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불을 정리하는 일을 자꾸만 미룬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을 하다가 게으른 내 탓이지 싶다. 하지만 날카로운 봄바람은 어쩔 수 없다. 속절없이 비를 간절히 기다리던 시간에는 흔들림 없이 아랑곳하지 않던 하늘이 비와 더불어 바람까지 보내고 황사까지. 알 수 없는 봄바람이 마음의 옷깃도 여미게 만든다.


코로나 이전에는 봄이면 꽃을 보러 나가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꽃터널이 많다. 해마다 나무는 성장하니 웅장한 아름다움도 함께 성장한다. 지난주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가로수로 심은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어제는 그 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 연두가 가득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 그 안에서 저마다 성장하는 모든 것들. 나는 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가.


4월의 절반이 지나고 세월호 참사 9주기가 지났다. 시간이 흘러도 슬픔은 흐르거나 지나지 않고 우리 곁을 지킨다. 그래서 4월은 여러 의미로 잔인하다. 잔인한 시간을 달래려 책을 샀다. 모르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내가 아는 작가가 아닌 모르는 작가, 처음 만나는 작가를 기대하는 새로운 즐거움이라고 할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뜨거운 피』, 버나드 멜러머드의 『점원』,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기대할 수 있다. 뭔가 알게 되면 그 기대는 순수하지 않은 불순함이 포함된다. 이 세 권의 소설에 대한 내 마음이 그렇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의 기대는 달라질 것이다. 실망하거나 기대하거나.


아무런 절망 없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쁨이다. 모르는 즐거움, 모르는 기쁨이 있다는 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 남은 4월은 이렇게 신이 나면 좋겠다. 신이 나기 위해 모르는 작가의 책을 더 들여야 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4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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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원 읽다 말고 다른 책들에
그만 정신이 팔렸네요 그것 참.

자목련 2023-04-18 08:49   좋아요 0 | URL
<점원>은 레삭매냐 님의 글에서 처음 본 소설이에요. 언제 읽을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ㅎ

은오 2023-04-17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즐거움!! 😆💕 역시 독서는 좋은 취미입니다. 평생 읽어도 안읽은 책 안읽은 작가가 수두룩할거라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ㅋㅋㅋㅋ

자목련 2023-04-18 08:51   좋아요 2 | URL
봄 비처럼 반가운 은오 님! 잘 지내고 있나요? 맞아요, 수많은 책들이 있어 다행이에요 ㅎ

은오 2023-04-19 00:01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ㅏ 봄비처럼 반갑다고 해주시다니 자목련님 다정함에 녹아버려.......ㅠㅠ 저 그만 꼬시세요!!!!!!!!!! 🤭
 

올봄은 꽃이 빨리 피어서 축제를 기획한 이들이 무척 당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3년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꽃들이 열렸다고나 할까. 기후 위기의 증거로 자연 생태계에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사실은 망각하고 꽃에 취하고 만다. 어쨌거나 그에 발맞추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무리에 끼는 일은 어렵고 아파트 한쪽에 동백나무가 꽤 크게 자란 걸 확인하는 날들이다.


봄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각자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 겨울 속 추위를 견딘다. 한 겹의 옷을 벗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조금씩 겨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드라운 바람에 슬그머니 마음을 내려놓는다. 봄이구나, 봄이니까, 봄이라서 마음은 자꾸 느슨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

실패한 봄이 나를 지나간 후였다

꽃이 혼자 지던 날


무게중심은 어디서나 숨길 수 없다

저기 막 사라진 사람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앞 촉이 닳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

치욕 같은 맨발을 내 보인 사람들


울고 있는 동안은

눈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미 나를 지내간 내 거짓말


나는 가볍고

구름은 금세 몸을 바꿔 흩어져

한 번도 우리는 우리를 관통한 적 없었다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 아니라

막 안개를 지나온 것이거나

안개와 섞여본 적 없음을 알았을 뿐

지나가던 눈물을 훔쳐 살 뿐


그리하여 매번 너무 늦게 울었거나

안개에 얼굴을 묻는

발 없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 「안개 속의 거짓말」, 전문)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긴 줄을 세우는 그런 사월이다. 나를 지나간 거짓말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만우절로 시작된 4월이라 그럴까. 거짓과 눈물이 나뒹구는 4월이다. 새로이 탄생할 거짓과 슬픔이 자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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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안개비가 내렸다. 화요일 밤부터 시작된 비는 수요일에는 흠뻑 내렸고 어제는 안개비로 오늘은 미세먼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안전 안내 문자는 일상이 되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친근한 건 아니다. 황사용 마스크를 챙겨서 사용해야 한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며칠 전 언니가 마스크를 정리했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 마스크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이미 많은 개수의 마스크가 유통기한이 지났고 그래도 순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한 것들을 식탁에 꺼내 놓았다. 나도 방에서 마스크를 찾았다. 책장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여기저기 마스크가 가득했다. 여유분이라고 하기엔 많았다. 아마 가방에도 하나쯤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사용하려고 챙겨둔 마스크. 예고 없이 끈이 떨어지거나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려고 한 것들.


마스크 한 장 사려고 요일에 맞춰 약국에서 대기하던 시간들, 방문한 약국에 품절된 마스크 안내문을 보고 다른 약국으로 찾아 빠르게 이동하던 순간들. 3년 전 봄은 그랬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병원 방문도 자제하라던 그 시간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이제는 패션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마스크. 생각난 김에 뉴스 기사를 검색했더니 필터 효율이 떨어지지만 밀봉된 상태면 큰 차이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면 마스크는 딱히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3년이라는 시간 한 몸처럼 사용했으니 이제는 마스크가 없는 상태가 이상할 정도다. 나 역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열심히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는 마스크를 쓰기 힘들 테니 그때는 화장을 하게 될 것 같다.


3월 중순부터 마스크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이 되었고 최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친구는 마스크를 벗는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초롱초롱한 눈빛만으로 표정을 확인하는 것과 얼굴 전체를 보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고. 그만큼 눈빛이 중요한 것일까.


마음의 마스크는 어떨까. 외부로부터 오는 무언가를 막아낼 마스크. 함부로 쉽게 터져 나오려는 것을 막아주는 마스크. 나는 그런 마스크가 필요한가. 이미 마음에 착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은 잡념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쓸데없는 생각들, 의미 없는 사고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마음의 마스크를 쓴다. 평온을 위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도 마스크 역할을 한다. 몇 권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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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7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너무 좋은 책이 많이 나와요. 저도 다 읽어볼래요.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수이 님과 함께 읽게 될 책, 신나요!!

희선 2023-04-0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마스크 안 해도 된다니... 그래도 저는 그냥 나가지 못하는군요 코로나가 아주 사라진 게 아니기도 하니... 가끔 공기가 안 좋기도 하고 어제는 황사도 온다고 했군요 오늘도 공기 안 좋다고 한 듯합니다 마음에 쓰는 마스크... 있으면 좋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미세먼지가 심각한 요즘은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더라고요. 희선 님,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예배를 드리고 점심엔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는 아니고 맛있는 파김치가 생겨다. 어려서는 파김치의 맛을 몰랐다. 어디 파김치뿐이랴. 모르는 것투성이고, 편견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상상의 맛에 갇혀지냈다. 현재까지 이어져서 아직도 나는 굴을 먹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굴을 조새로 까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정작 영양가 넘치는 굴의 맛을 모른다. 그리고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가 굴을 팔아야 해서 한 번도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에겐 어린 딸에게 굴의 맛을 알려주는 것보다 그걸 모아서 팔아야 하는 이유가 더 컸을 거라고. 


냉장고에 어리굴젓은 아직 밀봉된 상태 그대로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고 작은언니가 먹거나 다른 누구에게 주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 속 엄마는 김치를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는 김치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동네 친구들과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 춤을 추는 그런 모습을 나는 지독하게 싫어했다. 창피했다. 철없던 나는 엄마의 그 작은 여유를 인정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밤 독서를 했다. 밤 독서라는 말이 괜히 근사하다. 봄밤 독서라고 해야겠다. 추워도 봄이니까. 이주혜의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읽고 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좋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좋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늙은 엄마의 모습을 잠깐 상상해 봤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내가 늙는다면 그게 엄마의 얼굴이 될까. 책을 읽다가 에드리언 리치의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을 꺼냈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글에서 언급하는 비비언 고닉의 책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말이다.


이주혜가 글에서 이름에 대한 부분이 등장하는 데 그 게 참 좋았다. 사실, 다른 부분도 넘 좋다. 내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지 않았다. 큰 오빠는 아명까지 있었다. 세상에 그 시절에 아명이라니. 세 자매의 이름은 돌림이 있고 언니와 작은 언니의 이름의 한자는 그나마 뜻이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큰 오빠를 낳고 아들을 하나 더 바랐지만 내리 딸을 낳은 엄마. 큰 언니와 작은 언니까지는 괜찮았지만 나도 딸이라서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남동생의 이름은 항렬자를 넣어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나쁘지 않았고 어떤 이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나 할머니의 이름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를 끼고 자면서 항상 자신의 이름을 외우게 했다. 그래서 엄마 이름보다 할머니의 이름을 먼저 알았다. 나를 명명하는 이름, 나의 존재를 부여하는 이름. 여성이 이름을 갖게 된 시점, 오직 남성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던 존재, 그 이전에는 여성은 이름이 없는 존재였다는 게 너무 아프다. 고모의 이름은 기억하면서도 작은엄마의 이름은 한참후에 떠올린다. 


정확함이 이름 붙이기의 기본이라면 이름 바꾸기의 전제는 애정이다. 오직 애정으로 붙이고 또 붙인 이름만이 길어질 수 있고, 우리는 마음을 다해 긴 이름을 부르는 수고로움을 자처할 것이다. (「이름에게」, 중에서)


최근 아끼는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할 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개명할 이름으로 바꿔 저장했다. 그리고 통화를 할 때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려 노력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가 생각한다. 자목련이라는 이름, 내가 지은 이름이 좋다. 블로그의 존재를 아는 친구들은 나의 다른 이름, 자목련을 안다. 


이주혜의 산문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가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당신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해도 연결되고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 마주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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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06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안 올라간다. ㅠ.ㅠ

수이 2023-03-06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재, 북플 다 이상하던데요. 저도 사진 한장 올리는데 8분 걸렸어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맘으로. 알라딘 일 제대로 안 하네요 😡

자목련 2023-03-07 08:34   좋아요 0 | URL
노화된 제 컴퓨터 때문인가 싶었는데 아니었군요. ㅎ

유수 2023-03-06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주혜는 내가 자신의 글을 읽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저자지만 저도 그랬어요. 연결의 느낌과 글, 저도 흠뻑 공감하고 갑니다.

자목련 2023-03-07 08:37   좋아요 1 | URL
뭔가 깊게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신기하면서도 반갑고, 아무튼 이 산문집 좋습니다!

얄라알라 2023-03-06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자목련님 글, 문장은 짧은데 어느 한 문장도 흐름 안에서 뺄 수가 없이 정교하게 짜여짐...
자목련님의 기억에 저절로 같이 빠져들다 나왔습니다^^

자목련 2023-03-07 08:4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와의 시간이 아쉽고 그랬어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은...

페넬로페 2023-03-06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굴을 싫어했는데 요즘에사 굴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해 먹은 굴떡국이 그렇게 맛나더라고요.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유가 별로 많지 않은 세대였잖아요.
저는 엄마가 그렇게 돈을 떼이면서도 계모임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사나운 애착도 읽고 이주혜의 산문도 읽어야겠어요^^

자목련 2023-03-07 08:43   좋아요 1 | URL
굴떡국을 먹어도 저는 슬그머니 굴을 건집니다. ㅎ 아마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입맛인 것 같아요. ㅎ
맞아요, 계모임. 엄마에게 그건 절대적인 무언가였을지도 모르는데.
즐겁게 만나세요^^

레삭매냐 2023-03-06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술을 진탕
퍼먹고 난 다음날 아침
친구들과 채석강에 나가서
굴 따시는 분에게 사 먹은
굴 생각이 납니다.

그 굴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생뚱 맞지만 굴전이 먹고
싶네요.

자목련 2023-03-07 08:47   좋아요 1 | URL
기억과 맛은 멋진 조합 같아요.
음, 주말에 굴전을 추천합니다!!

구단씨 2023-03-06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혜 작가님, 소설이 아니라 산문으로 신간을 만나게 하는군요. <자두>도 좋았는데요. ^^
<사나운 애착> 그렇고,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 좋네요...

자목련 2023-03-07 08:51   좋아요 0 | URL
<자두> 참 좋죠, 이 산문집도 좋습니다.
구단씨 님의 댓글도 좋고요!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걸 안다. 하지만 1인 극이 아닌 이상 연극에서는 조연도 단역도 지나가는 행인도 필요하다. 때로 주연보다 단역이나 조연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고 다시는 볼일 없는 행인의 말 한마디가 평생 남기도 한다. 그만큼 사는 일은 혼자만 잘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혼자만 잘 하기도 어렵다. 가깝게는 가족, 지인, 친구도 잘 지내야 하고 멀게는 사회와 나라도 잘 살아야 한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인생에 스며들면 좋겠지만 불행은 어디서든 슬그머니 찾아오기 마련이다. 때로는 어떤 암시로 때로는 어떤 기척으로. 


평온했던 일상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다. 한순간은 방금이 아니리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해서 당혹스럽다. 어떻게든 순간을 모면하면 괜찮을 거란 생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안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이가 빠진 그릇을 내동댕이치지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처럼. 저마다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게 인생이라고, 그러니 어쩌겠냐고 카버는 말한다.





단편 소설집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에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11편의 단편은 그런 이야기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무게, 도무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이야기. 너무 딱해서 그만 놔버리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이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삶, 그러다가 내가 어찌 감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표제작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는 새벽 세 시에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다. 재혼한 중년의 부부는 그 전화 한 통으로 잠을 설쳤다. 전화를 건 여자는 낯선 이름의 남자를 찾는다. 남편은 전하기 코드를 빼는 게 아니라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부부는 다시 잠들 수 없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로 대화를 시작한다. 전 남편이 등장하는 아내의 꿈,에 대해 죽음이 다가왔을 때 생명유지 장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아내는 남편이 그것을 빼주기를 원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남편은 끝내 유지하기를 바란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는 미쳤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든 그게 언젠가 나에게 돌아오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이건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123쪽)


귀찮은 전화 한 통을 누가 받을지 서로 다투고 잠을 설치고 커피를 타주기를 미루는 마음, 피곤함을 안고 출근을 하고 일상은 이어진다. 하지만 그 밤에 부부가 나눈 대화는 남편에게 어떤 선을 넘은 것 같고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장소에 도착한 듯한 느낌이다. 다시 전화기가 울리고 같은 목소리의 그 여자는 새벽의 일을 사과한다. 여자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부부는 죽음에 이르는 그런 심오한 대화를 나눴을까.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불쾌한 경험을 카버는 인생의 중심으로 끌어다 놓는다. 산다는 건 시시콜콜한 것들로 채워지고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내 앞에 놓인 문제들 때문에 속 썩을 필요가 없는 걸까. 고민한 만큼 소멸된다면야 모를까. 


나 혼자라면 괜찮다. 그게 아니라서 어려운 거다. 그놈의 가족, 그 관계 때문에 지치고 영혼은 낡고 닳아버린다. 모든 게 불평불만인 어머니가 이사를 가기 전 아들 내외와 저녁을 먹게 그릇을 챙겨오라는 「상자들」과 “동생에게 그 돈을 주는 게 실수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코끼리」를 읽는 내내 나는 내내 불안했다. 뭔가 폭발할 것 같아서, 단편 속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것만 같아서 말이다. 작년 8월에 아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이삿짐을 샀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이사를 가지 않는 어머니. 아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말하며 상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와 재혼한 아내 사이에서 아들은 어머니를 저버릴 수 없다.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형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동생, 생활비를 안 줄까 봐 걱정하는 어머니, 이혼한 전처에게 지급되는 돈, 학비를 부탁하는 아들, 일을 구할 때까지만 도와달라는 딸. 피곤에 찌든 중년의 육체노동자를 떠올린다. 내 주변이 누군가와 닮은 듯한 그. 철들지 못하고 자립하지 못한 가족들. 경제적인 지원이 당연한 줄 아는 그들에게 화는커녕 단 한 번의 소리도 지르지 않는 남자. 그가 마침내 삶을 포기할까 봐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카버가 그런 결말을 맺지 않아서 이상하게 고맙고 안도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새삼 생각하고 지난 삶을 돌아본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나야 할 이유를 편지에 썼지만 그걸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아내가 왜 떠나는지 짐작도 못하는 「블랙버드 파이」의 남편처럼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한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고 짐작할 수 없기에 지랄맞은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무너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암시를 찾으려 노력하고 귀를 기울여 낮은 기척에 반응하려 부단히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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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2-17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점갈 때마다 눈에 띄던데...자목련님 리뷰를 읽으니 또 스르르~ 책 읽고 싶네요.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자목련 2023-02-17 11:52   좋아요 1 | URL
서점에 가셨을 때 꼼꼼히 살펴보시고, 단편 하나 정도 읽고 결정해셔도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