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 님의 책을 처음 읽고 있다. 제목에 이끌려 오가며 자투리시간에 보려고 했는데 통찰력도 있고 드립력도 마음에 들어 잘 읽고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전에 마스다 미리 홀릭 중일 때 읽었다. 마스다 미리나 사노 요코는 한참 보다 어느 순간에 끊게 된다. 자가 복제가 심해서 대표작 정도만 보면 될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열육아기에 역시 잘 읽었다.

 

"하지 않아도 괜찮-"까지만 쳐도 꽤나 많은 책이 뜬다.

 

제일 웃긴 제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누가 모르겠는가? 앞담화를 할 여건이 안 되니 뒷담화로 속이라도 푸는 거지. 그리고 누구나 성인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건강하게 감정을 발산해야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류의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무엇무엇 해야 한다는 당위에 둘러싸여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제는 마의 수요일.

 

월, 수는 진짜 수업에도 나가야 하니 그냥 괜히 분주하다. 전일 기간제로 일하던 때는 그나마 수입?이 분주함을 보상해주었지만 시간제 수업 노동자는 참으로 열악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단점만 모아둔 것 같다.  (이건 왜 그런지 나중에 길게 쓸 생각이다.)

 

어제는 수업 끝나고 한참 지나 저녁시간에  학생 어머님이 아이가 7시가 넘었는데 오지 않았다고 하셔서 이리저리 친한 애들 어머니께 전화해서 행방을 찾아보았다. 물론 이때는 걱정되는 마음이 커서 자발적으로 찾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몇분 후 카톡으로 아이 00 학원에서 찾았다며 어머니가 스케줄을 잠시 착각하신 것 같다고.

 

그런데 붙은 ㅋㅋ  많은 것을 함축하는 ㅋㅋ 에 기분이 상했다.

무사히 찾았으니 된 거고 하다가도 그래도 과연 담임 선생님이었으면 저 ㅋㅋ 가 가능할지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그러다 역시 나의 과잉 친절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옆에 있던 애들아빠는 그냥 전화 안 받으면 된다고. 시간제로 일하며 과잉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래도 그때 들었던 나의 마음 혹시나 하면서 걱정하며 찾아봐주었던 그 마음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분 나쁜 지점은 ㅋㅋ 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제가 착각해서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 라고 인사를 했겠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머쓱해서 ㅋㅋ 도 가능하니까.

 

*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지난 여성영화제에서 본 다큐멘터리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Birthright: A War Story, 2017) 를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이고 막연하게 여성인권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미국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모든 전쟁에는 부수적 피해가 따른다"고 다큐 초반에 선언한다. 이어지는 임신과 낙태에 대한 여성들의 증언은 여전히 여성의 몸이 소리 없는 전쟁터라는 것을 드러낸다.

 

"전쟁이나 군사행동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되는 것을 군대에서는 부수적인 피해라고 말해요. 본인들의 윤리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말이죠....정치인들이 탁상공론으로  임신중지 관련 법안을 계속 바꾸는 동안 여성이 입는건강 침해와 생명 피해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서울 여성영화제 나영 집행위원장)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하지 않고 '생명 존중'이라는 대전제를 세워두고 모든 형태의 낙태를 강하게 규제하려고 한다. 수정란 상태의 생명은 지극히 존중하면서도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데도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낙태나 유도분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가 임신중에 태아에게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것이 밝혀지면 아동학대로 수감되어야 한다. 마약 중독이 빈번한 사회라 마련된 법률일 수 있지만 치료 목적으로 복용한 약물 때문에 몸도 추스리지 못하고 감옥에 가거나 범죄기록을 지우려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간질 치료 약물을 쓸 수 없어 대마초로 고통을 덜어보려 한 여성도 비난받는다. 사실 대마초는 태아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서 치료용 대마초를 허용한 주로 이사를 가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73년 미국에서는 낙태죄 폐지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사람으로서 법적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출생 이후'이며 모든 개인에게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로 안 보고도 알 수 있듯이 종교계와 보수파가 들불같이 들고 일어나 곳곳에서 맹렬한 생명존중 운동을 벌였다. 여성들은 내 자궁에 묵주를 들이밀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결국 여러 주에서 다양한 형태의 임신중지 반대 정책과 처벌 조항들을 마련한다.

 

 

태아 상태가 좋지 않고 산모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도 20주가 넘은 태아의 유도분만조차 막아 상태가 진짜 나빠져서 병원에 온 산모가 있다. 낙태죄로 처벌을 받기 싫어 불법시술을 받다가 패혈증 등으로 사망한 사례도 꽤 된다.

 

다큐 후반부에 이르면 낙태 찬반은 결국 종교, 정치, 경제적 이해가 맞물린 지점에 있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나 행복 추구권과는 먼 논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많은 가톨릭 의료 재단과 보수파의 횡포에 묵주반지를 낀 내 손이 부끄러워서 반지를 슬쩍 빼려다 그만 바닥에 그걸 쨍그랑 떨어뜨리고 말았다.

 

  

영화가 끝난 후 전남대 김경례 ?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자신이 그래도 다른친구보다 이쪽으로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여전히 자신은 학교에서 낙태된 태아의 발사진, 찢겨 나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보면서 성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거의 30년이 지나고도 학교는 여전히 순결 교육이구나.

 

실질적인 성교육이 없다, 아이의 아버지인 남성들은 왜 책임을 지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야기를 잘 듣고 나오다가 첫아이를 가지고 막달에 임부복 원피스를 입고 지나갈 때 모르는 아저씨의 끈적한 눈길이 따라오던 것이 생각이 난다.  얼굴과 배를 번갈아보며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비웃더니 엄지 척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참하고 조신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너도 결국은 했구나, 하는 시선이었다. 

 

어떤 남성들에게 임신은 섹스와 쾌락의 결과물이고 여성은 그 결과를 애써 감당해야 한다고 여겨지나보다. 물론 임신 중에 남녀노소 막론하고 배려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훨씬 더 많기에 이 기억은 저멀리 묻어둔 것인데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당혹스러웠다.

 

 

*

 

"현재 주요 선진국의 낙태 관련법은 형법으로서 여성에게 모성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보장법으로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모성을 설득하고 있으며 이것이 태아의 생명존중권과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고 류민희 변호사가 말씀하셨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 비디오로 본 수정란 상태의 그 미지의 어떤 것보다는 현재 살아 숨쉬고 있는 한 여성의 건강과 그 이후의 삶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면 항상 문란한 성생활과 생명경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때 문란하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비난받는 건 항상 여성 쪽이다. 그러나 낙태를 하고 괴로워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다룬 소설 속 장면은 많아도 남자가 여자친구와 함께 낙태를 경험하고 죄책감에 떠는 장면은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독립서점에서 살짝 본 이 책의 저자 홍승희도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고 낙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몸조리 기간만이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청하는데 거절당한다. 남자친구는 사회학도이고 그의 어머니는 여성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홀로 낙태의 아픔을 감당한다.

 

*

여기부터 살짝 일기, 회고담 바쁘신 분 패쓰!

 

 

내가 내 몸으로 겪은 임신과 출산은 내 인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도 양육으로 그 책임을 지고 있는 중이다.

 

소녀시절에는 앞으로 출산할 여성으로서 술담배 하지 않고 남성들 앞에서 조신하게 있을 것을 교육받았다. 특히 성당 주일학교에서 관련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배경에 강낭콩 같은 태아가 평온하게 떠 있다가 날카로운 도구가 들어오면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절대로 낙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디오를 보고 나오면 수사님이 잘 보았냐고 하면서 목덜미를 주물렀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한번도 하시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중남고공대 테크와 같이 여중여고여대 테크를 타고 자발적? 비연애? 로 살면서 페미니즘 서적을 엄청 읽었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연합동아리나 그런 데 가면 무지 쑥스럽고 어색하게 남자들을 대했다. 개인적으로 남자애와 세 번 이상 만나게 되면 뭔가 결정지어야 할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연애를 피했다. 사실 생활에 치이기도 했다. 선배언니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만나 싱겁게 첫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첫사랑은 따로 있다고 늘 주장한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나는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봐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검진과 출산 과정에서 어쩐지 내가 한 마리 암소같이 느껴졌다. 다들 친절하셨지만 그래도 내진이라든가 여러 굴욕? 자세들을 잊지 못한다. 가정분만이나 그런 걸 알아보다 쉽게 포기한 결과로 모두가 겪는 보편의 경험을 통해 임신 출산 과정이 얼마나 여성친화적이지 않은지 경험하게 되었다.

 

임신부가 커피 마시네, 애낳은 엄마가 나다니네 이런 시선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조차도 엄마의 육아의 힘겨움보다는 아이에게 바람직한 것만 요구하는 바람에 힘들었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기저귀에 대한 의지는 남편이 나보다 강했다. 천기저귀를 6개월간 빨아주았지만, 내가 체감하기로는 진짜 기저귀만 빨았다. 그래도 가끔 개주기도 했으니 고마운 건가. 지금도 어디 가면 난 아이 똥기저귀도 빨았다면서 자랑한다.

 

그때 내가 정말 원했던 건 아이를 안아주고 내가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는데 모유수유라는 이유로 밤에 아이가 일어나도 분유 한 번 타줄 일이 없고 천기저귀를 해서 보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 기저귀 가는 것도 다 나의 일.  

 

그래도 지금은 그때 참 같이 고생했다고, 애들에게도 아빠가 기저귀 빨아준 거 잊지 말라고 한다.

 

아빠는 기저귀 한 장만 빨아도 엄청 좋은 사람인데 엄마는 철인3종경기같이 자연분만, 모유수유, 천기저귀 사용을 해내도 엄마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초보 엄마인 동생이 제왕절개, 분유 수유를 하고 있어 속상하다고 해도 다 괜찮다고 해준다.

 

난다님 가족들은 젖을 말리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만 양이 적어 고생하는 동생에게 혹여 모유를 못먹여도 죄책감 갖지 말라고 해주었다. 다행히 제부가 깨인 사람? 아니 그냥 부인 사랑이 지극해 그런지 같이 분유도 타주고 안아주고 하는 모양이다.

 

 

 

 

 

 

 

 

 

 

엄마라면 이래야지 하는 남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부담에 시달리는 동생아,

 

다 하지 않아도 괜찮아.

 

베토벤 높은 음자리표같이 대충 살아.

 

음자리표는 대충 그려도

좋은 곡만 쓰면 되는 거야.

 

 

 

사진은 트위터에 유행하는 대충 살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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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2018-11-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높은음자리표 보니 제가 저이들보다 잘 그리네요. 높은음자리표만 잘 그리면 뭐한답니까...정말 암것도 모르고 못 하는데..허허
중요한건 높은음자리표가 아니라는 말 기억할게요^^

뚜유 2018-11-23 05:41   좋아요 0 | URL
저도 높은음자리표만 잘 그릴 수 있어요 ^ ^
열정을 다 하되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썼어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셔요
 

 

 

 

 

 

 

 

 

 

 

 

 

 

 

 

 

어제는 내가 일주일 여러 날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화요일이었다. 화요일을 언젠가부터 나만의 휴무로 정하고 우리 동네나 이웃 동네 양림동의 카페를 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 피로해졌다.

 

비슷비슷한 인테리어와 음료들.

그리고 지출 부담도 있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소파가 없었지만 이제 소파를 하나 사고 집에서 더 쉴 생각이다.

교외로 여행을 나가는 것도 5년간 거의 근교를 다녀서 그런 것도 있고

아들이 사춘기라 통 나가려고 하지를 않아서 이번 겨울은 집에서 보내는 긴 겨울이 될 듯하다.

 

새벽부터 텀블러를 정리하니 어찌나 많은지.

 

애들아빠 직업특성상 텀블러가 종종 생기고 선물도 받고 내가 굿즈도 받다보니 많아졌다.

 

특히 알라딘 굿즈가 많은데 받아서 며칠만 사용하고 기능이나 외부 마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어 자주 쓰지 않게 된다.

 

무민은 아예 기스가 난 것이 왔고 뚜껑에 손잡이 달린 안톤 체홉 텀블러는 설거지 한번에 외부 영문 프린트가 지워졌다.

 

모슈 제품과 비슷한 비밀의 화원은 입구가 좁아 잘 안 쓰게 된다.

 

맥심 카카오 라이언을 딸 주려다 끊은 믹스를 다시 마시게 되었다. 아무튼 이제 일 가거나 산책할 때는 텀블러와 티백으로 다녀야겠다. 

 

 

대상포진 치료를 마지막으로 받고

동네 도서관에서 편히 볼 수 있는 사진집을 골라보았다.

 

활자를 볼 만한 집중력이 없었는데 술술 넘겨본 사진집 정말 좋았다.

 

<아프리카 더 컬러풀>은 아프리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다 소환해낸다. 알록달록한 의상들, 가게들, 소년소녀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밝게 웃는 모습, 광활한 대자연과 신기한 동물들 당분간 아니 어쩌면 평생 못가볼 수도 있어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천체사진작가의 오로라 사진과 경험담을 모은 책이다.

 

<칠월과 안생> 원작을 읽었는데 영화와 다른 것도 많다. 뭔가 두 이야기 다 슬프다.

 

안생은 매력적이고 불운한 캐릭터이고 칠월은 진짜 보살이고 가명은 구제불능 이기적인 인사라는 큰 틀은 같다. 소설에서의 칠월이 더 힘들듯해서 마음 아팠다.

 

그래도 영화나 소설이나 구속하지 않고 독점하지 않고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아끼는 진짜 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으려고 하고 있다.

 

어렵다.

인간이 도대체 자기 자신보다 그 누구를 더 사랑할 수 있겠는가?

 

부모, 자신의 형제, 절친한 친구라 해도 나 자신만큼 아낄 수 있을까?

 

*

안생의 인생 자체가 불운하고 재능에 비해 풀리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그러나 운이 좋은 칠월이었다고 해도 칠월이 안생을 만나 사랑한 대가가 너무나 혹독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에 공통으로 나오는 구절인 남자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견디기 힘든 존재인가, 가 기억에 남는다.

 

요새 내가 참 견디기 힘든 남자?는 의외로 아들이다. 사춘기를 직격으로 맞은 사춘기 남자애와 소통하고 협상하기가 힘들다. 일 때문에 애들아빠는 일주에 두세 번 오니 오롯이 이 아이를 내가 감당해야 하니 어렵다.

 

 

 

 

 

 

 

 

 

 

 

 

 

 

 

빌려볼 책들

두번째 책을 <초등 사춘기 아이를 이기는 엄마가 세상을 이긴다>로 읽어서 한참 혼자 웃었다.

 

책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차차 읽어야겠다. 주변에 동네언니 하나 없는 인생이란 ㅜ.ㅠ

 

 

*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은 수시로 보지만 역시 실천이 어렵다.

 

계절이 바뀌면  옷정리와 수선에도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딸이 아침에 너무 얇게 입어 파카 입으라니까 또 누빔 얇은 거 입고 가서 정리했다.

아주 얇은 가을티에 면바지에 ㅜ.ㅠ 오빠 닮아 기모 소재 옷과 내복을 안 입는다.


엄마, 파카는 눈 와야 입는 거야, 이라고 나선다.


난 없어서 못 입었는데 ㅜ.ㅠ 파카 엄청 큰거 사면 3년 내내 소매접어서 입는 것이 우리 시대 아니 우리집 환경이었다. 옷이 예쁘게 잘 맞을 때쯤에는 그 파카가 색바래고 허름해지는 걸 쭉 봐와서 그런지 아이들 입힐 때 거의 꼭 맞게 입히는 편이다. 옷에 한이 맺혀 오랜 기간 딸아이 옷에 집착했는데 정작 딸아이는 자신은 패션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취향은 까다로워 쨍한 핑크는 싫고 보라색이나 인디핑크를 원한다. 올해는 못 입는 것과 올해 입을 것이 섞여 있어 좀 많아 보인다. 기본 외투 2-3벌 정도로 해야겠다. 짧고 가벼운 것과 한겨울에 입을 정도로.

 

내옷은 그 정도뿐인데 딸옷은 왜 이리 자꾸 많아지는지.  


 

동네서점에서 문제집

 

굿즈에 집착말고 필요할 때마다 한권씩 사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정리하다보니 못 풀고 버린 것도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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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8-11-2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카 ..... 나 없어서 못 입었는데 .... ˝ ㅎㅎㅎ 아 정말 맞아요! 엄마들 인생이란... ㅋ.. 애처롭다는 것은 아니고,,, 또 이게 좋아서 그리 살아가는 거니까 ㅎ

뚜유 2018-11-22 04: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마들 인생이란 참...영원한 짝사랑이네요. 아침마다 추울까봐 신경써주는데 정작 자신들은 편한 게 좋다니 내려두어야겠어요 ^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무용도, 남정호라는 무용가도 잘 몰랐는데 지난 여성영화제 기간에 <구르는 돌처럼>이라는 다큐를 통해 남정호 교수님을 만났다.

 

현대무용이나 발레 하면 뭔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고급예술 같아서 외면했다.

사실 나에게 현대무용은 접하기 힘든 것이 맞았다. 여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로망이 발레복 입혀서 예쁘게 공연하는 건데 그마저도 부담이 되어 시도한 적도 없다.

 

그런데 <구르는 돌처럼>을 보고 아, 무용이란 저렇게 인간의 신체를 통해 다양한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여유로운 계급의 유희만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는 펜싱을 했고 소녀 티가 나면서부터는 무용을 하게 되었다는 남정호 교수님은 1988년에 무용가, 선생, 딸, 아내, 엄마 등 자신이 맡은 수많은 역할에 짓눌림을 느끼며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다시 그 옷을 다시 입는 자전적 무용극 <자화상>으로 주목받았다.

 

거의 30여년이 지난 후 남정호 교수는 정년퇴직을 앞둔 무용가의 내면을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에 빗대어 표현한다.

 

흔하게 듣던 노래인데 아, 이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싶어 놀랐다. 이제 정년퇴직을 하면 알아주는 이 없이, 특별히 해야 할 일 없이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될 수도 있다.

 

*

교수님은 하자센터 학생들과 마스터클래스라는 수업을 분기별로 5년간 진행하셨고 그 결과 <구르는 돌처럼>은 재해석된다.

 

제도권 엘리트 무용가와 제도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학생들과의 만남이 정말 신선했다.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생기가 넘치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런 무용수업이었다면 학생들 모두 얼마나 자연스럽고 즐거울까.

 

제도권 아이들이 공부에 찌들고 아이돌 군무를 연습할 때에 저들은 저렇게 자유롭게 표현하고 웃을 수 있구나 !

 

극이 진행되며 학생들이 차차 소개되는데 그중 인상 깊은 학생은 '고다'라는 무용가였다. 선생님과 수업한 것이 전부이지만 남정호 교수님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나고 몸짓이 살아있었다.

 

남정호 교수님의 작품 <자화상>에서는 다시 자신이 옷을 걸쳐 입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고다'는 벗어던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친구들과 춤을 추고 영상을 찍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는 고다가 인상 깊었다. 하자센터 학생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모습과 남정호 교수님이 은퇴후 펼쳐질 새인생을 고민하는 접점이 만나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밥 딜런의 노래 가사와 이들의 상황, 나의 상황이 너무나 들어맞았다.

 

나도 구르는 돌처럼 구르고 굴러서 이곳에 왔다. 집에서 줄곧 아이들을 키웠지만 늘 집이 없는 기분이었고 항상 북적였지만 아무도 없는 그런 마음 누가 알까?

 

어떤 기분인지 알까?

 

영화 보는 내내 엄마도 생각나고 일년에 절반이 겨울이던 강원도에서 아이 키우던 때도 생각 나 또 울컥했다.

 

같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도, 함께 하는 가족들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렇게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게 엄청 두려웠다. 강원도 어느 산 밑 고장에 살 때 벌판에 한 동 달랑 서 있는 아파트 밖에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열이 난 아이 곁에서 꼬박 밤을 샐 때의 그 기분이란.

 

진짜 온 지구가 멸망하고 세상에 덜렁 이 아이와 나만 남은 느낌이었다.

 

정말 우습지만,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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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멋진 옷을 입고

으스대며 부랑자에게 푼돈이나 집어 주었지,

사람들은 너에게 말했지, "아가씨, 추락하는 걸 조심해" 라고

그들이 농담하고 있다고 생각한 너는

떠돌이들을

비웃곤 했지

하지만 이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당당해 보이지도 않는구나

다음 끼니를 찾아 헤매야 하다니.

 

어떤 기분일까?

어떤 기분일까?

집 없이 사는 것이

알아주는 사람 없이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이

 

 

Once upon a time you dressed so fine

You threw the bums a dime in your prime, didn't you?

People'd call, Say, "Beware doll, you're bound to fall"

You thought they were all kiddin'You

You used to laugh about

Everybody that was hangin' out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About having to be scrounging for your next meal.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유난히 우는 분들이 참 많았다. 이 다큐는 특히 중년 여성들이 객석에 많았는데 다들 훌쩍훌쩍.

 

노래 가사와 교수님, 하자센터 학생들, 자신의 상황 모두가 이해되면서 서글픈 지점이 있다.

 

 

*

영광스럽게도 상영 이후 이 다큐를 찍은 박소현 감독님과 남정호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밤늦은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 해도 감동인데 직접 뵐 수 있어 좋았다.

 

영화를 보고 은퇴 이후의 삶이 두렵지 않다고 어떤 분이 말씀하셨고 강의를 광주에 개설하실 생각은 없냐는 요청도 들어왔다. 진짜 저렇게 멋진 무용 수업이라면 몸치 중의 몸치이지만 들어보고 싶다. 중년이 의외로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누구나 분출할 통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막 굴러다니지 말고 다른 구르는 돌과 만나면서 둥글게 둥글게 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에 외롭다.

 

어떤 기분일까?

 

어떤 기분일까?

 

부끄럽지만

정말 외롭다.

 

그러니 이렇게 며칠 내내 페이퍼를 연이어 쓰고 있나보다.

 

 

TMI 하나

 

한예종 학생들 공연 <구르는 돌처럼>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사진은 남정호 교수님이 좋아하신다는 젊은 시절의 모습

 

나도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그런 얼굴을 남겨보고 싶다.

 

억지로 웃지 않고 그냥 내 본연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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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성영화제 마지막날

진짜 여운이 오래 가는 영화를 보고 왔다.

 

원작은 <칠월과 안생>이고 우리말 제목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여자들의 오랜 우정과 진짜 인생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스포가 될듯해 조심조심.

 

엄청난 반전이 있는 영화라....

 

 

 

 

이맘때 소녀에게 친구란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월은 안생을 만나 그림자같이 붙어다닌다.

 

칠월은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모범생 성향의 소녀이고 안생은 야생마같은 매력을 지닌 불운한 아이다.

둘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서로 아끼고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칠월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우여곡절 끝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칠월이 힘겨울 시기에

칠월 엄마가 칠월을 위로하며

 

 

힘겨운 인생을 산다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야.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힘들기 마련이야? 이런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는 한 집에서 태어나 다른 집으로 옮겨 살아가는 거야.....이 말도 ㅜ.ㅠ

난 참 멀리도 옮겨왔네.


브라친구(불알친구 패러디, 브라까지 본 사이라는 뜻)가 가정시간에 그랬는데.

 

실 길게 잡으면 시집 멀리 간다고 적당히 하라 했는데 ㅜ.ㅠ

바늘귀에 실 다시 꿰기 귀찮아 늘 실을 길게 잡곤 했더니만

이렇게 멀리 왔다.


실 길게 잡으면 그러다 실이 더 막 엉키고 해서 끊고 다시 꿰야 한다. ㅜ.ㅠ


해서 여기저기 엉키고 꼬이면서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막 옮겨다니고

 

넋두리는 이쯤에서 관두기로 하자.

 

*

 

다시 영화로 돌아와

 

화면도 곱고 두 주연여배우 개성 강하면서 정말 싱그럽고 예쁘다.

 

<오 ! 루시>에서같이 멍청한 남자도 하나 끼어드는데

사실 칠월과 안생의 인생에 얘는 큰 의미가 있는 그런 존재도 아니다.

 

객석에서 다들 우느라 ㅜ.ㅠ

 

 

영화 끝나고 이야기 나누면서도 다들 울먹울먹 하셔서 놀랐다.

난 그냥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가 생각나 훌쩍 또르르 정도

 

그러다 밖에 나와 낙엽길을 거닐다 오열

아아아

 

이게 아닌데

겨우 십일월에 파카로 무장한 아줌마가 길에서 이러면 모양새가 너무 흉하다.

뭐 남들이 보면 어디서 부고라도 들었나 싶겠지.

 

갑자기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졌고

울컥했다.

 

 

SNS 세상이라 맘만 먹으면 연락처 알아낼 수 있는데 

다시 먼저 연락하게 되질 않는 그 친구.

그 친구 역시 나에게 연락하지 않고 거의 십년 가까이 지났나보다.

 

그래도 몇 해 전에 우연히 친구남편이 운영하는 병원블로그 보니 남편 성품이 보여 잘 사는구나 짐작만 하고 있다.


마지막에 사소한 오해로 어긋나면서

진짜 좋은 일 기쁜 일 생기면 연락하고 힘들 때는 연락 안 할게, 하고 말해버렸다. 바보.

그애도 그냥 싸늘하게 끊었나? 그래도 따뜻했나?


그 이후로 기쁜 일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 먼저 연락하기가 어려워졌다.


건너건너 큰수술했다 아기 낳았다 이런 소식을 공통의 친구에게 들었는데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물어봐주고 축하해주고 위로해줄 사이도 아닌 것 같아서 ㅜ.ㅠ


이렇게 서로 지낸 세월의 밀도가 다르고

변한 모습이든 그대로인 모습이든

다시 보면 마음 아플 것 같아서 서울 가도 그 근처 가도 연락하게 되질 않는다.


근데 진짜 신기한 게

친구남편 병원이 그 친구를 처음 만나기 전에 내가 다녔던 동네 국민학교 앞이어서 소름.

 

혼자 막 신기해하고 역시 우린 인연이었나, 이러다 피식 웃고 말았다.


꿈에도 가끔 나와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그러다 깨는데

그러고 나면 무지 허망하다.

 

뭔가 그 친구랑 여고 다니고 정동, 신촌, 광화문, 대학로 다녔던 때가 전생의 기억 같다.


진짜 한때는 남자친구보다 더 의지했고 감정을 나눈 친구였는데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추억할 수 있는 옛친구랑 계속 만나고 같이 나이들어도 좋았겠지만

그냥 간직만 하고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친구야,

 

나 이제 좀 덜 아프고 잘 지내고 여전히 썰렁해.

 

넌 아픈데 없는지 궁금해.

 

네가 전에 했던 말했잖아.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언젠가 볼 수도 있을 거라 했지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중이야.

 

예전에도 남자친구 기다릴 때보다 너를 기다릴 때가 더 설레고 그랬어.

 

언젠가는

관방제림의 가을풍경, 선운사의 가을을 보여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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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을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아이들 방한용품 정리에 기본 가사에 할일은 많았지만 버리려고 둔 여성영화제 리플렛을 보다 <오 ! 루시>를 발견하고 독립상영관 가는 버스를 탔다.

 

독립상영관 근처 카페에서 은행나무 잎이 쏟아질듯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라떼를 마시다 영화관으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영화 첫 장면부터 아주 세다.

 

흡사 우리나라 출근 풍경과 닮은 일본 지하철 역사 내에서 생면부지의 젊은 남자가 세츠코에게 잘 있어, 라고 한마디 하고 철로에 몸을 던진다. 크게 동요하지 않고 출근이 지연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 세츠코도 담배를 피우며 담담하게 이 상황을 정리한다.

 

역시나 익숙한 사무실 풍경.

 

세츠코는 조카에게서 자신의 남은 영어수강권을 대신 수강하고 그대신 돈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세츠코가 조카의 말에 따라 체험교실에 가니 학원답지 않은 요상한 분위기에 노래방같이 구획된 곳에서 '존'이라는 강사가 세츠코를 맞이한다.

 

존은 세츠코에게 노란 가발을 씌우고 이름을 뽑게 하여 '루시'라는 새 이름을 준다. 그리고 존은 세츠코를 '허그'한다. 의례적인 인사에 불과한 '허그'에 세츠코는 달라진다. 그러던 중 실은 존이 조카의 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직접 목격한다. ㅜ.ㅠ

 

 

 

 

 

 

세츠코는 조카 미카와 존이 떠나자 무작정 휴가를 내고 언니와 함께 조카를 찾으러 나선다. 익숙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의 풍경과 다시 만난 존의 친절에 세츠코는 생기를 찾는다.

 

하지만 존은 세츠코의 조카를 기만한 흔한 유부남이었고 세츠코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츠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끝까지 존에게 돌진하고 상처받고 모든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결국 세츠코는 일본으로 돌아오고 휴가 이후 원치 않는 인사발령을 받은데 불복해 사표까지 쓴다.

 

루시의 인생을 망친

진심 짜증나는 존이라는 인사,

무책임과 이기주의, 탐욕, 멍청함

동양권 여성들이 서양남성에게 가진 환상이 결국 이런 일들을 자주 만든다.

 

그저 여기가 아닌 진짜 다른 어딘가

뭔가 다른 새로운 세계로 가보고 싶은 욕망이 파국을 불러왔다.

 

진정 가련한 루시!

오 ! 루시!

꼭 그래야만 했나요?

 

 

괜찮아요, 괜찮아.

누가 뭐래도 자기 인생 ,  자기 돈이에요 이렇게 처절하게 낭비해볼 수도 있어요.

 

하필  그 시기가 중년이라 큰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니까요.

 

 

 

 

 

 

 

 

 

 

 

 

 

 

 

 

영화를 마치고 소설가 이화경 님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잘 모르는 작가분이었는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올 수 있게 관객들을 잘 이끄셔서 좋은 이야기 듣고 나도 중간에 이야기에 끼어들게 되었다.

 

중년에 이른 여성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례할 수 있는지 사랑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나를 알고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과 이야기하셨다.

 

중년에 이르면 힘들고 아픈 걸 돈을 주고 받아야 성립되는 관계 속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는 말씀에 얼핏 동의한다. 작가님처럼 나도 한의원에 다닌 시절이 있어서.

 

작가님이 의사에게 갱년기가 되니 '감정의 파고가 크다'고 고백해서 의사가 못 알아듣자 작은 일에 빡이 친다고 표현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셔서 많이 웃었다. 뭔가 나같은 지적인 중년의 여성은 평범한 중년 여성과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는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자기 반성에 동의한다. 나 역시 흔하디 흔한 욕심 많은 학부형인데 뭔가 의식 있는듯이 굴 때가 있고 지역민인데 어딜 가든 내가 있던 서울 어쩌고저쩌고를 가끔 한다.

 

그냥 우리지역에 이런 귀한 자리가 있으면 열심히 다니면 되는 거다.

 

의사가 허리가 아프면 말씀하라고 했는데 작가님이 의사선생님이 누르던 데가 아프다고 하니 의사가 거긴 살이잖아요, 하고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다 웃었다.

 

살처럼 보이는 어떤 허리, 옆구리 아세요? 의사선생님.

 

허리가 없는데도 허리가 아플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잘록한? 20대? 여성의 허리말고 그냥 허리

여성의 진짜 몸을 얼마나 아시는지요.

 

여성이 아니라서 그 나이가 아니라서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좀더 중년여성에게 다정하실 수는 없나요?

 

내 나이도 이제 병원 의사선생님들 나이보다 비슷하거나 살짝 많게 되면서 차이나는 친절도에 씁쓸해진다.

 

이렇게 중년여성은 사회적으로 투명한 존재가 된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여기면 다행인데 어떤 살덩어리, 무례함, 탐욕, 오지랖 이런 부정적인 수식이 잔뜩 붙는다.

 

대접받을 수 있을 때는 오로지 소비할 때뿐이다.

고객님, 어머님으로서만 존중받고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한 인격체로 대해주지 않는다.

 

*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세츠코 역의 테라지마 시노부의 그 지치고 까칠한 초반의 표정과 존을 알고 나서의 돌진하는듯한 결연한 표정, 미소, 웃음들이 아직도 선하다.

 

중년 남성은 가정을 꾸리고도 사회적 지위나 재력을 이용해 또다른 사랑을 해도 주변인들에게 비난받지 않는다. 중년의 위기로 인한 일탈로 치부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자기 위치를 다시 지키면그냥저냥 넘어간다.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에서 아저씨는 인품 하나 좋은 것만으로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한테 사랑을 받을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 특히 중년여성의 로맨스는 봉쇄되어 있다. 기혼중년여성의 로맨스나 작은 일탈은 가정 붕괴, 삶의 기반 붕괴로 이어지기에. 기혼 여성의 작은 일탈은 주책, 정신병, 도덕성 끝의 타락으로 비난받는다.

 

최근 문제가 된 논산여교사 사건만 봐도 미성년자와 관계한 기혼 여성 교사들은 신상이 탈탈 털리고 여기저기 회생이 불가능하게 까여도 동일한 죄를 저지른 남성 교사들은 신상이 탈탈 털리거나 이혼당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은 다 범죄자라서 이런 비교 자체가 의미 없기는 하다. 다만, 동일한 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여성에게만 유독 더 가혹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신상공개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도 일단은 차치하기로 한다)

 

세츠코의 경우 독신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많은 비웃음과 무례를 겪는다. 같은 연령대 중년 남성의 사랑 찾기라면 진국이라면서  나이 차이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며 응원하기도 한다.

 

 

여러 매체에서 중년 남성은 나이들수록 원숙해지고 중년 여성은 무례하고 히스테릭한 존재로 자주 그려진다. 드라마 작가들 대다수가 여성인데도 왜 그럴까? 막장 드라마, 욕드(욕하며 보는 드라마)가 소비되는 구조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 아직은 욕망이나 대리욕구의 분출 정도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

 

*

 

작가님이 이모와 조카가 한 남자를 두고 치정에 얽힌다는 설정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맞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자주 도덕을 뛰어넘기에 이런 설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조카 역시 이모에게 얼마나 무례했고 자기 편의만 취했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세츠코만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우리는 다 때로는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수도 있지 하고 수긍하게 된다.

 

*

 

비극적 파국 끝에 세츠코는 일본으로 와서 자살을 기도하는데 존의 수업을 같이 들었을 때 만난 사별한 남성 '톰'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톰은 역사에서 자신이 너무 강경하게 대해 아들이 죽었다고 고백하고 서로 '허그'한다.

 

거창하지 않은 이 '허그'가 뼛속깊이 외로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객석의 60대 어머님이 이들이 결혼해서 살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난 아니다.

 

세츠코도, 루시도 아닌 존재로 다시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그게 삶이든, 죽음이든.

 

 

*

 

객석에서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해체 가족이라 고백한 여성분이 새벽에 술 마시고 들어가 간만에 엄마를 안아보았다는 고백에 나는 그만 휴대용 티슈를 들고 말았다. 루시도 짠하지만 역시 현실이 더 슬퍼. ㅜ.ㅠ

 

 

단풍나들이 가기 좋은 이 시절에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가운데

이 상영관에 앉은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을 테지.

 

상영관 토크까지도 다 마치고 나서 시크한 수세미도 샀다.  어릴 때는 그런 데서 머그나 에코백을 샀으나 결국 잘 안 쓰게 될듯해서 카키와 그레이 섞인 시크한 수세미를 하나 샀다.

 

이제부터 설거지를 하며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들어야겠다.

 

마지막까지 진짜 의식의 흐름에 따른 페이퍼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루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자동반사로 이 노래가 떠오르는 옛날사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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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Picture yourself in a boat on a river
강위의 보트에서 오렌지 빛 나무와 마멀레이드 하늘을 낀

With tangerine trees and marmalade skies
너 자신의 모습을 그려봐

Somebody calls you, you answer quite slowly
누군가가 널 부르고, 넌 천천히 대답을 하지

A girl with kaleidoscope eyes
복잡한 눈을 한 여자 아이가

Cellophane flowers of yellow and green
노란 녹색을 띄는 셀로판 꽃을 들고

Towering over your head
네 머리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구나

Look for the girl with the sun in her eyes
눈 속에 해를 품은 여자애를 찾아야 돼

And she's gone
그녀는 떠나갔어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루시는 다이아몬드를 들고 하늘에...


Follow her down to a bridge by a fountain
하강하는 그녀를 따라 흔들리는 말 모양을 한

Where rocking horse people eat marshmallow pies
분수대 옆의 다리로 가봐. 사람들은 거기에서 마시멜로 파이를 먹어

Everyone smiles as you drift past the flowers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빨리 자라는 꽃밭을

That grow so incredibly high
네가 떠내려 지나가는 동안 모든 이들은 웃지

Newspaper taxis appear on the shore
신문 모양을 한 택시가 강가에 나타나서

Waiting to take you away
너를 데려가려 기다리고 있어

Climb in the back with your head in the clouds
머리는 구름에 맡기고 뒤에 올라타면

And you're gone
넌 떠나가는 거야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루시는 다이아몬드를 들고 하늘에...


Picture yourself on a train in a station
기차역에 정차한 기차안에서 거울로 넥타이를 보며

With plasticine porters with looking glass ties
점토 광고 포스터를 든 너 자신의 모습을 그려봐

Suddenly someone is there at the turnstile
갑자기 누군가 회전문에 나타났어

The girl with the kaleidoscope eyes
바로 그 복잡한 눈을 한 여자애야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루시는 다이아몬드를 들고 하늘에 있어...

 

 

네이버 블로거 Lovely  Annie 해석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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