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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연의는 아빠에게 '킨더 조이'를 달라고 조릅니다.

 평소 연의 간식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연의엄마와는 달리 아이와 친해줄 별다른 것이 없는 연의에게 저는 버튼을 누르면 간식이 나오는 '자판기'에 가까운 편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킨더조이 초콜렛을 내주었습니다. 참고로, '킨더조이'는  초콜렛과 장난감이 같이 있기에 연의는 좋아하는 간식인 반면, 연의엄마 불량식품 리스트(Black List)에 올라있는 품목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연의는 제게 '엄마한테는 비밀이야.'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먹었고, 저는 그런 연의를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비밀이라고 자신이 말해 놓고 아침식사 중 엄마에게 자기가 먼저 "엄마, 아빠가 나한테 킨더 조이 줬어!" 하고 먼저 이야기를 하네요....ㅜㅜ : 


잠시동안 우병우를 능가하는 아내의 레이저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격을 받으면서 '과연 연의의 행동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의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하 내용에서는 그 결론에 대한 설명을 적어보겠습니다.



[그림] 킨더조이(이미지 출처 : http://byeolx2.tistory.com/977)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유전자의 최적 선택 행동을 설명합니다. 반복되지 않는 게임에서 게임 참가자들은 '배신'이라는 카드를 선택했을 때,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배신"카드를 낸다면 나 또한 "배신"을 내야 내가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된다. 상호 배신으로 벌을 받지만, 만일 "협력"의 카드를 낸다면 나는 봉이 되어 뜯기게 되므로 이보다 나을 것이다..... 당신이 어느 카드를 내든 간에 나의 최선의 수는 항상 "배신" 카드를 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p342)




[표1]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나온 여러 가지 결과로부터 내가 얻는 이득(p341)


반복되지 않는 게임에서는 "배신"이라는 카드가 가장 효율적이지만,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몇 번 게임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신뢰 또는 불신을 쌓고, 보복하거나 회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p344)


'배신'을 방지하는 전략으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Tit for Tat"(TFT :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으로 이러한 보복 전략이 배신을 방지할 수 있다고 언급됩니다. 다시 연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연의가 '킨더 조이'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표2] 킨더 조이 게임에서 연의가 얻는 이득(겨울호랑이 추정)


어떤 경우에도 연의는 킨더조이는 확보합니다. 이 경우, 나중에 엄마에게 들키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추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들켰을 때의 손해와 아빠의 배신(아빠가 먼저 고자질할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합니다. 


예상되는 손해의 경우,  몰래 킨더조이를 먹었다가 나중에 엄마에게 들킬 경우 추가적인 간식을 제공받을 수 없는 위험이 예상됩니다.  반면, 아빠는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최선의 전략은 엄마에게 미리 말하고 '착한 어린이 인증'을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동안 관찰된 아빠의 행동은 연의에게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한 빅데이터(Big data)를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에 '아빠의 배신'은 논외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아빠의 배신에 대한 보험으로 '엄마에게는 비밀이야.''라고 인증을 요청한 것이 아닐런지..지난 주 일요일 1회성 게임에서 연의의 행동은 전략적/합리적 선택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연의는 이러한 행동을 계속할까요? 

이런 질문에 추가적으로 '연의는 반복되는 게임(보복가능성)을 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반복되는 게임에서도 연의의 선택은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6년동안 동쪽에서 해가 뜰 확률이, 갑자기 내일 서쪽에서 해가 뜰 가능성보다 높기 때문에', 딸바보인 아빠로부터의 보복 가능성은 '0'이라고 판단해도 확률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따라가보니, 연의의 모든 행동은 게임의 반복성과 비반복성을 떠나서 모든 경우에지극히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연의가 뛰어난 전략가인지, 아니면 연의의 순진한 행동을 겨울호랑이가 어렵게 해석했는지는 이웃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ㅋ 


날이 많이 추운 날입니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내용을 다르게 생각해봤습니다.

이웃분들 가볍게 읽으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PS. 내용을 정리하던 중 보복가능성(TFT)을 추가하여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부녀(父女)관계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빠질 수 있으므로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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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21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에서 표를 작성한 후 북플에서 보니 깨져있네요.. 북플에서 표작성 기능은 지원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21 13:01   좋아요 4 | URL
저는 표를 직접 이미지 파일 형태로 만들어 복사해서 붙입니다. 그래야 알라딘 서재나 북플로 보면 깔끔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미지 파일이 크면, 북플에서는 조금 잘려 나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21 13:10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cyrus님 감사합니다.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겠어요

yureka01 2017-02-21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연의가 아주 똑똑하네요..아빠에겐 협력을 이끌어 내고,,엄마에겐 아빠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는 전략^^..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2 | URL
^^: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하는 것을 보면 뽀로로에 나오는 꼬마 여우 ‘에디‘ 같아요..ㅜㅜ: 유레카님도 충분히 아시겠지만, 당하면서도 즐겁네요. 유레카님,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7-02-2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쓴 저의 글인데, 제 딸아이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4000974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2 | URL
^^: 마립간님 따님도 이미 ‘게임이론‘을 본능적으로 습득하고 있네요!
아이들을 보면서 ‘게임이론‘ 자체가 자연과 사회 질서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아니면, 플라톤 말처럼 우리 안에 세계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립간님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7-02-21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네요.^^
크느라고 그런 걸까요?
연의 어린이 얼굴이 좀 야윈것 같아요~ㅠ.ㅠ

겨울호랑이 2017-02-21 14:13   좋아요 1 | URL
네^^: 양철나무꾼님 이제는 젖살도 많이 빠졌어요. 대신, 키도 많이 컸네요. 이제는 아이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는 딸아이를 보면 여러 생각이 드네요.^^: 양철나무꾼님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17-02-21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예를 들어서 죄수의 딜레마를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ㅎㅎ

연의의 전략적 선택인지.. 연의의 순수함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만..

저는 순수함을 선택하겠습니다..ㅎㅎ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계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ㅎㅎ

자상한 아버지가 주신 맛있는 초콜릿이 얼마나 달콤했으면 비밀로 간직하자는 이야기를 금새 잊어버렸을까요..ㅎㅎㅎ

너무 귀여운 이야기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더군요.ㅎㅎ

연의의 자진 신고를 통해 겨울호랑이님은 우병우를 능가하는 레이저 공격을 받아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 할 불편함과 공포일 겁니다..



오래 전 읽었던 잔혹한 현대사에 대한 책에서 초콜릿 때문에 경찰(독재정권의 개가 된 나쁜 경찰)에게 잡혀간 삼촌(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움과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요...


어른들이라면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진 신고를 해버린다는 점...

참으로 무서운 일이죠..

만약 제 생각이 틀렸고... 연의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면....

똑똑한 아버지의 똑똑한 교육을 받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겨울호랑이 2017-02-21 14:53   좋아요 2 | URL
^^: 김영성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연의가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 같구요(초콜렛 관련 교육은 제가 시킨 적은 없습니다.ㅋㅋ), 순수한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네요. 김영성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순수함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 생각되네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어른들이 보호해줘야한다는 생각을 오늘 김영성님의 글을 보면서 느낍니다.. ^^:

커피소년 2017-02-21 15:08   좋아요 1 | URL



“^^: 김영성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연의가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은 아닐 것 같구요(초콜렛 관련 교육은 제가 시킨 적은 없습니다.ㅋㅋ), 순수한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네요.”



제 생각을 존중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연의의 순수하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니 차마 전략적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겠더군요..ㅎㅎ



“김영성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러한 순수함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라 생각되네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어른들이 보호해줘야한다는 생각을 오늘 김영성님의 글을 보면서 느낍니다.. ^^:”



예.. 맞습니다.. 순수함의 유무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

어린 나이에 순수함을 일찍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의 권리를 빼앗겨버리는 것이니까요..^^

전쟁터에서 적십자기를 보면 공격하지 않는 나름의 약속처럼 순수함이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굳이 범죄행위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적십자기를 공격하지 않는 것의 약속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02-21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의는 아빠를 무한 신뢰 하는군요♡
뭉클 하셨겠어요..
잠시 내가 무한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2-22 05:06   좋아요 0 | URL
^^: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계속 그런 신뢰를 받았으면 하는데 쉽지 않겠지요. 말씀하신대로 감사하면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겠지요..^^:

나와같다면 2017-02-21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존 내쉬교수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제시하면서 기존 경제학이 분석하지 못했던 것을 풀었다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으셨죠..

내쉬 규형.. 모든 사람들이 멍청한 짓을 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경우 볼 수 있는 세상

2015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 Abel Prize 받으셔서 너무나 좋아했었는데.. 상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ㅠㅠ

존 내쉬 교수에 대해서 토론하던 그 사람.. 그 시절이 그립네요

제가 존 내쉬 교수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루어낸 업적보다도.. 정신분열증을 이겨낸 과정..

겨울호랑이 2017-02-22 05:07   좋아요 1 | URL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단한 분이었는데 다소 허무하게 죽음을 맞으셨어요..ㅜㅜ

AgalmA 2017-02-23 19:58   좋아요 2 | URL
모든 사람들이 멍청하고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례들을 보여준 <컬쳐쇼크> 책 내용 생각나네요. 합리성이란 게 사실 당시의 합리성에 더 가까웠던. 많은 철학과 이론들이 후대에 계속 비판 지점이 생기는 것도 그런 연유일 테고, 큰 그림으로 보면 이 과정이 또 합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요.

겨울호랑이 2017-02-23 20:16   좋아요 2 | URL
‘게임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 확률을 결합시켜 후에 카너먼 등이 경제학을 심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면에서도 확실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5년에 발표한 이론이 4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더라도 내쉬는 경제학계의 선지자라 여겨집니다..

AgalmA 2017-02-23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기적 유전자>를 연결한 멋진 육아 일기인데요^^ 재밌습니다. 이 컨셉 시리즈로 계속 부탁드려요ㅎ~

겨울호랑이 2017-02-23 20:17   좋아요 1 | URL
^^: 현재는 밑천이 바닥났네요.. ㅋ 다음번엔 탄핵일기와 연결시켜볼까 생각중입니다. ㅋ Agalma님 감사합니다^^:
 
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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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에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진화가 진실임을 강조한다. 전작인 <만들어진 신>에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혔다면,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p70)에 의한 진화를 주장한다. 


<지상 최대의 쇼>는 서두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에 대해 언급한다. 이후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증거를 본문을 통해 제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본문의 대부분 내용이 인위선택에 의한 진화를 보여주기 위한 논거제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논거는  도킨스 자신이 스스로 '눈 먼 시계공' 프로그램을 개발실험, 다른 이들의 실험(렌스키 실험)결과, DNA와 화석들을 통해 종(種)의 유사성을 비교설명 등 여러 학문분야의 다양한 증거로 약 500페이지에 걸쳐 제시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가 의사결정의 중심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 생물학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면,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유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진화에 대해 과학적인 확신을 갖고 싶다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지상 최대의 쇼>에는 생물학적인 전문용어들이 요약해서 언급이 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을 속속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 읽는 것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에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면서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


많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증한 <지상 최대의 쇼>를 읽고 나면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설'에 대해 반박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진화의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측면에서는 이 책은 그 목적을 완수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명확한 과학적인 논거 제시와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특히, 기독교 국가에서)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책의 [부록]에 제시한 내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이론적 대립이 심한 것 같다. 1982년 이후 갤럽이 인간의 기원과 관련한 조사를 비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2008년 조사 결과 '신이 지난 1만년 안짝에서 현재의 형태 거의 그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라는 응답에 44%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머리말에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p568)


'진화의 증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얄궂게도 무지에 기반한 반대 역시, 내가 기억하는 한,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p6)


도킨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근거를 가지고 제시한 내용에 대해 사회적 반발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면서 도킨스가 불평한 '반(反)진화론'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도킨스가 기여한 바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 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 <지상 최대의 쇼>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창조론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은 진화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화제를 불러왔다. 그렇지만, 도킨스의 지나칠 정도로 냉정한 창조론에 대한 공격이 오히려 창조론자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에도 공헌을 한 것은 아닐까. 평생동안 가져온 자신의 신념이 붕괴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수구(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을 최근 정치를 통해 많이 접한다.) 만약, '진화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2.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진화론


칼 맑스(Karl Marx, 1818~1883)는 진화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다윈의 '생존 경쟁'에서 '계급 투쟁'이라는 개념을 끌어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찰스 다윈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모든 역사는 진보,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이번에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며, 칼 맑스의 사상 중 일부는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칼 맑스는 사회과학에서 일종의 법칙성을 주장한다. 그는 역사발전 5단계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붕괴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원시공산주의 사회에서 미래 공산 주의 사회로 이행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발전'을 '진화'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하다. 칼 맑스의  '역사적 법칙성'이라는 개념은 돌연변이 등 우연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진화론의  '자연에 인위 선택'에서 도출된 것은 아닌 듯하며, 별도의 사상으로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칼 맑스, 엥겔스의 <자본>을 통해 추후 더 살펴볼 계획이다.


3. 진화론과 창조론의 상충 : 시간의 문제


진화론과 창조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시간 문제다. 진화론에서는 생명이 40억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창조론에서는 '6일'이라는 짧은기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구약 창세기1,2장)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느님(神)의 시간은 영원이며 불변이며, '시간'과 '공간'마저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조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과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 '현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하느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 3:8)"


성경에 기록된 사항은 기록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60년을 넘기 힘든 이들에게는 100년과 1000년이 큰 차이 없이 '매우 긴 기간'을 의미한 것을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적어도 '시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개인의 신앙과 과학이 상충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연구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보다 여러 분야에서 대립 대신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과학과 신앙 문제에 대한 조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관련기사 : http://www.huffingtonpost.kr/2014/10/29/story_n_6065760.html


책을 읽고 나니 <지상 최대의 쇼>를 통해 진화라는 본래의 문제가 아닌 다른 부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삼천포로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현재 내가 가진 인식 틀로  <지상 최대의 쇼>를 읽은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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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기쉐기몽쉐기 2017-01-04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을 읽으면서 전 내내 도킨스가 징징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조용히 읽는 중에도 귀가 시끄러워서 짜증났던 기억이 ,,,근대 도킨스가 낸 책들을 보면 또 자꾸 읽어보고 싶어져요 ㅡㅡ

겨울호랑이 2017-01-04 22:12   좋아요 0 | URL
^^: 개인적으로 도킨스 스타일이 도올선생님 스타일처럼 느껴지기에 쉐기쉐기몽쉐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전작에 비해 도킨스 특유의 조소나 비웃음의 정도는 낮은 대신 논리적 증명이 상대적으로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1-05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0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지식인마을 1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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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페일리로 대표되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소개한 생물학 입문서다. 다만,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이 비판한 대상을 간략적으로 언급한 수준에 머무르고, 진화론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 책이다.


페일리는 그의 저서 <자연 신학>에서 신(神)의 설계(design)를 주장했고, 이 설계자를 '시계공'으로 비유했다. 그의 시계공 비유는 진화론자 특히 리처드 도킨스에게 공격받게 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눈먼 시계공>은 제목만 들어도 <자연 신학>의 설계자인 시계공을 비판하려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지적설계론에 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그친다. 다만,이 책에서 '반(反)진화론'이라는 시각에서 생물학계의 '지적설계론'이 천체물리학계의 '정상우주론(steady state universe theory)'과 연계시키고 있는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천체물리학의 주류인 '빅뱅이론(Bing Bang theory)이 그리스도교계의 지지를 받는데 반해, 생물학계의 주류인 '진화론'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최근 진화론에 대한 동향을 잘 담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포괄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을 통해 친족간 근연도를 기초로 이타적 행동을 설명한 '윌리엄 해밀턴', 진화의 단위를 개체 수준에서 유전자 수준으로 낮춘 '리처드 도킨스', 진화에 있어 우발성을 강조한 '스티븐 제이 굴드', 과학에 미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리처드 르원틴', 통섭을 주장한 '에드워드 윌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 진화론에도 많은 분파가 존재하며, 이들 사이에도 많은 논쟁이 있음을 개략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외 다윈의 <종의 기원> 이 생물학을 넘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진화론의 소개서'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 부문에 다른 지식인 마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깊이 읽기' 에 진화론과 관련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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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9-09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 중요해요...저자는 어떤 분이신가요?

겨울호랑이 2016-09-09 13: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Theodora님 장대익 교수 입니다.

2016-09-12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종교, 신화, 미신에 속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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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으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쓴 과학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그의 전공인 '생물학'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인 물리학, 지구과학, 종교학 등 우리 생활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입문서라기 보다는 '일반 교양 과학 서적'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은 총 12개의 질문에 대해 고대인들이 생각한 방식(신화)을 먼저 제시하고, 현대 과학이 접근하는 방식과 여태까지 얻어진 결론에 대해 답을 하는 방식이다. 목차에서 질문으로 각 장을 이룬 구성을 보니,  예전에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의 구성이 연상된다. 차이가 있다면 <잊혀진 질문>은 형이상학적인 면을 다루기 때문에 대부분의 답이 결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대답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에 반해,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은 과학을 통한 논증을 제기하기 때문에 명쾌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과학 전반을 다룬 책이다. 주제의 범위는 동물학(최초의 인간, 동물의 다양성, 화학(사물의 구성 원소), 물리학(낮과 밤이 생기는 이유, 태양(별)의 정체, 무지개의 원리, 우주 형성), 지구 과학(지진의 원인), 통계학(나쁜 일이 생기는 원인), 신학(기적 등) 등 이며 학문 전반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도서의 외면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폭 넓은 주제, 좋은 종이 질, 많은 그림,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지 수.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다양한 다양한 독자들을 위한 배려를 담고 있다.


매 페이지마다 흥미있는 사진과 그림이 그려져 있어 학생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또한, 삽입된 사진과 그림이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어 내용 연상이 쉽게 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어린 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이해는 별도로 하고).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구성하고 있는 각 장(章)의 시작을 고대 신화(神話)로 시작해서, 과학에 흥미없어하는 인문학도들도 자신의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브리 신화(구약성경),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뿐 아니라 생소한 아즈텍 신화, 아프리카 부족 신화까지 인용한 각 장의 도입부는 과학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마음을 열고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인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는 주로 각 장의 도입부에, 과학에 관심있는 독자는 뒷부분에 더 많이 눈이 가겠지만, 읽다보면 각 장의 끌까지 쉽게 읽혀진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책은 종교가 있는 종교인(특히, 가톨릭 신자)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가톨릭에서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기적으로 보고 있으며, 1930년에 바티칸에서 기적으로 공인하고 있다. 이러한 기적문제에 대해 이 책에서는'제12장 기적이란 무엇일까?'에서 확률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현상에 대한 신앙의 관점이 아닌 과학적인 접근은 자칫 신앙심이 깊은 분들에게 다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열심한 신자는 아니지만, 나도 가톨릭 신자라 편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신>에서처럼 '신이 없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는 말을 하고 있다. 때문에, 신앙이 깊은 이들도 이 책의 관점을 '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본다면 과학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이 있으며 매력적인 분야인지 를 느낄 수 있으리라. 


ps. <만들어진 신>은 아직 안 읽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그분의 강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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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6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들어진 신>은 안 읽어 봐서 책 요약을 잘 된 독자 리뷰를 참고할 생각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6-09-06 13:33   좋아요 1 | URL
구매를 했는데, 책 두께가 제법 될 것 같네요..슬쩍 봤는데 많이 날카롭네요...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읽어야겠지요.^^

2016-09-0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6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6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6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7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7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대표작이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p40)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논란이 많았다는 말을 다 읽고 나니 이해하게 된다. 마치,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소설<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서 화성인의 정체가 '큰 세다리 괴물'이 아닌 우리보다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는 소설 속 주인공만큼이나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리라.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구성 요소 분자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유전자가 우연하게 생겨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소진되는 구성 요소 분자를 대신하여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는 운반자(개체)를 만들어 냈고, 유전자는 생존하기 위해 진화를 한다.


유전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p72) 그렇지만, 유전자는 계속 존재 하기위해 유전자는 개체의 뇌와 신경계를 프로그램을 통해 통제한다. 그러한 통제의 결과 개체는 '이타적'으로 또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동물의 행동은 세대간/성(性)간/사회적으로 보이는 개체의 행동(배신, 사기, 협력, 보복등)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경우에는 '문화'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p318). 인간의 경우 기존 동물/식물계에는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 전달의 단위가 필요하며, 저자는 이를 밈(meme)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유전자의 운반자'로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밈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주체적으로 우리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과학서적은 많이 읽지 못한 편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했으나, 저자가 일반인들을 고려하여 상세하게 내용을 풀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저자의 배려는 복잡한 수식없이 '진화'에 대해 풀어가는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대신, 간단한(?) '게임이론(Game Theory)'를 사용하여, 유전자의 선택을 설명한다. 흔히,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 이론 중 책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은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점에 이른 상태의 전략이다.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은 게임 이론에서 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를 말한다.(위키피디아)

다른 이야기지만, '내쉬 균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에 나오는 내쉬 (John Forbes Nash, Jr.)에 의해 우리에게도 다소 유명하다. 러셀 크로우가 열연한 작품으로 경제학과 수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추천한다.(진정한 천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감히 나 같은 범인(凡人)이 경제학을 전공하다니..' 하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장혁, 박소담이 주연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와는 한국에서 상영했다는 사실 빼고 관계가 없다.




이 책을 읽고서 전반적으로 '진화론'과 그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창조라는 영역에서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서양 신학(神學)과의 갈등 정도의 막연함이 진화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 인식이었다. 그렇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거의 모든 학문분야가 '진화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보자.


'유전자-개체'의 관계를 '개체-사회'로 확대시킨다면, 개인 윤리학과 공동체 윤리학이 과연 같은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주로 공동체 윤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체 윤리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진화론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신학(神學)적으로는 구약시대에 논의된 유대민족의 구원 문제가 과연 신약시대 개인의 구원과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歷史) 적으로는 역사의 발전 문제와 유전자의 우열관계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 현상에 대한 유전학적인 관점에 대한 접근도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 사조에 대한 생물학적인 접근도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있어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은 다분히 절제되어 있지만 여기에 담긴 내용을 통해 지금까지의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책을 충분히 느낀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hapter13 유전자의 긴 팔'에서 예고한 저자의 또 다른 저서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서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中>


이규보가 말한 도(道)는 진화론이 아니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후의 독자라면 '개'와 '이'의 죽음이 '개체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동일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자(replicator)가 우연히 생겨났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그 탄생은 전혀 우연히 발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어날 성싶은 일과 일어날 성싶지 않은 것을 판단할 때 수억년이라는 세월은 우리에게 낯선 시간이다. 만약 1억년 동안 매주 축구 경기 내기를 하면 분명히 여러 차례 횡재할 수 있을 것이다.`(p58)

`자기 복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 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p64)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p113)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제어 하에 있으며, 그 제어가 간접적이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매우 강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p123)

`유전자는 우두머리 프로그래머이며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로 심판받는다.`(p127)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보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p33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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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8-12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기적 유전자 읽고 엄청 충격 받았었어요. 첨엔 너무 위험한 사유지 않나 싶었는데 결국 도킨스가 말하는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속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구나 싶더라구요. 전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킨스나 윌슨의 진화 생물학과 물리관련 책 읽으면서 종교를 완전 버렸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보다 도킨스가 굉장히 뛰어나고 위험한 사상가이기도 한 것 같아요. 도킨스가 글이 완고하죠.

겨울호랑이 2016-08-12 16: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기억의집님 저도 도킨스의 글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진화론과 도킨스이론에 대해서는 좀더 다각적인 조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향후에도 기억의집님의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6-08-12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 사둔 책이예요~!! 아 물론 만들어진 신도 재워놓았구요^^ 도킨스의 힘을 느껴보고 싶네요!!

겨울호랑이 2016-08-12 17: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프리쿠키님^^; 좋은 독서가 되실거라 생각해요 편한 저녁 되세요^^

여누애비 2016-12-0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제가 독서 초보자인데 종의기원 같은 책을 읽기전에 초보자가 읽을만한 책 없을까요?진화론에 관한 초심자 책같은거 있음 추천해주실수 있는지요? 무리한 부탁이지만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6-12-09 15: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통통이님
저도 초보자인지라 제가 읽은 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가 전체적인 ‘진화론‘의 흐름과 영향등이 잘 정리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리처드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은 칼라로 되어 있고 전체 과학 여러 분야와의 관계도 잘 정리되어 개념잡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 통통이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누애비 2016-12-09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12-09 15:27   좋아요 0 | URL
^^: 네 통통이님께 도움이 되어 저도 기쁩니다.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여누애비 2016-12-09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겨울호랑이님도 즐건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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