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산하작은아이들 22
권정생 지음, 김용철 그림 / 산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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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5.4.

다듬읽기 208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산하

 2010.3.10.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권정생, 산하, 2010)는 우리가 스스로 둘로 쪼개어서 다투고 싸우고 겨루는 하루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들려줍니다. 이웃하고 싸우려 해도 어리석고, 스스로 갈라서 싸우려 들면 더더욱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짚어요. 뜻깊고 배울 만한 삶길을 다루는데, 글결은 퍽 아쉽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조금 더 다듬고 손보면서 우리말결을 살릴 만할 텐데 싶더군요. 이제는 “뜻만 훌륭한 글”이 아니라, “소리내어 읽기에도 알맞고 아름다운 글”로 추스를 때라고 느껴요. 곰곰이 보면, 우리는 말부터 말답게 다스리면서 나누는 마음을 잊으면서 잃은 탓에 자꾸 싸우는구나 싶습니다. 마음에 심을 말씨부터 차근차근 가꾸어 빛낼 적에 비로소 어깨동무하고 사랑을 나누는 길로 새롭게 접어들리라 봐요. 어린이책도 어른책도 ‘살림말씨’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ㅅㄴㄹ


이 세상은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이 땅은 기쁜 일만 있지 않습니다

→ 이곳은 기쁜 일만 있지 않습니다

4


남의 나라와 싸우는 것도 나쁘지만, 같은 나라와 싸우는 것은 더 나빠요

→ 이웃나라와 싸워도 나쁘지만, 우리끼리 싸우면 더 나빠요

→ 옆나라와 싸워도 나쁘지만, 우리끼리 싸우면 더 나빠요

5


하느님도 슬퍼서 울고 계십니다

→ 하느님도 슬퍼서 웁니다

5


예배당 종각이 높다랗게 보이는 마을을 향해

→ 절집 울림채가 높다랗게 보이는 마을로

→ 절간 울림집이 높다랗게 보이는 마을로

12


작은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어 살았습니다

→ 작은 새가 이 가지에 깃듭니다

→ 작은 새가 이 가지에서 삽니다

20


두터운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과 짐승들의 쉴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 두텁게 그늘을 내주어 사람과 짐승이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20


이젠 자신의 본래 빛깔마저 어떠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 이젠 제 빛깔마저 어떠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32


이젠 본래의 느티나무가 아닌 두 개의 다른 느티나무로 작은 언덕에 서 있는 것입니다

→ 이젠 처음 느티나무가 아닌 다른 두 느티나무로 작은 언덕에 섭니다

→ 이젠 예전 느티나무가 아닌 다른 두 느티나무로 작은 언덕에 섭니다

32


두 개의 빛깔을 가진 한 그루의 느티나무는 참으로 고통스럽게 서서

→ 두 빛깔인 한 그루 느티나무는 참으로 괴롭게 서서

→ 두 잎빛인 한 그루 느티나무는 참으로 힘겹게 서서

33


회색빛인가 아니면 검자줏빛인가 다투면서 늙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잿빛인가 아니면 검보라인가 다투면서 늙어 갑니다

33


자기네들이 5천 년 동안 지니고 있던 빛깔이

→ 저희가 닷즈믄 해를 살던 빛깔이

34


진군의 나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가라는 나팔 소리를 기다립니다

→ 달려갈 나팔 소리를 기다립니다

→ 뛰어들 나팔 소리를 기다립니다

40


일제히 기운차게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한꺼번에 기운차게 뛰어갑니다

→ 다같이 기운차게 뛰어갑니다

40


하늘 아래에선 맞설 대적이 없다는

→ 이 하늘에선 맞설 이가 없다는

44


궁전 안은 개구리들이 흘린 피로

→ 임금집은 개구리가 흘린 피로

→ 우람집은 개구리가 흘린 피로

44


비단 이불 위를 기어갔습니다

→ 누에천 이불을 기어갔습니다

→ 반들한 이불을 기어갔습니다

45


임금님의 얼굴 위에도, 살찐 배꼽 위에도

→ 임금님 얼굴에도, 살찐 배꼽에도

45


개구리는 관원의 무섭게 부릅뜬 눈을 마주 쳐다보았습니다

→ 개구리는 구실아치게 부릅뜬 눈을 마주보았습니다

→ 개구리는 벼슬아치가 노려보는 눈을 쳐다보았습니다

47


그들은 다스림을 받고 있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 이들은 억눌리고 힘이 없어요

→ 이 사람들은 밟히고 힘이 없어요

50


아름다운 시를 짓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셔요

→ 아름답게 노래를 짓고, 그림을 그리라 하셔요

5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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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5.2. ‘나팔’ 말밑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몇 해가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나팔’ 말밑을 풀었습니다. ‘나팔·나발’을 굳이 ‘喇叭’이라는 한자에 꿰어맞추려는 분이 있으나, 우리말 ‘나풀거리다·나불거리다·너풀거리다·너불거리다’를 비롯해서 ‘나부대다·나부끼다’에 ‘나비·너비·날다·너울’을 두루 짚어 본다면, 수수한 사람들 삶자리에서 가만히 태어난 이름인 줄 엿볼 만합니다.


  옛글에 한자로 적혔으니 한자말일 턱이 없습니다. 옛글을 남긴 이들은 ‘말소리’만 따서 한자로 옮기기 일쑤였습니다. 이 얼거리를 안 읽고서 덥석 한자를 말밑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오래오래 써 온 말씨에 깃든 살림살이와 숨결을 몽땅 잊거나 잃을 수 있습니다. 한자로 남은 옛글이 옛말을 모두 안 담습니다. 1100년이나 220년에 어떤 말소리로 이야기를 폈는지 남긴 글은 하나도 없는데, 글만 부여잡다가는 말빛을 놓칩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말밑 꾸러미》 넉벌손질로 하루가 흐릅니다. 차근차근 손질하니 끝이 나겠지요. 얼핏 끝없어 보이는 일을 하다가, 집안일도 하고 바깥일도 보고, 밥도 차리고, 빨래도 하고, 뽕꽃도 훑고, 후박꽃내음도 맡고, 낫을 갈고서 풀을 베고, 등허리를 펴고, 두바퀴를 달려서 나래터(우체국)에 다녀오고, 이러다 보면 “오늘도 마치지는 못 하는구나.” 하고 느끼지만, “이튿날 새로 기운을 내자”고 다시 생각합니다.


  어린배움터에 들어가서 신나게 뛰놀며 이모저모 배우던 어느 날, ‘나발·나팔’이 한자라고 가르치는 길잡이를 만나서, “설마! 아닐 텐데!” 하고 느꼈지만, 어른 앞에서 이런 말소리를 섣불리 낼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거의 마흔 해 만에 수수께끼를 풀어낸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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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4.30. 1010 + 1011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숲노래 책숲〉을 1010하고 1011을 나란히 엮습니다. 1010은 ‘노래꽃그림’으로 꾸리고, 1011은 조그마한 종이로 여밉니다. 숲노래 씨가 노래꽃을 쓰면, 사름벼리 씨나 산들보라 씨가 곧잘 그림을 담아 주는데, 두 분이 담아낸 그림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노래꽃그림’을 꾸렸습니다. 이 하나만 책숲이웃님한테 띄우기에는 어쩐지 허전해서 1011로 ‘말밑(어원)’ 이야기를 넷 새로 갈무리해서 뒤쪽에 붙입니다.


  〈숲노래 책숲〉을 여태까지 읽은 분은 아실 텐데, 이 꽃종이는 ‘잔글씨’로 여밉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못 읽는다는 핀잔을 익히 듣지만, 굳이 잔글씨로 여밉니다. “읽을 사람은 즐겁게 천천히 읽으면서, 말빛과 말넋을 새롭게 익히는 길동무로 삼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잔글씨를 느긋이 읽어서 익힙니다. 마음이 없으면 큰글씨여도 처음부터 안 쳐다봅니다.


  얼핏 보면 크고작은 글씨이지만, 곰곰이 보면 “깨알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마음에 작은씨앗을 닮은 낱말을 담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러분한테 여쭙는 셈입니다. 부디 늘 이 대목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작은씨앗은 그야말로 작아요. 나무씨도 풀씨도 꽃씨도 나물씨도 대단히 작습니다. 우리 마음을 일으키고 살리는 ‘말씨’ 하나도 깨알만 하게 마련입니다.


  2024년 4월 29일에 고흥교육지원청에 ‘숲노래 책숲’으로 삼는 ‘폐교 흥양초등학교’ 빌림삯(임대료)을 치렀습니다. 111만 1500원입니다. 누구한테는 잔돈일 수 있고, 누구한테는 목돈일 수 있습니다. ‘숲노래 책숲’한테는 이 돈이 목돈인 터라, 사름벼리 씨한테도 빌리고, 언니한테도 빌려서 삯을 대었습니다.


  고흥군수, 고흥교육지원청장, 고흥군의원, 고흥군 국회의원 가운데 아직 아무도 ‘숲노래 책숲’에서 이 시골자락을 ‘책빛씨’로 살리는 길을 어림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숱한 책숲이웃님이 있기에 다시 한 걸음을 딛고, 새로 《말밑 꾸러미》(어원사전)를 펴내려고 기운을 차립니다. 고맙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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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9


《말론 할머니》

 엘리너 파전 글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비룡소 펴냄

 1999.1.22.



  그리스·로마 옛이야기가 책으로 꽤 나왔고 널리 읽히는 줄 알지만, 어쩐지 저한테는 시큰둥했습니다. 높은 곳에 계시다는 님들 이야기에는 다 다르게 빗대는 뜻이 있는 줄 느끼면서도, 굳이 높은님 이야기에 사로잡혀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어요. 저는 우리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어떻게 보내었는지 더 궁금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나이(어린이 나이)’에 어떤 하루를 보냈고, 그무렵 마을과 나라는 어떠했는지 궁금했어요. 둘레 어르신한테 “살아온 이야기 좀 들려주셔요.” 하고 여쭈면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면서 “고릿적 얘기는 들어서 뭣 하게? 재미없어.” 하면서 끊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문득문득 비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옛살림 이야기’는 새롭게 반짝이면서 놀라웠습니다. 《말론 할머니》는 늘그막에 홀로 죽음을 앞둔 조그마한 할머니 하루를 들려줍니다. 작고 가난한 할머니일 뿐 아니라, 곧 이 땅을 떠날 텐데, 마지막날에 이르도록 ‘나(할머니)보다 더 작고 가녀리구나 싶은 이웃 짐승’한테 잠자리를 내어주고 밥을 차려줍니다. 이러다가 더는 기운을 낼 수 없어서 깊이 잠들어요. 고요히 잠든 할머니를 본 여러 숲짐승은 할머니를 안고 이면서 하늘나라로 갔다지요. 하늘나라 문지기는 ‘허름하고 쬐꼬만 할머니 겉모습’에 손사래를 치다가, 숲짐승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말에 깜짝 놀라 얼른 하늘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말론 할머니마냥 아주 조그마한 그림책을 이따금 되읽습니다. 돈만 많으면 하늘나라로 못 간다고들 하지만, 우리 둘레는 온통 돈판입니다. 나라에서도 ‘경제발전’이라는 이름만 드높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어디 있을까요? 젊음을 통째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에 바친 할머니는 누구나 빛나는 하늘길로 나아갈 테지요. 돈과 힘과 이름을 거머쥐려는 무리는 누구도 하늘길은커녕 하늘 귀퉁이에도 못 깃들 테고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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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20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글

 고려원

 1988.5.5.



  여태껏 숱한 이들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꽃할매(종군위안부 피해자) 마음에 다가서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응어리를 푼 일이 없습니다. 이쪽에 있다는 벼슬아치도, 저쪽에 있다는 벼슬꾼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나라지기·벼슬아치·글바치뿐 아니라, 우리부터 스스로 꽃할매하고 썩 이웃을 못 한 터라, 이 굴레가 고스란히 이은 셈이지 싶습니다. 더욱이 임옥상 씨를 비롯해 적잖은 이들은 추레질(성추행·성폭력)을 일으켰고, ‘기억의 집’이라는 터전까지 헐어내야 했습니다. 2023년에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를 써낸 윤정모 님인데, 아주 한참인 예전 어느 날 《정신대 실록》을 읽었다고 합니다. 1981년에 임종국 님을 찾아뵙고서 말씀을 여쭌 뒤에 1982년에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처음 선보였고, 1988년에 조그마한 꾸러미로 다시 나옵니다. 이 글자락은 1991년에 영화로도 나왔으나, 영화를 찍은 사내는 ‘꽃할매 눈물앓이’가 아니라 ‘젊은순이 벗은몸’을 그려내는 데에 사로잡혔어요. 창피한 일입니다. 눈물과 생채기와 응어리를 오히려 장삿속으로 갉아먹었거든요. 가난하고 조그맣던 어린순이는 숱하게 끌려가서 노리개로 구르다가 스러졌습니다. 가난하고 조그맣던 어린돌이는 끝없이 끌려가서 짐꾼에 심부름꾼으로 구르다가 이슬(전쟁터 총알받이)로 스러졌습니다. 얼마나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밟혀서 죽고 다쳤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가난하고 낮고 작은 사람들은 몽땅 시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돈·이름·힘이 있으면 군대에 안 끌려가고 빠져나옵니다. 예나 이제나 젊은날에 꽃봉오리로 피어나지 못한 채 꺾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열일고여덟 살 무렵에, 또 스물한두 살과 스물너덧 살 무렵에, 동무나 또래한테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같은 책을 함께 읽고서 생각을 북돋우고 우리 앞길을 새로 짓는 그림을 펴자고 말을 섞으려 했지만, 다들 고개를 돌리더군요. 100사람한테 물으면 1사람쯤 귀를 열어요. 그러나 귀를 연 1사람이 있으면 기쁘게 함께 읽고서 수다꽃을 피웠습니다. 푸른꽃이란 풀꽃이고, 풀꽃이란 들풀이고, 들풀이란 작고 낮고 흔한 숨빛이되, 온누리를 맑고 밝게 보듬는 바람빛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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