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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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아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 에이모 토울스.

이번에도 역시 우아하게 한시대의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이야기 전체에 ‘위대한 개츠비’의 느낌이 드리워져 있다. 그런 감성으로 읽기를 원한것 처럼.
물론 그보다는 조금 덜 파멸적인 느낌.

주인공의 월든에 대한 감상에 대해서만은 동의하지 못했지만.

- 벨과 내가 사귀기 시작한 여름에 우리는 아직 30대였고, 서로 성인이 된 뒤 10여 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10년이면 충분했다. 인생 전체의 방향이 좋은 쪽, 또는 나쁜 쪽으로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살인을 하거나 창작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 하다못해 누군가의 앞에 의문을 하나 떨어뜨려놓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 16

- 하지만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어느 날 밤, 내가 아버지의 침대 옆에 앉아서 기운을 좀 북돋아드리려고 멍청한 직장 동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나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라서 나는 아버지가 헛것을 보시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음을 깨달았다. - 209

- 바람이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맨해튼은 정말이지 현실 같지 않을 만큼 너무나 찬란하고, 밝은 약속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평생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곳이 손에 닿지는 않을지라도. - 500

- 백열째 양심이라 불리는 천상의 불꽃이 가슴 속에 항상 살아 있게 노력하라 - 536, 젊은 조지 워싱턴의 ‘사교와 토론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 및 품위 있는 행동 규칙’ 중

2023. oct.

#우아한연인 #에이모토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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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물질적인 밤 - 이장욱 산문집 문지 에크리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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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글들, 그러나 단절되어있지 않은 흐름이 있다.

- 신성은 인간의 영혼이 궁극에 이르러 대면해야 할 무엇이지만, 현실 정치 안에서 그것은 반드시 오염된 ‘인간적’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현실 정치란 ‘경쟁’과 ‘적대성’을 통해서만 그 건전함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성은 신의 것이어서 인간들이 저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 12

- 이것은 아마도 ‘밤‘과 ‘낮’이라는 언어 바깥에 있는 세계일 것이다. 관습적 언어 너머의 세계에서, 비는 내리고 있다. 저렇게 내리는 비에 가장 가까운 것이 시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만상의 바깥에 처연히 내려 모든 것에 스며드는 그것. - 17

-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연안, 핀란드만이라고 불리는 해변에 갔다. 글이 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은 씌어지지 않아도 좋았다. 쓰지 않는 시간이 쌓이지 않으면 쓰는 시간이 오지 않는다. - 19

- 나는 며칠 후 이곳을 떠날 것이다.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썼다. 언제 어디서든 떠난다는 것은 하나의 죽음과 같네, 라고. - 27

- 소설을 쓰는 일 자체보다는, 아직 소설이 아닌 무엇을 떠올리는 일을 나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가령 하루오라는 인물에 대해 쓰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오라는 사람이 머릿속에서 문득 눈을 뜨는 순간을. 눈을 뜬 하루오가 미소를 짓거나 걸어 다니는 순간을. 그러다가 문득 사라져 버려서 나를 외롭게 만드는, 그런 순간을.
무슨 생각을 갖고 소설을 시작했는데, 끝나고 보면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가 거기 있다. 무슨 질문을 갖고 소설을 시작했는데, 끝나고 보면 내가 던지지 않았던 질문이 거기 있다. - 35

- 확실히 인생은 소위 ’내러티브‘와 다르다. 삶은 기승전결의 플롯을 지니지 않는다. 의미와 목적과 대단원을 전제로 인생을 서사화하여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품고 있는 욕망의 구조를 반영하고, 나아가 현실의 논리를 드러낼 뿐이다. 삶 자체는 그것을 훨씬 초과하거나, 또는 그것을 무시한다. - 39

- 그녀는 장차 어떻게 될까요? 내가 물었다. 누구 말이죠? 그가 말했다. 폴린, 내가 말했다. 늙겠죠, 굳게 확신하며, 그가 말했다.
그렇다. 폴린은 늙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폴린과 함께 늙어가는 것. - 59

- 그렇게 메모를 해둔 적이 있지만 나의 일상과 현실에서 평상심은 그냥 다음과 같은 뜻에 가깝다 ;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좋아하던 것을 계속 좋아하는 것. 그러다가 조금씩 천천히 마모되는 것. 시간이 지나 희미해지는 것.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 - 78

- ‘약자의 편’에서 ‘약자의 것’으로
하지만 문학은 궁극적으로 ’약자의 편‘이 아니라 ’약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경제적 계급 문제만이 아니라 인종, 젠더, 장애 등 수많은 정체성 이슈에 연루되었을 때 더더욱 중요하고 불가결한 문제가 된다. - 134

- 종교적 인간은 될 수 없어도 기도하는 인간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모순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성모송을 암송한다. 일신의 안위가 아니라 모종의 보편성을 위한 기도. 기도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 184

2023. oct.

#영혼의물질적인밤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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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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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이동이 그다지 없는, 잔잔히 흘러가는 단편들.
김연수의 소설이 주는 느낌.

- 그 한 문장으로 판매금지가 결정될 수 있단 말인가요?
군부가 판매금지를 시킬 때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요. 그게 독재정권이 하는 일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정권이 싫어하는 게 뭔지를. 그렇게 독재정권하의 사람들은 스스로 내적 검열관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 16

-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 18

- 어떻게 하다가 이 섬에서 혼자 살게 된 거야?
어떻게 한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거야. 그랬더니 이 섬에서 혼자 살게 됐네. - 56

-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 120

-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다가 “아, 좋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죽음이 찾아오면] 이라는 시의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라는 구절을 읽을 때였다. - 작가의 말

2023. aug.

#이토록평범한미래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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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위트 홈 -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최진영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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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자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과 유진 모두 좋았다.
남은 여생의 의미를 스위트 홈을 가꾸는 일에 둔다라는 점도.

최은미의 그곳, 서성란의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가 좋았다.


- 나는 죽어 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바라볼수록 두려움보다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었다. 슬픔을 위해서 움직일 힘이라면 아직 남아 있었다. - 26, 홈 스위트 홈

-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 말했다.
나는 이 집에서 죽어.
그 순간, 내 주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와 희망을 느꼈다.
그럼 나는?
어진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나와 같이 여기서 살지.
이 집은 어디에 있어?
완치하리라는 희망보다 훨씬 단단한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야. - 29, 홈 스위트 홈

- 어쨌든 나는 반가워서 말을 걸 거야. 네 영혼이 나타나면 너무 반가워서. 돌이켜 보면, 엄마는 그때 처음 받아들인 것 같다.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는 말로 밀어내던 높은 확률의 미래를.
그럴 일은 없어, 엄마.
그러나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 없거든. 내 몸이 죽으면 내 영혼도 죽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나쁜 년.
엄마가 말했다.
이럴 때 보면 넌 진짜 지독하게 나쁜 년이야. - 33, 홈 스위트 홈

- 우리는 차 안에서 자주 다퉜다. 다투지 않을 때는 하나 마나한 말이지만 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을 나눴다. 산을 보면 산이 참 높다고, 바다를 보면 바다가 참 넓다고, 꽃을 보면 꽃이 참 곱다는 말들. 그리고 어느 날엔 이런 이야기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쓸 거야.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두라는 뜻이야. 내 몸에 어떤 튜브도 넣지 말고 나를 살리겠다고 나의 가슴을 짓누르지도 말란 뜻이야.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 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말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 - 34, 홈 스위트 홈

- 이제는 더 나아지기 위해서 쓴다. 소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에게는 소설이 필요하다. - 작가의 말



2023. nov.

#홈스위트홈 #최진영 #46회이상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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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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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으로 자란 룸메이트의 선택?으로 이어진 길고 긴 인연에 대한 이야기.

특권을 누리는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 부당하다는 아픈 자각을 가지고 살아간 앤.
그런 앤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 조지.

혁명놀이를 하는 부잣집 응석받이, 가난한 흑인 남자와 사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백인 여자, 슬럼가를 추종하는 소녀팬.이라는 가혹한 평가들 속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앤이라서 어느 정도 연민은 가질수 있었지만,
솔직히 저런 가혹한 평가라는 것에 심정적으로 더 동의하게 되는 건 앤이 결국엔 특권층인 백인 미국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앤의 진심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라고 여겨진 사람들이 여전히 도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믿음과 신념이 결코 틀렸다거나 망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테지만. 세상은 그럼에도 너무 사악하기 그지 없다고 여전히 느끼고 있다.

“너무나도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시대”를 “외부자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와닿는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다른 책들 보다 조금 비판적인 관점에서 읽게 된 지점도. 그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힘든의 역할을 앤이 너무 잘 수행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 자신과 오나전히 다른 것만을 사랑할 수 있는 앤기 보기에, 지배계급의 딸들인 그들에겐 영혼이 없었다. 영혼. 앤은 그들에게 기대할 만한 희망은 단 하나뿐이며 그건 스스로를 경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 57

- 어린 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에 대해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이 그 악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온갖 멋진 혜택들과 좋은 것들이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타인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가 자라난 60년대라는 시대의 가르침이었다. - 340

-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350

- 지금껏 이야기한 내용을 보면 앤이 메리빌에서 비현실적인 인도주의자로 통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랬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가 재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선동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관리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성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우리는 말했다. - 536

2023. sep.

#그부류의마지막존재 #시그리드누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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