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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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인스타그램을 훑다가 한 영상에서 멈췄다.

영상 속에서는 사람들이 등장하진 않고 그들의 목소리만 들렸는데, 애인사이의 여자와 남자가 통화하는 거였다. 늦은밤, 남자는 자다가 여자의 전화를 받은듯했고 일상적 대화를 하다가 여자는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래 생각했다고 말하는 거다. 이에 남자는 그 말이 무언가 짐작했는지 하지 말라며, 나 잘거야 라고 한다. 그럼에도 여자는 자지말라고 이 말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준비한 말을 한다.


"우리 연애 그만 하자."


여자의 그 말에 그간 잘 대답해오던 남자는 침묵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얼마간 이어지는데, 여자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그러자 그 남자는 그게 너의 생각이냐 물었던가, 기억이 희미한데, 그리고는 어쨌든 대답한다.


"그래, 그만 하자, 우리 결혼하자."



내가 본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 뒤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겠다. 목소리의 다정함으로 봐서 여자가 하고자 한 말도 어쩌면 '우리 연애 그만 하자, 결혼하자'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남자의 '결혼하자'는 말에 '나는 너랑 헤어지고 싶다니까' 라고 반응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남자의 결혼하자는 말에 원래 헤어지고 싶었던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여자가 그렇게 말한 의도도 내가 알 수 없고 그 후의 반응 역시 내가 알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시간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므로 나에게 들리는 말들과 그 말들 사이의 침묵에 다른 말들 역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상만 보고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영상은 나를 갑자기 과거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내게도 꼭같은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의 시간이었고, 나 역시 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일상적 얘기를 했지만, 나는 애초에 할 말을 준비하고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의 상대 역시 한동안 침묵했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는 침묵을 끝내고 내게 물었다.


"그게 당신의 생각이야?"


나는 그렇다고 했다. 이내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알겠노라 했다. 그후엔 우리 둘 모두에게 침묵이 찾아왔고, 사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덧붙일 많은 말들을 준비해두었었는데 아무 말도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 침묵후에 내가 가까스로 꺼낸 말이라곤


 "끊을게."


가 전부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그 뒤로 그 시간을, 그 통화를 아주 자주 생각했다. 아주 많이, 그 때 내가 꼭 그랬어야 했을까, 를 나에게 묻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그랬을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런 한편, 내가 '그에게' 그랬어야 했을까 역시 번번이 묻는다. 그 말에 잠깐 침묵했던 그를, 떨리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받아들이는 그를 떠올리노라면, 내가 그에게 그러면 안됐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는, 그런 사람의 손을 내가 놓으면 안되는거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다. 그러다가도 다시, 그때 놓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놓았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몇 번을 묻고 또 물어도 내가 그 때 한 일은 그때 했어야 할 일이 맞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틀리지 않았다고해서 괴로움이 없는가? 아니, 나는 괴로웠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그런데 괴로웠다면, 틀린 거 아닌가?


영상속 남자가 '그래, 우리 연애 그만하자, 결혼하자' 라고 했을 때, 나는 또다시 이 때의 일을 떠올렸다. 아프게 떠올렸다. 만약 그가 그 때, 영상속 남자처럼 내게 '네가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그거라면 받아들일게'가 아니라, 대신, 내게 결혼하자, 고 했다면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됐을까. 왜 그는 내 말을 받아들였을까, 왜 영상속 남자처럼 결혼하자고 되받아치지 않았을까. 그는 언제나 내게 '너는 결혼하기 싫어하잖아' 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면서도 그때 만약 내게 결혼하자고 했으면, 그러면 우리사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쨌든 결과는 지금에 이르렀을까? 그러나 손을 잡고 있던 시간이 길었을까? 왜 그는 나를 말리지 않았지, 왜 그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지, 왜 그는 알겠노라 답했지, 왜 그는 목소리를 떨었지, 그의 침묵은 무엇을 말한 것이었지, 왜 나는 그의 손을 놓았지, 그는 왜 내 손을 더 오래 잡고 있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지. 나는 다른 연인들의 짧은 대화를 듣고 오래전 내가 했던 그 대화를 곱씹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대화를 떠올리면 여전히 아프다.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다가 바로 며칠전에 있었던 이 일을 떠올렸다. SNS 를 통해 다른 연인의 대화를 들었던 일, 그 일로 인해 내 오래전 과거를 떠올리며 아팠던 일을.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다. 사라진 것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조리, 자신의 과거를 곱씹기 때문이다. 과거는 지금,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내 현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해도 혹은 문제에 직면해있어도, 그 전에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떠올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을 후회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런 일이 내게 있었고 그리고 지금 내 삶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할 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한때 내가 매력을 느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쩐지 베스트의 느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세컨드 베스트의 느낌. 그러고보면 앤드루 포터는 전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도 그랬다. 나에게 최선의, 최상의 사람은 단 한명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보여준 바 있지 않던가. 


미셸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2> 에는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나온다. 수영장에 갔다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샤워하는 씬에서, 그 중 한 여자가 말한다. '새것도 언젠가 헌것이 된다'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로운 남자와 새 삶을 살기 시작한 미셸은 처음의 그 기대와 설레임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앤드루 포터의 이야기는, 바로 그 새것이 헌것이 된 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새것이 헌것이 되었지만, 그런데 그것이 새것인 적이 있었잖아, 를 떠올린달까. 읽노라면 자꾸만 좋았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좋았던 때를 떠올린다는 건,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을 알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아프다. 


사는 일은, 특히나 다른 사람과 함꼐 사는 일은, 때론 즐겁지만 때론 힘들다. 

타인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사실 나 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 그래서 기대했던 시간들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것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많이 어긋나기도 한다. 그러나 앤드루 포터가 이 책에 등장시킨 인물들 모두에게 변함없는 사실은,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 십년후 이십년후에 또다시 이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떠올리면서 또 지금의 시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들의 회환을 따라가노라면 나의 회환이 겹친다. 그래서 한숨이 나고, 그게 앤드루 포터의 소설이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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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5-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선택했던 것이 최선이었을까?
최선이 아니었으면 어쩌지?
최선이 아니었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나?
아 정말 이런 고민의 연속이 인생입니다. 이 책 책나무님이 별5개 준거 보고 아 나도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다락방님 글 보니까 역시 읽고싶다네요. ^^

다락방 2024-05-10 07:51   좋아요 0 | URL
어휴 중년의 쓸쓸함이 물씬 풍기는 글이었어요. 특별할 건 없는데 쓸쓸함은 큰, 그런 글이었습니다. 휴우-

독서괭 2024-05-0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딱입니다 딱이요~ 새것이 헌것으로.. 흑흑 후회는 아니지만 그런 때도 있었는데 잊고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그거~

다락방 2024-05-10 07:52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 하게 되고요, 그리고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moonnight 2024-05-0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제가 sns를 하지 않아서 @_@; 그 미지의 지역에선 저런 개인적인 영상(통화)을 공유한단 말입니꺄 @_@;;; 촌사람 깜놀@_@;;;

다락방 2024-05-10 07:54   좋아요 0 | URL
저도 인스타 하면서 깜짝 놀란게 ‘나는 이런 거 못올릴 것 같은데‘ 하는 걸 정말 잘 올린다는 겁니다. 아이들 영상부터 시작해서(그건 부모 욕심 같아요), 연애스타그램이라고 연애하는 일상하며, 몸과 돈의 자랑 까지.. 이야, 세상엔 능력있고 돈 많은 사람들 정말 많구나 싶습니다. 하하하하하.

잠자냥 2024-05-10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ㅑ ~~
새거가 헌거 되는 이야기….
ㅋ ㅑ ~~|

다락방 2024-05-10 07:54   좋아요 1 | URL
ㅋ ㅑ ~ 소주 한 잔 해야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뉴욕 수업 -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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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뉴욕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그건 영화들 때문이기도 했고 책들 때문이기도 했으며 팝송들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에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도 꼭 뉴욕엘 가고 싶었다. 내가 뉴욕에서 살아볼거야, 꼭 그러고 싶어. 한결같은 그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미국에 가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았고 그 서류들이 통과되면 대사관에 가 인터뷰를 보고 비자를 받아야 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처음 뉴욕에 가게 된 때가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고, 그것은 나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여행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었고 관심도 없었는데 뉴욕에 가는 것은 꼭 내갸 해봐야 할, 해보고싶은 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뉴욕을 방문했을 때 내 목적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센트럴 파크였다. 겨울이면 그 오리들은 어딜가는걸까, 궁금해하던 홀든을 생각하며 센트럴파크의 호수를 보았고, 뉴욕시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양하는 익스트림은 그 이유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잖아? 내가 본 영화나 책 그리고 들었던 노래들을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 첫여행에서 엘리스 아일랜드를 갔고 자유의 여신상도 보았다. 월스트리트 에도 가 사진을 찍었다. 친구랑 맨하튼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몇 년후에 이곳에 꼭 다시 오자고 했더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뉴욕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우리 미술관들에 가보자, 뉴욕에 그렇게나 미술관이 많대. 이번 목적지는 뉴욕의 미술관을 다 돌아다녀보는 거였다. 우리는 모마를, 메트로 미술관을, 구겐하임을 갔고 자연사 박물관을 갔다. 가기 전에 미술 관련 그림책들을 보았다. 매그놀리아에 가서 컵케익을 사먹었다. 뉴욕의 외곽에 숙소를 잡아 뉴욕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이렇게 다시 왔네, 우리 몇 년후에 또 다시 오자.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뉴욕에 다시 갔다. 이번엔 다른 친구와 갔고 나에게는 세번째 방문이었다. 우리는 911 메모리얼 기념관을 함께 갔고 그곳에 한참 머물렀다. 그 후에는 서로 다른 일정으로 움직였다. 친구는 브로드웨이로 가 며칠 연속 연극을 보았고 나는 휘트니뮤지엄을, 구겐하임을, 노이에 갤러리를 갔다. 성패트릭 성당엘 갔다. 모마 앞에서는 길거리에 서서 샌드위치를 사먹기도 했다. 센트럴 파크를 한참 걸었다. 나는 여기 세번째 왔는데 계속 또 오고 싶네. 그러나, 


나는 세번의 뉴욕 방문 후, 내가 뉴욕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았다. 식당에서의 높은 팁도 그리고 숙박비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여행객으로서 며칠 방문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이것이 일상이 된다면 버티지 못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뉴욕이 좋지만, 그러나 뉴욕에서 사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뉴욕에서 살진 못하겠어, 그러나 나는 뉴욕이 좋아, 여행으로 오는 것만 하자. 그렇게 내 오린 뉴욕의 거주 꿈은 절반은 여행으로 이뤄졌고 절반은 현실자각으로 포기했다.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하던 곽아람이 뉴욕에 갔다. 

본인은 프로 '놀러' 라며 자신이 이렇게 잘 노는지 몰랐다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곽아람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학위를 따려는 게 아니어도 그녀는 미술 관련 강의를 듣고, 다른 시간들에는 부지런히 그림들을 보러 다닌다. 센트럴파크를 지나 구겐하임을 갔다고 곽아람이 썼을 때는 아, 나 역시 그랬기에 그 풍경이 눈앞에 선했다. 휘트니 미술관에 가 호퍼 그림을 봤다고 했을 때는, 나 역시 휘트니 미술관에 가서 에드워드 호퍼 그림은 몇 층에 있냐고 직원에게 묻던 내가 겹쳤다. 성패트릭 성당에 가 미사를 드렸다는 글에서는 나 역시 성패트릭 성당에 가 가만 앉아 기도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매그놀리아 컵케익을 먹고 911 메모리얼 기념관에 가고 모마와 메트로 미술관에 가는 곽아람의 문장들은 계속해서 내가 뉴욕에 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미 눈으로 보았던 곳 내가 이미 걸었던 곳을 다른 사람의 글로 읽는 것은 나를 감상에 젖게 했다. 911메모리얼 기념관에 길게 줄을 서 대기하다 들어갔던 일도 떠올랐다. 엘리스 아일랜드 방문기를 읽을 때는, 친구와 내가 배를 타고 그곳에 갔던 것도 떠올렸다. 그뿐인가.


곽아람에게도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예외가 아니었다.

혼자 살기 위한 숙소를 구하는 것이 비용 문제로 힘겨워지자 투룸 아파트에서 네 명이 함께 셰어하며 공간을 사용해야 했던 일, 그러니까 내가 비용 때문에 포기한 일을 곽아람은 기어코 해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쾌적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포기해야 했던 거다. 나는 이게 자신이 없었는데 그런데 곽아람은 그렇게 했다. 일년간 뉴욕에 거주하면서 곽아람은 듣고 싶은 강의를 듣고 많은 오페라를 보고 미국과 미국 바깥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타지인에게 혹독한 텃세로 인해 마음 고생도 했다. 춤도 배우고 요가도 했다. 


무엇보다, 긴 직장생활에 잠깐의 멈춤을 갖고 이국에서 공부하기를 했다. 

뉴욕에 갈 당시에 곽아람의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었고 십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늦은 나이가 결코 아니지만, 나는 그게 참 좋더라. 내가 살고 싶은 삶 역시 직장 생활 그만둔 뒤에 이국에서 공부를 하는 삶이었으므로 곽아람의 뉴욕에서의 시간을 읽는게 즐거웠다. 뉴욕에 대한 향수로 아련했다면 직장 생활을 경험한 뒤의 공부로 인해 힘을 받았다. 내가 지금 퇴사를 한 뒤 이국에서의 삶을 경험한다면 아마도 그 뒤에 다시 취업은 좀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한 번은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세가지가 이 책에 모두 있었다. 뉴욕, 이국에서의 삶, 직장생활 후의 공부. 


어떤 책도 지극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이 책은 혼자 조용히 앉아서 읽을 때 극도의 행복을 주는 책이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퇴근 후에 버거킹에 가 불와퍼셋트를 먹고 가만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나 좋더라.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세상에, 거기에 내가 원하는 쓰리콤보가 다 담긴 책이라니. 어떤 책은 이렇게나 인생의 찰나에 행복을 준다. 그리움과 추억과 아련함이 이 책안에 있었다. 바라는 삶도 이 책안에 있었다.


어제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인스타그램을 한없이 위로 올려가며 저기 밑에, 뉴욕에 갔던 사진들을 끄집어냈다. 내가 갔던 곳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이제 진작 사두고 읽지 않았던 곽아람의 다른 책, [공부의 위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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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2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참 좋네요.

근데...

불와퍼셋트 맛 어때요? 버거킹이 와퍼 이제 판매 안 하다고 해서 너무 웃겼는데...(뻥을 치네 이놈들이, 다른 와퍼 내놓을 거면서... 싶었더니 역시)

다락방 2024-04-25 11:35   좋아요 2 | URL
저는 치즈와퍼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딱히 불맛 스럽지도 않아요. 쿠폰 있어서 사용해봤는데 쿠폰 아니면 저는 제값주고 사먹진 않을듯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24-04-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국에 못 가 봤지만 곽아람 작가의 책으로 만족했어요ㅎㅎ 특히나 숙소 문제로 맘고생하는 대목에서 -_- <공부의 위로> 참 좋아요. 다락방님 좋아하실 듯 합니다^^

다락방 2024-04-26 14:35   좋아요 0 | URL
저도 숙소 부분 읽는데 너무 스트레스가 크더라고요. 아아 나는 이렇게 못하겠다 하고 말이지요. 물론 그게 당장 내 눈앞에 나에게 닥친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겠지만요. 나중에 가방 환불 해프닝에서도 아아 너무 스트레스다, 이놈의 뉴욕... 했습니다. 아, 책장에서 공부의 위로 꺼내와야겠어요!

단발머리 2024-04-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곽아람 작가 참 좋더라구요. 잘 모르는데 ㅋㅋㅋㅋㅋㅋ 책도 안 읽어봤구요. 그 똑! 부러진 태도가 좋았어요. 말투도 그렇잖아요. 약간 쎈언니 느낌인데.... 온 세상 착한 언니가 한가득인 이 세상에서, 이런 쎈언니 있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근 후의 책읽기에 대해서, 전 최근에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퇴근 시간이 매우 이르거든요. 그런데도 집에 가면 책을 펴지 못하겠더라구요. 치우고 정리하고 하다보면, 아홉시 반.
전 다른 건 따라하기 어려울 테지만, 버거킹 불와퍼셋트 먹기는 따라하기 가능합니다. 일단 이걸 해치우고, 다음에 뉴욕 여행하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26 14:37   좋아요 1 | URL
저는 그동안 곽아람 작가 읽어본 적도 없고 잘 몰랐는데 며칠전 회사 동료가 [나의 뉴욕 수업] 이 책을 보여주더라고요. 작가 이름 보는 순간, 나도 이 작가의 무슨 책이 있어!! 하고 부랴부랴 검색해보니 그게 공부의 위로 더라고요. 뉴욕 수업이라니, 내가 한 번 읽어봐얒지 그 길로 주문해서 읽었어요. 저는 그전까지 곽아람 작가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조선일보 기자라는 것도 몰랐고요.

저는 퇴근하고 나서 집에 와 자기 전에 꼭 한장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너무 노동자모드로 잠드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그걸 용납을 못하겠어요. 잠들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내 모드로 바꿔놓자, 싶어서 책을 꼭 읽고 자려고 합니다. 한 장만 읽어도 졸려서 잠들어버린다는 게 함정이지만...

아무튼, 뉴욕 여행하신다면 기꺼이 따라나설 의향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4-04-25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곽아람 작가의 책 <쓰는 직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었어요. 작은 서점에서 책장을 휙휙 넘기다 읽고 싶어져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는데 솔직히 기대한 것 보다 별로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뉴욕, 이라는 단어에 솔깃 했다가 작가님 이름 보고 흐음...하고 넘겼는데 다락방님 리뷰를 읽으니 저도 혼자 버거킹(저는 맥도날드가 아니라 강경 버거킹파입니다) 들어가서 먹으면서 조용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저는 뉴욕을 아주 최근에야 열망을 하기 시작했고(유럽에 사는 한국인들 대부분 반미주의자랍니다ㅋㅋㅋㅋ) ‘언젠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만 가지며...뉴욕을 가본 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네요. 이젠 뉴욕시엔 에어비앤비도 전면 금지라 호텔에서만 묵어야 한다면서요. 숙박비만 보면 이제 뉴욕에 여행으로 가는 것도 꽤나 제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네요...ㅠㅠ 아무튼 가슴에 외국 도시 하나 쯤 품고 사는 삶은 너무나 근사한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4-04-26 14:41   좋아요 1 | URL
일단, 저도 맥도날드가 아니라 강경 버거킹파임을 밝힙니다. 저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햄버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맛없어요 ㅠㅠ 그렇지만 감자튀김은 맥도날드 파입니다.. 감자튀김만요.

저는 이 책이 제가 읽은 첫 곽아람 인데요, 제가 [공부의 위로]를 사둿으니 그것도 읽을테지만, 만약 곽아람 작가의 다른 책을 먼저 읽었다면 저도 더 읽을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책이 저에게 좋았던 건, 제가 뉴욕을 좋아하며 퇴사 후 공부를 꿈꾼다는 그 지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개인적으로 참 좋게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하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저에겐 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몽글몽글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뉴욕 숙박비 진짜 비싸요. 그래서 처음엔 뉴저지에 묵었고 그 다음엔 어디더라, 하여간 시내 외곽에 묵었고, 마지막에 뉴욕시에서 묵었는데 와 좋지 않은 호텔인데 하루 숙박비가 ㅠㅠ 그 돈이면 커다란 룸 가진 좋은 호텔을 동남아에서 이틀 묵을 수 있었는데..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있나요. 나는 뉴욕에 갔던건데.. 하여간 다녀오고 나서는 뉴욕에서의 거주는 포기하자 생각했어요. 제가 아무리 노동한다해도 그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일 것인데, 살아갈 자신이 없더라고요 ㅠㅠ

네, 그러나 가슴에 외국 도시 하나 쯤 품고 사는 삶은 너무 근사합니다!! >.<

달자 2024-04-29 17:36   좋아요 0 | URL
아… 다 좋은데 감튀는 강경 맥도날드 파라구요???? 전 강경 버거킹 감튀파인데…!!!!!! 맥도날드 감튀는 넘 얇고 흐물흐물해여.. 버거킹이 조금 더 감자맛(?)이 나서 좋은데.. 다락방님 우리 살짝 멀어졌…

다락방 2024-04-29 22:13   좋아요 1 | URL
감자튀김은 얇은게 맛있지 않나요? 전 맥도날드에서 그 얇고 뜨거운 감자튀김을 먹다가 가끔 유독 짠 부분이 걸려들면 그게 또 그렇게나 맛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고작 감자튀김 다른 취향으로 멀어지는, 그런 얄팍한 사이입니까? 네??
달자 님과는 버거킹 감자튀김으로 쇼부칠게요. 맥도날드 감자튀김 먹으러 가자고 안할게요. 그건 저 혼자 가서 먹을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4-04-30 06:3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감튀 먹으러 가는 다락방님 따라가서 오레오맥플러리 아니면 맥너겟 먹을래요 희희

책읽는나무 2024-04-2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더니 <공부의 위로> 책을 읽다가 멈춤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책 읽다가 언급된 영화를 찾아 보다 그 길로 도서관에 기한이 다 되어 반납하였던....ㅋㅋㅋ

암튼 앞의 페이퍼를 읽다가 이 글을 읽으니 역시 인생 멋지게 사는 여자는 다르다! 또 느끼고 갑니다.
뉴욕을 몇 번이나 다녀올 수 있다니...
외국이라곤 딱 세 번! 그것도 아시아 쪽만 겨우 다녀와 본 자로선 다락방 님의 여행 행선지는 늘 기대하며 보게 됩니다.
그리고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책 읽는 여성!
전 다락방 님의 그런 모습들도 참 보기 좋아요. 지하철에서..서브웨이에서..버거킹에서...책을 펼칠 수 있는....그리고 달릴 수 있는 체력!
그리고 잘 먹을 수 있는 식성!
모든 게 완벽합니다.ㅋㅋㅋ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인 인생.
그 인생을 나름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 본받을만 하단 생각을 하고 갑니다. 훗날 퇴사했을 때 또다른 멋진 삶! 완전 기대만발이에요.ㅋㅋㅋ
어제까지 부정적인 생각을 일삼던 저였던지라 참 멋지게 읽히네요.^^

다락방 2024-04-29 22:16   좋아요 1 | URL
저도 [공부의 위로] 가지고 있은지 한참되었는데 여태 안읽었네요. 이 책 읽고 나니 읽어야겠다 싶어졌어요. 저는 특히나 나이 들고나서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가더라고요. 막 응원하게 되고요. 그건 아마 제가 뒤늦게 공부하고 싶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공부를 놓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책나무 님!!

음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해결 방법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반면 안되는 쪽만 보고 있으면 될 리가 없고요. 삶에 있어서 순간순간 부정적 생각이 찾아들지만, 책나무 님, 그 와중에 어떻게 이 기분에서 나아질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해보고 얼른 그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합시다!! 좋은 음악, 맛있는 음식, 산책, 숲, 그림, 재미있는 영화 그리고 좋은 문장들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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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성욕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류 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배제되는지를 얘기하는 건, 현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고 성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거야 뭐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힘들다는, 소수자라는, 연대를 말하는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는 훨씬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장에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소수가 아니라는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이상 성욕이 그렇게나 숨겨야 할 일인가, 그게 그렇게 이 세상에 나 혼자야 할 일인가 싶은거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주장대로, 어쩌면 내가 가진 페티시즘은 그 역시 너무나 주류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기껏해야 뭐 전완근이나 등근육이니까. 그들은 자신의 이상 성욕으로 인해 친구도 없고 연애도 할 수 없다고 수도없이 반복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성격 문제인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에게 하다 못해 동물에게도 해를 입히는 이상 성욕이 아니라 생명도 없는 거잖아? 물론 그 이상 성욕 실현을 위해 과도한 행동을 취하다가 법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벌을 받는게 마땅한 것이고. 


작가가 주장하는 바는 '사람좋은 너희들이 연대를 주장하지만, 감히 너희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소수자들이 존재한다'인데, 주장 자체는 참이지만 소재에 딱히 그 주장을 뒷받침할 타당함이 나로서는 딱히 안느껴지고, 무엇보다 조금만 삐끗해도 아동성애 역시 이상 성욕의 하나인 것처럼 포장하는 걸로 들릴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동 성애자들에게는 너희들이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은 책, [달의 영휴] 졸라 싫어했는데, 이 책에서도 '아동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서, 게다가 '그렇게 보이지만 그들에겐 그게 아니라 다른 사정이 있다니까' 하는 것 같아서 나로서는 영 찜찜하다.


그들의 이상 성욕이 그동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류에게 '이상' 성욕인 건 맞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으.. 이상해 사람들 제정신 아니야' 라고 하지 않는다니까? 오히려 동물 성애가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계속 반복해 얘기한다. '연대를 부르짖는 너희들이 상상 못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너네들은 모르지!!' 


내게 이 책은 과하다.

이 책을 읽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는 지나친 과장이다. 

이 책은 여자사람들에게는 딱히 영향을 미칠 게 없을 것 같고, 그러나 남자 사람들은 한 번쯤 읽는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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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4-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지금 오고 있어요. 흑

잠자냥 2024-04-03 10:43   좋아요 0 | URL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이미 와 있어요. 흑

다락방 2024-04-03 11:39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 리뷰는 다 좋으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뭐랄까, 그렇게 징징대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징징대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사람들이 짐작도 못하는 이상 성욕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과 고통은 알겠지만, 아니 그런데 그 이상성욕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일인가 싶었어요.
작년엔 동물 성애에 대해 알게 됐다면 올해엔 또 다른 이상 성욕을 알게 되었다는 게 수확.. 이라면 수확일 수 있을까요..

blanca 2024-04-03 12:13   좋아요 1 | URL
소설에서 작가가 자신만의 주장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저는 확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아, 요새 인내심이 바닥인데...

다락방 2024-04-03 12:15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은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시고 좋은 글 쓰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성격의 인간들이 여기 너무 나와서 싫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24-04-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소재였군요….

다락방 2024-04-03 11:40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소재인줄 모르고 봤고 확실히 제가 생각하기에 광고는 지나치게 과장되었습니다. 으..
그런데 뽀는 나랑 대부분의 독서에서 감상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건수하 2024-04-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을 뒤흔든 화제의 베스트셀러 라는게 그런 뜻이었군요...
이상성욕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좀 꺼려지긴 했었어요.

그렇지만 중간값이라면 어디든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4-03 11:02   좋아요 1 | URL
건수하 님도 이상성욕 아닌가요?
이상하게 성욕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4-03 11:03   좋아요 1 | URL
이상하지 않고 그냥 성욕없음. 😸

다락방 2024-04-03 11:41   좋아요 1 | URL
이성애 혹은 동성애등의 인간에 대한 성욕 없음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 때문에 이들이 힘든거라고 작가는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귀기울여 들을만하지만, 여하튼 과합니다, 제게는. 으..
이거 도대체 왜 일본을 뒤흔든 베스트셀러... 일본 도대체 이걸로 왜 뒤흔들림?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는 인간도 뒤흔들지 못하는 책입니다.

은오 2024-04-03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깔끔하고 확실한 제목!! ㅋㅋㅋㅋㅋㅋㅋ
휴... 저도 이 책 담아놨는데 아직 안 사서 다행이네요. 다른 평 더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봐야겠어요.
근데 다락방님 리뷰 읽으면서 아니 그니까 그 이상성욕이 뭐길래?! 하는 궁금증은 좀 생기네요?! 또 한편으론 이런 주제에 대해선 제가 다락방님이랑 비슷하니까 저도 다락방님이랑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4-04-03 10:47   좋아요 1 | URL
내가 읽어볼게~ ㅋㅋㅋㅋ (근데 지금 읽는 거 다 읽어야 함;)

건수하 2024-04-03 11:03   좋아요 1 | URL
이런 주제에 대해서 다락방님과 비슷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은오님은 무성애자고 다락방님은….??

다락방 2024-04-03 11:42   좋아요 2 | URL
그 이상 성욕이 뭔지는 책을 읽어봐야 알 것이고 여하튼 특이(?)하긴 하기 때문에 제가 괜히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고 쓰진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그 이상 성욕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좀먹을 일인가 싶긴합니다. 여하튼 여러가지로 과해요. 등장인물 중 마음에 드는 인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03 12:36   좋아요 1 | URL
수하 님/ 페도필리아나 트젠 말하는 거 같은데… 트젠에 대해서는 은바오 다락방 급진적인 두 여성이 통합니다.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4-03 13:0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굳이 분류가 필요하지 않다-인 줄 알았는데.... 여튼 읽어보기 전까진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잠자냥님의 리뷰도 기대합니다~

은오 2024-04-04 05:33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댓글이 맞읍니다 수하님~!!
그리고 다락방님도 s/m플레이 이런거 싫어하셨던 거 같은데 아닌가...?! 아무튼 저는 항문성교도 싫읍니다~!! 제가 하는거뿐만아니라 이런건 여자한테 유해한 성문화라 싫어요ㅠ

다락방 2024-04-04 09:1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은오 님과 저는 싫어하는 성적 행위가 같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4-04-04 10:26   좋아요 1 | URL
아니 그건 대부분 싫어하잖아?! ㅋㅋㅋㅋㅋㅋ(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음)
암튼 그런데 은오야 넌 왜 BL마니아야??? 항문성교 싫다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4-04 10:34   좋아요 1 | URL
대부분 싫어하지만 그걸 또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니 그래서 제가 bl도 섹스보다 서사 위주인걸로 골라봤다고요!!!! ㅋㅋㅋㅋㅋㅋ
bl은 근데 이성애로맨스물보다 소재가 다양하고 ㅋㅋㅋㅋ 한쪽이나 둘다 게이가 아니었는데 둘이 사랑하게되는 그런 과정 보는 재미가있읍니다ㅋ 남-녀라고 생각하면 빻은 소재도 남-남이라 안거슬리는것도 좀 있고요. ㅋㅋㅋㅋ
bl 잠깐 본 시기가 있는거지 마니아는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4-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찜하다!! 딱 그럴 것 같아요!

다락방 2024-04-03 11:42   좋아요 0 | URL
너무 과하고 너무 징징대요. 으..

잠자냥 2024-04-03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두껍던데 금방 읽었네요? 성욕이란 단어에 꽂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티시즘˝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을 거 같기는 한데, 뭔가 색다른 페티시즘이 있는걸까??
일단 페도필리아는 나오는 것 같군요? 그건 좀 싫은데.... 흠..

다락방 2024-04-03 11:43   좋아요 0 | URL
색다른 페티시즘이긴 합니다만, 근데 이렇게 괴로워한다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동물이나 아이에 대한 거에 비한다면야 완전 깔끔하고 건강한데요.
이거 완전 책장 잘 넘어가요. 잠자냥 님 하루만에 끝내실듯요.

에디터D 2024-04-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못 돌아갈까봐 안읽고 있었는데 읽어봐도 되겠군요^^;;

다락방 2024-04-03 11:44   좋아요 0 | URL
그런 걱정 내려두시고 읽으셔도 됩니다!! 돈 워리!!

단발머리 2024-04-0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의 다른 사정....에 대해 궁금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예상이 되기는 합니다. 다른 분들 평을 좀 더 기다려봐야겠어요.
제목이 다 한 페이퍼 <과하다>!!! 다락방님 바로 퇴근하시도록!!!

다락방 2024-04-04 09:15   좋아요 1 | URL
음 예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는 합니다만(아마도??), 그게 그렇게 뭐 치명적으로 숨겨야할 것인가 싶기는 합니다. 저는 그래서 그들의 소수자성에 대한 압박감도 지나치게 과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다 과하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과합니다. 제목은 근사했는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

blanca 2024-04-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리뷰 읽고 다 읽고 나서 과했다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건 맞는데... 위험한 메시지가 숨어 있네요. 작가의 나이를 확인하고... 필력도 인정하고 상상력도 인정하지만,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우려가 들었어요.

다락방 2024-04-07 22:00   좋아요 0 | URL
제가 과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는 작가의 여러번 반복과 강조하는 말하기가 포함됩니다. 뭐랄까, 자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지나치게 반복한다고 할까요. 독자가 한 번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가지로 과한 책이었습니다. 블랑카 님 글 읽으러 가야겠어요.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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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 그에 앞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될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읽는데 오래 걸렸지만 읽기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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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9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천페이지 책 뽀개버린 다락방 입니다. 훗.

햇살과함께 2024-03-30 09:17   좋아요 1 | URL
역시 멋지십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저희집에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 있는데 독서대 받침용으로 잘 쓰고 있어요 ㅋㅋ 이제 듄 가시나요?

단발머리 2024-03-30 09:2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 제가 오래전부터 찜해둔 책입니다. 두꺼운건 저도 알고 있었는데, 우아.... 천페이지에요? 저, 그럼 한 번 더 생각해보는걸로 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 다정한 분이신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ㅋㅋㅋㅋㅋ 이제 막 <유대인의 역사> 끝낸 사람에게 ‘듄 가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빡센 자세 저도 배워야겠어요. 다락방님, 얼른 듄 읽으세요! 촤락!

잠자냥 2024-03-30 09:50   좋아요 1 | URL
이제 듄 가니?! 🤣🤣🤣

햇살과함께 2024-03-30 10:04   좋아요 0 | URL
주말엔 쉬고요 1일부터!! ㅋㅋㅋㅋ

다락방 2024-03-30 11:39   좋아요 2 | URL
저기 얘들아? 좀 진정해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행선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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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대학생 '앙주'는 16살 소년 '피'의 프랑스어 과외 선생님이 된다.

피의 아버지는 벨기에에 거주하는 피가 프랑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데 독서장애가 있어서 프랑스어 과외가 필요하다며 앙주를 고용한거다. 그렇게 앙주는 피에게 문학 작품을 읽도록 시키고 그동안 책을 읽어본 적 없었던 피는 이 과외 덕분에 책을 읽으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앙주와 나누고 둘은 친밀한 관계가 된다. 앙주는 우정이라고 계속 강요하지만 피는 자꾸만 사랑을 이야기한다. 


19살과 16살 사이에는 고작 3년이라는 나이차이만 존재하지만, 그러나 어떤 경험치냐에 따라 그 차이는 아주 크게날 수 있다. 처음 책을 읽어보는 피에게 책은 싫은 것이었다가 재미있는 것이었다가 이제 앙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자꾸 만나러 오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 문학 작품에 대한 얘기로구나, 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세상에, 이 짧은 책 한 권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책장을 넘기면서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앞부분만 읽었을 때, 과외를 시작하고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그 나름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를테면, '만약 내가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그 책은 어떤 책이어야 할까' 하는 것들. 그러나 그것 외에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할 이야기가 이 책으로부터 나온다.


-책 이야기

물론, 당연히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라고 해봐야 고작 19살이고 책을 읽어야 하는 학생은 16살이다. 그런데 이들이 읽는 책의 목록이 대단하다. 시작이 '스탕달'의 [적과 흑]이며 그 다음 읽는 책이 세상에 [일리아스] 라니까? 독서인생이 그들의 두 배가 넘는 나도(계산하지 말도록 하자) 아직 일리아스를 안읽었는데? 게다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심오하다. 단순히 재미있다 재미없다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분석하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넌 모든 것에 답을 갖고 있구나」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쁜 거예요?」「그보다는 네 한계를 보여 주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추론은 스스로를 유효화해 추론 그 자체 속에 닫혀 있는 것, 그게 바로 우매함의 정의야.」 -p.96


아니, 이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조금 더 볼까?


「실망스럽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그딴 걸로 엄마에대한사랑을 접다니, 정말이니?」「누군가를 업신여기면서 사랑하긴 어려워요.」 -p.99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이 열여섯살 소년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를 업신여기면서 사랑하기 어려워요, 라니. 그러네, 정말 그러네. 업신여기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지. 이 소년, 책 한 번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삶을 알아? 대단하다.. 그래서일까, 책 읽기 시작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책 속에 담긴 뜻을 그 재미를 깨닫는다. 이들이 나누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 적과흑, 일리아스, 변신, 육체의 악마, 클레브 공작부인에 대한 감상들이 너무 재미있다. 육체의 악마가 여기에 나오는구나. 내가 또 다 사놨지.



-(남)교수와 (여)제자

그러나 책 이야기만이 이 책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책 이야기만으로도 사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을 순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아멜리 노통브는 남교수와 여제자의 사랑 이야기를 여기에 집어넣었다. 불러들였다, 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는, 이 친구 하나 없는 '앙주'를 비교신화학 교수가 눈여겨보고 접근하는거다.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불러내는데, 그의 유혹에 나는 가슴 졸였다. 안돼, 허락하지마. 오십대 남자교수를 네 인생에 들이지마, 라고. 

그런데, 우리의 앙주,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자를 유혹하는 건 비열한 짓이에요. 나쁜 학점을받을까 봐 겁이 나서 거절할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제자를 유혹하는 건 더 나빠요. 상대가 취약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공략하는 거니까.」「왜 그런 말을 하니?」 그는「그렇게 생각하니까요.」-p.107


아아, 앙주, 너무 기특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 아무리 유럽에 거주하는 여성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런 한편 이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앙주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고 그것이 앙주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부분에서 어김없이 한나 아렌트 생각이 났거든.

한나 아렌트는 이미 결혼해 아이가 있고 애도 있는 늙은 교수 하이데거의 접근을 두 팔벌려 환영하며 그와 연인이 된다. 한나 아렌트의 엄마는 한나 아렌트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한나 아렌트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한나 아렌트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그런 한나 아렌트에게 다정하게 접근하는 성인 남성, 게다가 한나 아렌트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한나 아렌트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 한나 아렌트에게 접근하는 하이데거에게는 당시 가진 것이 많았다. 사랑은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한나 아렌트에게 있던 결핍을 당시에 하이데거는 채워줄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결핍이란 무엇인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직은 결핍이 더 많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알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차곡차곡 하나씩 채워지는 것일텐데, 어릴 때에는 부족한 게 얼마나 많아. 그만큼 그 부족을 채워주기도 싶다. 샴페인만 해도 그렇다. 고작 나이 스물이 샴페인에 대해 어떻게 취향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앙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도미니크는 앙주에게 샴페인을 사준다.


「정말 빨리 마시는군!

「그러네요.」「늘 이렇게 마시나?」리우스 카이사「누가 날 위해 샴페인을 주문한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당연히 습관 같은 건 없어요.」-p.138


스무살에게 누군가 샴페인을 주문해주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건 서른이 되도 경험하기 쉬운게 아니다. 글쎄, 마흔쯤 되면 자기 돈으로 사먹을 수 있겠지만, 스물에 그것이 처음이라면, 그걸 해줄 수 있는 상대는 당연히 나보다 가진게 많은자일 것이다. 나에게 학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샴페인도 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은 얼마나 큰가. 앙주는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있었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자기 감정을 돌이켜보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앙주와 교수의 관계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안타까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던가. 

누군가 뜯어말리고 싶었던 관계가, 나라고 없었을까. 그리고 나 역시 그 때, 나에게 있던 결핍을 상대로부터 채우려고 했던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러지말았어야' 했던 일이지만, 그래서 아주 많이 내 자신을 원망하고 살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 내 나이가 젊었다는 것, 철없다는 것 때문에 나를 조금 용서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내가 너무 철이 늦게 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런 한편, 앙주의 저 말, 제자를 유혹하는 건 비열한 짓이라는 말에, 나는 어김없이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떠올린다.

추락에서의 남교수도 예의 자신이 가르치는 여자 제자들을 여러명 사귀었다.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자 대학생들. 그러나 그가 교수의 권위를 잃게 되었을 때, 그가 만날 수있었던 건 비슷한 나이대의 예쁘지도 않은 여자였다. 제삼자가 '교수이고 돈도 많아서' 그를 사귀었다고 여자 제자들을 욕할 수도 있겠지만, '교수이고 돈도 많아서' 남자 교수야말로 젊은 여자들을 사귈 수 있었던 거다. 그 관계에 사귄다는 단어를 적용하는 건 적합하진 않지만. 그러나 앙주는, 뚜벅뚜벅 제 발로 알면서 걸어 들어갔고, 나는 타인의 사랑에 혹은 그 관계에 딱히 더 말을 얹고 싶지 않다. 앙주는 열아홉살이고, 앙주에게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 찾아올 것이며, 앙주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는 다 앙주가 감당할 몫이다.



-벨기에

뜻밖에 벨기에를 만난다.

나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두 번 갔었다. 사실 갔다는 말이 부끄러울만큼 잠깐 들렀던 것에 불과하다. 한 번은 해가 쨍쨍했고 한 번은 비가 내렸다. 아직도 브뤼셀 기차역에서 번화가로 걷던 그 순간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길을 아름다웠고 몇 번이나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선하다. 그러나 내가 고작 그만큼의 시간을 머물고서 벨기에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내가 모르는, 내가 보지 못한 벨기에를 앙주가 말해준다.


「브뤼셀은 예쁜 도시야.」 내가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날씨가 좋아야 그게 보여.」

「왜 그런데요?」처음이「거의 모든 집이 양방향으로 트여 있거든. 그래서 날씨가 화창할 때는 빛이 집들을 관통해서 지나가지. 그러면 브뤼셀은 마치 광선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여. -p.116~117


브뤼셀의 집이 양방향으로 트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았다. 날씨가 화창할 때는 빛이 집들을 관통해서 지나간다니, 그러면 브뤼셀은 마치 광선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몰랐던, 보지 못했던 브뤼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브뤼셀에 가고 싶어졌다. 간다고 해서 내가 광선으로 지어진 브뤼셀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관계

그렇다. 관계다.

단순히 스승과 제자일 수 있었던 앙주와 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그 집구석 이상한 집구석이야, 애도 이상하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상해, 라고 하면서도 앙주는 그 집에 가는 것을 끊어내지 못한다. 피가 어쩐지 마음이 쓰여서. 으리으리한 집, 거대한 서재를 갖췄지만 그 책을 읽는 이는 하나도 없었던 집에 사는 피가 어쩐지 애틋하다. 과외수업이 있을 때마다 염탐하는 아버지라니, 얼마나 변태적인가. 앙주는 돈을 받으면서 언제나 그것에 대해 비난하고 자신이 그만둘 수도 있음을 얘기한다. 그러나 피의 아버지는 앙주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붙잡는다. 아들인 피가 의지하는 사람은 앙주가 유일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당신이 피에게 얼마나 절실한 사람인지 당신도 알잖소.」-p.122


김혜리 기자의 <조용한생활 3월호> 에는 경제학자 '홍기빈'이 게스트로 나왔다.

그는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핵가족보다는 1인 가족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뭐가 됐든 다 돈을 써야만 하는 거라고.

아이를 키우는 예를 들면서, 대가족일 때는 모든 가족들이 양육에 참여하지만, 핵가족이 되면 아이를 돌보는 일에 돈을 써야 한다고.


과외 선생에게 많은 돈을 들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도록 하고 또 아이의 대화상대가 되도록 하는 일이, 피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었다. 피의 아버지라면, 그보다는 피에게 절실한 사람이 그가 되어줬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 서재의 많은 책들을 읽도록 독려하는게 아버지인 그가 해야 하는일 아니었을까. 아들을 염탐하는 게 아니라 아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게 그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피와 피의 아버지도 핵가족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게된 건 아닐까. 다른 가족이 그 큰 집에 더 있었다면 피도 조금 달라졌을까? 아버지와도 어머니와도 사랑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 피는, 친구도 없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앙주였던 거다. 그러니 앙주가 계속 이 집에 찾아오게 하고 싶다. 앙주를 계속 만나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절실한 사람이라니.

누군가에게 절실한 사람이 되는거, 나는 피하고 싶다. 



-잔혹동화

책과, 관계와, 브뤼셀을 얘기하는 것 같았던 이 책은,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잔혹동화가 된다. 아니, 본래부터 잔혹동화였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읽었다는 게 더 맞을테다. 이 잔혹동화에 대한 결말은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이렇게만 말하겠다.


책을 읽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열리지만, 그러나, 꼭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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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7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책 참 잘 읽는다~!! 아마도 아맬리 노통브가 이런 독자를 기다리고 썼울 거 같은 그런 책.

저는 마지막 결말 상징으로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자의 갇힌 세계 탈출 뭐 그런 거요.

다락방 2024-03-28 08:44   좋아요 2 | URL
마지막 결말은 피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선으로 가진 않았고 가족과 스스로에게 그리고 앙주라는 타인에게까지 결코 좋은 영향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어떤 사람이 어떤 수단과 만나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 책 처음부터 좋진 않아서 리뷰까지 쓸 줄 몰랐는데 점점 더 좋아져서 결국 할 말이 많아져버리고 말았어요. ㅎㅎ
덕분에 책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님. 오래되어 기억 안나긴 하지만, 제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 책들 중에서 이 책이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3-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너무 진지하게 달았어~!! ㅋㅋㅋㅋ 난 다락방 안 업신여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3-28 08:53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이 저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건 제가 잘 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4-03-2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재능과 다독으로 단련된 훈련이 만나 이런 리뷰가 나오는 군요 정말 다락님 리뷰를 읽을 때 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정말 다락방님의 팬이어요...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게 전 그렇게 쉽지 않더라구요. 가슴 저릿한 책을 읽으면 그거대로 뻐렁찬 제 가슴을 조리있게 설명해 줄 말을 찾지 못해 남기지 못하고, 그저 그런 책은 또 그거대고 딱히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고.. 그냥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들이 몽글몽글 가슴과 머리 주변만 멤돌다가 증발되어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이 책!
아멜리 노통브 책 중에 일본 회사에서 벌어지는 소설 두권 (제목이 기억이 안나네요) 읽었는데 한권은 재밌었고 그래서 읽은 두번째 책은 그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나버린.. 특히 제가 사는 곳에선 너무나 자주 지하철 광고판에 보이는 작가 얼굴과 이름인데, 오히려 그래서 관심을 덜 갖게 되나봐요. 그런데 이 책은 다락방님 후기를 읽으니 읽어보고 싶어져요!!

다락방 2024-04-03 08:13   좋아요 1 | URL
아 달자 님. 달자 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까? 아, 프랑스에서 오신 천사입니까? 타고난 재능이라뇨. 과찬이십니다. 저는 언제나 저의 재능 없음을 탓합니다. 저에게 재능이 있는건 아니지만 달자 님이 제 팬이라고 말씀해주신다면, 그건 아마도 제 글이 달자 님께 재미있게 읽히기 때문이겠지요. 재능이라요 ㅠㅠ 없습니다ㅠㅠ 다만 열심히, 좋아서 읽고 쓸 뿐.. 그러나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팬이라니 흑흑흑 ㅠㅠ

저는 아멜리 노통브 처음 나올 때 살인자의 건강법인가, 그거랑 적의 화장법 읽었던 것 같은데 딱히 강하게 기억되진 않고요, 그런데 이 책은 결말 때문에 좀 놀라버렸네요. 아니, 그럴 것까진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면서...
제가 읽었던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좋았습니다. (세 권정도 밖에 안읽은것 같지만요 ㅋ)

건조기후 2024-03-30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책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다락방님ㅎㅎ 오늘도 뽐뿌질에 넘어가고 맙니당!

다락방 2024-04-03 08:14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건조기후 님! ㅎㅎ

단발머리 2024-04-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때문에 꼭 읽어보고 싶어요. 저 아멜리 노통브 책은 한 권도 안 읽었는데... 이름도 어렵군요. 아멜리 노통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잔혹동화라니요...... 궁금궁금!

잠자냥 2024-04-02 09:23   좋아요 1 | URL
결말 제가 알려드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02 09:24   좋아요 0 | URL
네네넨넼ㅋㅋㅋㅋㅋㅋ 저 결말 미리 알아도 되는ㅋㅋㅋㅋㅋ아 그래도 남겨둘까요? 아…. 어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03 08:1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도서관에 없다면 희망도서로 신청하시고요. 전 요즘 희망도서 신청하는게 너무 좋아서 막 신청하고 도착했다 하면 가서 찾아오고 그럽니다. 읽고 가져다줄 때도 있지만 안읽고 가져다줄 때는 더 많다는 사실도 고백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말은 미리 알고 보지 마시고요, 책으로 확인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