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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님께서는 입장은 立場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두 발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 머릿속 생각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입으로 내뱉는 말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바라보는 곳이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제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그곳이 저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 지하철을 타고 하교하는 중이었습니다. 통로 쪽에 있던 휠체어 한 대가 출입문 쪽으로 바짝 붙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다음 역에서 그 휠체어가 내릴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역에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역에서 저는 내렸고, 휠체어는 여전히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리기 한참 전부터 출입문에 바짝 붙어있어야만 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고충에 대해 저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끼적거린 시에 '나는 모른다'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뇌병변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탔습니다. 저는 휠체어 탄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밥 먹고 씻는 일, 누웠다 일어나는 일, 진료실이나 치료실로 이동하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었습니다. 입원 병동이 아닌 다른 층에서는 장애인용 화장실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병원 안에서의 생활은 편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움직여야 할 때는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습니다.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모른다'는 제목은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저의 무지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저의 생각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모른다는 말조차 꺼낼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비장애인이므로, 제 입장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한 번 쯤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선생님의 글을 읽곤 합니다. 그곳에서 편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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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니 자네가 나보다 한 살 아래더군. 자네를 자네라고 부르겠네. 요즘 나는 가면 쓴 자네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네. 자네의 공연장을 찾거나, 음반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열성적인 팬은 아니라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어떤 가수의 공연장도 가본 적이 없고, 사서 들은 음반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말일세. 첫 주에 자네는 신해철의 곡을 두 곡이나 선곡했더군. 자네도 신해철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나중에 한 곡을 더 불렀지 아마. 나도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네. 전에는 나에게 특별할 것 없는 가수였는데, 그가 떠난 후 왠지 그의 노래가 더 좋아지더군. 참 이상한 일이지.


자네가 선곡한 많은 곡들 중 압권은 단연 두 번째 방송의 바로 그 곡이었네. 그 때가 아마 2월이었지. 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었네. 감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질병인지 예전엔 몰랐었지. 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 때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선곡하셨는가? 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그런 음색으로 부르셨는가?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네. 서른을 훌쩍 넘긴 사내가 또래 남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네.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른다네. 그 때문인지 나는 노래를 들을 때, 주로 가사와 가수의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네. 그 곡은 전에 많은 가수들이 부른 것으로 아네만, 내 생각에 그 가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네의 목소리네.


그래, 목소리라고 해야겠네. 자네의 노래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네의 음색 때문이라고 답하겠네. 나는 적당히 우울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한 음색의 가수를 좋아한다네. 자네의 음색이 바로 그런 음색이네. 자네의 음색은 소년의 그것과 청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는데, 그 음색에서 묻어나는 감성은 청년의 그것과 중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네. 덕분에 <FANTASTIC BABY>는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고, <봄비>는 지나치게 무겁게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있었네. 반대로 자네 음색이 돋보일 수 있는 곡을 자네가 영리하게 선곡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적고나니 마치 내가 음악평론가라도 된 기분이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부를 줄도, 들을 줄도 모른다네.


자네가 신해철의 곡을 다시 한 번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네. 그동안 한바탕 잘 놀았지 않느냐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네. 나는 자네를 보내기 싫었네. 아마 거기 모였던 사람들도 그랬던 모양이었네. 어느새 자네는 대중들의 '아주 오래된 연인'이 되어 있었던 게지. 2주 후에 자네는 특기인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을 다시금 선보였네. 나는 안심할 수 있었네. 그런데 일은 다시 2주 후에 벌어졌네. 세상에, <백만 송이 장미>라니, 경연프로그램에서 <백만 송이 장미>라니. 그래, 이제는 '그립고 아름다운 자네 별나라'로 가시게나. '모두가 떠날지라도 사랑은 계속 될' 테니. 나는 체념했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네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 그제야 그 노래가 귀에 들어왔네. 한마디로 좋았네. 원곡 가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노래가 이렇듯 좋은 곡이었는지 전에는 몰랐었네. 대학시절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묻던 선배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심수봉이라고 답했던 일이 뿌듯하기까지 했네. 그리고 나는 다음번엔 자네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네. 다시 한 번 거기 모인 사람들과 나의 생각이 일치했네. 그렇게 자네는 가면을 벗었네.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해명이 필요한 그런 사태라고 하더군. 어떤 이유가 있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고,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해명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네. 예쁘니까, 착하니까, 부모와 닮았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등등의 이유가 다 그렇다는 것이었네. 하다못해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이유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네. 나는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었네.


내가 지금 자네의 노래에 대해 끄적거리는 것이 그런 것 같네. 이렇듯 뭔가에 열광한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네. 해서 나는 나름의 해명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적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걸세. 굳이 따지자면, 이 글은 편지가 아니라, 일기인 셈이네. 혹시 이것이 내가 만들어낸 해명이라고 해도 자네는 실망하지 마시게. 나 또한 미안해하지 않겠네. 아니, 이것은 나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해명임이 분명하네. 허나 이것 또한 분명하네. 지난 몇 달 동안 자네의 노래를 듣고 정말 좋았네. 그동안 즐거웠네. 고맙네, 음악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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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라고 적었다가 지운다. 슬픔도 눈물도 너의 몫이다. 너의 삶과 사랑은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가 지운다. 그것은 산 자의 일이다.  


삶의 끓는점은 적당히 높기에 라면처럼 쉽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사랑의 조리법은 적당히 난해하기에 라면처럼 쉽게 맛볼 수 없었다. 적당하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삶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네가 있었다. 그러나 딱 한 뼘이 모자라 너는 손에 닿지 않았다. 딱 한 뼘이기에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뼘은 얼마나 적당한 거리인가. 또 얼마나 잔인한 거리인가.


절벽 위에 핀 꽃을 꺾기 위해 바동거리는 아이처럼 나의 삶은 늘 위태로웠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용케 버텼으니 후회는 없다. 너를 향한 사랑이 모두 중독이었음을 깨달은 지금, 취하지 못한 꽃은 너를 위해 남겨두고, 나는 이제 스스로 몸을 던진다. 이제는 이 중독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물고기가 스스로 미끼를 물고 강과 바다가 아닌 곳으로 가듯, 나는 간다. 중독이 없는 곳으로, 너와의 거리가 적당하지 않은 곳으로.


마지막으로 먹는 라면이 펄펄 끓는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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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네가 한 말이다. 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반발심이 생겼지만, 곧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부터가 그러했다. 내가 투표하는 이유는 어떤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정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보다 싫어하는 사람을 왜 싫어하는 지를 더 자세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듯 했다. 


나의 거부감과 반발심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긍정'이 아니라 '부정'이라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정말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긍정적인 대상을 향한 열망이 아니라, 부정적인 대상에 대한 회피인 것인가? 그렇다면 뭔가 맥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긍정적인 경험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결혼하고, 출산하는가? 아니면 그것들을 하지 않았을 때에 감당해야 할 어떤 부정적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결혼하고, 출산하는가? 그 답이 무엇이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나로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운운하던 너의 말은 여전히 나에게 거부감과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진실은 들여다보기 불편한 것인가?


네가 내게 이 말을 했을 무렵, 나의 아버지는 병원에 누워계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종합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날로부터 재활병원 병실에 누워있기 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혈전을 녹이는 주사를 맞고,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부풀어 오른 뇌 때문에 두개골 절반을 드러내는 수술을 했다. 스스로 호흡하고 가래를 뱉어낼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기관지 절개술을 받았다. 밥 대신 영양제를 맞았고, 그보다 더 많아 보이는 약을 먹었다. 수시로 MRI, CT, X-선 촬영을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과 혈당을 체크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긴 후에는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작업치료실, 운동치료실, 전기치료실이라는 이름의 방을 전전했다. 재활병원에서는 통증이 심해져 많을 때에는 하루에 열 알이 넘는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일은 아버지를 낫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아픈 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어서 한 일이었다. 완치는 언감생심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죽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었다. 너의 말이 옳았다. 병원에서 했던 나의 수많은 선택은 '긍정'으로 가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부정'으로 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나의 삶 전체가 그러한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편으로 오기 위한 선택을 해왔는가? 아니면 저편으로 가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해왔는가? 너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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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유려했다. 짐작하건대 너는 지금도 유려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너의 아름다움에 대해 썼다 지우길 반복하다가 나는 차라리 쓰지 않기로 했다. 너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는, 그 진부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심정은 참으로 비참하다. 수필 속에서 너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인문학적 교양이라고 말했다. 너의 자전거가 지나간 자리마다 너의 아름다움과 교양이 넘쳐흘렀다. 너를 읽을 때마다 나는 황홀했다. 여행도 자전거도 그리고 너도 좋았다.


소설 속 너의 메시지는 ‘본래 그러하다’와 ‘어쩔 수 없다’ 두 마디로 요약되었다. ‘본래 그러하다’는 삶에 대한 너의 진단이었고, ‘어쩔 수 없다’는 너의 처방이었다. 그것이 허무였든 보수였든 나는 그 진단과 처방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본래 그러한’ 삶이 곧 나의 삶이고, ‘어쩔 수 없는’ 존재가 곧 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절망과 슬픔에 빠졌다. 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그 사태 앞에서 쩔쩔맸다. 바다와 적 앞에 선 이순신이 그러했듯,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가 그러했듯, 나는 쩔쩔맸다. 그 후로 나는 너를 읽을 때마다 무기력에 빠졌고, 이렇게 이별을 고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젊기에 '본래 그러하다'는 것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여 너와 나의 이별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굳이 찾자면 더 이상 너를 감당할 수 없는 나의 무능이 이별의 원인일 것이다. 아름다움의 배후에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다. 너의 아름다움이 비수가 되어 나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한마디로 나는 어렸었다.

나는 요즘 가수 이소라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리고 가끔 그녀의 가창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녀의 가창은 한마디로 완전하다. 그래서 그것은 자족하다. 그 자족 앞에서 나의 찬사는 무력하고 무의미하다. 하여 나는 종종 섭섭함을 느끼곤 한다. 자족한 대상을 두고 사랑에 빠지는 일은 '본래 그러하'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과거에 너를 사랑하는 일이 그러했다. 너는 '본래 그러'했고,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또 너와 닮은 것을 사랑하고, 이렇게 너를 흉내 내고 있다. 너와의 이별 후, 나의 꼬락서니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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