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2.15.


사진을 찍는 길을 걸으면서 글이 한 줄 두 줄 붙고, 사진하고 글을 여민 책을 하나둘 내면서 어느새 흙살림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르는 《감자꽃》을 만난다.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마을살림하고 사진살림을 가꾸다가,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열어서 새로운 마을살림하고 사진살림을 짓는 김지연 님이 일흔 나이에 선보인 이야기책이 《감자꽃》이다. 나는 전라도에서 살기 앞서까지는 ‘이쁘다’라는 말을 안 쓰고 ‘예쁘다’라는 말을 썼으나, 이제는 ‘예쁘다’라 말하는 일이 드물고 으레 ‘이쁘다’라고만 말한다. 인천에서 살 적에는 ‘허물없다’라는 말만 썼다면 전라도에서 살면서 ‘이무롭다’라는 말이 시나브로 감겨든다. ‘천천히’보다는 ‘싸목싸목’을 살피고 ‘거석하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겨우내 시드는 풀잎이 눈부신 흙빛이 되어 곱살한 12월에 《감자꽃》을 읽을 수 있어서 몹시 즐거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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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2.14.


시외버스로 보성으로 갔다가 광주를 거쳐 서울을 찾아가고는, 기차로 전주를 찾아가서 이틀을 지내고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집 《너무 멀지 않게》를 읽는다. 전북 전주에는 ‘모악 출판사’가 있고, 이곳에서 내는 시집은 누리책방에서도 만날 수 있으나, 전주에 있는 마을책방 〈유월의서점〉 책시렁에 곱살하게 놓인다. 전주로 마실하는 길이었기에 일부러 전주 마을책방에서 ‘모악 시선집’ 한 권을 장만한다.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길손집에서 읽고,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서 살짝, 순천에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또 살짝 읽는다. “너무 멀지 않게” 가는 길이나 흐르는 마음을 살랑살랑 노래하는 이야기룰 다룬 시집이로구나 싶다. 때로는 애틋하네 싶은 이야기를 읽고, 때로는 좀 아쉽네 싶은 이야기를 읽는다. 그러나 ‘집시랑물’을 만나면서 좋았다. 집시랑물이로구나, 전라도에서는. 집시랑은 기스락을 가리키고, 기스락은 처마 끝을 가리키네. ‘집시랑물’은 ‘기스락물’이면서 ‘처맛물’ 또는 ‘처마끝물’이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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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없어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12
아리아나 파피니 지음, 박수현 옮김 / 분홍고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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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다가 또 살짝 눈물을 지었다. 이제 나는 없다니! 하늘나라에서 산다는 숱한 짐승들이 땅나라에서 사는 우리 사람한테 짤막하게 글월을 띄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하나란 얼마나 애틋한가. 앞으로 더는 숲동무가, 숲이웃이, 들벗이, 들지기가, 바다벗이, 바다님이 이 땅에서 울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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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2.13.


서울 강남구 내방역 언저리에 있는 마을책방이자 찻집인 〈메종 인디아〉에 마실을 가서 만화책 《오늘은 홍차》를 만났다. 책이름이 “오늘은 홍차”라서 여러모로 반가웠다. 흔히들 일본 말씨로 ‘-의’를 넣어 “오늘의 홍차”처럼 쓰지만, 이 만화책은 즐겁고 씩씩하게 ‘-은’을 넣었다. 참 이쁘다. 이 만화책은 책이름만 이쁘지 않다. 그림결은 살짝 투박하지만, 이 살짝 투박한 그림결이 외려 멋스럽고, 때로는 맛스럽기도 하다. 이야기를 살리려 하고, 줄거리를 북돋우려 하며, 차 한 잔에 삶 한 조각을 가만히 맞대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조촐히 즐거운 몸짓을 찾아나서는 만화를 보여준다. 요즈음 한국 만화에서는 이야기가 없이 밋밋한 채 그림결만 꾸미려 하는 작품이 많이 보였는데, 이 만화는 이야기를 살리려고 마음을 쓴 대목이 돋보인다. 그린이하고 글쓴이 모두 앞으로 조금 더 가다듬으면서 즐겁게 삶맛을 누리는 길을 걷는다면 차맛도 이야기맛도 한껏 끌어낼 수 있겠구나 싶다. 전철을 타고 용산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또 용산 기차역에서 전주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마치 차를 마시듯이 즐거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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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2.12.


고흥에서 벌교로 갔고, 벌교에서 보성으로 갔으며, 보성에서 광주로 간 뒤, 광주에서 서울로 간다. 시외버스에서 참 오래 있는 하루이다. 이동안 조용히 하늘하고 구름을 바라보면서 겨울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수첩을 꺼내어 글을 써 보기도 하며,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잘 노는가 묻기도 한다. 그리고 ‘아나스타시아’ 꾸러미 8-2권인 《사랑의 의례》를 찬찬히 읽는다. 러시아 타이가숲에서 사는 아나스타시아 이야기꾸러미는 우리한테 어떤 삶을 보여주는가? 바로 ‘사랑으로 슬기롭게 짓는 생각으로 기쁨이 피어나는 보금자리를 숲으로 이루어 서로 노래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하루’를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1권부터 8-2권에 이르도록 참으로 아름다우며 훌륭하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사랑의 의례》는 옮김말이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줄거리로만 바라볼 적에 이 책은 젊은 가시버시한테 아름다운 길동무책이 될 만하고,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삶을 일깨우는 이쁜 길벗책이 될 만하지 싶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 옛마음에 다 흐르는 숨결을 다루는 책인데, 오늘날 사회에 길들면서 우리 스스로 잊고 만 오랜 아름다움을 이 《사랑의 의례》가 하나하나 짚는다고도 볼 만하지 싶다. 덜컹거리는 시외버스에서 아무 시끄러운 소리를 못 느끼면서 책에 사로잡혔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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