 신류아가 서로 같이 가다가 포푸리 소녀가 신류아의 팔짱을 자신이 끼려고 한다. 그것도 부동적인 신류아 신체에서 포푸리의 신체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신류아는 몸체는 전형적으로 쓰리라인이 좋은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고, 남자들이 입을만한 턱시도양복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다. 만약 신류아의 모자를 쓰지 않았다면 신류아의 인상은 너무 남성적일 것이다. 모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여성성을 의미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푸리 소녀의 여성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어 있다. 신류아의 모습은 여성이나 남성적인 인상이 강해 중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중성적 요소에서 모자와 더불어 허리춤에 달려있는 악세사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어울림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와 다르게 포푸리 소녀는 마치 공주님이 쓸 것 같은 머리장식품에 아우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게다가 푸른색 보석이 달린 목걸이는 포푸리 소녀 옆에 신류아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다정한 연인인 인상을 강하게 반영했다.

 

남성인 나운이가 포푸리 소녀로서 보여준 요소는 매우 소녀적인 인상이다. 작가가 여성이란 점에서 신류아의 중성적 요소, 포푸리 소녀의 여성적 요소는 <금지소년 5권>에 강한 인상을 준다. 신류아를 위기로 몰아넣은 신류아의 이복동생 신마루가 전학오면서 포푸리 소녀를 함정에 몰아넣는 장면이 나온다. 포푸리 소녀가 남자임을 들키게 하여 신류아의 친구를 없애려고 했으나, 오히려 포푸리 소녀의 강력한 해딩에 의해 기절한다. 이때 남장을 한 신류아는 완벽한 왕자로서 신데렐라로 연기하는 포푸리 소녀에게 구원의 노래를 부른다. 이때 신류아의 모습은 여자나 남장을 하였기에 그 어떤 남자보다 더 남자다웠다.

 

작품에서 아니마(남성 안의 무의식적인 여성성)와 아니무스(여성 안의 무의식적인 남성성)가 서로 교차되는 장면이 신데렐라 공주 포푸리와 왕자인 신류아다. 남자가 히로인이고 여자가 히어로라는 설정은 TS물(Trance Sexuality) 요소를 완벽하게 잘 묘사했다고 본다. 이때까지 포푸리 소녀가 계속 소녀로서 나타냈고, 신류아는 그저 차갑고 속이 검은 소녀로 등장했다. 남자후배와 여자선배보다는 그저 소녀 2명으로 활동한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신데렐라 연극으로 통해 바뀐 것이다. 물론 그런 계기는 신류아가 납치당해 자신의 안위는 상관없이 온몸이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싸운 남자 나운이의 용기 때문이다.

 

물론 나운이의 용기도 중요했으나, 이미지적인 기호요소에서는 신류아의 색채는 검정색이고, 나운이와 포푸리 소녀의 색채는 노란색이다. 밝은 성격의 노란색과 부동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검은색은 분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고, 검정색은 항상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 포푸리 소녀의 경우 처음부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소년이다. 이와 다르게 신류아는 처음부터 그녀의 설정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모든 갈등과 사건의 전개는 신류아의 고민과 문제, 위기에서 시작될 뿐이다. 포푸리 소녀의 조건은 생계와 여장이기 때문에 생계문제와 여장에 대해 들키지 않는다면 모든 갈등이 없다.

 

신류아의 조건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남자들에 대한 처리와 집안내력인 점이다. 집안내력에서 신마루의 등장은 새로운 위기와 갈등을 주는 것이다. 집안이 재벌이란 점과 아버지가 외도로 3명의 남동생이 있다는 점은 큰 갈등관계이다. 어린 시절에 아무 죄도 없는 이복 남동생 3형제에 대해 심하게 굴던 점과 특히 신마루의 이어폰 속에 가려진 흉터는 지울 수 없는 원망과 복수를 만들게 된다. 또한 신마루가 새로운 인물로서 추가되어 포푸리 소녀가 어떻게 하면 신류아의 가족사에 가려진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지가 관건이고, 한편으로 궁금한 것은 신수라가 중학교에 전학 가서 홍지우와 같이 자리를 앉는 점이다.

 

모든 학생들과 담임조차도 신수라의 큰 기와 강한 인상에 큰 압력을 느껴도 오직 홍지우만이 마이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런 2사람의 관계 역시 작품에서 보여준 재미요소는 분명하다. <금지소년>이란 작품을 보면서 갈등요소나 재미요소의 원인을 생각하면 가족에 대한 부분이 큰 것 같다. 신류아의 성격이 어둡게 된 것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혹은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점도 있다. 또한 신류아의 이복동생의 출현 그러하며, 홍지우와 그의 누나 역시 부모님이 어린 시절에 같이 지내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 나운이의 경우 부모의 부재가 가난이란 굴레를 만들어냈다.

 

<금지소년>에서 다른 인물은 몰라도 심각한 갈등과 적대관계를 일으키는 부류를 보면 가족관계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이 왜 재미로 이어지는 것인가에서 나운이의 동생 나솔이가 그린 그림이나 말투가 인상적이다. 그런 강렬한 효과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나솔이가 잔혹한 동화사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신데렐라를 비롯한 동화는 기본적으로 신화를 모티브한 것이 많고, 잔인하거나 때로는 너무 선정적인 요소가 많아 순화된 경우가 많다. 신데렐라의 원래 이야기에서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은 왕과 왕자를 속인 이유로 도부수에게 참수를 당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 잔혹한 동화사를 재미를 발휘하여 신데렐라의 외모가 화장발이란 이유로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잔혹한 내용이나 밧줄에 묶인 신데랄란 포푸리 소녀의 모습은 매우 귀엽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신데렐라의 잔혹한 비극이 포푸리 소녀에게 하나의 위기의식으로 감지했기에 신마루를 기절시킬 수 있는 재치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신마루는 포푸리 소녀가 나운이란 점을 알고, 신류아에게 유일한 친구가 포푸리라는 사실도 안다. 어떻게든 그의 도전은 계속 포푸리 소녀와 신류아에게 계속 위기만 주는 것이다. 그런다고 반드시 위기만 주는 인물이 아니다.

 

<금지소년 5권> 마지막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는 신마루가 연극 때 나타난 신류아의 모습을 회상하는 모습이 나온다.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왕자 신류아의 모습이 어린 시절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던 이복 누나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신마루는 어린 시절에 멀리서 바라보던 신류아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남동생으로써 다정하게 대해주길 바란 것이다. 신류아의 돈이나 권력이 탐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류아가 그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고 한다. 자신을 만든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조차도 각박하게 대한 점은 어린 시절에 받은 깊은 아픔과 상처다.

 

아픔과 상처의 치유도 되지 않으면, 같이 그 나락의 끝을 신류아 역시 같이 가길 원했다. 인간이 악마로 되었더니 이제는 악마가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신마루 형제의 상처와 아픔은 결국 <금지소년 6권> 이후 어떻게든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고 흐름이다. <금지소년> 시리즈와 이번 5권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것이 있는데, 스토리작가가 에피소드로 그림을 그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없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사디스트 요소가 강한 신류아의 여왕모습에 대해 조금 기대했는데, 나오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또한 <금지소년>에서 연출하는 장면에서 포푸리 소녀의 일러스트는 매우 중요한 것 같았다.

 

“제32화 천사를 만나다.”에서 포푸리 소녀가 매우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치마를 가리나 결국 팬티가 노출된 모습이 나온다. 작품에서 나운이는 키가 작은 편이고, 몸도 마른 편이다. 그런데 포푸리 소녀는 탄력이 넘치는 허벅지를 가진 소녀로 묘사된다. 제32화 일러스트에서 포푸리 소녀는 나운이가 여장하나, 그 이미지 자체는 나운이의 여장보단 그저 포푸리 소녀가 있다는 전제 아래 그렸던 그림에 가까웠다. 줄무늬 팬티(나운이가 포푸리 소녀가 <금지소년 1권>에서 팬티를 도대남에게 보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분명히 남자 사각팬티였다)에 굵은 허벅지는 전형적인 성숙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른바 판치라(여성의 속옷이 나오는 모습) 요소에서 일러스트는 여장이 아니라 여자 그 자체라는 점이다.

 

작품을 보면 포푸리 소녀가 나운이의 1인칭의 시점으로 보거나 판단할 때는 남성적인 요소(허벅지가 굵지 않은 점)가 어느 정도 유지하나, 막상 누군가에게 여자로서 당해야 할 때는 여성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155페이지 홍지수가 포푸리 소녀의 허벅지를 만지는 성희롱 부분에서 “이 탄탄한 허벅지 여전한데..”는 역시 나운이가 포푸리 소녀일 때는 여장남자가 아니라 소녀로 되어야 한다는 점이 보인다. <금지소년>의 작가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판치라나 페티시즘 요소를 서비스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 점에서 다음 6권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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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2 - Novel Engine
정진교 지음, 라티세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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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라 2권>을 보는 순간,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졌다. 1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판단한 것은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일까? 아니라면 나오지 않더라도 1권으로 끝이 나도 좋을 만큼 상황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끝맺음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베히모스 무예가 전학을 가면서 소꿉친구인 민수가 덩달아 같이 가게 되고 난 후로 벌어지는 상황들은 분명히 하나의 서사로서 그 주제가 명확히 나온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작가의 의도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예는 민수를 좋아하고 있으나, 민수는 눈치가 너무 느려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엉뚱한 대응을 한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봐서는 상당한 미소녀이나, 알고 보면 무서운 베히모스인 무예는 보통 무기에도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이다. 겉보기에 예쁜 소녀일지라도 그 정체를 아는 순간 모든 이에게 낯설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민수만이 아주 오랫동안 친구로 남아준 것이다. 어린 시절에 서로의 집에 찾아가서 놀아주고 같은 방에서 낮잠을 자던 친구로서 말이다. 그런 친구가 전학 가서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론은 이미 “무예는 오랜 친구인 민수를 남자로서 좋아하나, 민수는 눈치가 느려 그것을 알지 못해 무예에게 화만 돋는다.”

 

그렇다면 남은 주제들은 무예와 민수의 관계가 아니라 이 2사람을 필두로 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문제는 민수에겐 좋은 일이 찾아오기 보다는 항상 새로운 사람으로 인한 시련과 고통만 되풀이되는 운명이란 점이다. 왠지 민수를 보면서 동지의식이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현실에서 민수 같은 남자가 과연 미소녀에게 인기가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라이트노벨이란 장르가 스토리텔링적인 요소에서 재미와 환상을 심어주기에 속성 부여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미 1권에서 민수의 개고생을 본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도중에 그만두고도 남은 일들을 다 해결하는 그의 모습은 과연 민수가 아니면 매우 귀찮고 대하기 어려운 신인류를 대할 수 있을까?

 

그런 민수의 서글픈 운명에서 2권에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미 표지에서 키메라 휘정이 새로 전학 온 정설영에게 마치 유혹하듯이 손가락을 얼굴을 만지는 장면에서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매드 사이언티스트 제갈연광의 등장 역시 만만치 않은 고난이다. 1권과 달리 2권을 보면서 느낀 점은 한국 라이트노벨 특성은 대부분 학교라는 공간에 너무 많은 현실적 요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티>라는 서적에서 가리키듯이 사실 실사영상이 아니고 허구의 존재가 나오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이라고 하여도 그 세계관 자체에 리얼리티한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물이나 영상, 그림체만 비현실이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5층 꼭대기에 신인류 미소녀 4명과 구인류 노비 민수가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은 상황이 맞지 않으나, 매점에서 먹는 것을 구하기 위해 오고가는 노비 민수의 모습은 충분히 가능한 모습이란 점이다. 학교에 미소녀 스타가 나오면 화제가 되어 갑자기 콘테스트를 하는 것은 억지이나, 그런 미소녀가 학교에 있어서 내부적으로 경쟁의식이 학생들 사이에 붙는 것도 가능하다. 리얼리티한 요소들을 생각한다면 단지 캐릭터 인물에 부여된 속성이 그럴 뿐이지 학교 내의 전반적 상황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권에서는 그런 속성을 넘어 개그와 환상적 요소를 확실히 불어 넣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1권의 서사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narrative(내러티브)적인 요소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다. 위기와 절정은 무예와 민수의 관계가 전학 간 학교의 다른 학생들에 의해 균열이 가자 마지막 퀴즈에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민수가 무예에게 한 말을 기억하면서 무예와 민수의 우정(하지만 무예에겐 사랑)에 대해 확인을 한다. 이에 반해 2권은 마지막 부분에 다른 식으로 해소하지만, 조금 다른 전개방식을 보인다. 보통의 서사구조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 전개했다.

 

1권만 봤다는 전제 아래 2권의 상황을 유추해본다면 그저 민수와 신인류 소녀간의 아웅다웅한 비일상적인 현실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2권은 그런 요소를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신인류의 등장에 따라 구인류 속에 가려진 신화, 민담, 전설의 존재가 등장한다는 속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현실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한국 라이트노벨에서 조금 비틀어 환상의 공간을 내었다는 점이다. 구인류와 신인류가 있는 것이라면 인류가 아닌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인류의 등장에 대한 암시는 나름 조금 재미있었다고 여긴다.

 

서사구조가 단순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결말 뒤에 새로운 프롤로그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발단의 이유는 비인류 종족 수장의 딸이 겉으로는 종족의 번영과 유지를 위해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자기의 일종의 목적의식을 거대한 목표를 가리는 것으로 나온다. 뱀파이어 소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면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작품 전개를 본다면 주인공 민수가 있는 고등학교에 전학을 와야 한다는 조건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에서 민수가 지키는 존재는 1권에서는 신인류였고, 2권에서는 돈다발 왕이었다. 3권은 당연히 뱀파이어 소녀일 것이다.

 

그러나 계속 오는 인물들이 여학생이고, 게다가 미소녀의 속성을 다들 지니고 있는 점이다. 소청연의 경우 위그드라실이란 신비한 능력과 더불어 뛰어난 외모와 육감이 살아있는 몸매는 많은 남자를 자극하고, 이신아와 같은 하멜른은 키가 150㎝인 작은 키에 앙증맞은 외모까지 소유하고 있다. 윤무예는 전반적으로 균형이 잡힌 몸매에 생머리를 지녔으니, 단짝 친구인 민수에게 옆에 이신아와 소청연이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 그런다고 하여 그들과 친해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나, 그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민수에게 응징의 킥과 펀치를 날린다.

 

타격의 규모를 생각하면 턱에 일격을 날려 기절 시킬 정도이니 베히모스라는 신인류의 위력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런 윤무예에게 품위가 넘치고 긴 노란머리의 미소녀 뱀파이어가 온다면 분명 민수로선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3권은 민수가 지키는 대상은 뱀파이어 소녀라는 점이다. 단지 아쉬운 부분은 눈치가 거의 100점 만점에 5점 수준이기에 무예가 아무리 뒤돌려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키메라 휘정이가 민수가 교실로 오는 것을 알고 일부로 말을 흘리는 장면에서 윤무예, 소청연, 이신아가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이 온다.

 

다른 사람들의 이상형에서 무예의 말은 솔직히 가슴에 조금 뭔가 오는 느낌이었다. 베히모스는 난폭하고 과격하며 상당히 대하기가 어려운 신인류다. 그들의 경이로운 신체능력은 단순히 일상을 넘어 테러나 전쟁과 같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이니 말이다. 베히모스가 어느 마을주민들을 학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히모스라는 존재가 가장 골치가 아픈 존재다. 15세 이상이 되면 감시가 붙고, 일상을 언제나 자유롭지 못한 베히모스에게 무예에게 등장한 민수란 유일한 빛이다. 자신이 물건을 파손하지 않아도 언제나 베히모스라는 이유로 남들에게 의심을 받는 차별 속에 자신의 담당관이 오자말자 하는 소리가 얼마면 되냐는 말은 베히모스라는 존재는 인간이기보단 그저 괴물이나 쓸데없는 물건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은 소통이다. 물론 소통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이란 것은 다투기도 하고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표현하고나 말하고 싶은 것을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소통이란 단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예에게 유일한 소통공간은 민수였고, 민수로 통해 일상을 보내고, 전학 간 학교에서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히로인의 설정에서 분명 무예는 주인공 민수로 본다면 히로인 당첨이다. 그러나 그녀는 히로인의 역할로서 부족한 점들이 많다. 얼굴표정변화가 적은 점과 말수가 적은 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보호받을 만한 사람은 구인류인 민수인데, 보호를 받는 것은 무예에 가깝다. 단지 그 보호란 인간적 신뢰나 우정일 것이다. 단지 남들과 비교하여 특별히 뛰어난 이유만으로 배척받는 것에서 인간은 더욱 더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 점에서 민수는 무예의 인간성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 단지 인간성이란 다 좋은 것이 아니다. 감정 역시 인간이 가져야 할 조건이기에 윤무예의 킥과 펀치는 여전히 민수의 복무와 정강이를 아프게 한다. 가장 어울린 직업이 전업주부인 민수, 하지만 민수는 도대체 누가 지켜주랴? 그래도 정설영이 언니인 정하영의 공격에서 모두가 도와준 점을 본다면 민수 역시 보호받는 것은 사실이다. 단 조건은 노비로서 온갖 심부름과 수모를 당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은 민수에 대해 모든 신인류들이 민수를 신뢰하는 점이다. 처음에 등장한 서리그룹의 영재인 설영이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민수와 친해진 신인류의 마음을 민수에게서 가져가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할 때 몇 가지가 있는데, 아주 눈치가 빠르고 대화능력이 뛰어나 재미있는 사람이든지 혹은 그저 부려먹기 좋은 마음 착한 사람이란 점이다. 민수는 눈치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골탕만 당하는지라 한 없이 후자에 가깝다. 결론은 2권을 보면서 여자보단 남자고, 돈보다는 노비가 좋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헌법상으로 자유민주주의국가이므로 신분상 노비가 있으면 안 되는 점과(물론 현실이나 작품 내에서 동의하지 않지만) 동성친구도 좋으나 확실한 이성 친구 그것도 연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더 필요한 점에서 상당히 동의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에서 나는 민수고, 민수 같은 인물은 작품 내에서 1명이다. 설사 노비제도가 현재까지 이어져 민수가 노비로서 살아가야 한다면 주인은 1명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눈치 없는 민수는 계속 모두의 노비가 되어 괴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야하는 것이 이 작품이 나가는 주된 설정일 것이다. 그저 민수가 해피한 마무리를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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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DxD 13 (잇세 SOS 특별판(BOX))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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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DXD 13권은 외전적인 속성과 같이 전반적으로 서사적인 흐름보다는 중간 사이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천사, 타천사, 악마 3부족이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두 평화조약을 맺었으나 내부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평화를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괴팍한 아저씨인 아자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가 천사시절 연구하던 칼이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아 놀림거리가 된 것에 대해 원한이었다. 그것도 천사시절 동료였던 천사장인 미카엘의 입에서 나오니 아자젤의 숨은 마음은 폭발하기 좋은 것이었다.

 

아무리 공통의 목표의식이 있더라도 속에 가려진 배타적인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축제라는 것은 본래 그런 인간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금도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의 의미를 보면, 본래 중세유럽이나 계급체계가 엄격한 신분사회라도 축제기간만큼은 모든 것이 해방되었다. 귀족이나 평민이나 천민이 너나 가릴 것도 없이 단 며칠 동안 미친 듯이 망가지면서 논다. 마시고 먹고 싸우고 있는 동안 마을은 난장판이 된다. 질서가 없어 보이는 이 공간이 과연 어떻게 받아 들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축제야 말로 질서를 유지시키는 하나의 의식이다. 인간의 내면에 쌓인 불만요소를 발산함으로서 오히려 마을의 단결과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축제라는 의미에서 carnival이란 영문단어가 있다. carnival이란 단어를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 Cannibals and Kings>라는 서적을 보면 축제의 어원은 바로 식인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식인의 의미는 바로 죄의식을 가진 인간이 서로를 용서하고 구원받기 위한 하나의 행사였다. 이른바 아버지 죽이기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여자를 아들들이 나누어 가지나, 추후 그들 역시 아버지처럼 되어 가면서 자신의 과오를 느끼고, 이에 대한 추모의식을 치른다.

 

그게 바로 축제의 진화과정이다. 축제라는 것은 죄의식부터 시작하여 마음속에 가려진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기 좋은 것이다. 축제라는 것은 분명히 말하지만 시작은 결코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이스쿨 DXD 13권의 삼대 세력의 운동회는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을 위해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유지되기 위해 개최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악마 ↔ 타천사 세력, 악마 ↔ 천사세력에서 악마 × 천사 × 타천사 세력구도에서 분명 겉으로는 좋은 분위기라도 내심 불쾌한 것이 없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운동회가 친목을 위장한 전투놀이로 되는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하나의 비상구라는 개념 속에서 잇세이는 그야말로 휘둘림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잇세이가 휘둘림을 당하는 것은 비단 운동회가 아니다. 제일 심한 것은 레비아탄의 특촬영화에서 대본과 어울리지 않은 에드립 상황이 오히려 전환되어 뱀파이어가 주인공이 되고, 잇세이는 레비아탄의 진심어린 연기에 시달리는 모습이 나온다. 언제나 당하고 당하는 모습에 멋있는 모습이 그다지 나오지 않은 것이 개그적 요소다. 오히려 계속 골탕을 먹는 상황에서는 아자젤의 쓸데없는 창작욕구가 더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성적인 요소를 바꿀 수 없다. 물론 성형수술로 통해 성기나 각종 체형을 조절할 수 있어도 호르몬 그 자체나 생리적인 구조까지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아자젤의 장난감을 가능했다. 여자를 남자로, 남자를 여자로 잠시 만들 수 있는 도구를 만든 것이다. 대부분 부실이 여자이기에 모두 남자로 변하자 멋지고 잘생긴 사람이 되었으나, 반대로 남자가 여자로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도 관건이었다. 본래 어린 소녀처럼 생긴 남자후배인 캐스퍼는 몸집도 작고 여자로 변해도 절벽 그대로였지만, 키바는 달랐다.

 

본래 미남에 핸섬한 스타일이 여자로 되었을 때, 잇세이는 엄청난 미소녀를 보았다고 하는 점에서 부원 여자 모두가 질투를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들이 남자가 여자로 변한 모습에 더 질투를 느끼는 것은 본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여자는 여자가 만들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환상이나 욕망 속에서 탄생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유혹에 대하여>에서도 언급한 것이나 또는 수많은 TS 계통 작품 내지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 역시 본래의 여자보다 남자가 흉내 내지 만들어낸 여자가 더 남자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만든 여자는 여자의 입장에서의 여자이지만, 남자가 만든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여자인 것이다. 결국 아자젤의 성을 바꾸는 도구는 영구봉인이 된다. 만약 키바가 남자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잇세이는 키바에게 가장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니 원래 여자인 부원들도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금이 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벤트의 등장은 잇세이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벤트 요소에서 여자부원들이 모두(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고 마치 야한 비디오에서 등장할 것 같은) 간호사 의상을 입고 잇세이를 병간호를 해주나, 문제는 간호의 방법이다.

 

환자는 편하게 계속 쉬게 해주는 것이 의무인데, 달라붙는 것은 둘째 치고 영양식이 문제다. 왠지 알 수 없는 것을 먹이거나 주사를 놓는데, 사람 키만 한 크기인 주사와 거대한 주사바늘은 사람을 쇼크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했다. 당연히 잇세이가 그런 주사바늘에 찔리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고, 이상한 기운이 맴도는 음식도 먹는 것도 당연하다. 덕분에 잇세이는 감기가 아니라 몸살로 다시 드러눕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늘 망신살이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탄닌이란 용왕에게 수련을 받은 잇세이는 왜만한 중급 아니 고급 악마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처음으로 큰 패배감을 서로 맛보게 해주었던 피닉스 삼남이 계속 은둔형 폐인처럼 있자, 잇세이는 그 근성을 고치기 위해 피닉스 저택으로 간다.

 

잇세이를 보자 겁을 먹는 피닉스의 삼남, 그러나 리아스의 가슴에 집착하는 피닉스, 이 엉성하고 라이벌의식이 강한 콤비는 엉큼한 망상을 즐기기 위해 오컬트부 여자부원들이 목욕하고 있는 온천에 침투하는 모습이 나온다. 찌찌 드레곤은 역시 찌지에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이기에 피닉스 삼남의 욕망을 용서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성적인 리비도인가? 아니면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에로스인가? 이 엉성하고 엉큼한 콤비는 라이벌의식을 불태우면서 한편으로 뭔가 닮았다는 생각만 든다.

 

13권이 외전으로 나온 만큼 그동안 조용히 지내던 신룡 오피스의 이야기가 꾸려진다. 오피스는 남녀 성별에서 늙고 어리고의 차이가 없다. 오직 무에 가까운 한 없이 공허한 존재이다. 그런 오피스가 무한의 세월을 나와 유한의 공간과 시간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오피스 역시 현실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이나, 그(녀)가 느끼는 세상은 그저 무덤덤하게 보인다. 하지만 잇세이와 적룡제 덕분에 호기심이 발동되어 그저 쿨데레 느낌이 나는 어린 소녀로 나온다. 계속 잇세이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야 했다.

 

매일 같은 옷만 입힐 수가 없으니 잇세이는 리아스와 같이 백화점 쇼핑을 나가는데, 이래저래 돌다가 사람들과 마주치고, 오피스는 그 와중에 길을 잃고 아동보호대기실에 기다린다. 이때 “머리가 붉고 가슴이 큰 어머니. 음흉한 얼굴을 한 아버지, 가슴이 평범한 정도에 긴 금발인 언니, 바보 같은 얼굴에 힘이 세 보이는 언니, 자칭 천사인 언니.” 쉴 새도 없이 잇세이와 리아스 그리고 오컬트부원과 학생회 사람들을 찾는 방송이 나온다. 오피스의 눈에는 리아스는 엄마, 잇세이는 아빠처럼 보였다. 아니 다시 검은 머리에 가슴이 큰 어머니에서 오피스에게 아케노 역시 엄마라고 여겼다.

 

너무 공허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나, 오피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말하는 오피스의 모습은 너무 오피스 같았다.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리아스와 잇세이라고 말하는 오피스에서 리아스는 무척이나 행복해 한다. 사람마다 가치 아니 악마라고 해도 인격을 가지고 있으니, 적어도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계속 있으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것은 가족과 친구, 연인처럼 말이다. 가족과 같은 리아스와 잇세이의 하루는 무엇보다 깨어지기 싫은 순간들이다. 그것은 비단 작품 내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 작품을 보는 우리 같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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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소년 공주님 2 - Novel Engine
모베 지음, 모브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절대소년 공주님> 2권 표지를 보는 순간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에 대해 조금 의문을 가졌다. 왜냐하면 주인공 레빈은 비록 여장을 하고 있어도 남자아이다. 보통 여자보다 몸이 가늘게 말랐으며, 피부도 매우 하얗게 되어 있어서 누가 봐도 소녀 같은 소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2권은 표지는 1권의 표지와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 1권에서는 호위무사 겸 메이드로 나오는 넬이 레빈을 공주님 안기를 한 후에 가위로서 경계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2권에서는 마왕의 회계사인 리세가 메이드 복을 입은 해 레빈에게 메이드 복을 입히려고 하는 모습이 나온다.

 

단지 문제는 1권의 넬이나 2권의 리세의 메이드복은 치마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2권에서 레빈이 입어야 하는 치마는 부분이 없이 그저 앞치마 앞부분으로 허벅지를 가려야 했다는 점이고, 그런 의상을 입어야 하는 사실에 레빈은 무척 부끄럽고 곤란해 하는 사실이다. 이미지의 상황으로 따지자면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보이는 작화요소이다. 레빈의 묘사는 소년이지만 보통 소녀보다 더 날씬하고 마른 사람이다. 1권에서 입는 의상에서 보면 다리가 매우 가늘게 그려져 있다면, 2권에서는 그러지 못하다.

 

허벅지 옆 부분이 매우 강조된 일러스트이었다. 보통 만화학이나 디자인학을 수학하는 경우 인체해부학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작화에서 인물묘사가 부드럽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2권 레빈의 경우 여장소년이라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여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체적 구조가 돋보였다. 남성과 여성의 근골계의 차이는 바로 골반과 대퇴부다. 여성의 신체적 구조는 임신과 출산을 하기 위해 골반과 골바 아래의 대퇴부, 즉 허벅지가 굵은 것이 해부학적인 요소다.

 

레빈의 모습에서 이것은 소년의 구조인가? 아니면 소녀의 구조인가? 최근에 도래하여 발육상태가 양호한 소녀라면 일반 성인여성들처럼 골반이 발달하는 경우가 분명한, 레빈의 입장에서 본다면 레빈이 분명 여장남자라고 하나, 그 여장남자라고 하는 이미지 표상마저 지울 수 있을 정도로 채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작품 중간을 보면 레빈이 남자라는 사실을 레빈 이전에 먼저 마왕 국으로 온 데이지에게 들키고, 마왕의 총사인 리세에게도 들킨다. 사실 진짜 공주를 대신하여 납치된 레빈의 입장에서 남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마왕군단을 속인 것과 더불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생명의 위험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데이지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레빈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나온다. 데이지를 몰래 추적하는 레빈에게 데이지는 자신의 우산 손잡이로 넘어뜨리고, 레빈의 배위로 올라가 도발하듯이 레빈을 가지고 논다. 이미 레빈은 넬에 의해 장난감처럼 되어 버렸다. 혹은 상대방에게 괴롭히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는 사디스트적인 요소가 넬에게 있다고 하나, 넬의 입장에서 레빈을 가지고 노는 것은 호감에 대한 표시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히려 곤란해 하는 레빈의 모습을 보고 넬은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단지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것으로 친근감과 만족감을 얻는 사디즘의 넬과 혹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뒤에서 조종하여 자신의 원하는 대로 이끌어내는 데이지 공주는 넬보다 더 심각한 사디스트였다. 이런 상황에서 마왕군단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그동안 마왕 국에서 요리사를 맡은 데이지가 그동안 마왕국의 빈곤으로 인해 몇 개월 급료가 밀린 것이다. 데이지는 공주이면서도 상당히 머리가 좋은 지략가이다. 그녀가 아무런 미련만 없다면 마왕성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나, 여기서는 무슨 일인지 변덕을 부린다.

 

마왕의 총사인 리세가 경제적인 고초를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다고 하여 곱게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골탕을 주는 것을 전제로 해결하려 한다. 데이지 공주가 아주 우아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심지어 저는, 저를 악마라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마저도 배신한 적 없답니다.” 라는 것은 데이지 공주가 상당한 수완가라는 사실이고, 그녀에게 잘못 대항할 경우 호된 꼴을 당한다는 뜻이다. 아셰트라는 원래 공주인 용사도 그렇게 강하면서도 막무가내라도 데이지 공주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긴장하고 만다.

 

최강의 용사인 공주도 역시 데이지에게 피하고 싶은 존재인가? 마왕 국에서 요리사로 있으면서 오히려 마왕의 부하를 얄밉게 도와주는 것으로 보면 인간은 다른 인간 내지 인격을 가진 존재와 있으면서 변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4년 전의 데이지라면 분명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나, 리세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과 막무가내로 커피숍을 운영하는 아셰트를 도와주는 척하다가 역으로 골탕 먹이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상상력에서 페티시즘한 연출을 잘 이용하는 것을 좋았다. 가령 넬에게 꽉 끼는 치마길이 매우 짧은 간호사 복을 입히고, 거기에 스타킹을 입힌 후에 사디스트한 요소로 손님에게 대접(여왕님으로)하는 것과 마왕의 여동생님 빈유에게 노랑 원피스를 입히는 전략은 상당히 모에요소를 잘 이용했다.

 

흔히 누님연방과 로리지온(도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건담에서 지구연방과 지크지온의 대립)이라고 불리는 미소녀의 분류에서 넬은 누님연방이 가지는 그 특유한 볼륨감과 의상에서 묻어나오는 페티시즘, 빈유는 키가 작은 것을 이용한 로리지온의 완벽한 요소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누님이 가지는 사디스트적 요소와 로리가 가지는 어벙함을 생각하면 완벽한 조화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리세도 같이 누님연방으로 가세할 때 역시 상당히 LIbido(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인간내면인 무의식에 존재하는 성적인 에너지)를 자극하는 내용이 많았다.

 

문제는 그 Libido에서 고뇌하는 사람은 여장남자인 레빈이었다. 레빈은 겉으로 보면 완벽한 미소녀였다. 쇄골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고, 치마가 매우 짧은 메이드 의상을 입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레빈의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레빈은 그런 민망한 의상을 입을 때 몸은 숙이면 가슴이 드러날까 걱정이고, 치마 위로 팬티가 드러날까 걱정이었다. 보통 여성이라면 성적인 수치심이겠으나, 레빈은 남자라는 사실을 밝혀질 경우 생명의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인 것이다. 왠지 노출에 대한 부담감이 여성으로서가 아닌 여장으로서의 남성이기에 느끼는 압력이었다.

 

그런 와중에 진짜 공주인 아셰트는 레빈이 야한 의상을 입는 것을 보고, 레빈의 엉덩이를 만진다. 아무리 용사행세를 하고 싶은 것은 이해하나, 여장한 남자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남장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아셰트의 민폐적 요소는 여전히 용사로서의 모습보단 용사답지 못한 모습으로 코믹요소를 보여준다. 옆에 용사의 전사들이 악마를 무찌르는 사람보단 그저 마왕성 인근에서 아무 죄 없는 마족이나 일반 사람들까지 피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커피콩이 마력이 강한 곳에 있으면, 중독효과가 강하여 마시는 사람들에게 금단현상을 이용해 돈을 벌라는 것도 막무가내였다.

 

도리어 마왕군단이 정정당당하게 색기를 발산하고, 용사군단은 대놓고 반칙을 사용했다. 그래도 마왕이 용사에게 고용되어 일할 줄은 몰랐다. 완벽한 니트에 폐인인 마왕이 그 강력한 마력을 용사 가게의 커피콩 제조에 사용했다는 점과 그 계약조건은 용사인 아셰트를 가진다는 조건이었다. 이 모든 것이 데이지 공주의 책략이었다. 그러나 그 완벽한 폐인이 양복정장으로 깨끗하게 입고 심지어 안경까지 착용하여 우아한 기품을 내뿜을 정도에서 데이지 공주의 지략은 매우 악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면 리세에 대한 의리나 우정일 수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본 가짜공주인 레빈에게는 리세에 대하여 왠지 모를 벽이 생긴다. 같이 생활한지 오래되었고, 이래저래 도움도 주고받았다. 납치당해 마왕 성에 왔어도 레빈은 포로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막연한 것들이 넘쳤다. 그렇지만 자신의 현재 위치와 신분과 성별을 속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리세와 같이 보낸 시간들이 친분을 쌓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리세도 레빈이 남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레빈이 리세를 안아주나, 그 안아주는 육체적 촉감과 달리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1권에서는 왠지 적이나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리세였으나, 2권에서는 멀게만 느껴진 것이다.

 

또한 마왕 국이 빚으로 허덕이는 이유도 리세의 아버지 때문이고, 리세는 마족 혈통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인간과 마족의 중간이었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 불리한 리세는 억지로 자신에게 짐이라는 굴레를 씌우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마 리세에 대하여 데이지 공주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절대소년 공주님> 2권에서 보면 레빈과 리세는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낸다. 레빈은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리세는 억지로 레빈을 납치하여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 말이다. 서로 간의 거리감을 레빈은 느끼고 있으나, <절대소년 공주님> 3권에서는 그런 관계를 호전시키며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데이지 공주의 음흉한 책략과 그 책략에 휘둘리는 레빈과 그것에 된통 당하는 아셰트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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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데이즈 2 - Seed Novel
김월희 지음, nyanya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중2병 데이즈> 2권을 읽은 후에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3권이 생각났다. 물론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3권에서는 블랙헤이젤 당수의 경호원인 리리와 리리의 언니인 리라의 이야로 전개된다. 살인을 위해 살아온 여자아이, 그리고 그 살인기계는 물리적인 기계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지나친 활동은 결국 마모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고장 난 시계처럼 인간 역시 고장 나게 된다. 시계가 고장 나면 필요한 부품을 대체하여 수리하거나 혹은 폐기물로 간주하여 버리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은 폐기물처럼 다루면 안 되나 그렇게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중2병 데이즈> 2권에 새롭게 등장한 소녀인 슈, 그녀는 조직 내에서 베스트 5에 들어갈 정도로 매우 좋은 실력을 가진 암살자다. 그 소녀의 암살기계적 능력은 갈까마귀왕인 연오에게 큰 타격을 줄 정도로 강력하고, 연오의 동생 린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강했다. 그런 슈가 조직에서 나와 연오 앞에 나와 대결을 요구하고 있다. 연오에게 나타난 슈는 더 이상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인 조건을 만족할 의식주가 고려해야 하나, 의식주적인 문제를 지나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가문화라는 것을 즐겨야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오직 인간만이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이용해 여가생활을 할 수 있다.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취미생활 영위와 능력을 향상시킬 있는 것이다. 과연 슈라는 여자아이는 그런 것이 있었을까? 아니라면 슈가 조직에서 탈출하여 연오에게 찾아갔는데, 그 연오에게도 그런 것을 찾아내었을까?

인간이 인간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 의식주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연오는 작은 집에서 기거하면서 예전보다 호화롭지 못한 생활에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조직에 있으면 카드에 적립된 돈을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었고, 임무 중에 허름한 곳이 아니라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식사 때마다 편의점에서 김밥, 도시락, 라면 등과 같은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활에 연오는 예전에 큰 대우를 받던 자신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지금의 소박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긴다.

연오가 슈에게 한 대사지만,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의 명령이나 억지로 만들어진 틀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로봇처럼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힘들고 괴로워도 자신의 삶을 사는 게 행복하다고 여겼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자신도 보통 사람처럼 학교에 가고, 집에 가고, 친구를 만나 어울리는 것이 바로 삶이란 것이다. 물론 연오는 그런 삶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직에서는 오로지 살인과 살인, 자신의 적인 마술사조직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에 의미 따위는 없다.

단지 자신의 조직에서 활동하는 암살기계고, 눈앞에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만 존재했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닥치는 대로 죽이고 죽여 자신의 손에 피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왜 연오는 그런 갈까마귀왕이란 암살왕의 호칭을 버리고 이런 삶을 선택했을까? 그건 어떻게 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욕망에 대한 자신과 그 자신에 대한 회한일지도 모른다. 연오가 처음 암살요원으로 되었을 때 자신은 이미 그 세계에서 초짜에 불과했다. 자신을 이끌고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전자가 있었을 것이다. 연오는 그 앞에 있는 사람의 등을 보면서 동경심을 느꼈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대상에 다가가면 갈수록 그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에서 그 대상을 거세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이유는 바로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나면 바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양심을 느끼며, 평생 살아가야 한다. 카니발이란 축제는 본래 식인이란 의식이다. 축제는 한편으로 식인행위에 대한 변이된 행사이다. 죽은 자에 대한 추모는 곧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치유의식이다. 갈까마귀왕인 연오가 자신이 동경한 선배와 싸워 이김으로서 남은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허무함이었다.

그 허무함은 연오만 느낀 것이 아니라, 연오의 선배에게도 항상 의문을 가진 숙제였다. 적을 죽이고 또 죽이는 것까지는 좋다. 그렇게 살아가면 결국 그 살인기계는 무엇이 되는 것이고, 만약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이 나면 무엇이 되는 것일까? 슈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오는 선배의 결투와 조직의 이탈로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 떠나간 것이라면, 슈는 아무런 답도 모른 채 그저 뛰쳐나온 것이다. 슈가 나온 이유는 슈 역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연오가 연오의 선배를 동경했다면, 슈는 연오를 동경했다. 그런 연오가 조직에 나가고 슈는 자신이 가고자 한 목표 혹은 동경하는 대상이 없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적과의 싸움도 끝이 나서 평화가 왔다.

평화와 질서를 위해 싸운 이들이 평화와 질서가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살인기계로 만들어져서 살인기계로 살아온 자들이 살인기계로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목표가 사라진 것과 같다. 아무런 동기의식이나 삶의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슈의 정신오염이 그토록 심각한 것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고자 한 목표나 대상이 어느 순간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당하고, 심지어 고장 난 장난감이 되었으니 폭주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자기 방어 및 공격이다.

슈는 그래서 연오에게 찾아오고, 연오에게 결투를 신청했던 점이다. 조직에서 이미 정신오염으로 처분을 받아야 했지만, 적어도 암살기계 슈는 못되더라도 연오와 슈라는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자신이 자신이고자 한 슈는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3권의 리나처럼 육체적 붕괴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육체 이전에 정신이 붕괴했기에 슈에게 필요한 그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날 상황이 필요했다. 그것은 갈까마귀왕인 연오와의 목숨 건 싸움이었다.

물론 싸움은 시작했고, 연오가 목숨에 큰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과격한 전투가 되었다. 그러나 만약 연오가 이기든 혹은 슈가 이기든 그 결과에서 슈는 승리와 패배로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실존적인 자아에서 슈는 또 다시 자아에 대한 의문으로 고민할 것이다. 연오는 슈와 싸우기 전에 붕어빵을 사준 적이 있었다. 붕어빵, 생각해보면 대략 1마리에 500원 정도하는 따뜻한 붕어빵은 날씨가 쌀쌀해지면 길가 도로나 혹은 학교 근처에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간식이다. 분명 요원들이 치열한 싸움에서 늘 비싼 것만 먹었으나 오히려 붕어빵 1마리가 슈나 린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실존성에 대한 확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상품의 가치에 따라 결정하면 안되나 적어도 우리는 자본주의 구조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종종 결정되는 현상을 본다. 그런다고 하여 상품의 가치가 금액의 가치로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연오가 구매한 붕어빵 1마리는 얼마 하지 않은 것들이나, 적어도 연오의 가슴에 품어진 붕어빵 1마리는 린에게 무척 소중했고, 린의 붕어빵 1마리를 삼킨 슈는 린의 공격을 받은 점을 생각하면 500원 때문에 사람의 목숨이 오고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상품에 대한 값보다는 그 상품이 의미하는 하나의 가치라는 점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물질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그 물질에 무엇을 부여 하냐에 따라 큰 의미가 부여될 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던 린이 연오의 품에 남은 붕어빵 하나를 입에 물자 잔혹한 살인마는 순진한 여동생으로 변해있었다. 500원의 가치가 인간을 살인기계로 만들고 혹은 그저(?) 오빠와 사이좋은 여동생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아무 것도 아닌 붕어빵 하나에 엄청난 소동을 일으키나, 그 소동 자체가 빤짝임이 있었다.

작은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그 기회가 말이다. 슈에게 이때까지 그런 기회란 없다. 자신의 싸움은 자신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오직 기계적인 싸움으로 변해 있었다. 연오와 결투는 자신을 위한 싸움이나, 적어도 그 싸움은 1번의 싸움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그런 싸움만 바란 슈에게 심각한 중2병 소녀인 흑련, 뱀파이어 소녀 루나와 만났다. 도저히 정상적이지 않고 바보에 망상 병에 시달리는 소녀들을 말이다. 이들에겐 정상적인 이성이나 판단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기가 그래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자신이 피터 팬이 아닌데도 피터 팬이라고 말하고 피터 팬처럼 행동하는 흑련과 그 일행을 보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런 중2병적인 요소가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가에 생각하게 된다. 흑련을 입양한 흑련의 어머니는 연오가 과거에 조직에 있던 것처럼 자신도 초대 갈까마귀왕 아니 여왕이었다. 그녀 역시 잔인한 시간과 공간에서 피를 뿌리며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얻은 것은 무엇일까? 분명 흑련의 집은 부유한 편이다. 흑련의 어머니가 그렇게 부유한데도 흑련을 입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오 일행들이 배고픔에 지쳐있을 때 장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카레를 해주는 흑련의 어머니는 마치 친어머니처럼 흑련과 흑련의 친구들을 대해 주었다. 그녀 자신에게 빛나는 순간은 아마 흑련에게 어머니로서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요리를 해주고, 요리해 준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었을 때 흑련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조금은 빤짝이지 않았나 하는 기분이 든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흑련의 어머니는 연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저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말이야, 언제까지고 반짝거릴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또한 기관의 기관장으로 활동하는 노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함이, 가장 위대한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법이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천재가 아니니까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바보들의 몫이죠.”

비일상 속의 인물들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분명 일상적인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다. 그 나름대로 치열한 삶과 어두운 나락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바보처럼 앞을 뛰어나가는 그들의 평범함 바보짓이 빛나는 청춘인 것이다. 흑련의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를 보며, 연오에 대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넘기 위해 흑련을 입양했을 것이다. 솔직히 30대 중반 정도 되는 여성의 딸이 여고생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물론 있을 수 있어도 남편 없이 혼자 키운다는 조건 자체가 성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삶을 남들처럼 살지 못해 의미를 찾아 혹은 의미 따위는 모르고 그저 뛰쳐나온 청춘들에게 그저 필요한 것은 나는 지금 여기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이다. 슈에게 다시 돌아 가보면 슈는 자신이 살아갈 목적의식이나 목표들이 없어졌다. 그저 살인기계로서 처분당하는 운명이었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연오를 찾아 왔을 때 붕어빵을 먹고, 카레를 먹고, 게임을 하면서 슈에게 이때까지 해보지 못했던 경험과 추억을 새긴 것이다. 목숨 걸고 싸우다가 어느덧 아침 해를 연오와 바라보며 자신의 현재를 찾아간다.

인생이란 단순하고 복잡하고, 쉬우면서 어렵다. 사람에게 살아가는 것이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더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삶의 의미조차도 없다면 죽음에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로 이어져 있는 동상이몽이다. 같은 것에서 다른 것을 보나, 그것은 곧 같은 것이다. 흑련의 난동은 결국 연오조차도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거대한 세상에서 톱니바퀴 불과하다. 하지만 그 톱니바퀴 자체에도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그 작고 작은 하나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충분히 만끽하고, 거대한 세상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보여줄 수 있을 대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순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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