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립지 않아



  새벽 네 시에 하루를 열면서 짐을 꾸립니다. 아침 일곱 시에 모두 짐을 챙겨서 길을 나섭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저희 짐을 꾸려 줍니다. 집 안팎을 좀 치우고서 움직이는데, 순천에서 기차를 갈아타니 몸이 스르르 풀리며 눈이 감길 듯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기찻길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스토리닷 출판사에서 오늘 글꾸러미를 마무리해서 인쇄소에 넘긴다고 했어요. 틀리거나 빠진 글씨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살피는 일을 해야 합니다. 10초쯤 눈을 감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튼튼해. 나는 내 일을 즐겁게 해. 서두르지 않되 늦추지 않아. 즐거이 일을 마치고 몸이며 마음 활짝 쉬는 길을 가자.” 혼잣말을 하고서 일손을 잡습니다. 두 시간 반에 걸쳐서 글을 다 살폈고, 고칠 곳 일곱 군데를 찾아냅니다. 종이책으로 나올 적에는 더 손볼 데가 없으리라 여기면서 무릎셈틀을 닫습니다. 졸립지 않아요. 큰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면서 기차가 부산 사상역에 닿기를 기다립니다. 2018.7.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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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길을 꿈꾸다



  가시어머니가 고흥으로 마실을 오십니다. 가시어머니가 고흥에 오시면,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함께 새로 짓는 배움살림을 가시어머니하고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을 스스로 그려서 스스로 마음을 쏟아 짓는 하루를 이야기하려 해요. 살림돈이 없어서 걱정이라든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걱정이라든지,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라든지, 일자리를 어떻게 얻느냐는 걱정이라든지, 모든 걱정은 언제나 걱정을 낳으니, 걱정 아닌 꿈하고 사랑을 마음에 심어서, 언제나 꿈하고 사랑을 낳는 꿈하고 사랑에만 마음을 쓰는 길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하늘처럼 새파란 마음이 되려고 합니다. 하늘 같은 바람을 마시는 살림으로 몸을 다스리면서 마음을 가꾸는 길을 걸으려고 해요. 가시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오사카에 있는 blu room에 다녀오면서 파란 길이란, 파랑 사랑이란, 파란 숲집이란 무엇인가를 더 깊고 넓게 배울 생각입니다. 오늘 씨앗 한 톨을 새롭게 심습니다. 2018.7.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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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잔에 받는 초코라떼



  찻집에 들어가서 차분히 앉아 찻물을 누리려 하는데 종이잔에 준다면? 이를 거의 헤아리지 않고 살다가 오늘 종이잔을 받고서 문득 돌아봅니다. 집에서 찻물을 끓여 즐길 적에 종이잔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마음에 드는 꽃잔을 씁니다. 유리잔이든 도자기잔을 써요. 고흥읍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한 시간쯤 길에서 보내야 하기에 놀이터나 팔각정에 가 볼까 하다가 그동안 안 가 본 어느 찻집에 들렀는데, 종이잔에 초코라떼를 주는군요. 조용히 바라보다가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2018.6.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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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네



  나막신은 나무로 짠 신. 일본에서만 꿴 신이 아닌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서도 두루 꿰던 신.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안 꿰는 신이요, 일본에서는 오늘날에도 제법 꿰는 신. 일본마실을 하며 곁님이 일본 나막신을 한 켤레 장만해서 발에 꿰어 보고는 이렇게 좋은 신이 있었나 하고 놀랍니다. 화학섬유 아닌 나무로, 또 천으로 두룬 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군요. 게다가 이런 신값이 그리 안 비싸네요. 오히려 화학섬유 신값이 무척 비싸요. 천연섬유로는 신을 짓지 않거나 못하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을 발에 대어 걸어다니는 삶일까요. 2018.6.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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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 쪽글



  고흥에서 살며 두 걸음째 선거를 맞이합니다. 예전 선거에서는 누가 예비후보라느니 무슨 후보라느니 하는 손전화 쪽글이 아예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가오는 2018년 선거를 앞두고 온갖 예비후보가 손전화 쪽글을 보냅니다. 날마다 몇 가지씩 날아오는데요, 이분들이 제 손전화 번호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었을까 아리송하기도 하지만, 전라남도에서, 또 고흥군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노라 하고 밝히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엇비슷하게 하는 이야기라면 ‘뒤떨어진(낙후된) 지역 개발’일 뿐입니다. 이분들 말마따나 전라남도나 고흥군은 참말로 한국에서 가장 개발이 뒤떨어진 고장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을 뒤집어 말하자면, 전라남도하고 고흥은 한국에서 가장 ‘개발 막삽질을 덜 탄 조용하고 정갈한 고장’이라는 뜻이에요. 전라남도지사를 바라건 고흥군수를 바라건, 또 고흥군의회 의원이나 전라남도의회 의원을 바라건, 이분들이 ‘시골이라는 고장을 텃사람이 사랑하고 이웃고장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정책’을 손전화 쪽글로 한 가지라도 밝혀서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얼굴 알리려고 돌아다닐 틈을 쪼개어 책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전라남도하고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책밭을 일구는 여러 일꾼이 무슨 마음으로 굳이 이 조용한 두멧자락 시골에 터를 잡고서 책밭을 일구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2018.4.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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