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20년 5월치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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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44. 돌봄칸


  아픈 사람이 퍼집니다. 불길처럼 번집니다. 곳곳에서 앓기에 ‘돌림앓이’라고 합니다. 돌고 도는 아픈 눈물은 무엇으로 달랠까요. 비가 주룩주룩 내려 씻어 줄까요. 바람이 싱싱 불어서 보듬어 줄까요.


  비가 뿌리고 바람이 스친 하늘은 파랗습니다. 비바람이 훑은 뒤에는 한결 상큼하면서 맑은 날씨가 됩니다. 그 무엇으로도 비바람처럼 맑으면서 싱그러우면서 고우면서 파랗고 푸르게 달래듯 씻어 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삶터에 아픈 사람이 사라지고 앓는 사람도 기운내어 일어나도록 하자면, 틈틈이 비바람이 찾아들어 온누리를 어루만져 줄 노릇이지 싶습니다.


 돌림앓이


  요사이는 ‘병(病)’이란 말을 흔히 쓰고,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며, 이곳에는 ‘병실’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서 ‘병’이란 한자를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이 땅에서 쓰던 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아프다’요, 둘은 ‘앓다’입니다.


  몸이 다칠 적에 ‘아프다’라면, 몸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움직이기 어려울 적에 ‘앓다’예요. 참거나 견디기에 힘이 들어 ‘아프다’라면, 참거나 견딜 만해도 몸을 움직이기 힘이 들거나 눕거나 누울 판이기에 ‘앓다’입니다.


  아픈 몸이지만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입니다. 앓는 몸이니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이면 비틀거리고, 이내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며 별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만 돌림앓이로 고단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어느덧 사람한테도 돌림앓이가 퍼졌을 뿐,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하늘이며 아프다 못해 앓아누울 판이라고 느낍니다.


 아프다·앓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아픈 몸을 달래고, 앓는 몸을 고칠까요. 살림을 어떻게 가누어야 아픔을 싹 씻을까요. 삶을 어떻게 추슬러야 앓던 몸을 일으킬 기운이 새롭게 솟을까요.


  사람들이 흙이랑 사귀고 풀이랑 동무하며 나무랑 이웃하던 무렵에는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 풀을 짓밟으며 나무를 밀어없애어 큰고장으로 갈아엎는 동안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앓아눕습니다.


  밭자락에 덮는 비닐 때문에 땅이 앓습니다. 논밭에 뿌리는 화학약품 때문에 땅이 앓아요. 끝없이 뻗는 아스팔트 찻길에 비행기에 자동차물결에 숱한 공장에 발전소 탓에 땅이 앓습니다. 평화를 지킨다면서 나라마다 거느리는 전쟁무기 탓에 이 별은 구석구석 아픕니다. 새로 뚝딱거린 무기가 얼마나 센지를 알아본다며 미사일을 쏘고 핵폭탄을 터뜨리며 잠수함이며 항공모함이 갖은 쓰레기를 남기니 이 별은 결리고 쑤시고 저릴 뿐 아니라 눈물을 흘립니다.


  아파서 죽을 판이 별인 터라, 이 별이 흘린 눈물이 돌림앓이로 온누리에 퍼지지 않을까요. 앓아눕고 만 별이기에, 이 별이 앓으며 뱉는 끙끙 소리가 온누리에 번지지 않을까요.


 고치다·다스리다·달래다·낫다


  아픈 아이를 살살 달래던 포근한 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앓아누운 아이를 따사롭게 어루만지던 손길은 어디에 있는가요. 거칠거나 사나운 손으로는 아픈 아이가 낫지 않습니다. 마구잡이나 억지스러운 손길로는 앓는 아이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땜질을 해서는 아픈 데가 낫지 않아요.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면 앓는 몸을 못 일으키지요. 바야흐로 밑자리부터 샅샅이 훑으면서 푸르게 가꿀 오늘이라고 생각해요. 이 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하늘길을 멈추고 바닷길까지 막고 보니 하늘빛이며 바다빛이 그토록 맑게 열린다지요.


  중국이며 인도에 때려지은 공장을 한동안 멈추니 먼지구름이 사라집니다. 한국에서도 공장을 멈추면 먼지구름뿐 아니라 지저분한 구정물도 말끔히 사라지겠지요. 이제 생각해 봐야지요. 왜 매캐한 먼지하고 지저분한 구정물이 쏟아져나오는 공장이나 발전소를 돌려야 할까요? 돌리고 돌리더라도 돌림앓이가 되지 않는, 맑고 밝은 터전을 돌보도록 이바지하는 공장이 되도록 마음하고 머리를 쓰기가 어려울까요. 전쟁무기를 새로 뚝딱거리는 데에 돈을 쏟아붓지 말 노릇이면서, 이 땅을 푸르게 가꾸는 길에 힘을 기울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돌봄칸


  아프거나 앓는 이를 다스리는 곳이라면 ‘돌봄집’이로구나 싶습니다. 돌보아서 낫게 하는 집이요, 돌보는 손길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집이에요. 돌봄집은 칸을 알맞게 나눕니다.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마음을 푸근히 다독이면서 몸을 튼튼하게 가꾸도록 바라지하려는 칸을 두어요. 이러한 칸은 ‘돌봄칸’이 됩니다.


  돌보는 사람이기에 ‘돌봄이’예요. 어버이는 아이를 돌봅니다. 배우는 곳이라면 어린이·푸름이를 배움으로 돌볼 테고,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낫도록 하려는 터에서는 포근손이며 사랑손으로 돌볼 테지요.


  돌봄집에서도, 보금자리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저마다 돌봄이라는 눈빛이 되어 환하며 즐거운 기운을 나눕니다. 돌봄일꾼이 되고, 돌봄지기가 됩니다. 돌봄빛이 되고 돌봄님이 됩니다.


 누리맞이


  나라 곳곳에 돌림앓이가 퍼지면서 멈추는 곳이 많습니다. 배움터도 멈추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올해에도 슬기롭게 배우기를 바라는 뜻으로 저마다 집에서 조용히 배우도록 하는 틀을 마련합니다. 셈틀을 켜서 이야기를 듣고 살피도록 하는 이러한 틀은 ‘누리맞이’라고 할 만합니다.


  누리집이 있어요. 누리글월을 주고받아요. 누리판에서 나누는 누리글이며 누리그림입니다. 누리판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은 서로 누리님이자 누리벗입니다. 누리판에서 한결 홀가분하게 만나는 누리날개를 펴고, 누리가게에서 이것저것 사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리책집에서 책을 만날 수 있으며, 손전화를 켜고 누리마실을 즐기기도 합니다.


  누릴 수 있는 곳은 마을입니다.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보듬는 풀꽃나무가 자라는 마을이기에 다같이 짙푸른 바람을 누리고, 새파란 하늘을 누립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다함께 누릴 수 있다면, 굳이 플라스틱에 물을 안 담아도 될 테며, 시멘트를 땅에 파묻거나 커다란 시멘트담을 세우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셈틀을 켜서 배우는 ‘누리배움’을 한다면, 어른은 무엇을 하면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온누리를 어떤 새누리가 되도록 가꿀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살림길을 열 만할까요?


  예전 그대로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예전대로 살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새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억지스러운 새나라나 새마을이 아닌, 슬기롭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새터에 새빛에 새말에 새싹이 될 새삶을 생각하기를 바라요.


  새마음이 되는 새사람입니다. 새봄에 마주하는 새꽃입니다.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같이 들을까요?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함께 누릴까요? 바야흐로 제비가 둥지를 새로 짓거나 고칩니다. 제주부터 백두까지, 전라남도 고흥부터 서울을 거쳐 중간진까지, 새바람이 싱그러이 불면서 곱다시 피어나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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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2020년 3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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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42. 엄마쉼 아빠쉼


  어른이 어른한테 쓰는 말이 있고, 어른이 아이한테 쓰는 말이 있습니다. 두 말은 다릅니다. 어른 사이에서 흐르는 말을 아이한테 섣불리 쓰지 않아요. 거꾸로 아이가 아이한테 쓰는 말은 어떤가요? 아이가 아이한테 쓰는 말은 어른한테 써도 될까요, 안 될까요?


  어린이하고 어른이 함께 알아듣는 말이 있고, 어른만 알아듣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어린이만 알아듣는 말이 있을까요? 아마 어린이만 알아듣는 말도 있을 테지만, 어린이가 알아듣는 말이라면 어른도 가만히 생각을 기울일 적에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내 알아차리곤 합니다.


  이와 달리 어른끼리 알아듣는 말이라면, 어른들이 아무리 쉽게 풀이하거나 밝힌다 하더라도 어린이가 좀처럼 못 알아차리곤 해요. 이를테면 ‘출산휴가’ 같은 말을 생각해 봐요. 어른이 일하는 자리에서는 으레 쓰는 말이지만 어린이한테는 도무지 와닿지 않습니다. 어린이한테 ‘출산’이나 ‘휴가’란 말을 써도 좋을까요?


  동생을 낳는 어머니나 아버지라면 언니나 누나나 오빠가 될 아이한테 “네 동생을 낳으려고 어머니가 일터를 쉰단다.”라든지 “엄마가 너희 동생을 낳거든. 그래서 아빠가 일을 쉬는 틈을 얻었어.”처럼 말하겠지요.


  이 대목에서 뭔가 반짝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면,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새롭게 쓸 낱말을 얻을 만해요. 먼저 ‘엄마쉼’하고 ‘아빠쉼’입니다.


  1990년대까지 택시에서는 ‘空車’라는 한자를 적어 알림판으로 세우고 다녔습니다. 저도 떠오르는데요, 어머니한테 여쭈었지요. “어머니, 저 택시에 뭐라고 적혔어요?” “저거? ‘공차’라고 하는데.” “공차? 공차가 뭐예요? 공을 차라는 말이에요?” “아니. 호호. 손님이 없는 차라는 뜻이야.” 지난날 저처럼 물어본 어린이가 많지 않았을까요? 이제 택시는 ‘쉬는차’라는 알림판을 씁니다.


  자동차가 빨리 달리는 길에서 쓰는 말도 ‘휴게소’ 못지않게 ‘쉼터’를 널리 써요. 그렇다면 일터나 학교에서 쉬는 짧은 틈을 ‘쉬는틈·쉴틈’이나 ‘쉬는때·쉬는짬’이나 ‘쉴때·쉴짬’처럼 새말을 쓸 만합니다. 생각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어느 자리에서나 한결 쉽게 가다듬을 만해요. 갓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일고여덟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면서, 어린이가 생각을 어떻게 살찌우도록 이끌면 좋을까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이리하여 ‘엄마쉼·아빠쉼’이나 ‘엄마말미·아빠말미’라든지 ‘아기쉼·아기말미’ 같은 말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라밖 그림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이 누리글월을 띄워서 옮김말을 어린이 입말에 맞게 손질해 줄 수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기꺼이 손질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내 친구 알록달록 빛깨비예요

→ 동무인 알록달록 빛깨비예요

그건 가지가지 느낌이 휘휘 뒤섞였기

→ 아마 가지가지 느낌이 휘휘 뒤섞였기

그리 변했지

→ 그리 됐지


  “내 친구”는 번역 말씨입니다. 한국 말씨는 “우리 친구”처럼 ‘우리’를 넣어요. 또는 ‘우리’조차 안 쓰지요. ‘동무’ 한 마디만 쓰면 됩니다. ‘그건(그것은)’을 앞머리에 넣는 말씨도 번역 말씨입니다. 앞자락하고 잇는 말씨로 ‘아마’나 ‘그리고’를 쓰면 돼요. ‘변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은 ‘바뀌다·달라지다’로 손보면 되는데, 이 흐름에서는 ‘되다’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찬찬히 살필 수 있어

→ 찬찬히 볼 수 있어

이건, 행복이야

→ 자, 기쁨이야

해님처럼 노랑 빛을 퐁퐁

→ 해님처럼 노랑을 퐁퐁


  “찬찬히 살피다”는 겹말입니다. ‘찬찬히’나 ‘살피다’는 ‘잘’ 보려고 하는 몸짓을 나타내요. “찬찬히 볼”이나 “잘 볼”이나 “살펴볼·살필”로 가다듬습니다. 앞머리에 ‘이건(이것은)’을 섣불리 넣을 적에도 ‘그건(그것은)’하고 똑같이 번역 말씨예요. 이 자리는 ‘자’를 넣으면 좋아요. 또는 ‘여기’를 넣을 수 있습니다. ‘행복’ 같은 한자말은 널리 쓴다지만,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이라면 ‘기쁨’이란 낱말이 어울립니다. “노랑 빛”은 ‘노랑’이나 ‘노란빛’으로 다듬습니다.


누군가와 몽땅 나누고 싶어져

→ 누구하고 몽땅 나누고 싶어

슬퍼지면 눈물이

→ 슬프면 눈물이

손을 꼭 잡아 줄 거야

→ 손을 꼭 잡아 줄게


  ‘누·누구’라는 낱말에 자꾸 군말을 붙여서 쓰는 버릇이 퍼졌습니다. ‘누군가가’처럼 쓰는 분이 꽤 보이는데 겹말입니다. ‘누군가와’는 틀린 말씨까지는 아니지만 군살을 덜고 ‘누구하고’나 ‘누구랑’처럼 손질하면 입으로 말하기에 부드러워요. ‘-지다’를 자꾸 넣어도 번역 말씨예요. ‘슬퍼지면’보다는 ‘슬프면’이라 하면 되어요. “잡아 줄 거야”처럼 ‘것’을 자꾸 넣는 버릇도 군더더기이면서 일본 말씨예요. “잡아 줄게”나 “잡을게”처럼 짧게 끊습니다.


한밤중처럼 캄캄하고

→ 한밤처럼 캄캄하고

겁쟁이 고양이처럼 숨어 있지

→ 두렴쟁이 고양이처럼 숨지

달랑 혼자인 기분이라고 느껴

→ 달랑 하나라고 느껴 / 혼자라고 느껴

지금 네 기분은 어떠니

→ 오늘 네 마음은 어떠니


  ‘한밤’이라 할 노릇이고 ‘한밤중’은 겹말입니다. ‘겁쟁이’라면 ‘두렴쟁이’로 손볼 만하고, “-고 있다” 같은 번역 말씨·일본 말씨는 ‘있다’를 덜어서 “숨어 있지”는 “숨지”로 다듬습니다. ‘기분’이란 한자말은 ‘느끼다’를 나타내기에 “기분이라고 느껴”는 겹말이에요. 한자말 ‘기분’은 자리를 살펴 ‘느낌’이나 ‘마음’으로 알맞게 손볼 만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참으로 말다우려면 흙을 만지며 일하는 사람 눈길로 말해야 한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요즈막 흙일꾼은 농협에서 쓰는 일본 한자말에 물든 말씨가 매우 깊이 퍼졌어요. 흙내음 나는 말씨를 쓰는 손길이 되면서,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는 눈빛으로 가다듬는 말씨라면 한결 고우면서 즐겁고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그리는 말씨로 추스르는 셈입니다. 숲에서 노는 어린이 마음으로 가다듬는 셈입니다. 숲을 사랑하여 폭 안기는 어린이 눈빛이자 사랑으로 돌보는 셈입니다. 어린이 마음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듯, 오늘 우리 어른들이 쓰는 말씨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가 될 적에 넉넉하고 알차고 슬기롭고 빛나고 즐거우면서 새로우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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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41. 봄샘



  봄을 앞둔 겨울은 추위가 모집니다. 봄이 다가오니 봄을 시샘한다고도 하지만, 아직 겨울이니 겨울답게 바람이 매섭고 날은 싸늘하겠지요. 봄을 시샘한다는 추위를 놓고 옛사람은 재미나게 말을 엮었습니다.


 꽃샘추위·잎샘추위


  봄을 시샘하는 날씨라면 ‘봄샘’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꽃샘’하고 ‘잎샘’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이 대목을 도두보면 좋겠어요. 그만큼 이 나라 흙지기는 언제나 꽃을 바라보고 잎을 살펴보았다는 뜻이 흘러요. 언제나 꽃이며 잎을 돌보고 곁에 두면서 마음으로 품었구나 싶은 숨결을 느낄 만해요.


 꽃샘나이·봄샘나이


  꽃이며 잎을 샘내는 추위를 나타내는 낱말을 헤아리다가 문득 새말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리하여 ‘꽃샘나이·봄샘나이’를 엮었어요. 이 낱말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제 봄처럼 피어나면서 무럭무럭 철이 들 즈음인 나이를 놓고 숱한 어른들은 아이들이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차갑다고들 말해요.


  여러모로 보면 ‘사춘기’라는 한자말 이름에는 푸르게 꽃피려는 숨결을 썩 안 좋게 보는 기운이 깃들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라는 한자말 이름이 이 땅에 깃든 지 얼마 안 됩니다. 예전에는 ‘사춘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푸른 나이에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는 판이 되고부터 바야흐로 사춘기가 불거지지요.


 꽃나이·봄나이


  한창 철이 들면서 푸르게 빛나려 하는 나이에 일어나는 차가운 바람을 ‘꽃샘나이’로 나타낸다면, ‘샘’을 덜고 ‘꽃나이’라 해보아도 어울립니다. 굳이 어린이·푸름이한테 ‘시샘’ 같은 말을 안 써도 되어요. 그저 꽃으로 피어나려고,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고, 망울을 맺는 푸나무처럼 마음망울을 맺는 모습을 그리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꽃샘철·잎샘철


  여기서 한 가지 말을 더 지어 봅니다. ‘꽃샘철·잎샘철’인데요, 이 새말로는 어떤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만할까요? 고즈넉히 눈을 감고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꽃을 샘하는 철에 이른 나이란, 잎을 시샘하듯 거칠게 구는 나이란, 바로 ‘반항기’입니다.


  ‘반항기’란 한자말 이름도 이 땅에 스며든 지 얼마 안 됩니다. 더구나 아이가 어른한테 대든다는 느낌이 너무 짙어요. 이런 말을 쓰면 막상 이무렵에 이른 어린이나 푸름이로서도, 또 이런 말을 읊을 어른으로서도, 서로 기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말씨부터 가다듬어서 생각도 추슬러야지 싶어요.


 사광이풀·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배꼽’이나 ‘며느리밑씻개’란 풀이름은 일본에서 스며들었습니다. 이 나라 흙지기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쓰던 이름을 한국 식물학자가 엉뚱하게 끼워맞춘 이름이지요. 며느리 살림하고 동떨어진 채 함부로 붙여서 퍼진 이런 풀이름을 이제는 바로잡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뜬금없는 이름으로 이 땅 풀꽃을 깎아내리고, 며느리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마저 업신여기는 길을 가야 할까요?


  ‘개불알풀꽃’이란 이름도 일본에서 쓰는 말을 억지로 꿰맞춘 풀이름입니다. 말느낌이 안 좋아서 안 쓸 풀이름이 아니라, 이 땅 흙지기 흙살림하고는 안 어울리기에 쓸 까닭이 없는 풀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름이 있느냐 하면 ‘봄까지꽃’입니다. ‘-까지’란 이름을 붙여서 재미있습니다. 한겨울이 이울며 낮이 차츰 길어질 즈음 비로소 새싹을 내미는 봄까지꽃은 한봄에 무르익다가 늦봄에 가뭇없이 사라져요. 5월로 접어들면 시들시들하고, 5월이 깊을 무렵 모조리 녹더군요. 그야말로 봄까지 피는 앙증맞은 쪽빛 풀꽃인 봄까지꽃이에요. ‘-까치’가 아닌 ‘-까지’를 붙이는 풀이름입니다.


 알갱이


  요즈음은 다들 ‘곡식’이라 하지만, 이 한자말이 들어오기 앞서는 ‘나락·낟알’이라든지 ‘알·씨알’이나 ‘씨앗·알맹이’란 낱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알갱이’를 썼어요. ‘-갱이’가 붙는 낱말로 ‘고갱이’가 있어요.


  ‘고갱이’는 줄줄기나 나무줄기에서 한복판을 자리하는 곳을 가리킵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중심, 핵심, 근원, 본질, 중요, 골자’라 하겠지요. 그렇다면 ‘알갱이’란 낱말은 얼마나 더 깊으면서 너른 낱말일까요?


  ‘알 + 갱이’인 ‘알갱이’예요. ‘알맹이·알짜·알속·알차다’가 갈리고 ‘알뜰하다’가 갈리며, 이윽고 ‘알다·알리다’하고 ‘아름답다·아름드리’가 갈립니다.


  ‘알갱이’란 낱말은 쓰임새가 매우 넓습니다. ‘곡식, 물질, 입자, 정수, 결정, 과립’부터 ‘실속, 내실, 요지, 함량, 용적, 필요, 필수, 환, 실질’을 아우르는 낱말이에요. 그렇지만 이러한 오랜 텃말이 어떤 살림을 나타내고 어떻게 가지를 뻗으며 얼마나 우리 삶자락에 두루 깃드는가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가 아직 얕아요. 학교에 국어 수업은 있으나 말을 말답게 나누는 자리는 거의 없어요.


 하늘로


  하늘로 치솟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하늘을 뚫으려 합니다. 하늘을 찌르려 하지요. 이러한 자리에 ‘천정부지’란 한자말을 쓰는 분이 꽤 있더군요. 그런데요, ‘하늘로’ 한 마디여도 좋아요. 하늘을 둘러싼 여러 수수한 말을 쓰면 되어요. 그리고 ‘껑충’이나 ‘거침없이’나 ‘끝없이’나 ‘마구’나 ‘엄청나게’나 ‘무섭게’나 ‘어마어마하게’ 같은 말을 알맞게 쓸 만합니다.


  얼마 앞서 읍내 문방구에 가서 볼펜 ‘속’을 장만하는데요, ‘심(心)’이라는 말이 어쩐지 껄끄러워 “볼펜 ‘속’이 있을까요?” 하고 여쭈어서 ‘속’만 산 적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제가 어릴 적에는 할아버지 가운데 ‘연필 심’이라 안 하고 ‘연필 속’이라 말씀한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한자말이야 ‘심지(心地)’일 텐데, 이런 말을 안 쓰고 ‘속·속대’라고들 하셨는데, 속이나 속대라 말씀한 분은 어릴 적부터 흙을 가까이하고 푸나무를 돌본 손길을 온몸에 새긴 어른이더군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면서 ‘속’이라는 낱말로 골라서 씁니다. 마음을 이야기할 적에도 ‘속’이라는 낱말을 즐겁게 씁니다. 속을 가꾸고 속을 돌보며 속을 바라봅니다. 껍데기 아닌 속알을 가다듬어 곱게 빛나는 길을 가자고 이야기해요.


  봄을 앞두면 봄샘바람이 불 만한데, ‘샘’이란 시샘하는 샘도 있지만, 맑고 알뜰히 흐르는 물줄기인 샘도 있어요. 봄날 봄꽃이 흐드러지는 봄골에 흐를 봄샘물을 두 손에 담아서 나누고 싶습니다. 철철철 흐르는 봄샘물로 봄빛을 흐벅지게 누릴 하루가 다가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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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40. 빛둥이



  “속 좀 풀자.”고 말할 적에는 두 가지 뜻입니다. 성이 나거나 골이 난 속(마음)을 찬찬히 다스리자는 뜻이 첫째요, 술을 잔뜩 마시느라 메스껍거나 힘들거나 아픈 속(배)을 부드럽게 다스리자는 뜻이 둘째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사전을 들추면 ‘마음풀이’를 나타낼 ‘속풀이’는 바르지 않으니 ‘분풀이(憤-)’로 고쳐야 한다고 다룹니다.


  이런 사전풀이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성이 났기에 성을 풀려고 ‘성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속마음을 풀려고 하니 ‘속풀이·마음풀이’를 할 수 있을 테고요. 있는 그대로 쓰는 말입니다. 굳이 한자 ‘분(憤)’만 표준말로 삼을 까닭이 없습니다.


  낱말을 풀이해서 ‘말풀이·낱말풀이’에 ‘뜻풀이·사전풀이’라 하지요. 이러한 얼거리를 살핀다면 여러 자리나 결을 살펴서 새롭게 쓸 말을 지을 수 있어요.


 책풀이 ← 해제(解題)

 길풀이 ← 해법(解法)

 사랑풀이 ← 연애 상담


  꿈을 풀기에 ‘꿈풀이’입니다. 낮꿈이든 밤꿈에 나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꿈풀이가 있다면, 이루려고 품은 꿈을 드디어 눈앞에서 펼쳐내는 꿈풀이가 있어요. ‘사랑풀이’라 할 적에도, 실타래처럼 엉킨 사랑줄을 푸는 길이 하나라면, 너랑 나랑 맺을 즐거운 사랑을 이루는 길도 새삼스러이 사랑풀이가 될 만합니다. 그러고 보면 굿을 할 적에 ‘씻김’이란 말 못지않게 ‘풀이’란 말을 같이 써요. 씻는 일하고 풀어내는 일은 다르니, 다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곳을 씻기에 씻김이라면, 맺히거나 엉키거나 꼬인 곳을 풀기에 풀이가 되겠지요.


 꽃둥이. 빛둥이

 꽃지기. 빛지기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다리를 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널리 알리면서 아름답고 즐겁게 함께하자는 뜻을 밝히는 사람이 있어요. 이러한 일꾼을 한자말로 ‘친선대사’라고도 하는데, 사이좋은 아름다움이란 서로 빛나는 일이니, ‘빛둥이·빛지기’처럼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로 꽃다운 길을 가도록 이끈다는 뜻에서 ‘꽃둥이·꽃지기’ 같은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숲벼락. 하늘벼락


  땅이 갈라지거나 비바람이 드세거나 너울이 넘치는 일을 아울러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한자말로는 ‘천재지변’이 있습니다만, 어린이가 알아듣기에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날벼락·불벼락’이란 말이 있으니,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듯이 내리친다는 뜻으로 ‘하늘벼락’이라고, 또 사람이 숲(자연)을 함부로 굴거나 괴롭히는 탓에 숲이 내리는 벼락이라는 뜻으로 ‘숲벼락’이라 하면 어떨까요.


-지만. 지마는 ← 반면, 그 반면, 반대로, 그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대신(代身)


  “그렇지만 대신에 ……” 하고 말하는 이웃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지만(지마는)’으로 맺는 토씨는 바로 ‘대신에’를 가리키거든요. 겹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꽤 많은 분이 “그렇지만 그 반면에”라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말씨를 쓰는구나 싶습니다. 단출히 ‘-지만(지마는)’으로 맺고서 지나가면 되어요.


 아무개. 누구. 이름없는. 안 알려진. 낯설다 ← 무명인. 무명


  어린이가 읽는 책에는 ‘무명·무명인’ 같은 낱말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어른이 읽는 책에는 이 말씨가 곧잘 나옵니다. 또 어른 사이에서는 입말로도 제법 쓰더군요. 그러나 꼭 쓸 만한 말씨인가 돌아보면 좋겠어요. 자리를 살펴 ‘아무개’나 ‘누구’라 하거나, ‘이름없는’이나 “안 알려진”이나 ‘낯설다’를 쓰면 돼요.


 가만히. 살며시. 넌지시. 슬며시


  알 듯 모를 듯 할 적에는 어떤 낱말로 나타내면 좋을까요? 이때에 글밥 먹은 어른은 으레 ‘은유·은유적’이나 ‘암시·암시적’ 같은 말씨를 씁니다만, 어른 사이에서도 못 알아차리는 분이 있고, 어린이라면 더더구나 못 알아차립니다. ‘은유·암시’ 같은 말씨를 쓰는 길이 더 넓거나 깊게 생각을 북돋울까요? 아니면 ‘가만히·살며시·슬며시·넌지시’에다가 ‘살짝·슬쩍·살짝살짝·슬쩍슬쩍’을 쓰는 말씨가 한결 넓거나 깊게 생각을 북돋울까요? 이밖에 ‘문득·얼핏·설핏·얼핏설핏’이라든지 ‘빗대다·에두르다·눙치다’나 ‘조용히·조용조용’으로도 알 듯 모를 듯 하는 몸짓이나 결을 나타낼 만해요.


 다음얘기. 둘째판. 다음판. 두걸음


  미국이나 영국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곧잘 쓰던 영어 “시즌 투”인데, 이제는 한국에서 이 말씨를 곳곳에서 쓰곤 합니다. 영어를 쓴대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우리한테 한국말이 있다면 한국말로 새 말씨를 생각해 볼 만합니다. 수수하게 ‘다음얘기·다음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첫째 이야기를 지나 둘째 이야기가 된다면 ‘둘째얘기’라 해도 되고, ‘둘째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판’도 어울리고, ‘걸음’을 넣어 ‘두걸음·세걸음·네걸음’이라 하면 “시즌 투·시즌 쓰리·시즌 포”나 ‘2회·3회·4회’나 ‘2부·3부·4부’까지도 담아낼 만합니다.


 맞춤솜씨. 맞춤길. 새솜씨. 새길 ← 적정기술


  나라 곳곳에서 ‘적정기술’을 말하고 ‘적정기술센터’라는 곳도 생깁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이 땅에 알맞게 새로운 솜씨나 재주를 펼치거나 나누려 한다면, 이 땅에서 쓰는 말글도 알맞거나 새롭게 가다듬는 길을 가면 더욱 좋겠지요? 알맞춤한 솜씨처럼 알맞춤한 말이며 글을 쓰면 참으로 고울 테고요. 맞춤이 아름답다면 ‘맞춤솜씨’요, 우리는 ‘맞춤길’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하고 다른 솜씨요 길이라면 ‘새솜씨·새길’이 되겠지요.


  처음부터 아주 놀랍거나 대단하거나 멋진 말을 찾아내거나 지어서 써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씨를 쓰면 되고, 흔하거나 너른 낱말을 하나하나 살펴서 조곤조곤 쓰면 되리라 느낍니다.


  모임을 이끌기에 ‘회장’이라고 합니다만, ‘회 = 모임’이요 ‘장 = 지기’예요. 꾸밈없이 ‘모임지기’라 할 수 있고, 모임을 이끄는 빛 같다는 뜻으로 ‘모임빛’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말을 살리는 길도 이와 같으니, 우리는 말빛을 가꾸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말빛지기’가 되겠지요. 말을 다루는 학자나 사전을 쓰는 사람은 말빛지기가 됩니다. 알찬 책이나 잡지를 여미는 일꾼이라면 ‘글빛지기’일 테고요. ‘글빛지기’란 출판사로는 편집자가 될 테고, 신문·잡지사로는 기자가 되겠지요. 수수하게 ‘말빛둥이·글빛둥이’나 ‘말빛돌이·글빛순이’라 해도 재미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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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39. 햇사랑



  한국말로 옮긴 어느 일본만화를 읽는데 “순애보인가?”라는 짤막한 한 마디를 보았습니다. 어른끼리 이야기하는 둘레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낱말인 ‘순애보’이지만 말뜻을 제대로 짚자는 마음으로 사전을 뒤적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사전에 없습니다. 더 살피니 이 낱말은 1938년에 어느 분이 쓴 글에 붙은 이름이에요. 글이름이라서 사전에 없나 하고 헤아리면서 한문 ‘殉愛譜’를 뜯으니 “바치다(殉) + 사랑(愛) + 적다(譜)”로군요. “바치는 사랑을 적다”라든지 “사랑을 바친 이야기”로 풀이할 만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글인 터라 아무래도 글이름을 한문으로 적기 쉬웠을 테고, 중국 말씨이거나 일본 말씨일 테지요. 그렇다면 요즘은 어떻게 쓰거나 읽거나 말하거나 나눌 적에 어울리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절절한 순애보 같았다 → 애틋한 사랑 같았다 / 애틋이 사랑에 바친 듯했다

 스타들의 순애보를 보면 → 샛별들 사랑을 보면 / 별님들 사랑타령을 보면

 그녀를 향한 순애보 → 그이를 보는 애틋사랑 / 그님을 보는 사랑

 각별한 순애보를 짐작하게 했다 → 남다른 사랑을 어림해 본다


  한국사람이 쓴 글에 붙인 이름은 ‘순애보’이니 일본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는 자리에 섣불리 쓰기에는 안 어울릴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사랑’이라 하면 되고, “애틋한 사랑”이라든지 ‘사랑타령’이라 할 만해요. “사랑을 바치다”를 간추려 ‘사랑바침’이라 하거나 ‘애틋사랑’이라 해도 어울리겠지요.


  그리고 아예 느낌을 새롭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님 같은 사랑을, 햇살 같은 사랑을, 햇볕 같은 사랑이라 할 만하지요. ‘해 + 사랑’ 얼개로 ‘햇사랑’이라 하면 어떨까요?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 순애보(殉愛譜), 연가(戀歌), 열애, 순정(純情), 자애, 자비, 가호, 대자대비, 무한한 애정, 애지중지, 정성, 지극정성, 극진, 성심, 성의, 성심성의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이렇게 세 마디를 새로 지어서 써 보니, 여러 가지 한자말이 머리에 줄줄이 떠오릅니다. 저 말고도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같은 말을 쓰는 분이 있겠지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해님처럼 맑고 밝으며 포근하기에, 같이 있기만 해도 햇살처럼 눈부시기에, 말 몇 마디만 섞어도 햇빛처럼 환하게 퍼지는 기운이 곱기에 이러한 사랑을 그릴 만하지 싶습니다.


 첫사랑. 풋사랑. 참사랑.

 온사랑. 두사랑. 새모사랑.


  사전을 살피면 ‘첫사랑·풋사랑·참사랑’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여러모로 펴거나 받거나 누리거나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에 모든(온) 숨결을 담은 ‘온사랑’이라든지,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두사랑’이라든지, 세 사람이 얽힌 ‘세모사랑’도 있어요.


  우리가 누리거나 조마조마하거나 설레거나 반가이 여기는 사랑을 놓고서 새삼스레 말 한 마디를 엮을 만하지 싶습니다. ‘하늘사랑’이라든지 ‘바다사랑’이라든지 ‘푸른사랑’이라든지 ‘하얀사랑’ 같은 말도 넉넉히 쓸 만할 테고요.


  때로는 바보스럽게 굴어 ‘바보사랑’이 됩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아이를 아끼면서 ‘아이사랑’입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하면 ‘어버이사랑’이에요. 이런 사랑을 두고 ‘내리사랑·치사랑’ 같은 말이 따로 있습니다만, 수수하게 ‘아이사랑·어버이사랑’을 써도 쉽고 어울립니다.


 밥사랑. 옷사랑. 집사랑.

 책사랑. 노래사랑. 이웃사랑.


  먹기를 좋아한다면 ‘밥사랑’이요, 옷을 좋아하기에 ‘옷사랑’입니다. 바깥에서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기에 ‘집사랑’이 됩니다. 책이나 만화나 사진이나 그림이나 영화를 즐기면 이러한 즐길거리에 ‘-사랑’을 달아 볼 만합니다. ‘노래사랑’도 하고, ‘자전거사랑’도 하며, ‘나들이사랑’도 할 만해요. 이웃을 돕는다는 ‘이웃돕기’도 좋으나, 이보다는 ‘이웃사랑’이란 말을 쓰면 한결 어울리지 싶습니다.


  나라하고 나라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려 하는, 이른바 평화협정을 놓고도 ‘이웃사랑’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을사랑’도 하고 ‘고장사랑’이며 ‘고을사랑’도 할 만하고, 밤하늘 별빛을 지켜보며 ‘별빛사랑’을 할 수 있어요.


 어른사랑 ← 경로우대, 경로석


  버스에 보면 ‘경로석’이란 이름을 붙여놓곤 합니다. 뜻은 좋습니다만 ‘경로석’ 같은 이름은 낡았다고 느껴요. 이제는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고 느낄 수 있도록 ‘어른사랑’이라든지 ‘어른자리’란 이름을 붙이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어른아이자리’처럼, 어른하고 아이가 같이 누리는 자리로 삼을 수 있어요.


  오늘날 더없이 흔히 쓰지만, 가없이 좁은 틀에 가두기 일쑤인 ‘사랑’이란 낱말이지 싶습니다. 삶이 노래가 되도록 따뜻하면서 맑고 고이 마음을 쓰면서 나누려고 하는 숨결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 낱말을 이제는 슬기롭게 제대로 쓰면 좋겠습니다.


  벼슬아치 아닌 ‘벼슬지기’ 같은 일꾼이 마을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되어 마을사랑을 펴는 길을 간다면 좋겠어요.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되는 어른이 배움동무인 어린이하고 푸름이 곁에서 오롯이 사랑이란 마음으로 함께 가르치고 배운다면 좋겠어요. 교육열이나 입시교육이나 교과서 진도가 아닌 ‘배움사랑’이란 마음으로 이야기를 편다면 확 달라질 만하겠지요.


 배움사랑. 글사랑. 사랑손.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분이라면, 멋을 부리거나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잘난척하는 글이 아니라, 옹글게 따사로운 숨을 함께하는 마음이 되어 ‘글사랑’을 편다면 좋겠습니다. 나아 보이려 할 까닭이 없어요. 높아 보여야 할 일이 없어요. 고스란히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여미면 됩니다. 고요히 사랑이라는 손빛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하면 됩니다.


  논밭에 씨앗을 심는 손길은 투박하거나 거친 손이 아닌, 사랑이 어린 손입니다. 바로 ‘사랑손’이에요. 아픈 아이나 이웃을 달래거나 다독이기에 사랑손입니다. 이 땅을 넉넉히 돌보거나 가꾸기에 사랑손입니다. 서로 손을 맞잡거나 이바지를 할 줄 알기에 사랑손입니다.


  일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사랑손이라면, 사람이 사람으로 마주하는 터라든지 사람이 숲을 바라보는 곳에서는 ‘사랑눈’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발 이익이란 이름이 아닌 푸른 마을이며 숲이 되도록 사랑눈으로 지켜볼 줄 알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웃이며 동무가 들려주는 말을 어질고 참되게 맞아들이는 귀가 되는, 이른바 ‘사랑귀’라면 한결 좋겠지요.


  사랑손, 사랑눈, 사랑귀, 이다음에는 사랑발, 사랑몸, 사랑숨이 될 테고, 차츰차츰 사랑빛에 사랑넋에 사랑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겠지요. 말 한 마디에 사랑을 심는 ‘사랑씨앗’이 퍼져서 자라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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