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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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아이의 죽음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그 후의 삶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바라보기 힘들어서 외면하는 진실은 얼마나 많은가
그것에 목매달고 있다가 함께 사그라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거짓과 진실을 가르는 익명된 시선과 권력의 논리.
딸을 잃고 아내를 잃고 홀로 선 벼랑에서 죽을 각오로 진실을 마주하려는 우진에게
딸이 죽은 그날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그러면 잘못된 일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까?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한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어느 때로 돌아가든 답은 같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된 이유는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p.377

의문과 공감, 분노와 죄책감을 차례로 밟으며 이 책을 읽었다.
평혼했던 한 가정에 던져진 불씨.
내가 아니어서 다행인 우진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진실을 마주 볼 수 있었을까.
우진과 같은 이에게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었을까.

우진이 찾아낸 진실은 안타깝고 허무했고

언제가 들어 본 이야기인 듯도 했고

만약에, 만약에, 를 자꾸 되뇌이게 했지만,
호기심으로 펼쳤고 빠르게 읽혀졌던 이 책이
여전히 마음속에 펼쳐져 있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억울함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이가 있을 것이고
타인의 감정과 면죄를 위해 한순간 사라지는 목숨이 있을 것이고
진실은 돈과 권력의 힘으로 만들어지며
나는 변함이 없이 두려움을 입막음한 채 진실과 거짓 사이를 곡예하며 살고 있기에. 
 
끊임없이 죄인임을 시인하며 살아야하는 삶,
책으로 그것을 마주 본 일이
가장 공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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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는 것 같다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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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8일, 나는 카네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연휴를 휘몰아치듯 보내고 직장으로 학교로 식구들이 사라져 혼자 남아 그랬다. 그리는 내내 지난 연휴 속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시부모님께 맛있는 걸 사드린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간 뷔페였다. 식사 후 소화가 안돼 힘들어하셨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친정 아빠는 속이 좋지 않으셔서 맛있는 걸 사드리지 못했다. 나는 연신 바깥 음식들을 말하며 사 오겠다 했지만 엄마는 있는 거 먹자고 말을 접었다. 뭐라도 사드리고 와야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사드리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 맘 편하려고 내 기준의 '맛있는 음식'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꽃과 식사와 용돈. 어버이날이 가까워오면 내가 해야 할 몫처럼 여겨지는 일들. 그건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연휴가 고단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내 배가 불렀고 몸무게는 늘어있었다. 
 카네이션을 그리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을 때, 책이 왔다. 두 손에 가붓하게 안기는 책이, 내 아버지의 여린 손바닥이 같았다. 괜찮다 나를 다독이려 찾아온, 손바닥 같았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

이 가능과 불가능을 집약할 수 있는 대명사는 아버지밖에 없다. -p.14

 아버지를 부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서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제 떠나려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11년 전 퇴근길에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119 구급대원으로부터 다급하게 확인받았다. 아버지가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계시던 일주일 나에겐 아버지의 빚과 카드값 고지서들이 찾아들었다. 세상은 얼마나 냉정하고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신랄하게 배워갔다.  
 정신이 돌아오고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붕대로 감고 누워있는 아빠에게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밖에 못 살았어요?"
 당신은 말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무책임한 말이라고 속으로 당신을 원망했다. 당신의 삶을 비난하는 친척들의 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감사도 존경도 없는 것처럼, 당신을 나의 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따뜻한 걸 먹을까
대학병원 회전문을 나선다

당신은 재가 떨어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 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담뱃진이 물든 중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곤 했다

내년에 꽃 보러 오자
길바닥에 떨어진 버찌 열매를 밟으며
국수를 먹으러 간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앞서 가는 뒷목이 붉다

-신미나, 「서울, 273 간선버스」 전문

  아버지에 관한 시와 두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반성문'이 교차되며 나를 울고 웃게 했다.

안희연 시인은 너무나 어린 '아홉 살의 어느 날' '그저 내 앞에 놓인 김밥이 따뜻하고 맛있어서, 이모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접시를 전부 비'우며 아버지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여행 가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의 나이가 되어서야 철모르던 그때의 행동까지 주섬주섬 슬퍼지고 마는 그 마음이 내게도 머문 적이 있었다. 흐린 기억은 문득문득 화살처럼 날아와 날카롭게 꽂혔다.   
 영원한 기싸움을 하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일까. 아버지의 뜻대로 꺾이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가까워지지 못했으면서도,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붙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신용목 시인이 의외로 느껴지기도 했고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인의 글 「어데서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에는 좀처럼 휘어지지 않는 시인의 고집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버지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 때문이었다!^^  내가 모자라 만든 아픈 자리를 이런 추억들이 덮고 있어 우리는 견디어 또다른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날계란을 쥐듯
아버지는 내 손을 쥔다
드문 일이다

두어 마디가 없는
흰 장갑 속의 손가락
쓰다 만 초 같은 손가락

생의 손마디가 이렇게
뭉툭하게 만져진다

-신미나, 「신부 입장」 전문

  11년이 지나고, 당신은 점점 약해져 내가 두세 걸음이면 도달하는 주방 식탁에 워커를 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위태롭게 도착한다. 고단한 일을 하던 손의 시간은 지워지고, 운동으로 다져졌던 몸의 근육도 모두 빠져 앙상해진 당신에게 일상은 작은방 침대에서부터 그 식탁,까지 뿐이다. 그런 아빠가 아이처럼 형님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로 병원에서 만난 후 뵌 적이 없었다. 아빠 생신에 청양에서 올라오신 이모부는 십 년 만에 본 아빠에게 '이렇게 보니 자네는 잘못 살아온 것 같지 않다고, 자네에게 잘못 살았다고 하는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오래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서. 아빠는 안타까운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한 집안의 장남으로, 우리의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오셨음을.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이제서야 그 고단했던 삶을 이해한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증명사진 한장을 가지고 다닌다. 누가 봐도 인물 좋다고 할 만한 사진이지만, 증명사진이 으레 그렇듯 사진 속 아버지는 웃지 않는다. 모두 잠든 새벽이나 늦은 밤, 일기를 써내려가는 아버지의 얼굴이 사진 속 표정처럼 꼭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많은 이야기들을 그 사진은 꼭 다문 입술로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진 속의 얼굴은 순간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아버지의 증명사진 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긴다. 평생을 따라 읽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말이다.
-p.52,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중에서

 

  늦은 새벽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며 당신은 훌쩍 늙어갔다. 그 안타까움으로 후회로 두려움으로 온몸 아프게 당신을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빠를 마음껏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시인들의 시로 이야기로 숨어들어 아빠를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 나 어릴 때 약수터 가는 길에 당신과 달리기를 했던 것도 생각나고, 냇가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어느 여름 날 갑자기 비가 퍼부어 냇가에서 높은 지대로 나를 업어 올리던 당신의 단단한 등도 생각이 났다. 당신을 믿고 나는 자랐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었다. 나의 첫 문장일 당신. 시집 속에서 나는 웃으며 마음껏 당신을 생각했다. 떠나와서야 더욱 간절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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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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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그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

-p.194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발이 푹푹 빠졌다. 머뭇거리고 망설였다. 돌아서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섰다가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끌림과 돌아섬으로 한 달 가까이 이 책과 있었다. 가붓한 책을 두 손에 안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멀리서 가늘게 파도소리가 울렸다.

'이 소설을 정미경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유고작이다'

 작가의 죽음은 늘 실감 나지 않는다. 책이 있기 때문에, 책이 살아있기 때문에, 거기에 그도 있다.

누군가의 말은 그녀가 살아 건네는 말처럼, 분명 그러했다.

 

시간의 앞뒤와 공간이 뒤엉킨,

섬 사이의 섬.

 

  마음의 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우는 '미친 애의 엄마'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에게 쫓겨 이 섬으로 왔다. 이곳은 엄마의 유년이 담긴 곳이고 그때의 동무였던 정모 아저씨가 도망치듯 돌아와 숨어든 곳이기도 하다. 더운 여름 서커스 천막 속에 홀로 남겨졌던 어린 판도도 계절 없이 '독하게 추운 날들'을 지나 이삐 할미 손으로 이곳에 들었다. 섬사람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귀와 입을 닫기로 했던 그때의 아이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내지 못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섬에 든 사람들. 그들은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고 빠르게 달리던 시간에서 위태롭게 쏟아졌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는 하늘과 바다와 바람의 풍경 속에 상처를 씻고 눈물을 흘리며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사람의 걸음에 제 발을 포개며, 무어라 채근하지 않고 다만 가파른 숨소리를 염려하며. 서로를 눈으로 더듬어 보살폈다. 휴대폰의 온기가 있던 손엔 따뜻한 말들이 고였다. 텅 비어 있던 이우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기억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며 스스로 차오르고 있음을 느겼다.

  난감하고 버릇없어 보이던 이우의 상처와 단단하게 도서관을 지어가던 정모 아저씨의 아픔 들은 서로의 마음에 기댈수록 섬 공기 속에 흐리게 번져갔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판도가 바라보던 섬과 섬 사이의 붉은 덩어리처럼, 아.름.답.게.

  이우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구절 앞에서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지기 시작한' 판도. 이우를 찾아온 엄마의 존재에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반가운 균열이었다. '책으로만 읽었을 뿐인' 많은 일들이 판도의 인생에도 일어나려 하고 있었으니까.

 

해가 질 시간이다. 이렇게 물구나무를 서서 크고 붉은 덩어리가 섬과 섬 사이로 흘러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배꼽 깊숙한 곳이 따끈해졌다. -p.26

     

 빛나는 소금과 바다 냄새들 틈에서, 나도 잠시 마음을 말렸다. 

 섬처럼 떠있던 문장들은 다시 읽을수록 선명해져 곳곳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통증과 슬픔들은 읽지 않아도 느껴지고 만져졌다. 나 또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것일까. '터무니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되는' 시간을 '밀물과 썰물을 받아들이듯' 살아내고 있다는.

어쩌면 미완의, 잠시 발이 묶인 이 호흡에서 무너져내려 멀리 허공을 바라보고 희미한 문장을 더듬어보는 일이 이 소설의 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금 창고는 바람이 지나는 길에 있다. 바람을 맞으며 정모는 바닷가 마지막 소금 창고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둔덕이 사라지면서 몽돌밭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거의 매일 이곳으로 오지만 풍경은 매번 달라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오지 않았던 또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애잔하게 나부끼는 삘기, 하늘, 바다, 섬과 섬, 섬 뒤의 섬. 정모에게 이것들은 풍경도 색채도 아닌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때도 바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글자글 몽돌이 파도에 쓸리는 소리 역시.

정모는 눈을 감고 바람이 실어 온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저 아이는 떠날 것이고 소금 창고 도서관도 문을 열겠지. 그 다음엔. 그 다음은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될 것이다.

-p.58

 

 고통 속에서도 잔잔히 퍼지는 삶의 단호함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만히 있어주는 자연의 고요함을, 작가는 아름답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웠던 따뜻함이 못내 슬펐다. '이 소설을 쓸 무렵부터 그녀의 몸이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문장은 꼿꼿이 서서 저무는 삶을 지나며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픔도 행복도 결국 살아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빛나는 별이거나 노래라는 걸.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툭 끊어지듯 찾아오는 죽음도 그 틈에서 꿋꿋이 이어지는 삶도. 한줄기 바람으로 뒤섞이는 가벼운 것이라는 걸. 그러니 애써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에게 말해주는 듯 했다.     

 

 그녀가 남겨준 아름다운 문장 속에 그렇게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당신의 아주 먼 섬'이 있다.

귀와 입을 닫고 가만히 담겨 있을 만한, 그곳에 들러 숨을 고르면 좋겠다.

  

 산책하듯

 이 책을 거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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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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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워야 한다는 것, 여성스럽다는 것.

딸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된다는 것.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어 당연하게 요구되는 희생.

이건 다 무얼 위한 말들인가.

여자니까 조신해야 하고,

여자니까 의견을 세우기보단 수용하는 쪽이 되어야 하고,

여자니까 나의 일은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미뤄둘 줄 알아야한다는

원래 그런 거야, 라는 그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을

넌 잘 배우고 잘 자란 괜찮은 여자야, 라는 인정을 받기위해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이해하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숨이 막혔다.

 

"남자들한테 싫다고 한 적 있어?"

"응"

"그러면 뭐라고 해?"

유리는 또 웃었다. "안 믿어."

"여러 번 말하면 되잖아. 화를 내."

"냈어." 우리는 수진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들은 내가 화낸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싫은 척하는 거라고 생각해." -p.230

 

폭력과 강압으로 피해를 입고도 내가 술을 마셔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들에게 여지를 주어서, 나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은 아닐까,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로 이어지던 진아와 수진, 유리의 생각이 견딜 수 없이 슬프고 가슴이 메였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 이후 일어난 일은 더욱 참혹했다. '그랬어? 그럴 수도 있지. 그러게 왜 따라갔어.' 로 시작해 결국 누구의 이해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을 짓누른 가해자 앞에 홀로 남아 내 탓으로 돌아서게 되는, 이 사회가 만들어가는 터무니 없는 결론을, 목격하고도 어찌할 수 없는 나를,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실수였다고? 그래. 얼마든지 양보해서 실수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야.

왜 내게 실수했어? 너는 내 몸에 실수를 하고 맘 편히 사라졌는데, 왜 내 몸은 그저 실수로 끝나지 않지? 왜 내 몸이 아픈 거지? 왜 네 실수 때문에 내 몸이 찢겨 나가고 뒤틀려야 하지. 수진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프고, 소문날까봐 두려워하고, 누구에게 말도 못 하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실수라고? 하지만 너는 현규 같은 남자에게는 실수하지 않겠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번역가에게도, 저 교수들에게도, 너는 얌전하고 착한 남학생처럼 앉아 있겠지.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니. 창고를 떠올리나? 네가 실수해도 상관없는, 네가 원하는 대로 실수해도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그 창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 창고가 나야?       

 -p.238

 

옛날 이야기다, 로 담담히 맺는 듯 하지만 수진의 기억은 그 때의 통증과 분노가 여전히 그녀 안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떤 무엇이, 누가, 여자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존재로 여기게 만든 것일까. 침묵이, 방조가, 외면이 '신경 쓰지 마. 네가 신경 쓸 것 없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 p.202, 강화길 「호수-다른 사람」, 『2018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라고 여기고 피하려 한 마음이 그들을 더없는 나락으로 밀어버렸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p.259

 

결국 가해자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다른 손을 잡고, 복수를 위해 수진도 여자도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선택하며 '다시 강간당하느니 차라리 강간하는 인간이 되고 말겠다'로 이어지는 분노는, 그 삶은, 결국 엄마 닮아 팔자가 그렇다는 말로, 걔가 그렇지 뭐라는 말로, 그럴 줄 알았다는 말로 사람들 입에 메아리가 되어 번져갔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기억되는 여성 범죄들. 가해자의 극악무도함은 사라지고 피해자의 피해사실과 어떻게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가를 소비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또 다른 얼굴의 가해자가 아닌가.

 

너무나 많은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입을 우린 가진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 생각대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주입되어온 생각들로 생각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단지 나로 살고 싶을 뿐인데,

누군가를 향한 강요된 희생도 양보도 없이

나 자체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순간   

이 말을 꺼낸 나를 건방지게 볼까봐 고민하며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기 위해

부드럽게 거절하기 위해 노력하려하는 나는

여자로 태어났을 뿐인

나는,

 

무엇이 다른 존재인가.

무엇이 다른 존재여서 갖고 노는 물건처럼 여기려 하는가.

 

소설의 마지막은 마무리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책을 읽고 있는 '너'에게 던진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마지막 장.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

잘못 끼워진 단추 주변을 머뭇거리던 손이 포개지기 시작했다. 찢기고 다칠 것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부당한 피해를 전하기 시작한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들에게 스며들어 분노하고 앓았던 그 시간들을,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이야기가 부디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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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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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결국 에어컨을 들여놓았다. 작년 무더위에 밤잠을 설치고 땀을 매단 채 놀던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개월 할부로 들인 스탠드 에어컨은 현관을 넘기도 전에 거대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또 하나의 빚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거실 벽을 뚫고 팔뚝만 한 선뭉치가 힘겹게 빠져나갔다. 마음대로 바깥에 거치대를 매달 수 없는 임대 아파트의 비좁은 베란다엔 거대한 실외기가 낯선 곳에 입양된 동물처럼, 웅웅거렸다.
 설치기사가 떠난 후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는데 불안했던 마음은 옅어지고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숨바꼭질을 하고 뛰어다니는데 어쩐지 나는 고요해져 엎질러진 모든 슬픔을 감당할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 소리에 아랫집에서 올라올까 전전긍긍하던 마음도, 오시면 사정을 잘 말씀드려야지 하는 여유로 바뀌어 있었다. 이 기적 같은 마음들이 숨 막히는 더위를 걷어내는 에어컨 바람 때문이란걸, 나는 알았다. 신이 나 연신 웃고 떠들던 6살 작은 아이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우리 에어컨 사길 정말 잘했다, 그치?"

 점점 슬픔에 무뎌지는 나를 본다. 삶에 냉정해지고 냉철해지는 건 좋은 걸까. 나는 내 아이의 울음도 안아주지 않고 방에 들어가 스스로 견디길 명령했다. 아버지의 입원도, 누군가의 사정도 슬퍼하기 전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먼저 찾았다.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는 남편에게 속 끓이는 걱정이 없어서라고 마음이 편해 괜한 불만이 생기는 거라 재촉했다. 다독이기 전에 먼저 잘못을 짚었다. 그래서 따라온 결과는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그러니 견디라고.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 애썼다. 나는 요즘, 어느 날의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내가 울지 않을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

 그런 내가 그들 부부의 대화를 읽다 무너질 뻔했다. 
 평범한 가정에 불시에 일어난 상실과 그 거대한 부재에 몸을 던지려는 부부를 막은 건 곁을 지켜주려 애쓴 부모가 아니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길 두려워 않는 마음을 붙잡아 앉힌 건, 안타까워 하던 이웃의 시선이 자식을 잃은 그들을 피하며 수군거림으로 변해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건, 떨어진 집값 때문이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서 그들을 붙잡고 있는 건, 빚이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p.33, 「입동」 부분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애써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살아야 할 이유는 남아 나를 면죄했다. 스스로 끝낼 수 없는 삶. 그렇게 빚을 지고 빚을 갚느라 아등바등 살면서도 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그러나'를 자꾸 생각나게 했다. 부부는 아이를 잃었으나(「입동」), 찬성은 에반을 잃었으나(「노찬성과 에반」), 도화는 이수와 헤어졌으나(「건너편」), 나는 교수 임용에 떨어졌으나(「풍경의 쓸모」), 억울한 오해를 받게 되었으나(「가리는 손」), 남편을 잃었으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바깥은 여름이나 저마다의 부재를 견디며 다른 계절을 사는 이들. 살아내야 할 시간은 이어졌고 그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었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찌될까. -p.145

 

「침묵의 미래속 '나'는 '뚜렷한 얼굴도 몸통도 없이' 모호하면서도 어쩐지 현실이란 박물관에 전시되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헤어짐을 불사하며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박물관에서 자신들의 아이를 빼돌리고, 도망쳤으나 누구도 그의 언어를 이해해주지 못해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야 했던 사내와, 죽으며 '온전한 문장 하나 완성 못하고 숨을 거두' 었으나 그 모든 것을 아무 일 없듯 덮어버리는 고요를 나는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익숙하게, 그러나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마주하고 있었다.


 '공짜를 바란 적 없'지만 삶은 늘 서운하고 서럽게 흘러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저마다의 비명을 지르며, 우리는  떠밀려갔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면서. 그것을 어쩔 수 없었던 나의 피해로 덮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다 견딜만해진다는 그 말을 구명튜브처럼 붙잡고 외로움을 견뎠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p.142, 「풍경의 쓸모」 부분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기를,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기를 점점 주저하게 된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견디는 이들을 보면서 그 고통이 내게로 옮겨붙을까, 내게 일어나면 어땠을까 두려워 잠을 설치는 날들. 부끄럽게도 나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다. 몸을 숨긴 채. 내가 지켜야 할 두 아이들을 품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만은 곁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절박하지만 여유로운 척 가끔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어제의 일과 내일의 일 들을 나눴다. 그 대화들은 저마다의 부재 속으로 어지럽게 빨려 들어가 치유가 되거나 상처가 되었다. 
 담담하게 읽어가던 소설에서 내가 흔들렸던 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이해를 받던 순간이었다. 부부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학생을 구하려다 함께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그리움으로 바뀌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란 이름표로 스스로 치러야 했을 비용과 그런 아이의 마음을 가만히 덮는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 속에서 힘겨웠던 한 계절이 애써 닫히고 또 다른 한 계절이 열리려 하는 것을 보았다. 고된 더위를 뚫고 다가오는 한 줄기 찬 바람처럼, 숨 막히는 삶 속에 맡아지는 위안.

 그 또한 ''삶'이 '삶'에 뛰어드는 행위'가 아닐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뛰어들 수 있을까.


 사는 일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일이라는 걸, 그 빚을 누군가에게 갚으려 애쓰고 그러다 불쑥 누군가가 내게 갚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내 삶을 빚이 붙들어준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 마저도 빚이 되는가 싶은 슬픔 속에서 나는 가만히 내 생에 쌓인 빚의 쓸모를 생각해본다. 돈과 생과 타인과 시대에 진 빚들이 움직여가는 나의 삶을. 저마다의 빚을 갚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생을. 한 권의 책이 내게 가져온 잠시 뜨거웠던 눈물을. 나는 이 여름과 함께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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