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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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가장자리에 서서 넓은 염습지 위를 움직이는 안개의 숨결을 느끼며, 수백만 년 동안 조용히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 모래톱 위를 나는 새들의 비행을 지켜보는 것은 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인간이 바닷가에 나타나 경이에 가득한 눈으로 대양을 바라보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7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1907~1964)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Under the Sea-Wind>를 통해 바다와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생명을 말한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의 매 장면을 눈을 감고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에서 독자들은 영상에 제약되지 않은 바다 생명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겨울 동안 어린 거북은 남아 있는 노른자를 영양분 삼아 버텨냈을 것이다. 겨울이 길고 추위가 모래 속까지 스며들어 많은 새끼가 얼어 죽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약하고 무기력해서 태어날 때보다 줄어든 몸체를 알 속에서 잔뜩 웅크렸다. 그러다 알에서 깨어나면 부모 거북이 새로운 후손을 낳아 묻어놓은 모래 위를 힘없이 움직였다... 풀숲 끝자락에서 쥐가 거북의 보금자리를 노려보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왜가리가 크게 날갯짓을 하며 북쪽 해안으로 날아갔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41


 저자 레이첼 카슨은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바다라는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상상하되, 인간이라는 척도의 기준을 버릴 것을.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 대신, 자연이 허락한 기준인 빛과 어둠, 밀물과 썰물, 거스를 수 없는 해류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수온 등. 우리에게 단어로 존재하는 조건들이 바다 생물들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상상력의 날개는 활짝 펴질 것이다.


 진짜 바다의 시작은 해안으로부터의 거리가 아니라 깊이로 판단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07


 바다의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면 상상력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또 인간이 지닌 많은 특징과 인간 중심의 척도를 잠시라도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계나 달력으로 재는 시간과 세월은 해안의 새나 물고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바다에서의 삶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을 그 속에 투영할 수도 없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그러면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을 의인화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안의 동물들은 열망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춥고 배고픈 것을 피하려는 생명의 본능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 욕망이라는 요소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생명의 삶이 영위될 수 있다면, 인간의 욕망이란 불필요한 사족(蛇足)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쉬기 위한 고등어의 열망이 자신의 명예를 구하려는 아킬레우스의 열망보다 결코 못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다른 한편 물기기와 새우, 해파리, 새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그들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생명체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비유에서 지나치게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물고기는 물리적으로, 인간은 심리적으로 반응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물고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9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고등어 떼는 항구 입구의 바위를 지나 물살이 급하게 몰아치는 곳으로 향했다. 바닷물은 염분으로 인해 짜고 깨끗하고 차가웠다. 바위와 물고기가 뒤섞이다 보니 수면이 온통 여기저기 갈라져 산소를 구하는 움직임으로 들썩였다. 고등어는 주둥이로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온몸을 흔들어대며 흥분에 겨워 돌진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며 또 강렬히 열망했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144


 바다 생명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담긴 <바닷바람을 맞으며>속에서 대부분 인간의 모습은 풍경화 속의 배경처럼 주변에 머무른다. 그렇지만, 이따금 미래 닥칠 재앙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다음 구절은 지나가듯 나타나지만, <침묵의 봄>에서와 같은 저자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모든 만과 강에서 몰려나온 물고기들이 대륙붕을 가로지르고 고깃배들은 남쪽으로 향했다. 온갖 낚싯줄과 그물을 매단 배들이 겨울 바다 곳곳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았다. 겨울 휴식처를 찾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북쪽 항구 곳곳에서 몰려온 저인망 트롤선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송어와 넙치, 도미와 민어는 만과 해협을 벗어나면 어부의 그물로부터 안전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선박들이 오더니 긴 자루 같은 그물을 드리웠다가 끌어당겼다... 트롤망 어선은 매년 연안 어류의 겨울철 서식지에서 수백만 킬로그램의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p211


 <바닷 바람을 맞으며>는 제목 그대로 평안한 바닷가에서 보다 깊은 바다로 시선을 옮기며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바다지만 삶의 터전으로 그곳 또한 치열한 생명의 약동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결코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평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글의 마지막은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잘 설명한 서문의 글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며 끝맺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의 구성은 살아남고 번식하기 위해 분투하는 각각의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격렬한 투쟁에 입각한 다윈주의적 결정론이 아니라 기회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 바다 생명체에 대한 카슨의 이야기는 고요한 느낌을 전해준다. 카슨의 글이 특별한 것은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반응하는 자연의 냉철한 위력을 과학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것은 물론 물리적으로 관련있는 개별적인 생명체와 공감하는 동일시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_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문, p17

제비갈매기는 수면에 거의 붙은 채 강 상류로 1.5킬로미터 정도를 날아가 늪지 위를 크게 빙빙 돈 다음 다시 강어귀로 내려왔다. 아침 안개를 뚫고 물고기와 해초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어부들이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그물에 매달린 고기를 떼어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물을 배의 평평한 바닥에 쌓으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 P48

고래 사체는 몇 달 전 해안가로 떠밀려 왔는데, 겨울 내내 만 근처에 사는 까마귀와 그 친구들의 먹이가 되어주었다. 폭풍으로 인해 얼음 덩어리가 움직이며 고래의 사체를 밀어 보낸 것이다. 먹이를 보고 지른 툴루각의 환호성에 다른 세 마리 까마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툴루각의 뒤를 따라 순록 뼈에 붙어 있는 살점 몇 조각을 먹기 위해 툰드라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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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29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때, 레이철 카슨의 책을
사모았는데... 읽지는 못했네요.

그 때 사지 못한 책이라 더 애잔
하다는 느낌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대멸종의 시대에 쉽지 않은 미션
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8-29 21:21   좋아요 1 | URL
생명이 넘치는 바다에 독을 푸는 행위는 정말 인류에 씻지못할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고 폭주를 막아야겠지요...

베이글 2023-08-30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곧 내면의 바다에 침잠해 있었는데, 너른 자연의 바다로 시선을 돌려주는 책이네요.

서문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던 생명체가 살아남는다‘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제가 머물 적절한 곳은 어딘지 지금 이 시기에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3-08-30 12:35   좋아요 2 | URL
가끔은 확신에 차서 걸어가고 있는 길이 사실은 잘못가는 길이기도, 불확실하게 고민했던 길이 좋은 선택이었던 경험을 해봅니다. 아무래도 현실이라는 벽에서 넓게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면에서 지금 어두운 현실에서 많이 힘이 들지만,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보면 좋은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이글님 말씀처럼 저도 바닷가에서 육지 쪽이 아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 건너에 있는 희망을 상상하게 됩니다. 베이글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3-09-02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십년 전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읽다가 치명적인 고발내용에 빨려들어 밤을 꼬박 지새웠던 기억이 소환되게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3-09-02 17:22   좋아요 0 | URL
저도 <침묵의 봄>을 읽은 후 바다 3부작을 접하는데, <침묵의 봄>과는 다른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작가의 다른 면을 보게되었습니다 호시우행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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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에 나아갈 바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3대 요소를 이해하고 그것을 미래에 대한 판단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3대 요소란 진화의 일차적인 요소로서 개체를 중시하고, 자연 선택을 적응의 매커니즘으로 여기며, 진화적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그의 신념을 의미한다. _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p381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1941 ~ 2002)는 <다윈 이후 Ever Since Darwin: Reflections in Natural History>를 통해 잘못 이해되고 있는 다윈 사상을 짚고, 우리에게 그의 사상이 주는 의미를 재발견한다.

<다윈 이후>에서 저자는 우연(偶然)적인 자연선택(自然選擇)과 이에 대한 개체(個體)의 적응(適應)을 말한 다윈의 주장이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결정론적인 필연(必然)의 법칙으로 오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선택의 결과,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우생학(優生學)적인 논리나 적응의 결과로 필연적인 진보(進步)가 일어난다는 역사주의 모두 다윈의 의도와는 무관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지류에 불과하다.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창조한다는 주장에 담겨 있다. 변이는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그 방향은 임의적이다. 그것은 소재를 공급해 줄 뿐이다. 자연 선택은 진화라는 변화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것은 선호되는 변이 종들을 보전하고 점진적으로 적응도를 쌓아 올린다(p57)...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란, 다름 아닌 그 속에서 살기에 보다 나은 설계로 이루어진 생물 종들을 차증적으로 보전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는 작업을 말한다. _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p58

적응이란 다윈주의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자연 선택은 생물들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작동한다. 빈약한 설계에 따른 형태적 구조물들과 마찬가지로 부적당한 사회적 조직들 또한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_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p362

다윈의 진화론(evolution)은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남기 위한 한 생명체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 주어진 환경도, 그가 갖고 있는 특징도 필연적인 법칙이나 절대적인 요소는 없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고, 여기에 맞춰 살아갈 뿐이다. 이를 바라보는 제3자의 해석이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이를 넘어선 법칙, 의지 등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다윈주의에 대한 곡학아세(曲學阿世)식의 왜곡임을 본문을 통해 저자는 상세하게 비판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종 분화(speciation)' - 하나의 원줄기로부터 곁가지가 갈라져 나가는 - 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지 조상들의 느리고도 지속적인 변형을 통해 새로운 종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종 분화가 반복되면서 관목 형태가 만들어진다. 진화의 '연속'은 사다리의 가로대가 아닌, 재구성하자면 마치 밑동으로부터 우리가 현재 위치하는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회적인 통로와 미로가 얽히고설켜 있는, 그러한 관목의 모습인 것이다. _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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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설 비판 - 과학고전시리즈 7
루이 파스퇴르 지음, 김학현 옮김 / 서해문집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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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설에 찬성하는 학자들은 만약 극소량의 보통 공기가 여전히 침출액 속에서 생물을 발생시킨다면 이 생물이 자연발생을 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극히 적은 양의 공기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다양한 생물의 포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된다. 이 주장은 확실히 요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만약 아주 다양해 보이는 하등생물의 종류가 실제로 다양하고, 따라서 서로 다른 포자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된다면 이 중안은 한층 일리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것은 사실처럼 보이나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100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5)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제목 그대로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 Spontaneous generation theory)에 대한 비판(批判)이다. 그리고 파스퇴르의 비판은 사변적(思辨的)이 아닌 과학적(科學的) 실험 비판이라는 점에서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의 비판철학과도 궤를 달리한다.

만약,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이 이론적 비판이었다면, 자연발생설이 반증(反證)되어 퇴출될 수 있었을까. 고대로부터 주장되어온 자연발생설은 현미경이 발명된 17세기 이후에도 모습을 달리하여 과학적 학설로 인정받고 있었다. 즉, 모든 생명체들은 사후에도 고유한 활력을 갖고 있으며 적절한 산소(공기) 등이 제공되는 등 조건이 맞는다면 새롭게 조직될 수 있다는 내용의 자연발생설은 기독교의 부활신앙과 결합되어 당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이러한 보편적 상식에 대한 실험적 비판 내용을 담고 있다.

게이 뤼삭(Louis Joseph Gay-Lussac, 1778 ~ 1850)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내용물이 무사히 보존되어 온 병조림의 공기를 분석하면 거기에는 이미 산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산소의 결핍상태는 동식물성 물질을 보존하는 데서 하나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p97)... 병조림의 내용물이 보존되는 비밀은 보통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원물질이 열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이지, 게이 뤼삭이 생각한 것처럼 산소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은 아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98

그렇지만, 실험적으로 자연발생설을 비판한 학자는 파스퇴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전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 1729 ~ 1799)와 쉬반(Teodor Schwann, 1810 ~ 1882)은 각각 자신만의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비판했지만, 실험의 한계로 인해 완벽한 논파에는 실패한다. 스팔란차니의 실험에서는 가열이 공기 상태를 변화시켰다는 반론이, 슈반의 실험에서는 해당 실험이 알코올 발효에서는 타당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실험 결과, 가열한 뒤 냉각시킨 공기는 끓인 고기즙을 변질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성과였다. 실험 결과는 스팔란차니의 실험에서 공기의 변질을 추정한 니담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으며, 또한 아펠의 병조림 원리와 알코올 발효에서의 산소의 역할에 관한 게이 뤼삭의 주장이 갖고 있는 오류를 밝혀 주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25

그러나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고 해서 항상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플라스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너무 오래 담가 둔 경우에는 어떤 플라스크에서도 발효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면 강열처리된 공기를 넣은 플라스크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쉬반 박사는 밝히고 있다... 쉬반 박사가 실험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 발효도 부패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일으키는 원인은 적어도 대기 중의 산소만이 아니며 보통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고 열에 의해 파괴되는 어떤 종류의 원물질(原物質)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26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에 대한 반증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알코올 발효에 대한 쉬반 박사의 논리를 보완하는 한편, 그의 실험 결과인 비일관성(inconsistency)으로부터 자연발생설의 법칙성을 논파한 것에 있다. 파스퇴르의 실험은 법칙을 증명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발생설이라는 법칙이 타당하지 않다는 예시를 통해 법칙을 무너뜨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면에서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무너뜨렸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파괴적인 이론으로도 보여진다. 그렇지만, 반례를 통해 법칙의 타당성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본문의 내용은 효과적인 과학적 반증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나(파스퇴르)는 점액 발효, 유산 발효, 낙산 발효, 주석산 발효, 사과산 발효, 요소 발효 등 모든 발효가 항상 유기체의 존재 및 그 증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단백질은 결코 효모 그 자체가 아니며 효모의 영양소에 지나지 않는다. 효모는 바로 유기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35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서 채취하든 소량의 공기는 임의의 침출액 속에서 미생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p168)... 만약 자연발생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플라스크 안의) 액체는 (플라스크의 공기로 인해) 변질할 것이고, 변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변질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결과를 말씀드리면 이 플라스크들 가운데 몇 개에서는 미세동물이나 곰팡이가 결코 발생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본래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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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단위로 한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된 시대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역사가들은 영웅에게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기 때문에 역사는 대부분 중앙의 권좌에 앉아 있는 권력자의 눈으로 본 역사가 되고만다. 나는 이러한 발상을 중앙주의사관이라고 부른다. 해삼을 빌려 인류, 인간족의 발걸음을 그려내려고 하는 것은 국가사관 중앙주의사관에 이의신청을 하기 위함이다. 국가사관, 중앙주의사관에서는 해삼어나 마닐라맨, 앞으로 등장하게 될 기슈의 진주 채취를 찾아볼 수 없다. 나는 해삼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느낀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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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연변이 매와 돌연변이 찌르레기가 더 잘 날았기에 생존에 보다 유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개선이 이루어지려면 알맞은 돌연변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알맞은 ‘고독한 천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다. 인류의 혁신이 반드시 고독한 천재를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진화에서 새로운 ‘착상’의 궁극적인 원천이 돌연변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성 생식은 유전자들을 뒤섞어서 많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며, 그것들은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된다. 공학자의 착상처럼, 유전자도 뒤섞이고 재조합된 뒤에 검사를 받는다. 탁월한 돌연변이(즉, 고독한 천재)가 출현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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