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언제나 자네가 먼저였다. 함께 밥을 먹자 말한 것도 자네가 먼저였고, 한 잔의 술을 권한 것도 자네가 먼저였으며, 숱한 소풍과 여행을 제안한 것도 자네가 먼저였다. 이름을 불러준 것도 자네가 먼저였고, 손을 내밀어 준 것도 자네가 먼저였으며, 마음을 알아준 것도 자네가 먼저였다. 그 시절 나는 자네를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참으로 쉽고도 편한 우정이었음을 모르고 벗을 사귀었으니, 그것이 내 철없음의 또 다른 증거다.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다시, 자네가 나를 먼저 찾았다. 자네와의 재회에 몇 가지 특별한 우연이 겹쳤으나, 그것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오랜 시간 자네는 대답 없는 나를 부르고 있었으니, 아마도 그것이 우리 재회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자네는 우정의 영원함과 재회의 기쁨을 말했으나, 벗이여 미안하다. 나는 영원을 믿지 않는다. 또한 나는 그닥 기쁘지도 않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아직 두렵고 조심스럽다. 벌써 나는 다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 아마 자네도 그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 자네에게 털어놓은 일들이 전부이겠는가? 자네에게도 차마 보이지 못한 나의 부끄럽고 추한 모습들이 역겨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나 혼자 세상의 짐을 모두 짊어진 양 굴긴 싫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는 법이다. 다만 내게 자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의 여유가 없으니, 그것이 또한 미안한 것이다. 아, 전생에 자네는 내게 큰 빚을 지었음이 분명하다. 이번 생에 내가 자네를 먼저 찾는 날이, 자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는 마법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네를 만나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나니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다. 자네 덕에 다른 벗들에게 연락할 용기도 얻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안 해 본 짓을 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쉽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일 것이다. 십 년의 소회를 이토록 밋밋하게 말하는 나 자신이 나도 싫다. 그러나 이것이 나다. 자네가 벗이라 불러준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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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 2021-04-2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밤의 순댓국 맛있었지~
 

그 시절 나의 학업도 유흥도 연애도 F학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학시절에 들인 돈과 시간이 가끔 아깝게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여행과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곤 한다. 그 외에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술자리가 아닌) 술이다. 그리고 유머가 있다. 나는 화려한 언변이나 넘치는 재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므로 유머가 아니라 유머에 얽힌 어쭙잖은 생각들이라고 해야 옳겠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이제 와 보니 그것은 나에게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봄날 오후 집중하기 어려운 수업이었다. 수업 내내 졸다가 쉬는 시간에 강의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휘청거리며 걷는데 동기가 뒤에서 한마디 한다. "운전 똑바로 안 하나?" 나는 바로 대답한다. "졸음운전이야." 동기는 나의 순발력을 칭찬했지만, 그 동기가 운전이란 말로 장난을 걸었으니, 실제로 졸렸던 나에게는 졸음운전이란 답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의 유머는 그 동기가 나를 불러주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유머의 본질이 숨어있다. 상대가 나를 불러주기 전에 나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불러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상대가 나를 부르고 부르지 않고는 순전히 우연의 영역에 속한다. 유머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머는 필연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의 매력이고, 우연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의 능력이다. 한 전직 대통령이 떠오른다. 원고를 보고 읽다가 예정된 지점에서 잠깐 멈추고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를 기다리던 모습, 그것은 유머보다는 차라리 그로테스크에 가까웠다.


첫 방학, 우연히 과방에 몇몇 동기와 선배가 모였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나와 동기들의 첫 성적표로 모아졌다.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한 친구의 성적이 화제가 되었다. 그 친구 성적표에 A가 하나 찍혀있다는 말이 나왔다. "나도 A가 하난데." 그렇게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선배 하나가 웃겨 죽겠단다. 그렇다. 유머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이다. 어쩌면 가지지 못한 자가 유일하게 가진 것, 그것이 바로 유머일 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어느 방송 진행자가 진보 정치인들 중에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눈에 띄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다며 보수 진영의 분발을 촉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어려운 요구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너무 많다.


무슨 과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험을 대강 마치고 일찍 강의실을 나왔다. 곧 뒤따라 나온 박 군이 묻는다. "시험 잘 봤어?" 박 군이 그 다섯 글자를 말하는 동안 나는 박 군의 복잡한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잘 봤을 리가 없다. 나 망한 것 같은데, 그래도 네가 있어 다행이다. 내 표정은 이렇지만 막상 성적이 나오면 꽤 괜찮은 학점일 테니 무시하지 마라. 제발 나보다 못 봤다고 말해다오.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박 군을 놀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대답했다. "너만큼 봤어." 박 군은 악담을 하라며 몹시 분해 했다. 아마도 자신의 성적과 내 성적을 비교하고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게다. 그러나 나는 분명 네가 나만큼 봤어가 아니라, 내가 너만큼 봤다고 말했다. 유머도 무기가 될 수 있다. 유머를 무기로 쓸 때는 하나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자신보다 약자에게는 그 무기를 쓰지 말라는 규칙이다. 다들 알고 있는 규칙인 줄 알았는데, 가끔 그 무기가 유머라는 점을 방패삼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유머가 아니다. 폭력일 뿐이다.


이 군과 함께 소요산을 오른 적이 있다. 꽤 높은 곳이었고, 가파른 곳이었다. 거기에 등산객을 위한 안전시설이 갖춰진 것을 보고 어떻게 이곳에 이런 것을 설치했을까 하고 이 군이 물었다. 나는 한마디로 정리해주었다. "돈 주면 다 해." 이 군은 어이없다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이 군의 질문과 나의 대답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유머는 서로 다르지만 통하는 것들을 연결할 때 발생한다. 이것이 유머의 또 다른 본질이다. 훗날 내가 이 군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이 군은 내게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고, 우리는 소요산에서의 일이 떠올라 함께 웃었다. 이때의 유머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이어주었다고 하겠다. '연결' 하면 떠오르는 신이 있다. 바로 헤르메스다. 헤르메스는 교역, 통신, 전령, 여행 등을 상징한다. 그런 그가 신화 속에서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궁금하다. 헤르메스에게 미술관에 입성한 소변기는 유머일까, 예술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식탁 위에 놓인 신발은 또 어떨까?


앞서 등장했던 박 군과 이 군, 그리고 나와 김 군, 이렇게 넷이서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던 중이었다. 절을 향해 올라가는 차 한 대를 보고서 이 군이 '중 차'라며 경박한 말을 내뱉기에 나는 '법거'라는 말을 쓰라며 타일렀다. 유머는 평범한 대학생을 교양인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다음날 바다를 보기 위해 우리는 강릉으로 향했다. 낯선 곳에서 밤을 맞았는데, 숙소를 어디에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몰라 당황한 우리를 근처에서 군복무를 했던 김 군이 인도했다. 김 군을 쫄래쫄래 따라가며 우리는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은데, 누구랑 모텔에 들락거렸느냐며 놀리기 시작했다. 김 군은 당황하거나 얼굴이 빨개질 녀석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약이 올라 한마디 던지려 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유머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나는 그 한마디를 아직까지 던지지 못 하고 있다. 누구와 함께 왔었는지 다음 중에서 골라서 대답하라. 1번 아는 여자, 2번 모르는 여자, 3번 아는 남자, 4번 모르는 남자.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지만, 내 잘못이 크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타이밍을 완전히 놓친 것만 같다. 삶은 대학시절의 술자리처럼 유머만으로 계속되지는 않았다. 정호승의 시에서 위로를 받는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늘이 없는 유머는, 눈물을 모르는 유머는, 가짜다. 이제 와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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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 2021-04-21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웃기구나.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도 스님들 차는 ‘중차‘지 ‘법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최근 이 책을 읽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한국사, 특히 조선사를 많이 읽었다. 그런데 세계사에 관한 기본지식도 없으면서 나는 작년부터 문명 간의 교류에 관한 책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단순히 관심의 대상이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기특하게도 사유의 폭이 넓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포함해서 이런 류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 왜 중국은 오랫동안 통일 제국을 유지한 반면 유럽은 분열을 면하지 못했는가? 둘째, 왜 동양문명은 서양문명에 역전당했는가?

  내가 너에게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강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나는 왜 이런 이야기에 빠져드는가이다. 문명과 문명이 만난다거나 경쟁한다는 말은 가치중립적이다. 그 말 속에는 피가 없고 눈물이 없다. 그러나 너는 한 번 생각해 보라. 문명과 문명의 만남과 경쟁 속에서 죽어나가야 했던 무수한 목숨들을. 문명 간의 교류란 어쩌면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과 살육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내가 문명 간의 교류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할 때 그것은 희생당한 그 무수한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극단적인 이성형의 인간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관계가 아니라 과업이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감정을 배격하고 이성을 추앙한다.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나 자신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말투 또한 그러하다. 너는 종종 그런 나를 혐오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런 내가 수천 년의 역사를 문명 간의 교류라는 무미건조한 말로 정리하는 역사책을 즐겨 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너는 나에게 소설 읽기를 권했었다. 이 책에 소설 읽기가 인간의 공감능력을 키우고 폭력성을 누그러트린다는 말이 나와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학창시절에는 억지로라도 읽었는데, 졸업 후에 읽은 소설은 5권인지 10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내가 소설책이 아닌 인문서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선택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은 '능력'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을 줄 아는 능력 말이다. 운동을 잘 못 하고, 노래를 잘 못 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로 여겼으면서도, 왜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능력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었는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능력 밖의 것으로 밀쳐두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나도 너처럼 소설을 읽어보리라 다짐하고 있다.

  세상은 문명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보다 더 야만화하고 있는가? 이 책이 던지는 또 다른 물음이다. 소설을 많이 읽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 대답은 일단 유보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전쟁이나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의 절대적 수치와 상대적 수치의 차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수치화할 수 있다면 살아남은 자들의 스트레스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쟁과 살육이 다반사였던 시절의 작은 규모의 잦은 전쟁보다 오히려 요즘 같은 시절에 어쩌다 한 번 접하는 큰 전쟁이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을까? 너의 짐작이 맞다. 나는 대답을 유보했지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믿지는 않는다.

  나는 극단적인 이성형인 동시에 '약간'은 비관주의자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예전처럼 공개적이고 잔인한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인권의 문제 이전에 필요 때문이라는 것이다. 죽음이 일상이었던 시절에는 그렇게 해야 사형 집행의 효과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신문 귀퉁이에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기사 한 줄만으로도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화와 야만화도 결국 최첨단 무기의 버튼을 누를 선택권이 있는 자들의 '필요'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관주의자다운 우울한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비관주의자이면서도 '진보'를 믿는다. 버튼을 누르려 하는 자들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으나, 그들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장치를 하나씩 늘려온 것이 바로 진보의 역사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소설을 읽히는 것도 하나의 진보일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 진보의 완성일 수도 있겠다. 이해와 공감은 읽을 때보다 쓸 때 더 깊다는 것이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뜬금없게도 살인을 할 수 없어서 소설을 쓴다던 어떤 작가가 떠오른다. 또 뜬금없지만 너와 같은 사람이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다면 마음놓고 역사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너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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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 2021-04-2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지, 저 시절의 나도 김군처럼 인류, 문명, 교역, 지리, 유전학에 빠져 있었는데 말이지.
 

버스 안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어인 일인가. 대분기를 논하는 역사책을 읽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유리창에 자꾸만 부딪히는 것이 안쓰러워 나는 잡아보려는데, 책을 잡았던 손에 네가 쉬이 잡힐 리 없지. 가까스로 잡아 유리창을 열고 놓아주니, 산뜻하게 날아오르는 너의 하늘이 눈부시다. 두 손에 흔적이 남았다는 핑계로 가방에 책을 넣으니,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강 위를 시원하게 달린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안전하고도 아름답다. 책을 얼마나 읽어야 달리는 버스의 유리창을 열고 강물에 몸을 던질 용기가 생길 수 있나. 빈손이면서도 빈손이 아닌, 너의 흔적이 남은 두 손을 들여다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말. 당신 자식은 책 없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던 은사님의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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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미워한다. 이 말은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늙는 것은 가능하다면 피해야 할 것이요, 청춘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할수록 노년이 아름다워지기는커녕 추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하나, 이 말은 노인들에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일, 외모, 인간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나이는 그 자체로 나름의 의미를 지니며, 노년에게는 노년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내가 아직 젊기 때문에 하는 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학원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우연히 중1 남자아이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한 아이가 말하길 전에 다른 친구랑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참 맛있었단다. 그러니 다음에는 너도 함께 가잔다. 그러겠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나는 그 나이 때 학교 매점에 가는 것도 큰일이었는데, 고1도 아닌 중1 아이들끼리 고깃집에서 삼겹살이라니, 이런 것이 세대차이인가보다 하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이 삼겹살을 주문할 때 소주 한 병을 같이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놈들이 벌써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생이 되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시간의 흐름이 참 징그럽게 느껴진다. 내가 그 녀석들에게 세대 차이를 느꼈던 것처럼, 그 녀석들도 나에게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저 꼰대 어쩌고'의 감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징그러운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일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 들면서 안 쓰던 말을 쓰게 된다. 반말 보다는 존댓말이 더 편하다. 상대방의 지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이 편하다. 그리고 '형'보다는 '형님'이 편하다. 그래도 아직 '누님'이라는 말은 불편하다. '아가씨'라는 말도 있다. 언젠가 동네 편의점에서 아주 예쁜 아르바이트생을 봤다. 속으로 그 사람을 아가씨라고 지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내가 누군가를 아가씨로 지칭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아직 그 말을 호칭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를 아가씨라고 부를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 살아있기에 쉬지 않고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소스라칠 일 없다는 것을.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는 이제 겨울 김장을 포기하셨지만, 전에 김장을 담글 때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돕곤 했다. 이십대의 새파란 나이에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언제쯤이면 김치처럼 폭 익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날 김장을 담그며 어머니는 내 속마음을 읽었던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가 화단에 묻어놓은 김치를 꺼내 소금을 뿌리시며, 김치가 너무 빨리 시어져서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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