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DxD 9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하이스쿨 DXD 9권에서는 효도의 새로운 발전을 보여주는 편이다. 그 동기는 이때까지 효도는 항상 리아스와 같이 행동을 하던 자에서 이제는 리아스가 없는 상태에서 싸움을 받아들인 점이다. 물론 자신의 적룡제와 이블피스 속성이 가져다준 힘은 잠시나마 리아스를 소환했고, 효도가 찌찌드레곤인 만큼 리아스의 가슴과 그리고 그 가슴의 유두를 만지면서 힘을 각성한다고 했어도, 그 순간이었다. 효도는 이때까지 싸움과 다른 싸움을 해야 했다. 전투를 지시받는 말이 아니라 전투를 지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효도는 2학년, 리아스는 3학년 결국 항상 행동하는 관계가 아니라 가끔은 따로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이 놓인 것이다.

 

이번 9권은 2학년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기에 그동안 리아스와 같이 행동한 오컬트부 중에서 효도의 친구들만이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아시아, 이리나, 제노비아와 같이 교회트리오, 키바와 선생으로 참석하던 로스바이세 정도이다. 고문인 아자젤 정도였고, 그 외에 학생회의 사지가 있었다. 그들이 만난 것은 교토의 구미호 일족이다. 한국에선 구미호라는 요물은 매우 강력하고 무서운 요괴이나, 일본은 한국과 달리 다소 신적인 요소로 인정받는 모양이었다. 교토의 오래된 유산과 구미호의 신력이 균형을 유지하는데, 효도가 갈 때 그 구미호 일족 우두머리가 납치당했다.

 

게다가 납치당한 것도 모자라 이상한 실험까지 하는 것이다. 효도가 교토 신사에 들렸을 때 그 사건을 조우하게 된다. 강력한 악마와 드레곤이 깃든 효도로서는 거슬려 갈 수 없는 운명이었기에 쿠노라는 작은 구미호와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오해와 그리고 알고 보니 쿠노의 어머니가 이상한 자객에게 납치된 것으로 9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번 9권의 특이사항은 이때까지 효도가 상대해야할 존재는 처음에는 타천사, 악마라면 점점 갈수록 외국의 신과 백룡제 일행, 이제는 그 백룡제와 적룡제까지 잡으려는 또 다른 존재와 싸워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웅이란 존재였다. 영웅은 악마, 천사, 타천사처럼 강력한 육체까지 가지지 않았으나 그런다고 그 강력한 힘은 악마, 천사, 타천사를 능가했다. 삼국지 조조, 잔 다르크, 해라클래스, 지그프리트라고 하면 실제 역사적으로 혹은 신화적으로 영웅으로 받들어진 존재다. 그런 인간의 영웅들이 나타나 악마와 타천사, 그리고 드레곤을 무찌르는 이야기는 인간이란 존재가 인간 이상의 존재를 정복하거나 타도하는 것이다. 효도의 경우는 드레곤과 악마 속성 모두 가졌기에 인간영웅에게 최고의 적이다.

 

효도가 항상 강한 적과 만나면서 자신의 약함에 스스로 자책하고, 저에게 받은 경멸이었으나 이번에는 오히려 적이 효도를 진정한 라이벌로 생각했다. 적룡제의 힘에 빠져 스스로 파멸하지 않은 효도라는 존재가 더욱 무서웠던 것이다. 꾸준히 단련하여 적룡제의 힘을 키우며, 체스의 말 중에서 폰인 효도가 또한 각성하여 비숍, 나이트, 룩의 힘을 모두 사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효도가 그렇게까지 몰린 전투는 없었을 것이다. 피닉스와의 결전에서는 효도는 자신이 의지할 리아스라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리아스는 잠시 나타나는 정도고 조조 일행과 싸우면서 주변 친구들은 조조 일행에게 모두 패배해 쓰러져 있었다.

 

말인 효도가 킹이란 위치에서 최고의 전략을 내세워 이기려고 했으나, 결국 힘의 차이가 전략을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아픔에서 그는 또 다시 좌절의 눈물을 맛본다. 그렇기에 효도는 더욱 강하게 되는 것일까? 모든 서사에서는 극에 몰리는 상황이란 것이 있다. 위기에 처한 극도의 위기에서 반전적인 형태로 나온다면 결국 주인공 편이 승리하는 편이다. 그러나 하이스쿨 DXD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이겨도 이긴다는 느낌보다 뭔가 조금 부족한 기분이 든다. 효도가 강해져도 여전히 거대한 벽 앞에 막혀있다는 것과 자기 자신이 가야할 길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9권은 바로 그런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패도가 아니라 왕도로서 걸어야 하는 자신의 길을 다시금 바라보는 것이다. 리아스를 떠나 자신이 킹이 되어야 할 경우 그는 어떻게 전투를 이끌어야 하는가? 하지만 9권에서 효도는 계속 씁쓸한 맛만 보고 간다. 그래서 그는 점점 훌륭한 전사로 변모해간다. 진지한 자세라는 점과 더불어 단지 지는 것에 자책하는 것보다 팀을 같이 이끌어가는 것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다. 효도는 이번 편에 성장하면서 이때까지 적룡제 안에 담긴 과거 적룡제 숙주들과 대화를 이끌어 낸다.

 

역대 최고의 적룡제의 전사이던 에르샤와 벨자드는 다른 적룡제의 전사와 달리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힘에 미쳐 어둠의 감옥 속에 스스로 봉인하지 않았다 2사람의 최고 적룡제의 전사는 효도가 새로운 찌찌드레곤의 힘을 발휘하여 더 강해지자 떠나게 되었다. 이때까지 최강인 자가 자신보다 더 강한 효도가 나왔기에 그들은 미련을 버리고 가는 것일까? 그들은 강한 힘을 가졌기에 강한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효도가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오컬트부와 더불어 적룡제 내부에 갇힌 저주받은 선배들의 달램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파괴와 소멸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효도가 찌찌드레곤으로 되어 리아스의 가슴에 미친 듯이 집착하여 그것 외에는 아무런 것들은 원하지 않는 그것 자체가 적룡제의 저주가 풀리는 점이다. 무조건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지키고, 옆에 친구들을 서로 보듬어 가는 것이다. 힘에 미쳐버린 자에게 외로움만 존재하니, 그것을 위안으로 주는 것은 마음이란 점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효도의 마음은 저주에 걸린 그들을 언젠가 해방시켜 줄 것이란 희망이었다.

 

그런 의지가 효도에게 큰 힘을 주었다. 하지만 상황은 제천대성인 원조 손오공이 나오면서 정리가 된다. 이때까지 석가모니 부처 옆에서 수많은 문제와 위기를 해결해준 전설의 용사가 나타난 점이다. 하이스쿨 DXD 설정 상 성경 속의 신은 죽었으나, 불교나 고대 그리스의 신은 계속 존재했다. 처음에는 성경 속의 존재로 시작하다 계속 북유럽 신화와 일본 애니미즘 종교관, 불교와 도교적 요소까지 추가시켰다. 일전에 애니메이션으로 캄피오네라는 작품에서도 확실히 신화적 요소를 많이 반영했다.

 

신화적 요소는 결국 그 민족이나 국가가 가지고 있던 공통적 집단 무의식이다. 인간에게 이성이란 영역이 있어도 무의식이란 본질적 요소는 매우 강하다. 하이스쿨 DXD를 보면 그 인간이 가진 무의식의 정체성을 분리와 단절, 회피와 파멸보다는 그것을 넘어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교토의 구미호 대장이 납치당해 실험당한 것도 효도 일행들이 공격당한 이유 역시 그런 조화와 공존을 바라지 않은 존재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한 배타적 행위는 여전한 인류의 고민이다. 차라리 효도의 찌찌드레곤처럼 본능적 삶의 원동력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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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신데렐라 1
눈미 유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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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결국 신데렐라에 대한 신화적 욕망이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욕망이란 무의식적인 구조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신데렐라 신화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콩쥐팥쥐 동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콩쥐팥쥐 동화이야기가 배경적 요소로 따지면 조선시대다. 게다가 농경사회의 요소에서 분명 근대화 시기의 외국문물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기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 신화는 유효하다. 아니라면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중에서 <캔디 캔디>와 같은 작품도 좋은 사례다. 한 때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캔디 열풍이 일어났다.

 

테리우스라는 미남이 캔디라는 순수한 소녀를 사랑하는 이야기, 그래서 탄생한 언어가 캔디 이데올로기다. 캔디 이데올로기와 신데렐라 신화는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분상승의 꿈을 노리는 여성이 가지는 환상이다. 지금의 환상을 가지고 논하자면 <캔디캔디>와 같은 고전 만화를 보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없으나, 그런 구조적인 서사는 계속 돌고 돈다. 단지 스토리텔링의 구성에서 다른 이야기나 소재를 집어넣어 다르게 보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신화적 요소는 같다. 지금이나 몇 십 년 전에 흥행한 <캔디캔디>나 구조적인 분석에서 별로 바뀐 것은 없다.

 

작품의 분석대상에서 그런 대상에 대한 구조적 배열은 중요하다. 통시적인 작품을 놓고, 공시적으로 같이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의 중요한 갈등은 아마 계모와 주인공인 소녀의 관계다. 기본적으로 신화라는 것은 동화로 나오고 신데렐라 이야기나 콩쥐팥쥐 이야기도 물론 동화책으로 나온다. 하지만 동화라는 것은 아이가 읽기 위한 이야기나, 그 이면에는 잔혹하고 끔찍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가령 콩쥐팥쥐에서 콩쥐가 부임한 관료의 아내로 되면서 동화가 아닌 신화의 은밀함을 밝힌 도서에서 팥쥐는 죽임을 당하여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 젓갈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신데렐라의 이야기에서 실제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신데렐라의 구두를 신기 위해 발등과 발가락을 도끼로 찍어 억지로 넣었다고 한다. 덕분에 유리 구두에서 피가 새어 그 거짓말이 탄로 나자, 동화책과 달리 계모와 언니는 도부수 손에 처형을 당한다. 잘 생각해야할 점은 도부수가 목을 도끼로 찍어 벤다는 점에서 기요틴이 보급되기 전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신데렐라 신화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고, 언어학적으로 신데렐라는 먼지 옷을 뒤집어 입은 소녀라고 한다.

 

신데렐라의 이야기에서 언어학적인 추적에서 밝힌 것처럼 신분이 매우 낮다는 것이고, 그 신분이 낮은 여자가 신분상승을 위해 남자와의 만남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가부장적인 가족체계에서 여성의 종속을 합리화하는 수단하는 남성지배체계와 더불어 자신의 노력보단 단순히 남자에게 의지하려는 속물근성의 여성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 신데렐라 신화의 한계성이다. 이와 반대가 되는 신화는 온달신화가 있다. 평강공주가 내려와 바보온달은 대장군으로 만드는 고구려시대의 이야기는 신분상승구조에서 옛날에는 여성들도 만만치 않게 정치적 입지도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권력의 왕좌나 신분 대신 자본력이 대체되고, 민주주의 요소의 증가로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이 아예 차단된 것이 아니라 길가에서 우연히 스치기도 한다.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높은 신분인 대관관료나 중세유럽의 봉건귀족이 지나가면 모든 농민이나 백성들이 머리를 숙이며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따라서 그런 통시적 조건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어본 <절규 신데렐라>는 그런 기본적인 신데렐라 신화에서 보여주는 가난한 소녀와 억압된 자유가 기본적인 명제가 되었다.

 

단지 다른 점은 계모와의 갈등이 아니라 친부와의 갈등이다. 신화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에서 딸은 아버지를 아들은 어머니를 따르게 되어 있으나, 딸의 연적이 되는 어머니는 이미 돌아간 시점이고, 아버지가 모든 생계와 가계살림을 도맡는다. 편집적인 자녀들 관리가 지나치다 못해 정신병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형제관계에서 언니가 2명이 아니라 오빠와 언니가 각각 있다. 게다가 나이도 15세란 점에서 14세의 중2병이란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갔다. , 2차 성징기로 통한 심리적 내적 갈등이 없는 구조다.

 

이런 시기에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보다 외부와의 관계에서 갈등한다. 자기만의 공간이 아니라 자기 외적인 공간과의 투쟁이고, 그 투쟁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사회적인 도덕과 싸워야 한다. 그 사회적 도덕이란 윤리적 가치나 혹은 법적인 규칙이 아니라 유해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나공주라는 소녀다. 미모도 그러하나 아버지의 배경에서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작품을 보면 오디션의 우승은 전반적으로 나공주로 되어 있다. 바로 그것이 도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덕이라고 하여 반드시 사회윤리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 사회적 흐름을 쥐고 있는 하나의 세력이나 권력을 의미한다.

 

다라서 해인이의 적은 내부의 관계인 가족이 아니라 가족 외라는 것이다. 신데렐라 신화는 본래 가족 내부의 문제를 가족 외부에서 해결하고 기존 가족은 버리고 다른 가족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 편입과정이 신분상승이란 점에서 <절규 신데렐라>는 기존 신데렐라 신화와 대조적인 부분을 보여준다. 여기서 또 다른 구조는 신데렐라를 구원해주는 존재이다. 작품 초반에 왕자는 작곡가 강동호로 나오고, 신데렐라의 조력자는 케빈이 된다. 문제는 강동호나 케빈 모두 신데델라인 해인이를 마음에 든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신화는 왕자가 1명에 그 왕자에 대한 구혼자는 다수이고, 여기서는 다르게 2명의 남자로 구성된다. 아직 1편만 봤기 때문에 서사적으로 어떻게 끝을 맺을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에서 해인이 가지는 갈등은 아버지와의 갈등, 케빈과 강동호와의 삼각관계가 초반에 제시된다. 서사구조에서 발단-전개-위기-절장-해소 5가지 단계에서 이제 전개과정이 모인 것이다. 물론 그 사이의 위기는 있었으나 그 위기는 이야기 구조의 하나의 조건성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서사의 진행에서 아쉬운 부분은 초반에 케빈의 등장에서 너무 급진적으로 친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케빈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를 지나칠 때 역시 너무 우연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가게를 지나가기 전에 미리 사전에 하굣길에 쇼윈도에 비추어진 의상과 그 너머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아쉽거나 혹은 자신의 용모를 조금 가꾸는 모습을 보였다면, 더 부드러울지 모른다. 작품에서 좋은 부분은 역시 표현력인 것 같다. 주인공 소녀가 아버지의 압박 아래 TV도 못보고, 라디오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

 

낡아버린 워크맨 하나에 동요만 부르는 해인은, 오로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어머니와의 추억이다. 어머니 앞에서 부르는 노래란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 기억만을 담아 오디션에서 부르고, 오디션이 아니라도 길가에 흥얼거리면서 간다. 순수한 그 마음을 토대로 변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빛나는 장면은 좋았다고 본다. 만화라는 것은 이미지의 세계다. 소리를 내지 않은 종이로 구성된 매체이다. 그 종이에서 소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그림체는 좋았다. 빛이 나듯 음표가 주위를 돌아가는 것과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열중하는 모습은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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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입니다. ㅎㅎ. 눈미가 감동하겠어요.
순정만화를 새롭게 보도록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리뷰였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3-25 19:21   좋아요 0 | URL
그것이 리뷰하는 사람의 임무죠.
눈미가 님에게 칭찬받고 싶어한데 이참에 칭찬을..ㅋㅋ

제 블로그에 올렸어요! 그리고 눈미도 블로그에 덧글을..ㅋㅋ
 
하이스쿨 DxD 8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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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DXD 7권까지는 1권부터 차례를 지키며 진행한 라이트노벨이라고 한다면 8권을 보면 조금 다른 감을 알 수 있다. 8권의 1화는 1권 후의 이야기, 2화는 2권 후의 이야기, 3화는 3권 후의 이야기, 4화와 5화는 4권 후의 이야기, 6화는 5권 후의 이야기, 7화는 7권 후의 이야기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보충되어 나온 것이다. 내가 하이스쿨 DXD 라이트노벨을 읽으면서 의아한 점은 애니메이션 하이스쿨 DXD

는 라이트노벨의 1권과 2권 분량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나온 부분 중에 일부 공백이 있었다.

 

그것이 1화와 2화의 이야기다. 가장 재미있으면서 효도가 가장 욕망에 솔직한 부분이었다. 의뢰를 받는 악마, 하지만 소환 술을 부리지 못해 자전거를 타고 밤길을 힘들게 찾아가 의뢰인을 만난다. 하지만 의뢰인들은 못 믿는 기분으로 효도를 무시한다. 그런 효도를 리아스가 직접 데리고 가서 인간과의 계약업무를 맺으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일본 전국시대 문화를 동경하는 외국유학생을 만난다. 그것도 노란 긴 머리를 소유한 키가 큰 여성이나 아주 무섭게 생긴 갑옷을 거친 것도 모자라 장도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밤길에 대학교에 찾아가서 노트를 찾는 장면에서 그 여자 유학생은 밤길이 무섭다고 장도를 꺼내어 여기저기 휘두른다. 갑옷도 무겁고 칼도 제법 무거운데, 그것을 마구잡이 휘두르면서 하는 말이 무서워서 칼을 휘두른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효도의 반응은 “댁이 더 무서워!”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상당히 개그요소도 강하고, 폰이라는 신분으로 킹인 리아스에 대한 무조건적인 갈망은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프로이트 이론적으로 인간은 유아기 시절 구강기에서 어머니의 가슴을 빠는 것에 대해 논하는데, 효도는 그것이 유아기에서 항문기 → 남근기 → 잠복기 → 생식기로 이어질 때, 효도가 고등학교 2학년 기준으로 10년 전에 남근기 무렵에 어떤 아저씨를 만나서 그의 성벽이 생겼다.

전설적인 용인 적룡제가 숨 쉬는 효도의 몸이나 이미 그는 적으로부터 찌찌드레곤이란 별명을 얻었다. 효도가 그렇게 가슴에 충실하게 반응한 이유는 3번째 <메모리 오브 젖가슴> 편을 보면, 옛날이야기를 하던 변태아저씨의 인형극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효도가 어린 시절이고, 단지 여자의 가슴을 찌찌푸딩을 먹는 것에서 효도는 여자의 가슴을 빠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푸딩을 먹는 것이다. 그가 빠는 가슴은 아기시절 어머니의 가슴이다. 남자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슴을 빠는 것에서 더 이상 빨지 못함에 대해 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그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부부관계로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자기검열은 결국 어머니를 대신할 여성을 찾는다. 물론 그 여성은 자신의 자녀에게 양보해야 하며, 아버지는 그 자식에 대해 질투를 한다. 여성의 가슴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효도는 여자의 가슴에 집착하는 반면, 효도의 라이벌인 백룡제 발리는 여자의 허리와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다. 생명을 낳는 것과 유지하는 것에서 보는 관점은 다르나, 효도의 성적인 욕망은 이미 한도를 지나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하게 한다.

 

근본적으로 숨어있는 에너지, 리비도를 지나 하나의 삶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에로스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인 욕망을 지나 자기 신체적 활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적룡제의 예전 주인처럼 힘에 취해 그대로 자신을 적룡제에게 맡겼더라면 효도의 육체와 정신은 모두 소멸했을 것이다. 단지 적룡제의 주인들은 모두 드레이크의 영역 깊은 곳에서 어둠의 그늘에 쌓여 아무런 구원도 받지 못한 채 죽어도 죽은 것이 되지 못했다. 효도의 힘이 결국 파괴로의 본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염원이란 점이 형성하게 된 것은 그 변태아저씨의 연극이란 점에서 새옹지마라는 속담이 되는 것인가?

 

하이스쿨 DXD 8권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그저 효도의 수난시대와 바보모습만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 거의 재미를 위한 편이라고 할까나? 특히 <300>에서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전사들의 용기를 대신하여 효도가 300명으로 늘어 학교 내의 모든 여학생들의 옷을 벗기며 변태행위에 즐기는 모습은 과연 맞는 작품이었다. 단지 아자젤 선생이 모든 것의 원흉이고, 효도는 모든 것에서 본능적이고, 그 본능이 여전히 놀림감이었다. 부원들에게 놀림 받는 효도의 모습은 이때가 가장 치욕적일 것이다.

 

본래의 효도조차 가짜 효도를 보면서 분개하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아케노 선배가 유혹하려고 할 때 그것에 가지 못하고 분신이 가서 사라지는 모습에서 그 아까운 부분을 놓친 것이 더 후회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망가지는 모습은 물론 효도만이 아니다. 리아스의 오빠이면서 4대 마왕인 서젝스가 더욱 심각하다. 그의 메이드이면서도 퀀인 그레이피아가 휴일을 맞이하여 평소의 메이드가 아니라 시누이로서 리아스에게 찾아온다. 피닉스의 혼담에서 사실 속으로 반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행하던 그레이피아는 겉으로 리아스에게 그레모리가문의 시종인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매우 무섭고 철두철미한 시누이였다.

 

마왕인 서젝스가 엉뚱한 장난을 치면 쥘부채로 머리를 사정없이 날리는 모습은 레이비탄 세라포르와 맞먹는 악마라는 증거인지? 아니면 생뚱맞은 남편을 보필하는 확실한 와이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런 남편과 그 남편 주변의 마왕의 상황을 보니 좀 심각하다. 장난이 너무 지나쳐 자신의 권위를 버리는 모습은 색다른 맛이다. 흔히 SF 특수촬영물에서 나올 법한 의상으로 레인저 5인조를 형성한다. 누가 봐도 다 알만 한 사람들, 그런데 리아스는 그것도 모른 채 시련의 3단계를 효도와 같이 돌파한다. 평소에 눈치에 약한 효도도 효도 나름이나 리아스 역시 눈치가 없는 것이 드러났다. 진짜 어울리는 선배와 후배,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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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즈
오카무라 텐사이 외 감독, 치바 시게루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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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기억>

인간은 언제나 망상과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화려한 기억은 분명히 소중하고 아름답고 지울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언제나 과거일뿐 현재가 아닙니다. 과거가 지나 현재를 만들어 나가면서 그 과정과 결과가 수없이 교차합니다. 그런 과정과 결과가 교차하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순간에도 과거로 접어들고 미래가 현재로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것에 대해 다시 짛어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메모리즈 1번째 그녀의 기억입니다.

 

메모리즈 중에서 가장 내용도 길지만 한편으로 어렵고도 난해한 일본 현대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일본 전 근현대사에 대한 비판의식이 매우 강렬합니다. 이 작품을 리뷰하기 전에 원래 이 작품은 일본 군국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군국주의적인 이데올로기도 문제이지만 그런 지나간 허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할 겁니다.

 

스토리의 골자는 우주에 버려진 우주선을 수거하여 다시 재활용을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우주청소부들이 난파된 우주선에 들어가서 거기에 기억된 프로그램에 의해 망상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망상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문제의 인물 에바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그저 보통 여자로 보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상당한 미인에다가 이지적인 모습도 갖춘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목소리의 기능을 상실하여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카를로스는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음을 깨달아 카를로스를 죽여버립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과 진리를 위해 현재 완벽한 이상적인 대상을 박제화 시킨다는 그런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합니다. 완벽한 미녀와 미남을 죽여 박제하거나 혹은 알콜 병에 집어넣거나 인간의 망상은 도가 지나치면 윤리의식마저 흐려지기 때문이죠. 그녀는 자신만의 망상이 영원히 이루어지도록 이 우주선을 자신만의 세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어이없는 사고관념을 지닌 여자의 우주선에 탑재한 우주청소부들은 그녀가 만든 환영에 시달립니다. 주인공 중에서 우주청소부 하인즈와 미겔이 등장합니다. 하인즈와 미겔이 우주선을 탐사하자 미겔은 그녀가 만든 환영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고 그 세계로 다가갑니다. 그러나 하인즈는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며 미겔을 말리려 합니다.

 

우주선의 화려한 장식은 손을 대자 모두 부스러지고, 화려한 음식은 모두 썩었고, 게다가 화려한 들판초원은 쓰레기와 오수로 가득한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미겔은 현실을 보는게 아니라 자신이 카를로스처럼 된것처럼 착각하여 가상세계에 살고 있는 에바와 사랑을 속삭입니다. 그러나 막상 에바는 해골과 해골을 덮고 있는 가죽만 앙상하게 남아있습니다. 인간의 지나간 망상은 그대로 버려야 하고 현실로 가야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지나간 망상에 집착합니다.

 

이런 바보같은 일에 미겔과 에바뿐만 아니라 현실을 보는 하인즈까지 위협합니다. 하인즈는 사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을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던 하인즈는 옥상에서 뭔가 하던 중에 자신의 딸이 지붕에서 낙사하여 죽습니다. 그런 충격에 의해 하인즈는 평생 마음의 상처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미겔을 현혹하던 에바는 그런 하인즈의 과거를 불러옵니다. 죽은 딸이 눈앞에서 행복한듯 웃고 있지만, 그는 처음에 그 환상에 빠지다가 잘못된 것을 알고 다시 현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지붕에서 낙사하여 죽은 모습을 비추면서 하인즈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을 상기시킵니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과거의 집착은 미겔, 하인즈뿐만 아니라 전자파로 통해 우주청소부들의 비행선까지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비행선은 에바의 우주선에 향해 광선포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자각을 거부하는 에바와 에바의 우주선은 마치 한 송이의 붉은 장미로 변해 우주를 떠돕니다.

 

이렇게 메모리즈는 인간의 어리석은 집착, 편견, 고정관념에 대해 심각하게 비판합니다. 우리 인간은 이성과 지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물론 감성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어긋난 관념이 마치 정당한 이성과 지성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문제는 이런 달콤한 유혹은 개인만 아니라 사회나 대중들에게도 광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 유행할 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은 마녀가 아닙니다. 그러나 대중과 사회는 죄 없는 사람이나 바른 지식인들을 마녀로 몰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인간은 광기에 빠진 인간들에게 비이성적인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죠. 비이성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망상과 허울 그리고 그런 어긋난 이념이 실제로 벌여지는 현실, 메모리즈는 이런 어긋난 인간의 사고를 비판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최취병기>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2번째 작품 최취병기를 적어보겠습니다. 감독은 오카무라 텐샤이로 흑의 계약자를 만든 사람이고, 각본은 오오토모 카츠히로가 맡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메모리즈 3번째편과 달리 현실에 있을법한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영화서사학이란 도서를 참조하면 서사구조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1번째는 신화와 역사 등과 같은 과거의 일, 2번째는 현실세계에서 있을법한 일, 3번째는 미래나 공상세계와 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메모리즈 시리즈 중에서 2번째편이 가장 현실성이 가깝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타나카 노부오입니다. 그는 한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과학자입니다. 그는 작품 초반 감기에 걸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감기가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 출근하는데, 본인의 회사는 제약회사라 선임연구원이 연구소장 방에 있는 감기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해서 노부오는 소장 방에 있는 약을 먹습니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시작됩니다. 연구소 안에 사람이 냄새를 맡으면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겨져 나옵니다. 이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다음날 연구소 모든 사람들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러나 노부오만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소장 방에 가서 이 상황을 본사에 연락하는데, 본사에서는 노부오에게 당장 동경시 본사로 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작품 초반에서 독가스로 인해 모든 연구실 사람들이 죽고 그런 독가스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여파가 커지게 됩니다. 노부오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경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노부오가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 아니 모든 생명체가 죽어 버립니다. 게다가 노부오 중심으로 마을 일대가 유령도시가 됩니다. 그런 노부오에게 일정거리에 닿는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로 죽어 버립니다. 그래도 노부오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왜 죽는지 생각조차 안하고 계속 동경으로 향합니다.

 

위에서 시킨다고 그대로 따라하기 바쁜 노부오이었습니다. 노부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날씨가 겨울인데 벚꽃과 해바라기가 동시에 개화한 겁니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보면 계절이 이상하여 꽃이 많이 펴서 꽃냄새로 인해 인간의 호흡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알고보면 바로 노부오가 숨을 쉴때마다 내뿜는 가스가 원인이었습니다.

 

그 가스의 원인은 규명하지 못합니다. 단지 그냥 알약은 문제가 없으나 어느 다른 프로세스에 의해 인간내부 화학공장에서 발생된 독가스라고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저는 관료주의와 무절제된 약품 오남용도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독가스가 바로 인간이 편하게 하기 위한 알약이니깐요.

 

의약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인간을 독가스적인 존재로 만드니깐요. 사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생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발전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발전만큼 주변에 서식하는 미생물도 강력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황색포도상구균은 단순히 인간주변에 서식하는 세균에서 이제 슈퍼박테리아까지 되었으니 무서운 환경적응력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편익에 의해 자기 스스로를 약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결과가 이런 독가스일까요? 그런 독가스를 내뿜는 노부오는 동경에 있는 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자기가 문제발생요소라고 생각치도 않습니다. 인간의 관료화에 따라 인간 스스로를 기계적인 도구로 전략해버린 것이죠.

 

독가스가 동경으로 오자 일본정부는 난리가 났습니다. 노부오를 제거하기 위해 각종 전략을 세웁니다. 바주카포를 쏘우거나 미사일을 날리거나, 그러나 노부오에겐 행운의 여신이 붙었는지 상처하나 못 냅니다. 점점 노부오를 저지하지 못하자 정부에서는 모든 전투 병력을 투입하여 노부오를 죽이려고 합니다. 관료체계에서 시키는 데로 하던 그를 이젠 제거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시키다가 이제 이용가치가 없거나 불이익이 되면 그대로 제거합니다.

 

 

<대포도시>

전에 어느 분이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 작품을 리뷰해달라고 요청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중에서 난해한 작품을 만드는 분 중에 한분이 오오토모 카츠히로인데, 개인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처럼 뭔가 독특하면서 개성이 넘치는 애니메이터입니다. 우선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키라입니다. 오시이 마모로의 공각기동대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나오기 전에 상영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키라입니다. 1988년에 제작된 것으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러너 이후 일본에서 제일 먼저 제작된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입니다. 암울한 미래, 방황하는 청소년, 희생되는 어린이들, 과연 미래와 희망이 뭔가에서 그렇게 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미로 보기보단 한번 작품 감상하다는 느낌을 보시면 좋을 겁니다.

 

1988년 아키라 상영 이후 나온 것이 1991년 노인Z, 그 다음이1995년 메모리즈입니다. 메모리즈는 총 가지의 에피소드를 모은 옴니버즈 작품입니다. 상당한 높은 작품성과 실험도가 돋보입니다. 1편은 그녀의 기억, 2편은 최취병기, 3편은 대포도시입니다. 3번째 작품인 대포도시는 메모리즈 시리즈 중에서 분량이 제일 작지만,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는 정말 이상합니다. 모두 군인처럼 군복을 입고 전투 헬멧을 착용하고, 게다가 마스크까지 차고 일을 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도시 건물에 모두 대포가 달려 있습니다. 적은 누구인지 위험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대포 안에 탄환을 집어넣고 모두 발사하기만 기다립니다. 학교 학생들도 이상합니다. 학교교복이 모두 군복처럼 생겼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두 무기를 다루는 지식만 배웁니다. 집에 있는 어머니도 이상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쟁이란 현상이 하나의 생활처럼 다가오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누구 하나의 개개인적인 특성보다는 전체적인 구조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만약 기계처럼 움직이지 못하면 여기서는 바로 아웃입니다. 주인공 소년 아버지는 17번 포대에서 무기를 다루는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작은 실수로 인해 옆에서 미사일이 날라 가는데 얼굴에 아무런 보호구를 착용하지 못 한 채 가만히 서있어야만 했습니다. 같은 팀 동료들은 그나마 마스크도 쓰고 있었지요. 기계처럼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뭔가 조금만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고, 그 처벌이 매우 잔혹하기만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면 포대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화약에 독성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맨얼굴로 저 포탄이 앞에서 터지면 산업재해로 인해 소음진동으로 인해 고막이 손상당하고, 정신적인 충격과 신체전반적인 리듬이 깨질 겁니다. 게다가 화약에 나쁜 물질이 함유되었다면 화약가스가 인간의 폐로 들어와서 호흡기적인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개인 존엄성을 무시하고 지휘관은 미사일을 날려버립니다.

 

인간이 만들고 사용하고 도구가 이제 인간은 지배하게 됩니다. 서로 누가 많이 미사일을 날리는 것까지 점검해버리는 사회, 과연 이 세계에 있는 적은 누굴까요? 적의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을 소외시켜버리는 이 어긋난 사회는 어린 소년에게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소년과 아버지가 저녁을 먹은 뒤에 식탁 옆에 앉아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마시고, 소년은 하얀 종이 위에 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종이를 들어다보면 칼을 잡고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이 소년의 꿈이라는 것이죠. 꿈속에서 움직이는 소년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른과 같습니다. 칼을 들고 적을 대포로 밀어버리고, 강한 전투 병기를 보면서 좋아하는 모습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보입니다. 남과 경쟁하고 싸워 그저 올라가기만 바라는 이 소년, 과연 이 소년이 어른이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잠을 자러 방에 올라가는데 이상한 초상화가 보입니다. 소년은 그 초상화를 보며 경례를 합니다. 자신은 아버지처럼 탄환을 장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탄환을 발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런데 탄환을 쏘아도 과연 탄환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쏘기만 바쁜 세상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른 채 그저 남과 경쟁하여 좋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이 모순된 사회구조를 비판합니다. 그저 남을 밟고 경쟁하는 게 당연한 세계,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이렇게 메모리즈 3부 대포도시는 현실을 비판하며 막을 내립니다.

 

그런 제거하려는 의도와 달리 노부오의 독가스의 힘은 강력하게 됩니다. 독가스는 인간의 후각과 신경만 건드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계와 전자시스템도 망설을 일으킵니다. 노부오가 내뿜는 독가스는 이 사회에 오랜 병폐가 쌓여 그 병폐를 숨기면 숨길수록 오히려 역반응은 크게 날뿐이죠. 최후에 미국 첨단병기가 투입되어 가스는 점차 멈춘 듯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노부오가 저기 보이는 우주복을 입은 상태로 작전사령부에 들어온겁니다. 노부오가 상관이 시킨대로 서류상자를 내리고 헬멧을 열자 동경시는 다시 독가스로 물들이며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단지 시키는데로 했는데 그게 오히려 부작용을 낳게 되버린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떻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개인의 의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게 정당한 자유입니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오늘까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1권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조정에 의해 움직인다면 이것이 과연 자유일까요? 메모리즈는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상당히 강합니다. 3편째는 대포도시는 그야말로 어긋난 사회와 교육문제가 거론했으니깐요. 모두를 위해 합리적인 사고는 바르나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자신들의 합리성을 남에게 강요하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메모리즈 2편째인 최취병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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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DxD 7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하이스쿨 DXD 작가는 은근히 야한 것을 강조하여 독자의 관심만 끌다가 중요한 순간에 철학적 사고를 유도한다. 아주 도발적인 문구가 등장한다. “네게는 평화라도,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자도 있다는 말이다.”, 이 대사는 오딘이란 북유럽 신이 오면서 오딘에게 반기를 들었던 로키라는 신이 한 말이다.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일단 신화적으로 신이란 존재가 먼저인지 아니면 인간이 먼저에서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존재이면서 실제로 현실에 살아있는 존재다. 왜냐하면 신화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그 순간에 영원히 이어가는 존재이다. 미신이라고 믿을지 모르나, 우리는 인간의 가진 이성이란 사고로 통해 과학적 사고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나 딜레마에 포착한다.

 

이 순간, 인간은 자신의 유기적인 존재를 떠나 초월적인 그 무엇에 대해 의존하고 싶은 욕망을 심게 된다. 신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만들고 고통스럽게 당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이 죽으면 신이 된다. 안 그런가? 다 그렇지는 않으나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는 제사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신이란 존재는 언제나 우리와 곁에 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신화학적인 요소다. 직접 그 관념적 존재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의 눈은 형이하학적인 시각으로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념적 존재를 눈으로 보는 것은 형이상학적 존재의 관념을 그림이나 혹은 다른 것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이스쿨 DXD는 그런 요소들을 부각시켰다. 처음에 악마와 타천사의 투쟁, 악마와 악마의 투쟁에서 이제는 악마, 타천사, 천사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분법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오만 신화와 전설의 존재가 나온다. 마지막에는 삼국지의 영웅 중에 하나인 조조의 이름이 나온다. 어차피 인간보다 신이 우월한 존재라도 인류의 역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적어간다. 신이란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니면 신 그자체일까? 위대한 경전조차도 신의 말이라고 하나, 그 말을 적고 전승한 사람은 인간이다. 신이란 존재 그 자체가 글을 만들고 전승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사건은 오딘의 등장이고, 그 오딘이 왜 동양의 신을 만나려 하는가이다. 그에겐 북유럽 신이란 명칭과 함께 절대적 영역을 가진 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인 힘보단 서로 간의 유대감과 공감을 형성하려 했다. 이분법을 넘어 즉 동양과 서양의 관념을 넘는 것이다. 신이란 존재 역시 인간이 만든 문명 중에서 종교에서 다룬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사상과 관념을 지배하는 강력한 도구다.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기에 그 만큼 숭고하고도 아름답고 때로는 잔혹하며 냉정하다.

 

기본적으로 하이스쿨 DXD는 악마, 천사, 타천사로 시작하기에 성경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 “신은 죽었다.”에서 정말 이 라이트노벨에서 신이란 없고, 신을 죽일 수 있는 롱기누스의 창과 그와 맞먹은 게 나온다. 라이트노벨이 작가 개인이 만든 이야기라도, 결국 인간이 가진 전설, 신화라는 스토리텔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주인공 효도 잇세이의 적룡제마저 드레곤이란 존재이기에 서구의 신화 내지 전설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적으로 인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발현이다. 말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듣고자하는 것을 말이다. 하이스쿨 DXD의 말하고픈 욕망은 효도 잇세이다. 번뇌대장에 음흉하나 한편으로 자신에게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과 삶의 목표이다. 단지 효도 잇세이의 경우에 특이한 것은 적룡제가 젖룡제로 불리는 것이다. 그의 성적인 욕망은 여자의 가슴에 향해 있다. 그 가슴에 대한 번뇌는 그동안 적룡제와 백룡제의 부스트기어에 의존한 자와 다른 길을 걷는다.

 

이때까지 적룡제와 함께 하던 인간들은 자신이 가진 이성을 벗어나 폭력과 파괴의 본능에 빠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인간에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욕망이 있다. 삶과 죽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었기에 삶이란 것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적룡제의 힘에 빠진 자들은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어둠에 갇혔다. 죽음은 안식의 종착지나, 그 종착지에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어둠의 굴레에 갇힌 적룡제의 숙주만 있었다. 그런 점에서 효도는 그들과 달리 다른 길을 걸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 삶에 대한 인식이 있는 그 모든 존재에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상, 그 대상이 자신보다 소중하기에 자신의 안위마저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이 부서지거나 다쳐도 문제없다. 오히려 같이 앞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운 법이다. 효도는 그런 친구였다. 여자 가슴에 눈에 팔려 특히 리아스나 아케노 앞에선 그냥 철없는 남자아이나 이 2사람과 옆에 키바나 아시아가 위험에 빠지면 그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날린다. 그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날리는 것만큼 윤리적인 존재는 없다. 그래서 이 라이트노벨은 늘 말하고 싶은 것이 이분법적 사고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악마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나, 여기서는 악마가 과연 나쁜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천사들의 수장 미카엘조차 악마를 멸하기 보단 마왕 루시퍼와 손을 잡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 그래서 평화가 평화를 누리는 자에게 행복이라도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아마 권태감인가?

 

그런 권태감은 백룡제가 가장 많이 느낀다. 그는 자신의 최고의 라이벌인 적룡제를 두고, 로키를 물리치기 위해 적룡제와 손을 잡는다. 가장 적대한 자이기에 가장 연합하기가 좋다. 서로 간의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공동전선을 펼치는 자는 가장 위험하고도 가장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간의 타도가 서로이기에 그 방해가 가장 배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작품을 보면 효도의 생명을 길지 않음이 나온다. 악마의 생명은 불멸이라 하나, 자신의 생명을 깎아 버린 금지된 기술에 그는 100년 정도 산다고 한다.

 

100년이면 지금 우리 인간에게 상당히 수명이나, 악마에겐 인간의 나이로 0.5%도 안 되니 사실 효도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는 계속 굴러가고, 세이크리드 기어를 지닌 자가 늘어나고, 그 자 중에서 밸런스 브레이커의 등장은 삼분법 적인 세계를 지닌 효도의 마을을 위협한다. 왜 평화를 원하지 않은 자가 나올까? 어떻게 보면 악마, 천사, 타천사의 연합은 세력의 안정화고, 그것은 서로간의 멸족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만약 어느 한쪽이 기울게 되는 것은 그만큼 살아남은 자도 세력이 소진하는 것과 같다.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다 어부지리를 원하는 자의 입장에서 위험하다.

 

더 이상 그는 세계의 진입을 하지 못한다. 더욱 연합과 동맹은 견고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테러리스트가 등장한다. 더욱 강력해지기 전에 모두 날려버릴 심산으로 말이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등장세력이 나오고, 기존의 라이벌이 갑자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코네코를 납치하고 리아스를 제거하려한 코네코의 언니조차도 효도를 자신의 종족을 보존을 위한 남성으로 여긴다. 효도의 입장에선 계속 하렘의 영역이 넓어진다. 자기의 동료에서 상대편까지 말이다. 이번에 오딘의 부하인 발키리 로스바이세까지 들어온다. 원래 룩은 코네코였으나 이제 발키리 로스바이세까지 영입된다.

 

폰은 8개를 효도가 모두 투입된 상태이기에 레이팅 게임이나 적과의 싸움, 거기에 나오는 다소 하렘적인 구조는 조금 이래저래 이야기를 흔들어 댈 것이다. 그러나 역시 메인은 찌찌드레곤을 각성하게 하는 리아스다. 효도는 킹이 되고자 하나 킹이 되는 것에 생각에서 리아스의 역할을 생각한다. 동료와 권속을 가족처럼 아끼는 그레모리 가문이나 때로는 싸움에서 동료를 버릴 각오도 해야 하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겐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하기 마련이다.

 

효도가 바라보는 자신의 길이란 점점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선택의 책임까지 커진다. 아이들에게 재미와 희망을 주는 젖룡제도 좋으나, 그 이름만큼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7권에서 아케노와 아케노의 아버지 타천사 바리키엘의 관계가 중요했다.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욕망덩어리 자신이라도 그 욕망이 상대방을 진심성에 나온 것인 만큼 자기의 욕심도 중요하나 그것보단 그 욕심을 가지고 싶은 상대에 대한 깊은 우정 역시 만만치 않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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