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그들을 낙산영웅이라 부른다. 4년 전 가을, 나는 그들을 처음 만났다. 그해 그들은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고, 내가 처음으로 시청한 야구중계가 바로 그들의 가을야구였다. 1, 2차전을 내리 이긴 그들은 쉽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 같았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리버스 스윕, 그해 그들의 야구는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도 그들은 연이어 가을야구에 초대받았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그런 야구를 사랑한다. 내가 그들을 樂山英雄이 아니라 落山英雄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들의 야구를 보며 느낀 바가 있어 이 전을 짓는다.



2.

작년 시즌을 시작하기 전, 그들은 꼴찌 후보였다. 너무나 많은 선수들이 이탈했기에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예측이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한 예측을 했던 자들은 반성과 사과를 해야만 했다. 빠져나간 선수들의 자리는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해 완벽하게 채웠다. 그들은 3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세인들의 올해 예측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인들의 지적처럼 落山이라는 말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귀환보다는 떠남과, 완성보다는 미완과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부족한 자가 떠나고, 떠난 자가 성공하며, 성공한 자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를 나는 믿는다. 현재 그들의 승률은 정확히 5할이다. 이 숫자가 너무나도 미묘하여 이 전을 짓는다.



3. 

아버지는 병석에 누운 후로 하던 대로만 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거나 이불을 덮을 때도,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꿀 때도 하던 대로만 한다. 텔레비전 시청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보던 것만을 본다. 그들의 야구도 아버지의 시청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전에 아버지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버지는 중환자였으니, 전부터 그들의 야구를 응원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리 된 연유를 나는 다만 속으로 짐작할 뿐이다. 훗날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그들의 야구를 지켜볼 것을 생각하며 이 전을 짓는다.



4.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하면 한마디로 그들은 비주류다. 그들이 비주류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설움과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비주류이기에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말썽과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문득, 이야기 속 영웅들은 모두 비주류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이 전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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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고, 나의 아버지는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장애를 얻은 지 하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것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병원이나 시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장애를 뇌병변 장애라고 부른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의 장애는 인지 능력의 쇠퇴, 언어 기능의 대부분 상실, 편마비로 인한 거동 불가능이다. 몸의 움직임은 전혀 좋아지지 않지만, 인지나 언어의 측면에서는 좋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의사의 대답은 단호하다. 같다는 것이다. 짧고도 분명한 대답을 두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었는데, 내 나름의 결론은 이렇다. 아버지의 의사표현 능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나, 그런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하는 나의 눈치는 계발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좋아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서글픈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대부분 그것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일이기에 알아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다. '이거 이거'로 시작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그 신호다. 대개는 아버지가 뭔가를 먹고 싶다는 뜻일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너무 쉽게 먹는 얘기를 꺼냈다가는 아버지에게 날벼락을 맞는 수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먹는 거라면 이제부터 질문을 하나씩 던져 아버지로부터 '그려' 또는 '아녀'라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집에 있는지 밖에서 사와야 하는지, 밥 먹을 때 같이 먹는지 따로 먹는지, 조리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전에 먹어본 것인지 등등.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스무고개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그려'가 늘 'yes'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아녀' 역시 늘 'no'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버지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를 원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아버지에게 독심술을 가르쳐달라거나, 도깨비 방망이를 사달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면서도 집요한 데가 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려서라도 원하는 것을 입에 넣고야 만다. 짜증스럽다가도 이런 실랑이 말고 아버지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짠하기도 하다.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짠한 마음을 느끼며 한 회가 끝나겠지만, 현실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한참이 지난 후, 그런 소동이 있었지 않았냐고 내가 물으면 아버지는 고개를 젓고, 손을 내저으며 '아녀'라고 말한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환장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몰라서 답답한 것이다. 내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이해가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답답한 것이다. 이 답답함 앞에서 나는 소통이라는 말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기로 했다. 소통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상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상대의 언어는 고사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이제 어려워졌다. 그런 아버지와 나 사이에 소통은 불가능하다. 순간적인 욕구의 표출과 그에 대한 대처가 있을 뿐이다. 장애인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불가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임을 전에는 몰랐었다.


불효자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소통이 불가능해졌지만, 나는 아버지가 장애를 얻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것이니, 보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가 아팠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에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떤 접촉이 있어야 소통의 가능 여부를 확인할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아프기 전 30년 가까운 시절보다 아프고 난 후 10년 안 되는 기간 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수백 수천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이 전혀 없이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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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중이었다. 나는 뒷자리를 선호하는데, 그날따라 앉을 자리가 앞쪽뿐이었다. 졸면서 앉아 있는데 그 시간대의 버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행색의 남자가 승차하더니 내 옆에 섰다. 앉을 곳은 없어도 뒤쪽에 서 있을 곳은 많았는데, 하필이면 앞쪽에 자리를 잡을 것이 뭐람. 그때는 그 남자의 정체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새벽까지 술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귀가 혹은 등교하는 대학생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에 나도 종종 해 본 짓이다. 그 형은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남방을 바지 밖으로 꺼내 입지 않고, 바지 안에 넣어 입고 있었다. 눈썰미 없는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그리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유는 그 형의 아랫도리 상황이 평시가 아니라 전시였기 때문이다. 속으로 가늠해보니 그 전쟁은 제법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그걸 알게 된 때부터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안절부절 못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뒤에 누가 앉아있는 지도 모르면서, 어떤 여학생이 내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다는 상상까지 하기 이르렀다. 지금 같으면 모르는 척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든가, 눈을 감고 잠을 이어서 자든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시선을 옮기든가 할 것이다. 아, 그러나 그때 나는 가엾고 순진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대신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내 수상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전쟁 중임을 알아차렸는지, 그 형은 남방을 바지에서 꺼내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며 휴전협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계속되다간 그 형과 나 둘 중 하나가 쓰러지고 말 것 같았다. 다급한 긴장감이 계속 이어지던 때에 다행히 자리가 났던 모양이다. 그 형이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 나로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짧고도 길었던 나의 전쟁은 그렇게 끝났다. 그 형의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났을까?


몇 년 전 사월의 이맘때, 토요일 오후,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 구로-역곡 논스톱 구간, 급행이 개봉역에 정차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갑자기 날씨가 덥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언제나 막히는 1호선이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더 붐비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숨 쉬기도 힘들었다. 나는 살아있으니 눈이 떠 있었고, 눈을 뜨고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나의 편견으로는 지하철 안에서 포옹을 하고 있기에는 좀 나이가 들어보였다. 30대 중반 정도? 문제는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 하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들은 옷을 입었을 뿐이지, 야동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 연놈들은 서로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마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가엾고 순진한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굳이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 연놈들 주위로 한 발짝 정도의 공간이 비어 있었다. 아, 사랑의 힘은 위대하여 모세의 기적도 행하는 구나. 자리도 좁고 날도 덥고 가방도 무거워 짜증이 나던 참에 마침 잘 됐다. 나는 속으로 차마 여기에 쓰지 못 할 욕을 해보다가, '요즘 것들'과 '말세'를 이용하여 어르신들이 애용하는 문장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나의 수양이 부족함을 탓하며, 그 연놈들을 이해해보려고도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마음속으로 살인과 속죄를 체험하고, 수양과 득도를 시도하며, 약 10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역곡역에서 다른 승객들이 내리고 타는 사이, 나는 등에 가방을 맨 채 낑낑대며 그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0시간은 시달린 듯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그 연놈들이 행하는 사랑의 기적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글을 쓰다가 불현듯 생각난 책이다. 이 책에 <시민적 무관심>이라는 꼭지가 있다. 이른바 시선 관리에 관한 내용이다. 시민적 무관심이란 공공장소에서 서로 눈길을 교환한 후 상대의 눈길을 피해 딴 곳을 바라보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나는 상대를 응시하는 것도 결례지만, 아예 보지 않는 것도 결례가 된다는 전문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어서 이 꼭지를 기억하고 있다. 보지 않는 것이 결례가 된다면 그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나는 INTP 성격유형의 소유자로서 타인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으므로, 시선 관리 때문에 결례를 범할 일은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짐작건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저리 떠도는 나의 시선에 불편하고 불쾌했을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책 표지에 적힌 '착각'이라는 단어가 내 뒤통수를 친다. 더구나 나는 이런 리뷰를 남겼었다. '우리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보다 합리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의심해본다.' 그야말로 자가당착, 자승자박이다. 책을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한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이 책이 새삼 다시 등장해서 내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행을 조심할 일이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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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날아가지 않게 하려고

돌로 눌러두었다

그의 귀가 밝아서

들억새 서걱이는 소리까지

뼈에 사무칠 것이므로

편안한 잠이 들도록

돌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대 기다리며

천년을 견딜 수 있겠는가

                   - 염창권, <고인돌>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



내 사는 꼬락서니가 역겹고, 치사스럽게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가벼워서 날아가지 않게 돌로 눌러두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4월 16일이다.

나는 노란 리본 하나 달고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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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라일락은 한창이었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내게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도

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는 법이 없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 침묵 끝에 너는 나를 찾았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변해가는 너의 마음이

내게 날카로운 흔적을 남겨도

보고픈 건 미련이 남아서 일거야

이제 내 품에서 벗어나고 있네


너의 이별통보를 듣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선희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돌아보진 마 내가 안타까워서

혹시라도 눈길 주진 마
생각하지도 마 또 다른 내 삶에서
나와 함께 했던 그 기억들을
다시는 만질 수 없겠지
따스한 너의 체온을


처음이었다.

어떤 노래가 내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변해가는 너의 마음이

내게 날카로운 흔적을 남겨도

보고픈 건 미련이 남아서 일거야

이젠 내 품에서 벗어나고 있네


듣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라디오 디제이가 마이크를 열어놓고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어머."


돌아보진 마 내가 안타까워서

혹시라도 눈길 주진 마

생각하지도 마 또 다른 내 삶에서
나와 함께 했던 그 기억들을

다시는 만질 수 없겠지

따스한 너의 체온을


모창이었다, 그러나

내가 들은 것은 분명 이선희의 목소리였다.

거짓말 같았다.


다시는 만질 수 없겠지

따스한 너의 체온을


훗날 노래의 제목을 알았을 때,

라일락을 좋아하던 네가 생각났다.

거짓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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